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verseas Trip] 12일간의 파미르 하이웨이 여행②

2023. 12. 29. 17:3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고산병, 타이어 펑크…그럼에도 달린다

해발고도는 이동하면 할수록 끝도 없이 높아만 가고, 아프가니스탄 국경을 따라 달리는 꼬불꼬불한 산길은 그 끝을 알 수 없다. 그러나 해발 3,000m에 위치한 산악 마을에서 동네 꼬마녀석들의 웃음소리가 고산병에 지친 심신을 위로해준다.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 환경이야 어찌됐든 파미르 산맥 고지대에도 사람은 살아간다. 그리고 여행은 계속된다.
타지키스탄 얌춘 요새에서 내려다본 와칸밸리 풍경
여정은 아무도 모른다
파미르 하이웨이에서 셰어택시는 절대 믿을 게 못 된다. 랑가르로 가는 셰어택시를 찾겠다고 하루 종일 호로그(Khorog) 도심을 이리저리 헤집고 다니고선 내린 결론이다. ‘플랜B’가 이제 등장할 차례다. 숙소 주인의 조언에 따라 운전기사가 딸린 프라이빗 차량을 빌리기로 한 것. 이럴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자동차를 빌릴 걸… 아니, 두샨베(Dushanbe)에서 출발할 때부터 자동차를 빌릴 걸…. 후회가 밀려오지만 호로그에 와서 렌터카를 타게 될 줄 누가 알았으랴. 여정은 아무도 모른다. 여정은 원래 그런 것이다. 그렇게라도 생각해야 밀려드는 후회에 굴복하지 않는다.
나를 포함해 일행은 총 다섯 명. 한 대의 차량과 한 명의 운전사를 며칠 동안 다섯 명이 함께 공유하려면 우선 목적지에 대한 합의가 필요하다. 그렇게 찾은 또 하나의 결론은 호로그에서 아프가니스탄 국경을 따라 남동쪽으로 이동하는 것. ‘M41도로’인 파미르 하이웨이는 호로그로 돌아올 때 이용할 계획이다.
파미르 하이웨이를 향해 호로그에 와서 빌린 프라이빗 렌트카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파미르 하이웨이 여행이라고 하면 호로그에서 동쪽으로 나 있는 M41도로를 따라 키르키스스탄 국경까지 이동하는 것이 일반적인 루트였다. 현재도 M41도로는 파미르 하이웨이 여행의 하이라이트 구간으로 인식되는 건 자명한 사실. 한데 이 도로는 지난 수십 년간 전 세계에서 온 여행자들과 마을 주민들에 의해 루트가 확장되면서 인근에 작은 도로가 생겨났다.
최근 들어 M41도로 못지 않게 여행자들의 발길을 끄는 곳이 호로그에서 남쪽으로 아프가니스탄 국경을 따라 나 있는 구불구불한 산길이다. 이 길에 자리한 이쉬카심(Eshkashem)과 랑가르(Langar) 마을이 대표적인 목적지. 우리 일행이 렌터카를 타고 이동할 첫날의 목적지이기도 하다. 네크루스(Nekrus)라고 자신의 이름을 밝힌 운전사에게 빠르게 몸을 맡긴 여행자들은 그렇게 호로그에서 다시 여정을 시작했다. 마치 처음인 것처럼.
운전사 네크루스(Nekrus)와 함께 파미르 하이웨이 여행을 시작했다.
와칸밸리의 시작점, 이쉬카심에 닿다
네크루스는 묵묵히 운전대만 잡고 있다. 일행 중 한 명이 손짓발짓 써가며 파미르에 대해 궁금한 점을 물었지만 그는 미소로 화답하는 데 만족하는 눈치다. 영어를 조금은 할 줄 아는 운전사를 구해주겠다던 숙소 주인의 철썩 같은 말은 출발한 지 고작 몇 분 만에 신뢰를 잃고 만다. 일행 중 러시아어를 약간 구사할 줄 아는 네덜란드인 샬레인(Charlaine)이 중간에서 통역을 자처하고 나섰다. 불행 중 다행이다.
도로는 온통 비포장 길이다. 차량이 달릴 때마다 흩날리는 흙 먼지로 창문을 여는 건 엄두조차 낼 수 없다.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구불구불한 산길을 오르고 또 오른다. 해발 2,200m에서 출발한 여정은 이동하면 할수록 나침반 고도 숫자를 빠르게 갈아치운다.
이동의 피로가 유려한 풍경으로 씻긴다.
파미르를 찾는 여행객을 대상으로 차량을 운전한 지 수년째라는 네크루스는 경력에 걸맞게 운전대를 잡는 폼이 예사롭지 않다. 현지인이 아니고서는 흙으로 뒤덮인 비좁은 산악 길을 운전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매년 여름이면 전 세계에서 온 관광객을 태우고 수도 없이 오갔을 이 비포장도로가 네크루스에게는 ‘황금’과도 같은 길이다. 여름 내내 치열하게 운전대를 잡아야만 그를 포함해 다섯 식구가 일년을 먹고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이쉬카심까지는 약 100km, 3시간이 넘는 이동거리, 오전시간을 몽땅 쏟아 붓고서야 저만치 집이 하나둘 나타나며 마을의 형체가 눈에 들어왔다. 지도상에 이쉬카심을 검색하면 같은 이름, 두 개의 마을이 나타난다. 국경을 마주한 채 타지키스탄에 한 곳, 아프가니스탄에 한 곳이 사이 좋게 위치해 있다. 이곳은 두 나라를 잇는 와칸밸리(Wakhan Valley)의 시작점이다. 파미르 산맥을 나눌 때 일반적으로 와칸밸리와 바탕밸리(Bartang Valley)로 구분 짓는다. 바탕밸리는 호로그에서 북쪽으로 70여 km 떨어진 루샨(Rushan) 마을에서부터 시작된다.
와칸밸리의 시작점인 이쉬카심 마을 전경
각각의 밸리 인근에 나 있는 높고 낮은 트레킹 코스는 파미르 여행의 하이라이트 요소. 두 밸리를 구분 짓는 가장 큰 차이는 해발고도로써, 바탕밸리에 비해 와칸밸리의 고도가 약 3,000m 이상으로 현격히 높은 편이다. 순전히 트레킹을 목적으로 파미르 산맥을 찾는 여행자들은 대부분 바탕밸리에서 먼저 트레킹 경험을 쌓은 뒤 와칸밸리로 이동해 신체가 고도에 천천히 적응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시간을 할애한다.
와칸밸리에 두 발 닿고 보니 괜스레 아쉬움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여정 초반 칼라이쿰(Kalaikhum)에서 루샨으로 가는 셰어택시를 구하지 못하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바탕밸리를 포기하고 호로그로 곧장 이동한 것이 과연 잘한 선택인가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했다. 그래 봤자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이건만 아쉬운 마음은 쉬이 사라지지 않았고,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들른 마을에서는 한낮의 따스한 태양을 온전히 즐기지 못했다는 자책으로까지 이어졌다. 선택은 선택을 잃고 미련은 미련을 낳는다.
비포장길이지만 풍경이 피로를 씻어준다. 점심을 먹기 위해 들른 이쉬카심 마을 식당과 우리나라 만두처럼 생긴 타지키스탄의 전통요리 ‘만띠’.
해발 3,000m에서 즐길 거리란?
다음 목적지 랑가르로 향하는 길, 해발 3,000m에 생각지도 못한 볼거리가 가득하다. 가장 먼저 이슬람 이전의 성지로 군림했던 고대 성 카카하(Kah-Kakha)와 얌춘(Yamchun) 유적지를 탐방하기로 했다. 돌담과 탑으로 둘러싸여 있는 고대 유적지는 400m 아래로 흐르는 판지 강 계곡에 자리잡고 있어 와칸밸리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현재는 황량함만이 남아 있는 곳이지만 한때 실크로드를 따라 번성하는 주요 무역통로로 각광받았다.
유려한 풍경의 고대 성 카카하(Kah-Kakha)
수천 년 동안 실크로드를 이용하기 위해 이곳을 찾은 상인들은 상품 운송에 따른 부과금을 지불했고 그 대가로 건설된 것이 얌춘 요새였다. 각국에서 온 상인을 위해 안전한 통로 구축이 필요했기 때문. 상인을 보호하고 또 제국을 보호한다는 이중 목적으로 이곳 일대에 수많은 요새가 건설됐는데 이 중에서 얌춘 요새가 가장 잘 보존된 건축물로 남아 있다. 수천 년간 이어져온 지진과 산사태로 인해 일부는 파괴되어 현재 상부 요새만 방문이 가능하다.
얌춘 요새와 랑가르 마을
요새 정상에 오르면 저 아래 넓게 펼쳐진 와칸밸리는 물론 아프가니스탄 최북단에 자리한 해발 7,000m 이상의 산들로 이뤄진 힌두쿠시(Hindu Kush) 산맥의 풍경이 한눈에 바라다보인다. 고대 실크로드 당시 계곡 전체에 흩어져 있었다는 캐러밴세라이(상인을 위한 숙박시설)와 사리탑, 궁전 등의 흔적은 사라졌지만 당시 이 지역이 쌓아 올린 영광과 역사는 여전히 그 위용을 자랑한다.
고대 성 카카하에서 내려다본 와칸밸리 풍경
볼거리는 더 남아 있다. 고대 유적지를 뒤로하고 북쪽으로 약 2km 올라간 곳에서 온천을 발견했다. 명칭은 비비 파티마 온천(Bibi Fatima Hot Spring). 예언자 무함마드의 딸 이름을 따서 지은 이 온천은 타지키스탄에서 가장 놀라운 자연의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는 장소이자 전 세계 이슬람교도의 순례지로 잘 알려진 곳이다. 예로부터 이 온천수에 몸을 담그면 여성의 출산율이 높아지고 각종 질병을 치료하는 효과가 있다고 알려졌으며, 온천수가 흐르는 바위 틈새에 대고 기도를 하면 신으로부터 응답을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고대 성 카카하에서 내려다본 와칸밸리 풍경(좌)과 비비 파티마 온천 남탕 내부 모습
비단 종교적인 이유가 아니더라도 나트륨과 칼륨, 칼슘, 마그네슘, 철분 등의 미네랄이 매우 풍부한 온천수에 몸을 담그기 위해 먼 곳에서 찾아오는 이들도 적지 않다. 남탕과 여탕으로 분리된 온천탕은 섭씨 40도의 뜨거운 물이 나오는 바위 표면에 지어졌다. 뜨거운 물은 길이와 깊이를 알 수 없는 미세한 종유석 동굴에서 흘러 들어온 것으로 석회암이 함유되어 있지 않아 수정처럼 맑은 물이 특징이다.
(좌로부터)비비 파티마 온천 입구, 고대 불교사찰로 사용된 흔적이 남아 있는 장소, 고대 실크로드 전초기지로 사용된 흔적이 남아 있는 얌춘 요새
트레킹 중도 포기, 고산병을 앓다
고산병이 시작됐다. 첫 신호는 비비 파티마 온천에서였다. 신비롭고 경이로운 뜨거운 온천수에 몸을 담근 건 소중한 경험이었지만 그곳을 빠져나올 때 갑작스런 어지럼증이 길게 이어졌다. 온천수의 뜨거운 온도 때문이겠거니 생각했지만 한참을 계단에 주저 앉은 채 일행의 걱정 어린 보살핌을 받아야 했다. 얼마 뒤 시간이 지나고 어지럼증에서 차츰 벗어나긴 했으나 이번엔 두통이 미약하게 느껴졌다. 머리 전체가 울리는 것 같은 기분 나쁜 증세가 서서히 나타났다. 그때까지만 해도 뜨거운 온천수 때문이려니 또 생각했다. 어쩌면 고산병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해발 3,000m에 위치한 랑가르 마을
지난밤 랑가르 마을 홈스테이에 도착한 뒤 저녁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곤 두통약에 의지한 채 밤을 보냈다. 그리고 새 아침의 힘찬 기운 덕분이었을까. 다행히도 두통은 잦아진 뒤였다. 이로써 고산병을 극복했다고 믿었다. 믿고 싶었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아침 일찍 홈스테이 가족의 응원을 받으며 해발 3,900m 엥겔스 베이스캠프와 마르크스 봉우리까지 트레킹을 하기 위해 힘차게 집을 나섰지만 출발한 지 1시간 만에 일행을 뒤로하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약발이 떨어진 탓인지 어지럼증과 두통이 다시 시작됐다. 고산병이 확실했다. 믿기 싫은 사실을 받아들이고 나자 트레킹 중도 포기에 따른 아쉬움은 사치와도 같았다.
랑가르는 와칸밸리 상부에 위치한 그림 같은 산골 마을이다. 사람이 거주할 것 같지 않은 외진 마을에 외국인 여행자를 가장 먼저 환영해주는 이는 꼬마녀석들이다. 흙먼지 일으키며 뛰어 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몇 가구 되지 않는 조용한 마을을 금세 왁자지껄한 도시로 만든다. 중앙아시아 국가 중 빈국에 속하는 타지키스탄이 출산율 하나만큼은 오랜 세월 1위를 놓친 적이 없다는 사실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논과 밭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먹고 살 것 없는 황폐한 산악 마을에서 출산율이 높은 건 아이들의 웃음과 신비한 온천수의 힘 때문은 아닐까.
여행자를 가장 먼저 환영해준 동네 꼬마녀석들
랑가르 마을의 방문 목적은 첫째도 둘째도 트레킹이다. 그런 점에서 중도 포기는 커다란 아쉬움으로 남았지만 트레킹을 마치고 돌아온 일행들의 후기를 듣고 있자니 오히려 중도 포기가 나를 살렸구나 싶다. 해발 4,000m 이상의 높은 산을 여러 차례 등반해본 경험이 있는 나머지 일행들도 최종 목적지인 엥겔스 베이스캠프를 몇 km 남겨두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이유는 일단 길이 험했고, 고도가 높아질수록 체력이 따라주지 못했으며, 하산을 고려하면 시간적 여유가 부족했던 것.
마을에서 베이스캠프까지 왕복 약 16.6km, 휴식 없이 꼬박 10시간을 걸어야 하는 코스였다. 트레킹에 나서기 전 총 거리와 소요시간을 몰랐던 건 아니지만 이보다 현지인들에게 전해 들은 와칸밸리에서 비교적 용이하고 보편적인 코스라는 설명에 꽂혀 숫자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게 이런 결과를 만든 배경이었다. 보편적인 코스의 기준은 분명 보편적인 여행자를 두고 하는 말은 아닐 것이다. ‘해발 3,000m 마을에서 보편적인 기준’을 논하는 것 자체가 얼토당토않은 현실일 뿐이다.
해발 3,000m에 위치한 랑가르 마을에서 머문 홈스테이 숙소
와칸밸리의 끝, M41도로의 시작
파미르 하이웨이 여행 여섯째 날이 밝자마자 이날의 최종목적지인 알리출(Alichur) 마을의 해발 높이부터 확인했다. 4,000m다. 어차피 키르기스스탄 국경과 인접한 카라쿨 호수까지 가는 동안 높이는 계속 상승할 테고, 예정대로 여정을 이어간다면 이틀 뒤 4,700m에 달하는 산자락에 두 발이 닿게 될 것이다. 두려움이 엄습했다.
랑가르에 머문 이틀 동안 심신을 괴롭혔던 두통과 어지럼증은 충분한 휴식을 통해 어느 정도 극복했지만 그렇다고 마음을 놓을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여기서 여행을 포기할 수도 없는 일. 일단 출발이다. 한번 고산병을 겪은 신체는 고지대의 쓴맛을 봤기 때문에 또 다시 고산병이 재발한다고 해도 증세가 처음처럼 심각하진 않을 거라는 일행의 말이 출발에 힘을 실었다.
검문소가 있는 M41도로
이날은 와칸밸리를 벗어나 M41도로로 향하는 날이기도 했다. 알리출에 가기 위해선 동쪽으로 아프가니스탄 국경을 따라 나 있는 산길을 약 70km 달리고 난 뒤 그 길 끝에서 좌회전을 해야 한다. 그럼 곧장 M41도로가 시작된다. 먼저 고속도로를 달리기 전 검문소부터 거쳐야 한다. 파미르 산맥과 하이웨이, 고르노 바다흐샨 자치구(Gorno-Badakhshan)를 여행하려면 타지키스탄 관광비자 외에 별도로 GBAO(GornoBadakhshan Autonomous Oblast) 허가증을 반드시 받아야 한다.
타지키스탄에서 파미르 지역은 특별 국경지대로 분류되기 때문에 추가 허가증이 필요하다. 대사관이나 여행사를 통해 허가증을 미리 신청해 받는 방법도 있지만 가장 쉽고 빠른 건 두샨베 도심에 자리한 여권사무소에 직접 방문해 신청하는 것. 그러면 하루이틀 만에 발급받을 수 있다.
(좌로부터)파미르 하이웨이 검문소의 모습, GBAO허가증과 여권을 검사하는 군인들, 설산이 가까이 보이는 해발 4,000m에서 .
파미르 지역 곳곳마다 총을 든 군인들이 지키고 있는 검문소가 꽤 여럿 있다. 여정을 시작하고 여섯째 날인 이날까지 매일 적어도 한번, 그 이상 허가증 검사에 시간을 할애한 것 같다. 검문소 담당자의 무표정한 얼굴, 그 속을 알 수 없는 어두운 인상이 금세 미소로 바뀔 때가 여러 번 있었는데, 바로 대한민국 여권을 확인한 뒤 나타난 변화였다. 이 머나먼 산골을 지키는 군인들이 한국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경험하면 할수록 영 적응이 되지 않는다. 놀랍게도 K팝, K드라마의 열풍이 이곳 파미르에까지 닿아 있다.
M41도로의 시작과 함께 일직선으로 쭉 뻗은 길을 달린다. 꼬불꼬불한 산길과는 이제 작별이다. 여전히 비포장도로이긴 하지만 차량이 달리는 속도는 국경선을 달리던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한데 쌩쌩 달린 것도 잠시 차량 오른쪽 뒷바퀴에 펑크가 났다. 며칠 동안 그 험한 산길도 무사히 지나쳐왔건만 갑자기 쭉 뻗은 도로를 만나니 바퀴에 배탈이 났던 걸까.
해발 4,000m에서 펑크 난 타이어를 교체하는 네크루스
놀라는 기색 하나 없이, 우리 일행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도 않은 채 네크루스는 짐칸에서 뚝딱 스페어 바퀴를 꺼내 다시 뚝딱 바퀴교체를 완료했다. 이런 상황이 당연하다는 듯이. 바퀴를 교체하는 동안 재차 확인한 나침반의 위치와 높이는 3,930m. 알리출 마을이 가까워온다. 해발 4,000m를 넘어서는 건 시간문제다. 나침반 숫자를 보고 나자 없던 현기증이 다시 출몰하는 기분이다. 하지만 세상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렸다. 과연 이번 여행도 그럴까.
▶ 다음 편에서 파미르 하이웨이 여행 3편이 이어집니다.
챗GPT로 요약한 파미르 하이웨이 여행 2편 한번에 보기
[글과 사진 추효정(여행작가)]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911호 기사입니다]

< Copyright ⓒ MBN(www.mbn.co.kr)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Copyright © MBN.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