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4시 꽉꽉 차는 노동자 버스…‘투명인간’ 아닌 ‘필요인간’ [대한민국의 새벽을 여는 사람들]

김홍준.신수민 2023. 12. 30.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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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REPORT
20일 오전 4시39분 상황의 8146번 버스 내부. 이미 버스는 30분 전에 꽉 찼다. 김홍준 기자
오늘도 오전 3시30분에 집에서 나왔다. 칼바람. 영하 12도. 체감으로 영하 20도라니, 세상에. 눈까지 내려 종종걸음. 다리 다친 뒤 반 년 만에 나가게 된 직장인데, 또 넘어지면 안 되지.

3시58분. 3시50분에 서울 노원구 상계동 7단지영업소 기점을 출발한 버스가 어김없이 왔다. LED로 찍은 ‘8146번’이 버스 이마에 선명하다. 문이 열렸다. 이태회(65) 기사가 가볍게 인사를 한다. 아, 이런. 왜 오늘따라 빈자리가 드물지. 뒷좌석에 앉아야 1시간 가까이 편하게 가는데. 청담역에서 내리는 저 언니와 영동대교에서 내리는 저 동생은 항상 앉던 자리에 앉아 있고, 강남역에서 함께 내리는 건물 관리인 아저씨도 저기 있구나. 변함없이 출근하는 그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눴어. 그런데, 맨 뒷좌석에 못 보던 남자가 있는데. 수염을 기른. 그 앞앞 자리에는 또 못 보던 젊은 여자도 있고.

영동대교를 건너는 8146번 버스. 이 버스는 오전 4시5분에 출발한 세 번째 버스로, 취재진이 3시50분에 출발한 첫 차에서 내려 촬영했다. 김홍준 기자
나는 김명숙. 68세로 나이는 조금 많지만, 강남구청 근처 KT빌딩에서 미화원으로 일하고 있지. 이 첫 버스 승객 90%는 여성. 나 같은 건물 미화원이 대부분이잖아. 사람들이 우릴 ‘여사님’이라고 부르는 것 같아. 저 언니가 군자교에서 먼저 내리는 걸로 아는데, 그 앞에 버티고 서 있으면 조금이라도 앉아 가겠지. 어? 근데 저 수염 난 남자가 손짓으로 와서 앉으라네. 이런 횡재가. 그런데 세상에 공짜는 없구나. 남자는 자신이 중앙SUNDAY 기자라며 말씀 좀 나누자고 하네. 그가 말하길 “어떻게 여기 버스에 계시는 분들끼리는 다 아시나 봐요?” 서서 가려다가 앉아가게 됐는데, 대답 못해 줄 게 뭔가. “다 알죠. 누가 어디서 타고, 어디서 내리는지 알죠. 자리도 지정석처럼 정해져 있어요. 다음 정류장에 누가 탈 줄 알고 자리를 맡아 주기도 하죠. 그런데 오늘은 기자 양반이 나타나서 자리 앉기에 잔잔한 충격이 왔구먼.”
아는 동생이 탔다. 가방을 받아주고 앞자리 뒷면에 걸었다. 기자는 그 장면을 유심히 보더니 다른 자리에 걸쳐져 있는 가방들을 유심히 살펴보더군. “좀 낯선 장면인데요. 가방을….” “우린 이렇게 해요. 저 앞에 봐요. 버스 기둥에 걸게 S고리도 갖고 오기도 해요.” 기자 양반은 고리 사진을 찍으려고 앞으로 나가려고 했지만, 꼼짝을 못하는군. 당연하지. 이미 출발 25분 만인 4시15분에 버스가 꽉꽉 찼으니까. 이 기사가 소리치네. “못 타요, 못 타. 다음 차 타세요.”
지난 12월 20일 오전 3시 50분 상계동에서 출발해 강남역을 찍고 돌아가는 8146번 버스 첫차는 이미 4시 10분이 조금 넘어 꽉꽉 찼다. 승객 대부분이 강남의 빌딩에서 일하는 미화원들로, '여사님들의 버스' 혹은 '노동자들의 버스'라고도 부른다. 여사님들 대부분은 배낭을 자신의 앞자리에 걸쳐 놓거나, 앉아 있는 사람이 받아줘 걸어 놓는 게 관례처럼 굳어져 있다. 김홍준 기자

8146번 버스는 3시50분에 첫 차가 출발하고 5분 간격으로 두 번째, 세 번째 막 차가 나오는데, 모두 이 시간이면 만원이 돼. 앞의 기자가 또 오더니 물어보네. 그래서 “한덕수 국무총리가 지난 1월 2일 새해 첫 출근날에 146번 버스를 탔는데, 나를 비롯한 승객들이 첫 차 시간을 당겨 달라고 요청했더니 1월 16일부터 146번과 같은 노선의 8146번이 운행을 시작했어요. 업무량을 고려해 기사들은 신규 채용했고. 저 이 기사도 정년퇴직 뒤 계약직으로 일한다지요. 재계약을 꼭 바란다더구먼”이라고 답했지. 정식 출근 시각이 오전 6시지만, 어찌 그럴 수 있다냐. 회사원들 출근 전에 좀 여유 있게 일하려면 한참 앞당겨 가는 게 마음도, 몸도 편하지.
“실례지만 성함과 나이를 알 수 있을까요?” 수염 기자도 이렇게 물어보더니, 그쪽에서 일하면 다 이런 걸 물어보나 보다. 이름과 나이를 얘기해 줬지. 그런데 앞의 ‘아는 동생’이 깜짝 놀라는 거야. “언니, 나이가 그렇게 됐어요? 그리고 김(金)씨였네요. 저도 김씨인데.” 아, 이 동생이 63세이라는 걸 나도 기자들 덕분에 알게 됐네. 솔직히 말하지. 우린 서로 얼굴을 알지만 누군지는 몰라. 하지만 우린 유대감이 강해. 같은 일을 하러 같은 방향으로 가는 동지잖아. 저기 청담역에서 내리는 동생도, 면곡시장에서 내리는 언니도. 가만, 군자교잖아. 기자들 덕분에 박씨임이 ‘들통난’ 언니가 안 내리네. “언니야! 내려야지.” 나한테 어깨를 몇 대 맞은 박 언니가 힘겹게 일어났어. 사람에 치인 언니가 외쳤어. “아이고, 배터져요!” 안녕. 내일 이 시간에 또 봐요. 새벽 출근길이, 일이 고되지만, 일을 할 수 있어 다행이야.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이 기사는 지난 20일 8146번 첫 버스에서 9명의 여사님과 진행한 인터뷰를, 김명순씨의 시점으로 구성했습니다. 고 노회찬 전 의원은 새벽 첫 버스를 타고 나가 곳곳의 건물에서 일하는 여사님들을 ‘투명인간’이라고 했습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고독한 새벽의 노동자임을 뜻합니다. 이들이 타는 8146번은 6411번 버스와 함께 ‘새벽 노동자들의 버스’로 부릅니다. 하지만 김명순씨는 “요새 젊은 회사원들이 나한테 커피도 타주고, 인사도 꾸벅꾸벅 잘도 해주니 기분 좋게 일을 한다”고 했습니다. ‘투명인간’이기도 하지만, 이들은 ‘필요인간’입니다.

김홍준·신수민 기자 rimr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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