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복의 뉴웨이브 in 강릉] 9. 옛것에서 새것을 캐는 율곡연구원
설립 30년 율곡 이이 사상·철학 연구
‘강원국학통신’ 발행 지역 문화재 소개
국내 6대 가옥 왕곡마을 특색 뚜렷
액막이 조형물 ‘솟대=진또배기’ 흥미
떼배·창경 도구 사용 창경바리 조업
국가 중요어업 유산 지정 작업 추진
옛것을 캐다 보면 오늘의 뿌리를 이해하게 되고, 때론 미래가 보이기도 한다. 2020년 나라를 들썩이게 한 ‘이날치 밴드’가 그런 예가 아닐까. 이날치는 조선 후기 8명창 중 한 명인데 서편제의 거장으로 불렸다. 이날치 밴드는 전통의 판소리에 21세기 팝스타일을 입힌 ‘범 내려온다’는 노래로 일약 스타 반열에 올랐다. 이 음악은 한국을 벗어나 글로벌 시장에서도 먹혔다. 이런 박자와 리듬은 어디에서도 못 들어본, 요즘 말로 신박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옛것에서 새것을 캐낸 멋진 사례다. 그런데도 옛것은 여전히 골방에서 잠자고 있는 경우가 많다. 고리타분하다는 이미지 탓에 대중의 관심을 별로 못 받고 있다.
올해로 설립 30년을 맞은 강릉의 율곡연구원은 선생의 사상과 정치철학을 연구하는 곳이다. 퇴계 이황과의 비교연구도 활발하다. 1569년 34세의 율곡이 쓴 소금강 산행기(유청학산기)를 바탕으로 2021년 ‘1569 율곡 유산(遊山)길’을 재현해 매년 가을 산행객들에게 의미 있는 선물도 주고 있다.
박원재 율곡연구원장은 “율곡을 중심에 두되 국학, 다시 말해 이 나라 기록유산의 한 축이 되고자 한다”고 말한다. 2020년부터 문화관광부 지원을 받아 강원국학진흥사업도 펼치고 있다. 그동안 지역 역사문화 연구의 바탕이 될 사료 2만5000여 점을 조사·정리하고, 지난 6월엔 이 사업의 필수시설인 수장고도 완공했다. 김철운 기획연구부장은 연구원의 지하 한쪽을 쓰고 있는 수장고를 보여주면서 “양반 가문의 벼슬한 이력과 그들의 학식이나 생활문화를 기록한 고문서와 책자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15세기 후반 강릉에 안착한 안동 권씨와 임진왜란 시기에 입향한 창녕 조씨 집안, 그리고 조선 최대 양반가로 꼽히는 전주이씨 선교장이 기탁한 고문헌이 대표적이다.
1인당 명품 소비액(40만원)이 세계 최고라는 현실에서 힘없이 가라앉아 있는 고문서를 들추며 보물을 찾으려는 노력은 가상하다. 몇백 년 전 과거의 생활문화와 정신 기록을 찾아내고 분석해 미래의 길을 찾으려는 부단한 몸짓이다. 전통가옥 분야 전문가인 차장섭 강원대 교수는 동해안 맨 위, 강원도 고성의 왕곡마을에 관심이 많다. 안동 하회마을, 경주 양동마을, 아산 외암마을, 순천 낙안읍성, 제주 성읍마을과 더불어 국내 6대 전통민속 마을로 꼽히는데 가장 북쪽에 있는 만큼 특색도 뚜렷하다고 말한다. 이곳의 가옥구조는 ‘ㄱ’ 자형으로 안방, 도장방, 사랑방, 마루, 부엌이 한 건물로 이어져 있다. 겨울이 춥고 긴 산간지역 환경을 고려한 것인데 이를 겹집(양통집) 구조라고 한다. 방 뒤에 방이 있고, 대청마루나 툇마루는 없다. 많은 눈에 대비해 기단은 높다. 집은 부엌을 통해 드나들게 했으며 외양간도 예외가 아니다. 왕곡마을 한옥의 앞마당은 개방적이지만 뒷마당은 폐쇄적이다. 마을 안길과 바로 연결되는 앞마당은 가족의 공동작업 공간 역할을 한다. 대부분 대문이 없으며 앞쪽엔 담장도 만들지 않았다. 겨울철에 충분한 햇볕을 받고 적설로 인한 고립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반면 뒷마당은 높은 담을 쌓아 여인들의 공간으로 배려했다.
뼈대 있는 집안에서는 일기를 비롯한 각종 문서가 비교적 잘 보존돼 지역 국학 연구에 도움을 주지만 서민들의 생활이 밴 자료는 찾기 어렵다. 글과 거리를 두고 살았기 때문에 기록문화라는 게 아주 빈약하다. 율곡연구원이 매주 회원들에게 이메일로 보내는 ‘강원국학통신’ 중에는 ‘전설 따라 삼천리’ 같은 이야기도 있지만 그렇다고 어둠 속에서 보이지 않는 걸 찾아 헤매는 수고를 폄훼할 수는 없다. 찬찬히 읽다 보면 어쩌면 이런 게 요즘 말하는 K컬처의 잔뿌리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강원국학통신’에 들어있는 지역 유산 중 몇 가지를 소개한다.
진또배기. 아마 낯선 용어일 것이다.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예쁜 솟대라고 했던 것의 강릉 토속이름이다. 5m쯤 되는 높은 장대 위에 둘레가 35㎝ 정도 되는 물오리 세 마리가 앉아 있는 모습이다. 세 마리는 각각 수재, 화재, 풍재를 막아준다고 한다. 경포 바다와 맞붙은 강문이 본향이다. 장대는 낙엽송을 쓰고 물오리는 해송으로 만든다. 나무오리는 조각이 아주 세밀해 머리, 부리, 목, 몸통, 다리가 뚜렷이 구분된다. 이름도 알 수 없는 이들이 만들었지만 미적 감각은 보통이 아니다. 그 자체로 조형미가 뛰어나지만 푸른 동해를 배경으로 하늘에 떠 있는 모습은 어떤 감정을 이입해도 다 통할 듯싶다. 진또배기의 어원에 대해 황루시 가톨릭관동대 명예교수는 이렇게 설명한다. “진또배기는 영동지역에서 흔히 짐대, 짐대서낭이라고 부르는 솟대다. 짐대는 진대, 즉 긴 대(長竿)를 의미한다. 진또배기는 강문에서만 사용되는 용어로 ‘진’(긴)에 박혀 있다는 ‘박이’가 합성된 것으로 보인다.”
옛날 우리네 어머니들이 어떻게 산후에 미역국을 먹게 됐는지 더듬어 찾는 과정도 흥미롭다. 안광선 박사는 중국 당나라 ‘초학기’에 이런 내용이 실려 있다고 소개한다. “고래가 새끼를 낳으면서 입은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미역을 뜯어 먹는 걸 본 고구려 사람들이 산모들에게 미역국을 먹인다.”
안 박사는 조선 실학자 이규경의 글에서 전설 같은 이야기도 인용한다. “어떤 사람이 헤엄치다 막 새끼를 낳은 고래에게 먹혔는데 배 속에는 미역이 가득했으며 악혈이 모두 물로 변해 있었다. 고래 배 속에서 겨우 빠져나온 그는 미역이 산후조리에 효험이 있다는 것을 세상에 알렸다.”
어쨌든 우리 조상들은 미역이 산모에게 좋다는 걸 체험으로 알았고, 그래서 위험을 마다하지 않고 바닷속으로 들어갔다. 수단은 떼배와 창경이었다. 떼배는 지름 20~30㎝인 오동나무를 3m 정도로 잘라 7∼8개 이어 붙인 뗏목 배다. 삼척, 정동진, 울진 근처에서 봄철에 가끔 볼 수 있다. 미역을 따는 데는 창경이란 도구도 필수였다. 사다리꼴 사각통에 유리를 붙여 만든 일종의 수경이다. 이걸로 바닷속을 들여다보며 장대에 매단 낫으로 미역을 따는 작업을 ‘창경바리’라고 한다. 강릉시는 지금 ‘창경바리 조업’을 국가 중요어업유산으로 지정하는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자료가 빈약한 곳을 무대로 삼는 국학 연구는 난관이 많다. 구전에 의존하는 때도 많아 사료적 가치가 적다는 소리도 듣는다. 그럼에도 강원도 산간과 동해안에서 작은 기록이라도 찾아나서는 율곡연구원의 열정이 큰 파도를 몰고 올 날을 기대한다. 컬처랩 심상 대표 simba363@naver.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Copyright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속보] '마약투약 의혹' 이선균, 차안서 숨진채 발견
- 2028 대학입시부터 선택과목 없는 통합형 수능 본다
- ‘차량몰수 초강수’ 안 통했나…음주운전·사고 오히려 늘어
- 올 한 해 직장인들이 가장 힘들었던 점은…“저임금·장시간 노동”
- “반려동물 유모차가 더 팔렸다”…저출산에 유아용 판매량 앞서
- 원주 18층 아파트 옥상서 애정행각… "출입 금지" 경고문에 사진 '떡하니'
- ‘경찰도 당했다’ 부고장 사칭 스미싱 문자 주의보
- 성폭행 혐의 전 강원FC 선수 2명 항소심도 중형 구형
- [속보] "LK-99 상온상압 초전도체 근거 전혀 없다"
- 강원 아파트 매매 회전율 최저치 ‘거래 절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