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어드는 대피소, 안내산악회 부활…올해를 달군 산악계 이슈들

서현우 2023. 12. 27.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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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산악계 주요뉴스
설악산 중청대피소.

올해는 산행 트렌드를 완전히 뒤바꿔놓은 코로나가 공식 종식된 해다. 그러면서 그동안 과도기로 여겨졌던 산행문화가 어느 정도 정착된 모양새다. 새로 유입된 2030 젊은 등산인들은 MZ산악회를 이뤄 활동을 이어 가고 있으며, 스포츠클라이밍 인구도 크게 늘었다.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뛰어난 해외 등반도 많았다.

등산 문화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줄 만한 변화도 있었다. 케이블카는 우후죽순 생기고, 반면 산장은 조금씩 자취를 감추고 있다. 2023 산행 문화를 키워드로 돌아본다.

# 점점 줄어드는 산장(대피소)

무엇보다 큰 이슈는 설악산 중청대피소 철거다. 40년 역사의 중청대피소는 최대 115명까지 수용할 수 있었으며, 설악산 종주 산행의 기점으로서 산꾼들에게 널리 사랑받았다.

하지만 지난 11월 1일부로 영구히 운영이 중단됐다. 사유는 시설이 노후화돼 시설 안전도 D등급 판정을 받은 점, 경관 및 고산 환경 훼손 등이다. 현재는 철거공사가 진행 중이며, 이후 부지에는 2024년 12월 31일까지 지하화된 소규모 대피소가 들어설 예정이다. 새로 건립되는 대피소에는 숙박 기능이 없다. 이에 산악계에선 '앞으로 등산객들이 소청, 희운각대피소까지 내려가야 하는 부담이 생겨 탈진한 사람들의 구조 요청이 속출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지만, 국립공원공단은 새로 생기는 대피소에 숙박 기능은 없지만 대피 기능은 있으므로 큰 문제가 없을 것이란 입장이다.

중청대피소 철거가 확정되면서 이번 겨울부터 설악산 산행 난이도는 한층 더 높아지고, 패턴도 바뀔 전망이다. 먼저 대청봉 일출은 소청이나 희운각에서 출발해야 하므로 좀더 부지런하거나 다리가 빨라야 관람 가능하다. 또한 기존에 중청대피소에서 수용하던 인원을 나눠 받기 위해 희운각대피소가 리모델링됐으므로 산행들머리도 오색보다는 천불동 방면으로 삼는 경우가 늘어날 것이다. 서북주릉 종주도 체력적 부담이 높아진다.

영남알프스 취서산장도 지난해 11월 14일 철거됐다. 1999년부터 영업했지만 불법 설치 시설물인 것으로 밝혀져 울주군이 계고장을 보내 자진 철거토록 했다. 취서산장은 라면 맛집으로 유명했으며, 철거 당시 반대 서명이 왕성했을 만큼 많은 사랑을 받았었다.

다행히 현재는 다시 영업을 재개했다. 그러니 건물만 철거된 셈이다. 주말과 공휴일에만 운영하며 다가오는 겨울에는 휴업할 계획이라고 한다.

한편 샘물상회는 완전히 철거됐다. 지난 11월 13일부터 30일까지 철거공사를 진행했다.

도봉산장 전경.
도봉산장 산장지기 조순옥 할머니.

도봉산장은 올해 초 국립공원공단에서 산장지기를 퇴거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이다가 소강상태다. 산장지기 조순옥 할머니는 1972년 부군 故 유용서씨를 따라 산장에 입주해 50년 넘게 거주하고 있다. 하지만 산장은 국립공원공단 소유이며, 매년 서울시산악연맹에 한국등산학교 교육 목적으로 임대해 주고 있다. 따라서 계약상 조 할머니의 거주는 물론 음료 판매 등 상행위가 보장돼 있지 않다. 이에 공단은 지난 4월 4일과 4월 18일, 또한 5월 2일까지 퇴거할 것을 요청하는 계고장을 보내며 이에 불응 시 제소할 것이라 했지만 아직 송사로 이어지진 않았다.

산장은 아니지만 또 하나 유의미한 사건도 있었다. 백두대간 대야산 구간의 명물인 직벽 구간의 ㄷ자형 철근 시설물이 사라졌다. 이곳은 백두대간 전체를 통틀어 가장 위험한 난코스로 꼽혀 산꾼들에 의해 주기적으로 로프 등 보조적인 시설물이 설치되고 있는 지역이다.

하지만 속리산국립공원이 이를 지난 11월 초 철거했다. 속리산국립공원사무소 관계자는 "비법정탐방로 점검 중 자체적으로 검토했을 때 정비할 필요가 있겠다 싶어서 처리한 작업"이라며 "해당 구간은 산양의 이동통로이자 백두대간 생태축으로 보전가치가 높은 지역이며 산행 위험성도 높아 비법정탐방구간으로 지정돼 있다"고 설명했다.

사실 상당히 이례적인 조치다. 공단은 비법정탐방로 출입을 적극 단속하고 있지만, 관련 시설까지 정비한 경우는 극히 드물다. 오히려 설악산 황철봉 일대에는 야광 띠지를 달아 조난이나 안전사고를 예방해 두기도 한다.

가리왕산 케이블카 전경. 사진 우이령사람들.

# 우후죽순 케이블카

케이블카는 많이 생겼다. 현재 전국에 운영 중인 케이블카는 총 41곳으로, 이 중 17곳은 5년 내 생긴 것들이다.

가장 상징적인 건 설악산 오색케이블카다. 지난 11월 20일 착공식이 열렸다. 오색에서 끝청까지 3.3km로 총 8개의 지주가 설치되며 2025년 완공을 목표로 삼고 있다. 수십 년 동안 지지부진했던 사업인데 지난 3월 환경부 환경영향평가 조건부 승인 이후 일사천리로 절차가 마무리됐다.

설악산에 케이블카가 놓이게 되자 국립공원이 있는 지자체들도 너나 할 것 없이 관련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속리산과 소백산, 가야산, 도봉산 등 7곳이다. 지리산은 주변 지자체 3곳이 각자 지역에 케이블카를 놓겠다고 나선 상황이다.

한편 논란이 많았던 정선 가리왕산 케이블카는 호황이다. 10개월 만에 누적 이용객이 15만 명을 넘어서면서 지역 경제에 크게 이바지하고 있다. 특히 케이블카 이용객 중 약 30%가 장애인·고령자 등인 것으로 나타나 교통약자를 위한 이동편의시설이라는 케이블카의 취지에 부합하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다만 영구 운행 여부는 아직 미지수다. 가리왕산 케이블카는 본래 2018평창동계올림픽 당시 경기장 곤돌라였으며, 올림픽 후 산림복원이 약속돼 있었다. 그러나 관광자원으로서 활용해 달라는 지역 여론에 힘입어 2024년 말까지 한시적으로 운영하게 되며 논란에 휩싸였다. 향후 처분은 운영 성과에 달렸다.

2030 산꾼들이 마이산을 단체로 올랐다.

# 안내산악회의 화려한 부활

코로나 기간 동안 하나 둘 문을 닫았던 안내산악회도 조금씩 돌아오고 있다. 네이버 키워드 검색량 분석에 따르면 2022년 가을부터 안내산악회를 찾는 사람들의 숫자가 급격히 늘어난 것으로 드러났다. 신규 진입이 어려운 시장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새롭게 발족한 안내산악회도 여럿 있다.

또 하나 눈여겨 볼 만한 것은 2030 젊은 산꾼들의 움직임. 코로나 기간 동안 새로운 취미 활동을 찾아 등산에 입문한 이들은 대개 친구 중심으로 도시 인근 산을 체력 단련 삼아 올랐다. 그리고 코로나가 끝난 지금은 일종의 안내산악회 형태로 산에 다닌다. 유명 인플루언서나 포토그래퍼가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산행 일정을 공지하면 신청하는 방식이다. 해외 원정도 심심찮게 나가고 있다. 이들이 활용하는 대표적인 플랫폼으로는 '프립'이 있다.

안내산악회 네이버 검색 트렌드.

다음은 프립에서 캡틴, 즉 산악회 산행 대장으로 활동하는 윤용만씨와 1문 1답.

Q

캡틴이 된 계기는?

A

원래 등산을 좋아하는데 마침 캡틴 모집 공고가 뜬 것을 보고 지원하게 됐다. 회사 퇴사일이 맞물려서 잠깐 활동할 생각이다.

Q

2030에서 등산 열풍 체감하나?

A

확실히 코로나 때 산에 오르기 시작한 2030세대가 많아졌다. 과거에는 인스타그램 등 활동하는 플랫폼이 몇 없었는데 이젠 매우 다양하게 활성화돼 있다. 심지어 당근마켓에도 등산을 가는 지역모임이 생겼다. 선택지가 다양해진 탓에 사람들은 자기 입맛에 맞는 산행을 더 잘 찾아서 골라갈 수 있게 됐다.

Q

산행은 주로 어디로 가나?

A

예전에는 가까운 유명한 산이 인기가 있었다면 지금은 SNS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산으로 가는 편이다. 대표적인 곳이 민둥산 돌리네다. 최근에는 단체 산행하려는 MZ세대가 많다 보니 이를 타깃층으로 하는 버스대절 서비스도 많이 늘어나서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 단 비용은 늘 고민이다.

스포츠클라이밍 인구가 최근 45만 명에 달한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 2배 이상 커진 스포츠클라이밍

산행결산이지만 잠깐 옆으로 새자면 스포츠클라이밍 인기가 어마무시하다. 언급을 안 할 수 없다. 클라이밍이 처음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2020 도쿄올림픽 이전까지만 해도 동호인 수가 20만 명 수준으로 추산됐는데, 한국산악회에 따르면 현재는 약 45만 명, 실내암장도 600여 개에 달할 정도로 시장이 커졌다고 한다. 동작이 화려하고 완등 시 성취감이 커 젊은 세대 사이에서 유행을 타고 있다.

다만 급증한 동호인 수에 걸맞은 안전수준을 확보하진 못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부산에서 실내암장을 운영하는 한 센터장은 "초보자들은 강습을 받아야 안전하게 등반할 수 있는데 그 비용을 아끼려고 유튜브 몇 편으로 이를 대체하다 보니 현장에서 아찔한 순간이 몇 번이고 나온다"고 푸념했다.

한국소비자원의 인공암장 안전실태조사에서도 문제점이 보고됐다. 조사대상 25개 암장 중 22개소는 전면부 일부 구간의 매트 폭이 유럽표준에 따른 최소 폭 기준(2.5m 이상)보다 좁았다. 매트가 너무 좁으면 추락 시 바깥으로 이탈할 우려가 있다. 또한 11개소는 일부 또는 전체 구간에서 등반벽과 매트 사이에 간격이 있었고, 4개소는 매트 간 간격이 벌어지거나 커버가 손상된 채 방치돼 있었다.

남녀노소 맨발걷기를 시작한 인구가 크게 늘었다.
어싱, 맨발걷기 네이버 검색 트렌드.

# 맨발걷기 열풍…어싱은 설왕설래

네이버 트렌드 분석에 따르면 올해 여름부터 맨발걷기와 어싱에 관한 관심이 폭증하는 형국이다. 특별히 돈을 들이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운동이기에 진입장벽이 낮다는 점이 가장 크다. 그저 신발과 양말을 벗고, 동네에 잘 정비된 숲길을 걷기만 하면 된다.

먼저 구분해야 할 건 맨발걷기와 어싱. 거의 같은 뜻이지만 조금 다르다. 맨발걷기는 문자 그대로 맨발로 걷는 것이지만, 어싱Earthing은 지구와 맨살로 맞닿는 것에 더 주안점을 둔다. 즉 걷지 않고 맨발로 있기만 해도 어싱이 되는 셈이다. 맨발걷기의 유행은 '증언'에 의해 구축됐다. 살이 빠지고, 혈압이 좋아지고, 혈색이 돌고, 지병이 나았다는 말들이 무수히 많다. 귀가 솔깃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뭔가 사야 된다고 하면 거부감이 들 텐데 그런 것도 없다. 몸에 좋은 이유도 지압효과로 충분히 설명된다.

다만 어싱, 즉 '접지'에 관해서는 의견이 극명히 갈린다. 맨발로 땅 위에 서면 지구의 음전하가 몸속으로 타고 들어와 활성산소를 중화시켜 건강이 좋아진다는 논리다. 이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은 2019년 마케팅에서 활용을 금지시킬 정도로 유사과학으로 낙인찍힌 음이온 효과와 똑같다며 사기라고 비판하지만, 반대에선 실제로 맨발걷기를 통해 건강이 회복된 사례가 무척 많고 뭘 사라고 한 것도 아닌데 사기로 매도할 수 없다고 한다.

이 부분은 개인의 판단에 맡길 수밖에 없다. 단 조언하자면 맨발걷기를 하려면 일반 등산로보다는 잘 정비된 둘레길을, 그리고 가급적 파상풍주사를 맞고 할 것을 권한다. 또한 발을 내려놓기 전에 이물질이 있는지 충분히 살펴보며, 아주 느린 걸음으로 걸어야 상처를 예방할 수 있다.

아시아 여성 최초 무지원 단독 남극점 완주에 성공한 산악인 김영미씨.

# 질과 양 모두 잡은 해외원정

올해는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매우 뛰어난 등반과 모험이 많이 전개됐다. 가장 먼저 산악인 김영미씨는 아시아 여성 최초 무지원 단독 남극점 완주에 성공하며, 한국 모험사에 한 획을 그었다. 식량과 연료 등을 중간에 보급 받지 않고 단독으로 1,186.5km를 50일 22시간 35분 만에 걸어 1월 16일 21시 18분(칠레 현지 시간) 남극점에 도달했다.

복진영 원정대장과 박정용 등반대장이 이끈 부산연맹 원정대는 히말라야 팡그리 골둠바(6,620m)를 세계 초등했다. 박정용 대장과 손호성, 정지훈 대원이 4월 11일 정상에 올랐다. 정상에 대해 아무런 정보 없이 도전한 등반이었기에 처음에는 정상으로 닿지 않는 엉뚱한 능선에 오르는 등 시행착오를 겪었으나 불굴의 의지로 재도전해 얻은 성과였다.

충남원정대는 파키스탄 히말라야 칸주트 사르 2봉(6,831m)과 미답봉(6,305m) 개척 등반을 시도했다. 조선이공대산악회는 키르기스스탄 레닌피크(7,134m)를 지난 8월 10일 등정했다.

더불어 풋풋한 젊은 산악인들의 도전도 맹렬했다. 먼저 대한산악연맹이 파견한 오지탐사대는 카자흐스탄 탈가르, 인도 시킴 히말라야, 조지아 카프카스를 다녀왔다. 현지 상황에 맞춰 유연하게 대응하며 소기의 성과를 얻었다는 평가다. 또한 성균관대 산악부는 캐나다 부가부를, 아주대·인천대·한국외대 산악부 출신으로 구성된 눈표범 원정대는 키르기스스탄 원정을 시도했다. 코로나가 몰고 온 등산 열풍은 매년 인재난에 시달리던 각 대학 산악부에 엄청난 활기를 불어넣은 바 있는데 그 결실을 맺고 있는 셈이다.

월간산 12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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