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전환의 성장통...기계과 대 컴공과 충돌

정한국 2023. 12. 2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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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그룹, R&D 책임자 이례적으로 6개월 만에 교체

경기도 화성시 약 100만평 부지에서 연구 인력 1만4000명이 일하는 현대차그룹 R&D(연구·개발) 본산인 남양연구소. 올해 현대차·기아가 25조원 넘는 사상 최대 영업이익을 올리는 데 핵심 역할을 한 연구소를 이끌던 김용화 기술총괄책임자(CTO·사장)가 28일 고문에 임명되면서 일선에서 물러났다. CTO로 승진·임명된 지 6개월 만이다. 이날 그룹 수뇌부는 남양연구소에 대한 대대적 조직 개편도 시작했다. 이번 인사는 불과 반년 만에 이뤄져 ‘이례적’이란 반응이 잇따랐다. 남양연구소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래픽=김현국

그룹 안팎에 따르면 SW(소프트웨어) 개발을 둘러싼 혼선에 대한 책임을 물은 게 인사 배경 중 하나인 것으로 알려졌다. 치열한 미래차 주도권 경쟁이 시작되면서 최근 자동차 기업에서는 연구·개발 무게중심이 SW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지난 반세기 현대차그룹을 성장시킨 내연기관 차는 엔진·변속기 성능이 핵심 경쟁력이었다. 하지만 미래차는 이미 수백개 반도체를 기반으로 ‘SW가 달리게 하는 컴퓨터’에 가깝다. 미래차 개발을 둘러싼 혼선이 엔진·변속기 등을 개발한 과거 주축인 기계공학과 출신들과 SW 개발을 맡은 신진 세력인 컴퓨터공학과 출신들 사이의 충돌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세계 1위 자동차 기업인 일본 도요타나 독일을 대표하는 폴크스바겐 그룹, 미국의 GM(제너럴모터스), 포드 등도 미래차 개발 과정에서 비슷한 내홍을 겪는 중이다.

◇문법이 다른 ‘기계과’와 ‘컴공과’

현대차그룹은 올해 초 신년사에서 “2025년까지 모든 차종을 ‘소프트웨어가 중심인 자동차’로 전환하겠다”고 했다. 반도체 2000~3000개를 탑재한 ‘SW 중심 자동차(SDV·Software defined Vehicle)’가 미래차의 핵심이란 것이다. 이를 위해 현대차·기아는 최근 4~5년간 자율주행 기술 기업인 포티투닷(42dot) 등을 인수·합병하고 SW·반도체 관련 인력 수백명을 채용하면서 체질 개선을 시도해왔다.

이 과정의 성장통이 이번 인사로 드러난 셈이다. SW 분야 혼선이 대표적이다. 예컨대 현대차그룹은 작년 인수한 포티투닷을 그룹의 ‘글로벌 소프트웨어 센터’로 삼으면서 기존 남양연구소 산하 SW 개발 담당 조직을 별도로 남겼다. 포티투닷은 송창현 사장, 남양연구소는 김용화 사장이 각각 지휘하면서 두 조직 간 협업이 원활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일하는 문법’이 전혀 다른 기계과와 컴공과 갈등으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기계과 출신들은 실제 제품을 만들기까지 무수히 많은 시험 과정을 거쳐 결함을 0(제로)에 가깝게 만드는 걸 목표로 한다. 수많은 부품이 연계되는 자동차 특성상 위계도 강조한다. 반면 컴공과 출신들은 제품이 제 기능을 하기만 하면 작은 오류는 불가피하다는 인식이 있다. 수시로 업데이트만 하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실제 현대차 내부에서도 내연차 연구원은 자동차의 핵심은 안전이라 고장 자체가 문제라 주장하지만, SW 개발자는 ‘오류를 고치면서 더 나은 차를 만들면 된다’는 의식을 갖고 있어 갈등이 있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수익은 내연차·하이브리드 차에서 나오는데 그룹 내에서 지출만 많은 SW 인력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이런 요소가 그룹 전체의 경쟁력을 해치기 전에 새로 조직 개편을 하겠다는 게 그룹 수뇌부의 뜻이다.

◇폴크스바겐·도요타 등도 SW 내홍

다른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도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다. 폴크스바겐은 지난해 헤르베르트 디스 당시 그룹 회장이 물러난 배경 중 하나로 그가 만든 SW 조직 ‘카리아드’가 제때 성과를 내지 못한 것이 꼽힌다. SW 개발자들이 그룹사인 포르셰, 아우디의 내연기관 개발자들과 충돌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성과까지 미흡하자 입지가 좁아졌다는 것이다.

도요타의 자율주행 업체 ‘우븐 플래닛’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테슬라처럼 당장 차에 적용되는 기술보다 선행 기술을 담당하는 곳으로 알려졌는데, 최근 미래차 전용 SW 플랫폼 도입 시기가 2025년에서 2027년 안팎으로 늦춰진 것으로 전해졌다. 그룹 내부에서 미래차보다 당장의 성과를 강조하는 분위기도 영향을 줬다고 한다. 포드가 폴크스바겐과 합작해 만든 자율주행 업체 아르고 AI도 성과를 내지 못해 지난해 아예 문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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