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라미드 지을 때도 마신 맥주…한국에서 가장 인기인 건? [기술자]

이상현 매경닷컴 기자(lee.sanghyun@mkinternet.com) 2023. 12. 29.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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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출신 스타 셰프 고든 램지(Gordon Ramsay)의 오비맥주 카스 광고 장면. [사진 출처 = 카스 공식 유튜브 캡처]
“컴온 (Come on), 카스 먼저!”

몇 해 전 영국 출신의 스타 셰프 고든 램지(Gordon Ramsay)가 오비맥주의 카스 모델로 발탁됐을 때 온라인에서는 “자본주의에 패배한 스타 셰프”, “맥주 맛이 아니라 돈 맛”, “아 형마저 결국” 등 재밌는 반응이 쏟아졌습니다. 국산 맥주가 맛이 없다는 인식 때문이었죠.

오비맥주 측에 물어보니, 당시 카스 브랜드 관계자들도 시장 반응에 대해 무척 재미있게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랬던 소비자들의 반응과 달리 한국에서 가장 잘 팔리는 맥주가 진짜 카스라는 점, 알고 계셨나요? 어쩌면 램지가 한국 시장을 정확히 봤는지도 모릅니다.

빵이 맛없어서 맥주를 만들었다고?
이번주 <기술자> 코너에서는 맥주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보리 맥(麥)에 술 주(酒), 말 그대로 보리(맥아)로 만드는 술이죠. 유통채널에 따라 다소 판매량 차이는 있지만, 소주와 마찬가지로 국내에서 꾸준히 인기를 끄는 주종입니다.

맥주가 기원전 6000~4000년경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처음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는 한 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수메르인들이 곡물로 거친 빵을 만들어낸 뒤 더 맛있게 먹을 방법을 고안해내다가 마시는 빵 ‘시카루(Sikaru)’를 만들어냈다는 이야기가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데요.

빵가루와 맥아를 물에 넣고 한 대 섞은 뒤 발효했다는 이 음료는 지금의 맥주와 달리 곡물 찌꺼기 등 침전물이 많았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잔에 빨대를 꽂아놓고 위쪽에 있는 맑은 부분만 즐긴 것으로 전해집니다. 맛을 더 내고자 벌꿀 등을 첨가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맥주는 기원전 6000~4000년경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처음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진 출처 = 픽사베이]
맥주는 수메르 지역과 이집트 일대에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기자(Giza) 지역 피라미드를 건설하던 노동자들은 하루에 맥주 10파인트(약 4.73ℓ)를 일당으로 받았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이후 이집트가 로마의 지배를 받게 되면서 로마에서도 맥주가 유행했다고 합니다.

혹시 유럽 여행을 다녀오셨다면 현지에서 ‘수도원 맥주’를 드셔보신 적 있으신지요? 그리스인, 로마인들을 통해 유럽에도 전파된 맥주는 중세 시대 수도사의 건강을 위해 수도원에서 흔히 빚어냈다고 합니다. 사순절 금식 기간에 먹을 수 있는 음식이 굉장히 제한적이었기 때문이죠.

기록에 따르면 금식하는 40일 동안 달걀이나 고기, 빵, 유제품 등을 먹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생선이나 채소류 등 극히 제한적인 식사만 가능했는데 그마저도 오후 3시 이전에는 먹을 수 없었습니다. 어휴, 물고기와 풀만 먹고 산다니요. 맨정신으로 가능할까요?

중세 수도원에서 한반도로 오기까지
독하게 살을 빼 보신 분들은 아실 겁니다. 먹을 걸 못 먹는 서러움이 얼마나 큰지를요. 중세 수도사들도 그랬을 텐데 17세기 독일 뮌헨의 한 수도회에서 발칙한 아이디어를 냅니다. 바로 로마 교황에게 서신과 맥주를 보내 이를 마셔도 될지에 대한 허락을 받자는 것이었죠.

중세 시대에는 뮌헨에서 로마로 가는 길이 오늘날처럼 간편하지 않았습니다. 변질을 막고자 알코올 도수가 높은 맥주를 보내고, 또 교황에게 보내는 만큼 좋은 재료를 썼더라도 긴 시간 때문에 당연히 변질될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냉장고가 있던 시기도 아니니까요.

맥주가 로마에 도착할 시점에는 이미 크게 변질돼 끔찍한 맛이 났을 것으로 사학자들은 추정합니다. 악마도 “아, 이건 좀”이라고 할 만큼 이상한 맛은 아니었을까요? 실제로 교황은 맥주를 맛본 뒤 “이걸 마시는 건 자신에 대한 희생”이라며 음주를 허락했다고 합니다.

혹 체코 프라하를 방문하신다면 스트라호프 수도원에 들러 꼭 맥주 한 잔 맛보시길 추천드립니다. 맛이 정말 기가 막힙니다. [사진 출처 = 픽사베이]
적어도 출발할 때까지는 맛이 참 괜찮았을 그 맥주는 오늘날 편의점이나 대형마트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파울라너’라고 합니다. 파울라너를 계기로 음주가 자유로워지자 유럽 수도원들은 사순절 금식 기간과 외부 손님 접대를 위해 맥주를 대거 빚어내기 시작했습니다.

유럽 등지에서 인기를 끌었던 맥주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건 고종 20년인 1883년께로 추정됩니다. 제물포항에 외국 선박 출입이 허용되면서 맥주가 들어온 것으로 추정되는데 한성순보의 1883년 12월 20일 기록을 보면 맥줏값의 10%를 세금으로 내게 했다고 합니다.

이후 일제 강점기에 접어든 뒤 일본 맥주 회사들이 이 땅에 출장소를 내면서 수입량이 조금씩 늘었고, 1933년에는 경기도 시흥군 영등포읍(지금의 영등포)에 ‘조선맥주주식회사’가 설립됐습니다. 이 회사가 바로 지난 2005년 ‘진로’와 한 식구가 된 ‘하이트 맥주’입니다.

가정시장 1위는 카스…점유율 42.0%
전통적으로 우리나라 시장에서 가장 인기를 끄는 건 ‘라거(Lager)’ 맥주입니다. 라거는 독일어로 ‘저장’을 의미하는 표현인데요. 발효 후 하단에 가라앉는 효모를 사용하는 ‘하면발효’ 방법으로 생산해 냅니다.

1300여년 전 독일 바바리안(Bavarian) 지역에서 처음 발견한 이 제조법은 효모를 저온(8~12도)에서 일정 기간(25~30일) 발효하는 식입니다. 톡 쏘는 탄산과 특유의 씁쓸한 뒷맛이 라거 맥주의 특징인데 대형 냉장 설비가 꼭 필요해 주로 대기업이 만들어냅니다.

오비맥주의 ‘카스’와 ‘한맥’, 하이트진로의 ‘테라’와 ‘켈리’가 모두 라거에 속합니다. 청량감이 특징인지라 온도가 미지근하면 본연의 맛을 제대로 느끼기 어렵습니다. ‘페일 라거(Pale Lager)’가 가장 대표적인 제조 공법이고, ‘보크(Bock)’나 ‘필스너(Pilsner)’도 이에 속합니다.

한국에서는 청량감이 특징인 ‘라거(Lager)’ 맥주가 전통적으로 강세입니다. 카스와 한맥, 테라, 켈리가 모두 라거 종류입니다. [사진 출처 = 픽사베이]
한국 시장에서 중 유독 라거가 인기인 데 대해서는 여러 재미있는 분석이 나옵니다. 가슴 속에 열이 많은 민족이기에 청량감이 강한 제품을 선호한다는 우스갯소리도 있고, 소주와 섞어 ‘소맥’을 마시려면 향이 강하지 않은 맥주가 알맞아서란 이야기도 있습니다.

또 여느 술이 그렇듯 음식과의 궁합도 이유로 꼽히는데요. 한식 제조에 여러 향신료가 두루 쓰이는 만큼 가장 무난하고, 얌전한 맥주를 선호한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실제로 램지 같은 셰프 중에서는 음식과의 조화를 중요하게 여겨 라거를 선호하는 이들이 많다고 합니다.

여러 맥주 중 국내에서 가장 인기인 건 바로 카스입니다. 시장조사기관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카스는 올해 1월부터 11월까지 국내 맥주 가정시장에서 42.0%의 압도적인 점유율로 1위를 차지했습니다. 유흥·외식시장까지 고려하면 카스의 점유율이 과반일 것으로 추정됩니다.

“나는 아무리 마셔봐도 카스는 별로던데?” 하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술도 음식이니만큼 정답은 없습니다. 결국 각자의 입맛에 가장 맛있는 게 최고가 아닐까요? 다음 주 <기술자> 코너에서는 라거 외 맥주 종류와 더 상세한 제조법, 그리고 최근 한국 시장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참고문헌 및 자료>

ㅇ술 잡학사전, 클레어 버더(Clare Burder), 문예출판사, 2018

ㅇ맥주 만드는 사람들, 윌리엄 보스트윅(William Bostwick), 글항아리, 2020

ㅇ비어 마스터 클래스, 오비맥주

누가 따라주니 그저 마시기만 했던 술. 그 술을 보고 한 번쯤 ‘이건 어떻게 만들었나’ 궁금했던 적 있으신가요? 매주 금요일, 우리네 일상 속 희로애락을 함께하는 술 이야기를 전합니다. 술을 기록하는 사람, 기술자(記술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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