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고금리 도저히 못버텨…업계 16위 태영건설 삼킨 브리지론 [부동산360]

2023. 12. 28.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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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기준 대출 만기 연장 브리지론 30조 규모
최대 50% 손실 관측도…위기 확산 우려↑
PF 부실 사업장 구조조정 필요 목소리 커져
서울 영등포구 태영빌딩에 태영건설 깃발이 펄럭이는 모습. [연합]

[헤럴드경제=신혜원 기자] 시공능력평가 16위 건설사 태영건설이 28일 워크아웃(기업구조개선)을 신청하면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위기 확산 우려가 커지고 있다. 부동산 업계에선 만기 연장으로 버티고 있는 ‘30조원 규모’의 브리지론이 PF 부실 리스크의 핵심 뇌관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PF 부실이 건설업 전반으로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정부 및 관계기관의 선제적인 부실 사업장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분석한다. 아울러 시장 여건을 근본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이번에 태영건설 워크아웃으로 불거진 부동산PF 위기는 브리지론이 도화선이 됐다. 통상 부동산PF는 브리지론과 본PF 2단계로 나뉜다. 토지 매입 및 인허가 신청 등의 사업 초기 단계를 진행하기 위해 상대적으로 높은 이자율로 증권사·저축은행·캐피털 등 제2금융권을 통해 브리지론을 일으킨 뒤, 착공 및 분양 단계에서 본PF로 전환해 제1금융권으로부터 낮은 이자로 자금을 차입하는 식이다. 브리지론은 2금융권에서 고금리로 대출받는 만큼 본PF 대비 리스크가 크다. 실제 현재 1군 건설사들 마저도 10%대의 두자릿수 금리를 부담하고 있는 형국이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전후 문제가 컸던 부동산 PF 대출 또한 브리지론이었다.

부동산 호황기에는 PF 부실 우려가 없지만 최근 1~2년 새 고금리로 인한 경기 침체로 본PF 전환에 어려움을 겪는 사업장이 급증하고 있는 상태다. 건설 원자재값 및 인건비 상승 등 공사비가 증가한 데다 미분양 주택 증가, 주택가격 하락 등 사업성이 악화되면서 본PF 단계까지 가지 못하고 미착공 상태로 남아있는 사업장이 수두룩하다. 착공을 위한 자금 조달이 안 되니 토지를 매입해놓은 시행사들은 브리지론 만기까지 높은 이자비용만 내며 버티기로 일관하고 있다.

올해 지주사로부터 자금을 차입하는 등 1조원의 유동성을 공급하는 등 자구책을 펼친 태영건설이 워크아웃을 신청하게 된 것도 당장 이날부터 브리지론 대출 만기를 줄줄이 돌아오고 있기 때문이었다. 서울 성동구 ‘성수동 오피스2 개발사업’ 관련 480억원 규모의 브리지론을 일으켰는데 잔액 432억원에 대한 만기가 이날이다. 당초 지난 18일이었던 대출 만기일을 열흘간 상환 유예한 것이다.

한국투자증권·한국신용평가 등에 따르면 3분기 말 기준 태영건설의 PF 대출 보증 잔액은 4조4100억원으로 순수 부동산 개발 PF 잔액만 3조2000억원 수준이다. 내년 1분기에 만기를 맞는 PF 보증 규모는 4361억원이고, 내년 한 해 총 3조6027억원의 만기가 돌아온다. 이 같은 상황에 업계 사이에선 태영건설의 워크아웃 신청이 예견된 수순이었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5일 서울 용산구 남산 전망대에서 강북 일대 아파트와 빌딩들이 보이고 있다. 임세준 기자

부동산업계에서는 끝내 워크아웃에 들어간 태영건설의 위기가 브리지론 등 PF 대출 만기 연장으로 연명하고 있는 시행사·건설사들로 전이될 지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전날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와 김주현 금융위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이른바 ‘F4(Finance 4) 회의’를 열고 태영건설의 워크아웃 가능성과 부동산 PF 문제를 논의한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 9월말 기준 대출 만기 연장으로 버틴 브리지론 규모가 30조원 수준으로, 나이스신용평가는 고금리가 이어지면 전체 브리지론의 30~50%는 최종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고 관측하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자 지금까지 대주단 협약을 통한 만기 연장 등 ‘땜질식 처방’으로 PF 부실 문제에 대응해왔지만, 이제는 본격적으로 사업장 ‘옥석 가리기’에 돌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 금감원장도 지난 12일 “사업성이 다소 미비하거나 자산감축 등 특단의 조치 없이 재무적 영속성의 문제가 있는 건설사·금융사는 기본적으로 시장 원칙에 따라 적절한 형태의 조정 내지는 정리돼야 한다는 대원칙”이라며 “자구노력이라든가 손실보상을 전제로 한 자기책임 원칙에 따른 진행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서정렬 영산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정부가 ‘9·26 대책’을 통해 PF 대출 만기를 완화해줬기 때문에 부실 문제가 뒤로 늦춰진 셈인데 현 상황에서는 특정 업체가 PF로 인해 부도가 나도 어쩔 수 없다”며 “부실 우려가 커지게 된 시장의 근본적 여건을 개선하기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 규제 완화를 통해 실수요자들이 ‘주택을 매수해도 되겠다’라고 나설 수 있도록 만들어줘야 한다”고 진단했다.

이어 “‘시장 여건이 개선된다면 업체들이 부도나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상황 인식이 된다면 금융기관에선 개별사업장을 중심으로 대출 만기를 재연장해주는 식으로 투트랙 대책이 시행돼야 한다”며 “그러나 특정업체 봐주기식으로 비춰져선 안 된다”고 덧붙였다.

다만 무조건적인 지원 등은 모럴해저드를 유발할 수 있는 만큼 사업성이 취약한 프로젝트 등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구조조정을 진행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송인호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정보센터 소장은 “PF는 금리 인상기에 항상 재발되는 문제가 있기 때문에 정부 차원에서 인센티브를 주게 되면 오히려 모럴헤저드(도덕적 해이)가 생길 수 있다”며 “PF 부실이 건설 시스템 전반으로 확산되지 않기 위해서 PF조정위 등 활동을 통해 충분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hwshi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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