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마음 한 장] 슬픔도, 눈물도, 더는…

강창광 2023. 12. 28.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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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사진부원이 취재한 것 가운데 기억에 남는 사진을 모았습니다.
취재원과 함께 눈물을 흘리고 때론 기뻐했던 결과물입니다.
매의 눈과 곰 같은 끈기로 역사적인 현장을 지키며 오로지 독자를 생각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여러분들이 함께해 주신 덕분입니다.
고맙습니다.
2024년에도 날카로운 질책과 따스한 격려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 전세사기 날벼락 우리는 ‘살고’ 싶다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들이 지난 5월 23일 국회 정문 앞에서 피해자 인정 범위 확대와 최우선 변제금도 받지 못하는 피해자들에 대한 보증금 회수 방안을 담은 ‘제대로 된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 처리 촉구’ 시민 서명을 국회에 전달하려다 정문이 닫히자 철문을 오르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전세사기 피해자를 구제하기 위한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전세사기특별법)이 지난 5월 25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 법은 전세사기 피해 주택이 경·공매로 넘어갔을 때, 국토교통부 장관이 ‘전세사기 피해자’라고 인정한 세입자에게 해당 주택의 우선 매수권을 부여하고, 피해자가 원할 경우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 공공주택사업자가 피해주택을 사들여 피해자에게 공공임대주택으로 우선 공급하는 내용을 뼈대로 한다.

그동안 전세사기 특별법 제정으로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받은 사람은 1만명을 넘어섰다. 그러나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달라진 것이 없다고 말한다. “부푼 마음에 피해자 결정문을 들고 은행이나 정부 기관을 찾으면 정작 당신은 해당하지 않는다는 답변뿐이다. 이게 반쪽짜리 특별법, 생색내기 정부 대책의 현실”이라고 말하고 있다.

국회는 지난 5월 전세사기 특별법 통과 때 6개월마다 ‘보완 입법’을 공약했으나, 이달 1일 만 6개월을 넘어선 이후 현재까지 개정안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그러는 동안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여전히 “피해자들의 보증금 회수방안을 담은 전세사기 특별법 즉각 개정”을 요구하며 국회를 찾고 있다. 이들의 간곡한 호소가 받아들여져 더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 절절한 그리움 ‘오직 한 사람’

황화자 할머니가 자택에서 남편을 그리며 쓴 시를 들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사진기자의 일이라는 것이 취재원의 환영을 받기 어렵고, 애써 찍은 사진은 독자들의 냉정한 평가 속에 ‘선플’보다는 ‘악플’이 더 많이 달립니다.

올 한해를 돌아보며 드물게 많은 선플이 달렸던 황화자 할머니의 사진을 다시 꺼내봅니다. 일흔에 한글을 깨친 전남 완도군 고금면의 황화자 할머니가 사별한 남편에게 쓴 시 ‘오직 한 사람’은 많은 독자의 마음을 울렸습니다.

“시가 아주 감동적이에요. 버스에서 읽다가 훌쩍거립니다. 할머님 건강하세요”

“우리 할머니도 한글 문법 잘 모르셔도 임영웅 노래 가사 받아쓰고 노래 폰에 넣어달라고 하셨는데 그립네요”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많이 사랑하셨나 보네요.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

독자들의 댓글을 다시 보고 있으니, 코끝에 은은한 유자향이 스칩니다. 황 할머니는 취재를 마치고 돌아서는 저에게 완도 특산물이라며 검은 비닐 ‘봉다리’에 유자청 한 병을 쥐여주셨습니다. “서울에서 시골 노인네를 만나러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보낼 수는 없지” 집으로 돌아와 뜨거운 물을 부어 유자차 한 잔을 마셨습니다. 유자의 은은한 향이 번지며 온몸에 온기가 돌았습니다.

“새해에는 또 뭔 새로운 말이, 글자가 생길 테지. 그러면 또 한 자 한 자 써봐야지” 새해 소망을 물었던 저에게 할머니는 ‘새로운 말이, 글자가 생길 것’이라는 희망을 말씀하셨습니다. 한 해의 끝자락에 독자 여러분들은 올해 어떤 새로운 말과 글자를 만났을지 궁금해지네요.

2024년 새해에는 황화자 할머니가 선물했던 유자차처럼 독자들의 마음을 온기로 채울 수 있는 사진으로 찾아뵐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 땡볕 피해 숨겨둔 숲속 할매 냉장고

숲속 할머니의 냉장고에 물병이 놓여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출근길 버스정류소 건널목 부근, 팔순을 훌쩍 넘긴 할머니가 텃밭에서 키운 채소들로 좌판을 여신다. 지난 여름 ‘안녕하시냐’고 인사를 건네면 할머니는 ‘더위가 빨리 물러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근처 수도꼭지에서 물을 받아온다. 물병은 한낮의 땡볕을 피해 좌판 옆 공원 철쭉 수풀 그늘에 두었다가 목이 마를 때 꺼내 드신다. 내일 출근길에는 ‘할머니 신선하 가을이네요’라고 인사를 드릴 거다. 가을아 천천히 가렴”이라고 지난 10월10일치 신문에 썼다. 무더웠던 여름이 가고 온나라가 꽁꽁 얼어버렸다. 출근길에 늘 뵙던 할머니 모습도 보이지 않은 지 꽤 되었다. 아마도 날씨가 춥고 텃밭에서 거둬 팔 야채가 없어서일 것이다. 한 해를 넘기며 마음속으로 빌어본다. “할머니 겨울에는 따듯한 아랫목에서 지내시다가 봄날 햇살에 언 땅을 뚫고 올라온 냉이와 쑥과 함께 뵈어요. 할머니 건강하세요!”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 폐허 된 지진 현장 잠 못 이룬 나날들

지난 2월 11일 낮(현지시각) 튀르키예 카흐라만마라시 시내에서 복구작업이 한창이다. 카흐라만마라시/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지난 2월 튀르키예 대지진 재난 취재를 다녀왔습니다. 수만 명이 목숨을 잃었고 수십만명이 삶의 터전을 잃은 비극의 현장이었습니다. 눈앞에 끔찍한 상황을 마주한 저는 무엇을 취재할지 몰라 당황했습니다. 출장을 다녀온 뒤 현장을 제대로 취재하지 못했다는 자책과 사람보다 일이 앞섰다는 자괴감에 한동안 불면증을 겪었습니다. 자책감을 덜어내기 위해 한동안 튀르키예 지진과 관련된 사진이나 뉴스를 멀리했습니다. 한 계절이 시간이 지나서야 취재에 대한 오답 노트를 적었습니다. 그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전부였습니다. 올해 마음 한 장은 사진기자로서 부족했던 저 자신의 부끄러운 고백이며 조금 더 나아지겠다는 약속입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 얼마나 더 울어야 진실이 밝혀질까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1주기를 하루 앞둔 28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광장 분향소 앞에서 연 추모제에서 희생자들의 이름 하나하나를 부르며 159배를 한 뒤 눈물을 흘리며 서로를 위로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이태원 참사’ 1주기를 하루 앞둔 10월 28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광장 희생자 합동 분향소 앞에서 유가족들이 기획하고 준비한 추모문화제가 열렸습니다. 젊은 희생자들이 많았던 까닭인지 상에는 떡과 과일 외에도 피자와 콜라, 떡볶이 등도 올랐습니다. 참석자들은 사회자의 “행복을 주는 따듯한 사람, ○○○님을 기억하며 절합니다”라는 구령에 맞춰 그날의 희생자 159명을 잊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159배를 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이 불릴 때마다 유가족뿐만 아니라 주말을 맞아 이곳을 찾아온 많은 시민이 함께 절을 했습니다.

추모제를 마친 아버지들이, 어머니들이 여기저기서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서로서로 부둥켜안아 다독이고 위로했습니다. ‘죽음’은 그게 누구든지 지켜보는 사람의 마음을 힘들게 합니다. 사랑하는 아들·딸을 잃은 어머니·아버지의 마음이 어떠할지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1년이 지났지만, 아니 10년이 지난다 한들 그 아픔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잊을 만하면 되풀이 되는 ‘사회적 참사’가 부디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더는 가족을 어처구니없는 사고로 허망하게 잃고 눈물 흘리는 이들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 사진을 다시 꺼내봅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 헌혈견의 은퇴식 수고했어, 고마워

다른 반려견들에게 헌혈을 해주던 헌혈견 13마리에 대한 은퇴식이 지난 6월 서울 광진구 건국대 부속 동물병원 아임도그너 헌혈센터에서 열리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다른 반려견들에게 헌혈을 해주던 헌혈견 13마리에 대한 은퇴식이 지난 6월 서울 광진구 건국대 부속 동물병원 아임도그너 헌혈센터에서 열렸다. 사진은 한 은퇴 참가견이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의자 밑에 앉아 있는 모습이다. 헌혈견은 나이 8살 이하, 몸무게가 25㎏ 이상인 대형견이 주로 맡는다. 매월 심장사상충약과 구충제 등을 먹고 정기적인 건강검진을 받는 등, 여러 가지 수고를 감수한다. 이날 참석한 견공들이 다른 반려견들의 생명을 살리는 훌륭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사람은 그 사실을 알기에 은퇴식에 참가한 이들에게 고마움을 전달하고 싶다. ‘순한 눈을 가진 댕댕아 그동안 수고했다. 그리고 고마워’

윤운식 선임기자yws@hani.co.kr

■ 인사청탁 안 돼요

정진석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11월 국회에서 열린 당 의원총회에서 인사청탁 문자를 보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jijae@hani.co.kr

정진석 국민의힘 의원(충남 공주시·부여군·청양군)이 지난 11월 6일 국회에서 열린 당 의원총회에서 지역구의 고등학교 동창회장으로부터 공무원연금공단 산하 업체의 사장 승진을 청탁하는 내용이 담긴 문자 메시지를 받아 이를 확인하는 장면이 나의 카메라에 찍혔다. 여기엔 ‘천안상록의 ○○○(직급 이름)이 (공주고) 55기 후배인데 사장 승진을 원한다. 다음주 (사장) 공고가 나는데 용산 실장 입김이 세다고 한다. 정의원님이 도와주시면 얘는 (승진이) 가능하다고 본다’며 도움을 요청하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정 의원은 “공주고 총동창회로부터 카톡이 와서 읽었을 뿐이고 답변도 안 했다”고 밝혔다.

참으로 부적절한 문자 내용입니다. 언론의 감시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는 장면입니다. 새해에도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남용하는 하는 일이 없도록 더욱더 감시를 철저히 하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 이제는 편안히 쉬시길…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유가족들과 법률대리인단이 지난 21일 오전 미쓰비시중공업과 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승소한 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법정 앞에서 소감을 밝히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올해 들어 가장 추웠던 지난 12월21일 대법원이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미쓰비시중공업과 일본제철 주식회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일본기업들의 상고를 기각하고 원심을 확정했다. 2013년 3월 시작된 소송이 10년 넘게 걸리면서 안타깝게도 피해자들은 모두 세상을 떠났다.

애타게 판결을 기다리던 양영수 할머니도 지난 5월 세상을 떠나셨다. 양 할머니는 10대 소녀였던 1944부터 1945년까지 전쟁물자를 만드는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 항공기제작소 공장에서 강제 노역했다. 딸 김정옥씨가 안고 있던 영정 속 할머니의 눈빛에서 슬픔이 느껴진다.

이들의 소송을 대리한 변호사가 “오늘 일본제철과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한 소송이 대법원에서 원고 승소로 최종 확정됐다”고 말하자 현장은 박수와 환호로 가득 찼다. 정작 가장 기뻐하셨을 할머니가 안 계신 현장을 기록해야 하는 기자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할머니, 이제 일본에 끌려가기 전 그 해맑던 소녀로 돌아가 하늘에서는 편히 쉬세요”라는 말을 건네며 셔터에서 손을 떼어본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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