비운의 육사 ‘생도 2기’...입학 3주만에 6·25 참전, 43%가 숨졌다

노석조 기자 2023. 12. 30. 0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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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호 6·25 참전 육사 생도 기념사업회 이사장이 최근 집에서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고운호 기자

“6·25전쟁 정전(停戰) 70주년을 맞아 ‘잊혀진 육사인’인 생도 1·2기를 기억해주니 감개무량합니다.”

6·25참전육사 생도 기념사업회의 장기호(91) 이사장은 본지 인터뷰에서 눈시울을 붉혔다. 장 이사장은 지난 8일 육사 재학 중 6·25가 터져 임관도 못 하고 생도 신분으로 참전한 생도 1·2기를 기리기 위해 창립한 기념사업회 초대 이사장으로 위촉됐다. 생도 1기는 전쟁 중 뒤늦게 졸업 겸 임관식을 치러 육사 10기로 인정받았지만, 교육 기간이 너무 짧았던 생도 2기는 졸업을 못해 기수도 받지 못하고 ‘생도 2기’로만 불리는 ‘비운의 기수’다. 생도 2기 총동창회장이었던 장 이사장을 최근 그의 서울 연남동 자택 방문과 29일 전화 통화를 통해 인터뷰했다.

장 이사장은 거실 벽면을 빼곡히 장식한 태극기, 육사 교정 및 생도 시절 사진을 둘러보며 “지난 70여 년은 애국심과 나라에 대한 섭섭함이 교차하는 세월이었다”고 말했다. 육사에 30대1의 경쟁률을 뚫고 당당히 들어가 참전까지 했지만, 졸업을 못 했다는 이유로 육사 10기 선배와 11기 후배 사이에서 기수 없는 ‘낙동강 오리알’ 같은 신세로 살았기 때문이다.

장 이사장의 증언과 육사 사료에 따르면, 1946년 개교한 육사는 육사 1~9기까지는 광복군, 일본·만주군 등 경력 군인을 주로 뽑아 약 1~6개월의 교육 과정을 거쳐 임관시켰다. 그러다 10기에 해당하는 생도들은 1949년 2년제로 뽑았고, 이듬해인 1950년에는 처음으로 정규 4년제 생도를 선발했다. 서울 종로 태생인 장 이사장도 조간신문에서 4년제 육사 생도 모집 광고를 보고 지원했다고 한다. 정상적으로 학교를 다녔다면, 장 이사장 등 생도 2기는 육사 11기가 됐을 것이다.

그래픽=김하경

하지만 생도 2기는 입학한 지 25일 되는 날 6·25를 맞이한다. 소총 훈련이 예정돼 있었는데 “북이 남침했다”며 바로 전쟁터로 투입됐다. 총 539명의 생도1·2기는 M1 소총을 들고 서울 태릉에서 경기도 포천으로 향했다. 이들 나이 평균 열아홉이었다. ‘생도부대’는 포천, 수원, 성남 방어선에서 북한 보병·전차 부대를 맞아 10여 일간 전투를 벌였다. 이들의 육탄전은 북의 남하를 지연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생도부대 총 539명 가운데 절반 가까운 256명(1기 113명·2기 143명)이 전쟁 중 목숨을 잃었다.

이후 군은 대전에서 임관식을 열고 생도 1기에게 계급장을 달아줬다. 하지만 육사 입학 25일 차에 참전한 생도 2기는 임관하지 못했다. 대신 이들은 전쟁 발발 직후 단기 장교 양성을 위해 급히 세운 육군종합학교 2·3기로 편입돼 그곳에서 임관했다. 이에 생도 2기는 육사 기수를 받지 못하고 ‘생도 2기’로만 불리는 것이다. 그러는 사이 육사는 1952년 1월 11기 신입 생도를 선발했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등이 이때 입학했다. 육사 11기는 전쟁 중에 뽑혔지만 참전 없이 4년간 정식 교육 과정을 밟고 1955년 임관했다.

6·25 전사자 합동봉안식 - 국군 의장대가 29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열린 6·25 전사자 발굴 유해 합동 봉안식에서 유해를 봉송하고 있다. /고운호 기자

장 이사장은 “우리 생도 2기는 오랫동안 ‘육사인’으로 인정받지 못했지만 1996년 육사 명예 졸업에 이어 올해 기념사업회까지 발족해 뜻깊다”고 말했다. 박종선 육사 총동창회장은 “오직 나라를 지키겠다는 신념으로 계급장도 없이 생도 신분으로 참전한 이들의 헌신이 있었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생도 1·2기는 현재 약 50명 생존해 있다. 기념사업회는 생도 1·2기의 정신을 선양하고 생존자와 유족을 지원하는 사업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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