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서 빠지는 미적분Ⅱ… ‘공학의 언어’ 없으면 달탐사도 AI도 못해

유지한 기자 2023. 12. 30. 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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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8 수능부터 수학 미적분Ⅱ 선택과목 빠져
“과학 기초학문” vs “학업 부담 크다” 논란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은 2028학년도 수능부터 심화 수학인 ‘미적분Ⅱ’가 선택 과목에서 빠지는 것에 대해 “첨단 과학기술 시대에 수학 실력 하향을 조장하는 시험안”이라고 했다. 하 의원은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했다.

그는 29일 페이스북에 “(수능) 시험이 쉬워지면 그만큼 공부를 안 하게 되고 실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대한수학회도 이날 입장문에서 “수능 개편안은 명백한 수학 교육 약화 방안”이라며 “선진국 중 이공계 대입에 미적분Ⅱ와 기하를 시험 보지 않는 국가는 거의 없다”고 밝혔다. ‘미적분Ⅱ 제외’는 국가교육위원회가 사실상 결정했는데, 국교위에서 여론을 모으는 국민참여위원회는 ‘심화 수학을 넣자’는 의견이 더 많았다고 한다. 이 위원회는 학부모·학생 등 500인으로 구성된다. 이과 미적분Ⅱ가 수능 출제에서 빠지는 것은 34년 만에 처음이다.

반면 시민 단체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은 “수능에 심화 수학이 포함되면 초등 때부터 미적분을 배우는 등 사교육비가 폭증할 수 있다”고 했다. 이주호 교육부 장관도 28일 ‘미적분 제외 논란’에 대해 “우리 학교의 수능 수학 수업이라는 것이 창의적 수업과 관계가 멀다”며 “(미적분 제외는) 오히려 수학을 강화하는 방안”이라고 했다. 미적분이 무엇이길래 이런 논란이 생기는 걸까.

일러스트=김현국

미적분은 모든 움직임을 분석하는 데 필수적이다. 인류는 세상의 모든 움직임을 수학으로 표현하려고 했지만, 미적분 개념을 완성하기 전까지는 한계가 있었다. 정지한 물체의 분석 수준에 머물렀다는 것이다. 이광연 한서대 수학과 교수는 “미적분이 발달하기 전의 수학을 ‘스틸 사진’이라고 한다면 발달한 후의 수학은 ‘동영상’”이라고 했다. 미적분을 이용하면서 등장한 대표적 사례가 차량 내비게이션이다. 시간에 따른 이동을 분석하기 때문에 차량 도착 시간을 예상할 수 있다. 김재경 KAIST 수리과학과 교수는 “미적분은 시간에 따라 바뀌는 모든 분야에 적용할 수 있다”며 “실시간으로 변하는 주식 가격이나 약물이 우리 몸에 들어가서 작용하는 것 등을 모두 계산해 예측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유지한 조유미 오주비 기자

그래픽=양인성

미분(微分)은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움직임을 무한히 세밀하게 자르는 방법이다. 적분(積分)은 반대로 무한하게 잘린 것을 합치고 쌓는 것이다. 예를 들어 속도를 미분하면 시간에 따른 변화인 가속도가 되고, 가속도를 적분하면 속도가 되는 식이다. 동전의 양면 같은 개념이다.

◇미적분, 움직이는 모든 물체를 분석한다

미적분은 17세기 들어 영국 물리학자 아이작 뉴턴과 독일 과학자 고트프리트 라이프니츠가 정리했다. 두 과학자는 각자 연구했는데, 비슷한 시기에 미적분 개념을 내놓았다. 김재경 KAIST 교수는 “뉴턴은 행성이 움직이는 속도를 관찰했는데,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려면 얼마나 걸리는지 예측하기 위해서 미적분을 고안했다”고 말했다. 뉴턴 이전에도 거리와 시간, 속도를 계산하는 간단한 공식이 있었지만 속도가 변하지 않을 때만 적용 가능한 한계가 있었다.

미적분의 정리와 발전으로 현대 과학과 공학은 빠르게 성장했다. 2차 대전 등에서 미적분은 대포의 탄도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데 사용됐다. 1960년대 인류를 달로 보낸 아폴로 우주선의 궤적도 미적분 덕분에 정확하게 계산할 수 있었다. 최수영 아주대 수학과 교수는 “거시적으로 변화하는 모든 것들은 식으로 표현하게 되면서 계산이 정밀해졌다”고 말했다.

지금 미적분은 기계·전기·화학공학 등 공학 전반에서 기본으로 적용된다. 미적분을 모르면 이공대 수업을 따라가기 어렵다고 한다. 특히 공과대의 대다수 전공 과목은 미적분과 직결된다. 장병탁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는 “공학 과목에서 미적분 등 수학은 언어와 같다”고 말했다. 조성보 가천대 전자공학부 교수도 “강의를 하는 전자기학 3과목 중 2과목에서 쓰이는 수식들이 모두 미분 방정식”이라고 말했다.

◇미래 첨단 기술에 필수적으로 활용

현재 우리 생활에 미적분이 적용되지 않는 분야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첨단 과학기술 분야인 자율 주행과 인공지능(AI), 머신 러닝 등은 미적분을 모르면 개발이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자율 주행차가 추돌이나 충돌 등을 피하려면 미적분을 사용해 시간에 따른 외부 움직임을 분석해야 한다. 우주선과 인공위성의 궤도와 속도 계산, 행성 움직임 등 천문 연구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간판 산업인 반도체에도 미적분이 필수다. 0과 1로 표현되는 반도체의 설계가 제대로 됐는지 확인할 때 미적분이 쓰인다. 김정호 KAIST 전기·전자공학과 교수는 “반도체의 작동 원리가 미적분으로 표현되기 때문에 이를 모르면 반도체 설계 등을 다룰 수 없다”고 말했다.

우주항공·의료 등에 활용하는 3차원(3D) 프린팅도 미적분을 활용한 사례다. 3D 프린팅은 ‘한 층씩 쌓아가며 물체를 만드는 기술’이 기본 개념이다. 미분을 통해 복제할 물체를 매우 얇은 두께로 잘라 분석한 뒤, 적분으로 이 두께를 바닥부터 꼭대기까지 한 층씩 쌓아 올려 물체를 다시 만드는 것이다. 3D 프린팅으로 만든 물체를 현미경으로 확대하면 곡면으로 보이는 부분은 미세한 계단 모양을 하고 있다. 극도로 미세하게 잘라서 다시 쌓았다는 의미다.

경제와 환경, 의료, 예술 등에도 미적분은 광범위하게 사용된다. 코로나 팬데믹 당시 방역 대책을 세우려면 확진자 수와 중환자 규모의 변화를 예측해야 하는데 미적분 덕분에 ‘코로나 확산 모델’을 계산할 수 있었다. 기후 변화와 온실가스 배출량에 따른 대기 변화, 저수지 수량과 댐에 가해지는 압력 등도 미적분으로 추산한다. 덩치가 큰 물체뿐 아니라 아주 작은 공기나 물의 입자를 분석할 때도 미적분이 중요하다. 영화에서 물이 쏟아지는 장면 등을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들 수 있는 것도 미적분 덕분이다. 박종일 대한수학회장은 “미적분은 21세기 모든 데이터를 분석하고 모델을 만들 때 필요하다”고 했다.

그래픽=김하경

홍유석 서울대 공대 학장은 “4차 산업혁명과 AI 시대를 준비하려면 펀더멘털(기초 체력)이 가장 중요하다”며 “(기초 체력인) 미적분을 (고교 과정에서 충분히) 교육받지 못하면 (미래 산업 준비는) 사상누각이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반면 교육계 관계자는 “초등생 의대반 등에선 초등 6학년이 미적분을 배우는 등 학습 부담이 늘고 있고, 이는 사교육비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며 “미적분이 중요해도 과도한 사교육비가 저출생의 원인으로 꼽히지 않느냐”고 했다. 교육부는 ‘미적분Ⅱ'가 수능에서 빠져도 기본적 ‘미적분’은 시험에 들어가고 미적분Ⅱ도 학교에서 배울 수 있다고 했다.

☞미분과 적분

무한히 잘게 나누는 개념을 ‘미분(微分)’, 무한히 더하고 쌓는 개념을 ‘적분(積分)’이라고 부른다. 사물의 움직임을 분석할 때 주로 쓰인다. 이 때문에 미적분이 발달하기 전 수학을 ‘사진’, 발달 후 수학을 ‘동영상’으로 비유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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