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칼럼] 나의 섬 ‘월든’

배미애 갤러리이배 대표 2023. 12. 28.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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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 인한 상처·갈등, 감정적 판단·생각서 비롯
나만의 ‘섬’서 살 용기내면 소박하나 행복한 삶 가능
배미애 갤러리이배 대표

인간의 삶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살아내는 과정이다. 인간이 추구하는 보편적인 가치 기준에 근거해서 질적으로 얼마나 훌륭한 삶을 사는 가는 순전히 각 개인의 몫이다. 인간은 타인으로부터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을 때 만족감을 느끼고 인생을 잘살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동시에 해당 상대방에게 호감도 가지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선망하는 사람을 좇아서 그들을 닮아가는 데 삶의 많은 시간을 소비한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진실보다는 보이는 것을 믿는 오류를 범하고 만다. 인간관계 속에서 사람들이 스스로 하는 결정은 사실 본인은 이성에 의한 합리적인 판단이라 착각하지만 대부분 감정에 의해 좌우된다. 인간관계에서 받는 상처와 갈등은 대부분 이러한 감정에 치우친 미숙한 생각과 행동에서 비롯된 사고와 판단 착오의 연속적인 습관 때문이다.

‘한 번의 상처쯤이야 그래도 견딜 수 있는 운명이라 여기고 체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날이면 날마다 바늘로 콕콕 찔리는 것 같은 상태야 참을 길이 없다. 대국적 견지에서 보면 삶은 비극적인 것이다’. 알베르 카뮈의 스승으로 더 잘 알려진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작가 장 그르니에(1898~1971)는 그의 산문집 ‘섬’(1933)을 통해 삶에 관한 탁월한 시선으로 우리를 진지한 자기성찰의 세계로 이끈다.

저자는 복잡한 인간사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아를 찾아 지혜로운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고독한 삶’이라는 낭만적 환상이 아니라 ‘비밀스러운 삶’에 그 정답이 있다고 친절하게 알려준다. 그에 의하면 삶에 대한 정열은 성벽으로 둘러싸인 자신만의 굳건한 요새, 즉 스스로를 격리시키는 ‘섬’을 만들어 그 속에서는 하나하나의 사물이 아름답게 보이는 비밀스러운 경험을 누리는 것이다. 그리고 행복은 이 비밀로부터 비롯된다.

그르니에처럼 인간이라면 누구라도 복잡한 인간관계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 자연 속에 들어가 세상을 잊은 채 혼자 살기의 즐거움을 누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기는 하나 현대인으로 살아가려면 매일 맞닥뜨려야 하는 인간관계를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자기성찰과 굳건한 세계관과 가치관으로 단련된 사람들은 변화무쌍한 인간관계 속에서도 스스로를 인식하고 중심을 잡아 혼자가 되는 순간을 누릴 수 있다. 외형적으로는 여러 사람들과 많은 소통을 하지만 혼자가 되어 더 이상 갈등 구조에 얽히지 않는 충실하고 창조적인 시간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냉철한 지성으로 대상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대처하는 능력도 집단 속에 스스로를 고립시켜 혼자가 된다면 더욱 빛을 발할 수 있다. 타인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소통하는 가운데 이 지성의 힘은 더욱 강해지며 여기에 고상한 품격이 더해진다.

미국의 철학자이자 시인, 그리고 수필가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1817~1862)는 수필집 ‘월든’(1854)에서 “내가 숲속으로 들어간 이유는 깨어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였다. 나는 삶이 아닌 삶을 살고 싶지 않았다. 삶은 정말로 소중하다. 그리고 가능한 한 체념하지 않는 삶을 살고 싶었다. 나는 깊이 있는 삶을 통해 삶의 정수를 모두 빨아들이고, 굵직한 낫질로 삶이 아닌 모든 것들을 짧게 베어버리고 삶을 극한으로 몰아세워, 최소한의 조건만 갖춘 강인한 스파르타식 삶을 살고 싶었다”고 말했다.

소로에게 삶의 목적은 삶, 그 자체였다. 월든 숲에서 손수 지은 초라한 오두막과 살림살이가 전부였지만 소로는 자연의 섭리를 고스란히 담은 완벽한 자연스러움 속에 동화되어 인간의 근원적인 행복과 자유를 추구하는 삶을 꾸려 나갔다. 2년 동안 월든에서의 삶을 뒤로 하고 집으로 돌아온 후, 소로에게 자신이 머문 모든 장소는 ‘월든’이 되었다.


“나는 혼자서,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이, 낯선 어느 도시에 도착하는 것을 수없이 꿈꾸어 보았다. 그러면 나는 겸허하게, 아니 남루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그렇게 되면 비밀을 간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의 이름으로 행동한다는 것은 바로 내가 지닌 것 중에서 그 무엇인가 가장 귀중한 것을 겉으로 드러내는 일이라는 생각을 나는 늘 해 왔다…. 나는 이제 환상에 속지 않는다.” 그르니에에게 자신만의 격리된 이미지 공간인 ‘섬’에서의 생활은 홀로 사유함으로써 자신을 인식하고 행복을 추구하는 과정이다. 집단 속에서 존재하지만 독립된 존재로서 자유를 추구하는 사람에게 소로는 말한다. “당신 내부에 있는 신대륙과 신세계를 발견하는 콜럼버스가 되라. 그리하여 무역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상을 위한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라.” 소로처럼 자신이 만든 ‘월든’에서 자신만의 시간을 살아내는 것이 가장 귀한 삶인 것이다. 수많은 군중 속에서도 나 스스로를 응시할 수 있는 힘을 지닌 삶, 그르니에와 소로처럼 나만의 격리된 ‘섬’, ‘월든’에서 살아볼 용기를 내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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