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와인양조 거장 미셸 롤랑 단독 인터뷰 [최현태 기자의 와인홀릭]

최현태 2023. 12. 27.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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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은 사람과 같아”/23개국 250여개 와이너리 900여종 와인 빚은 ‘마이더스의 손’/프랑스 보르도 유명 산지 포므롤 와이너리서 태어나/인근 페트뤼스 등 뛰어난 포도밭 관찰하며 성장/“와인의 시작은 떼루아” 강조/자신 이름 담은 첫 와인 ‘롤랑 갈라레타’ 탄생

한국을 찾은 마셸 롤랑. 최현태 기자
와인업계의 나폴레옹, 세계를 석권한 와인 마법사, 블렌딩의 왕, 최초의 플라잉 와인메이커. 세계에서 몸값이 가장 비싼 천재 와인 컨설턴트 미셸 롤랑(Michel Rolland). 그에게 붙는 화려한 수식어는 끝이 없다. 당연하다. 수많은 유명 와인들의 그의 손을 거쳐 탄생했고 현대 와인 양조의 기틀을 만들어 전세계 와인의 품질을 대폭 끌어 올린 이가 바로 롤랑이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이브인 지난 24일 76번째 생일을 맞은 거장의 발자취를 따라 예술과 과학이 어우러지는 깊고도 오묘한 와인 양조의 신비한 세상을 탐험한다. 
미셸 롤랑. 최현태 기자
◆와인 900여종 만든 ‘양조의 신’  

14년만에 한국을 찾은 롤랑의 얼굴은 사진과는 달리 이제 세월의 흔적이 역력하다. 하지만 70대 중반을 넘긴 나이에도 한해 수백개 와이너리를 오가며 와인 양조를 진두지휘할 정도로 열정은 식지 않았다. 프랑스 보르도 그랑크뤼 1등급 샤토 라피트 로칠드(Chateau Lafite Rothschild), 샤토 마고(Chateau Margaux)를 비롯해 미국 유명 컬트와인 할란 에스테이트(Harlan Estate) 등 그가 양조에 관여한 와이너리는 23개국 250여개에 달한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역작 세가지만 꼽아달라고 부탁했다. “제가 만든 와인이 900개가 넘는데 그중에서 3개를 뽑으라는 것은 너무 가혹하네요. 나머지 와인은 적이 될 수 있으니까요. 하하”. 롤랑은 자신이 만든 와인중 저렴하지만 품질이 좋은 와인도 있어 꼭 값비싼 와인이 자신의 역작이라 할 수는 없단다. 

롤랑이 컨설팅한 인도 그로버 잠파 빈야드 와인. 인스타그램
그는 대신 가장 기억에 남는 와인 컨설팅으로 인도를 꼽았다. “1993년 처음 인도에 갔는데 제대로 된 포도나무를 찾기 힘들 정도로 와인의 불모지였어요. 당연히 와인 마시는 문화도 거의 없었고 셀러를 관리할 수 있는 전문 인력도 찾기 어려웠죠. 특히 포도나무가 쉬어야 하는 휴면기, 즉 겨울이 없고 토양도 포도나무를 재배하기에 적합하지 않아 사실상 와인을 만들기 불가능한 곳이었죠. 하지만 20년 가까이 여러 인도 와인을 컨설팅해 마실만한 와인을 만드는데 성공했어요. 그중 한 와인 이름이 그로버 잠파 빈야드(Grover Zampa Vinyards)인데 마셔보고 맛없으면 전화주세요.” 역시 거장답게 자신감이 넘친다. 
와인양조컨설팅연구소 롤랑&아쏘시에를 이끄는 롤랑 가족. 홈페이지
◆와인 DNA 지니고 태어난 천재 양조가

롤랑이 와인 양조의 거장이 된 배경이 있다. 와인 양조 DNA를 지니고 태어난 덕분이다. 그의 부친이 프랑스의 보르도의 우안의 유명한 산지 포므롤(Pomerol)의 소규모 가족 경영 와이너리 샤토 르 본 파스퇴르(Chateau Le Bon Pasteur)의 오너이자 와인메이커였다. 특히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와인중 하나인 샤토 페트뤼스(Chateau Petrus)와 불과 300m 떨어진 곳이라 어린 시절부터 뛰어난 포도밭에서 뛰어 놀고 관찰하며 자연스럽게 와인과 호흡했다. 

포도재배·와인양조학교 투르 블랑슈(Tour Blanche)와 보르도와인양조연구소(Bordeaux Oenology Institute)에서 포도재배와 와인양조를 공부했다. 당시 스승이 현대 양조의 선구자 에밀 페노(Emile Peynaud) 등이다. 롤랑은 1976년 부인 다니(Dany)와 함께 고향인 리부르느(Libourne)에 와인양조연구소를 설립해 본격적인 와인 양조 컨설턴트의 길로 나섰다.  이 연구소는 현재 400여개가 넘는 와이너리와 계약을 맺고 양조 컨설팅을 제공하는 연구소 롤랑&아쏘시에(Rolland & Associes)로 성장했다.

롤랑&아쏘시에. 홈페이지
롤랑이 태어난 샤토 르 본 파스퇴르. 인스타그램
“에밀 페노가 모든 것을 발명한 건 아니지만 와인 메이킹의 새로운 접근을 할 수 있게 만들어 줬고 우리는 아직도 그 방법을 따라가고 있기 때문에 의심의 여지 없이 에밀 페노가 저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공부할때만해도 좋은 와인메이커가 거의 없었고 양조학 자체도 존재하지 않았어요.  와인을 만드는 전통만 있고 기술은 없던 시기였죠. 포도 재배도 느낌으로 했을 정도로 주먹구구식이었답니다. 당연히 생산자들이 ‘포도 완숙’이라는 단어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죠. 지금은 포도 완숙을 통해 훨씬 더 일관성이 있는 와인을 생산할 수 있게 됐답니다. 지난 50여년동안 와인 양조 기술은 엄청난 발전을 했어요. 좋은 포도알을 선별하는 소팅 작업을 하는 곳도 3%에 불과했지만 1990년대부터는 거의 모든 곳에서 소팅을 하고 있죠. 최적의 온도로 발효하는 자동온도조절시스템 도입으로  전세계에서 좋은 와인을 만들고 있답니다.”
샤토 르본 파스퇴르. 홈페이지
◆와인의 시작은 떼루아

롤랑은 1979년 부친이 작고한 뒤 자신이 태어난 샤토 르 본 파스퇴르와 생테밀리옹 지역 샤토 롤랑-마예(Chateau Rolland-Maillet), 라랑드 드 포므롤 지역 샤토 베르티노 생뱅상(Chateau Bertineau St-Vincent) 등 와이너리 3개를 물려받아 경영을 이끌었고 1985년부터 양조 컨설팅 서비스를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프랑스 밖으로도 관심을 돌려 스페인 보데가 팔라시오(Bodegas Palacio)를 시작으로 이탈리아, 미국, 칠레,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23개국으로 컨설팅을 확장했다. 계절이 반대인 남반구와 북반구를 오가며 일년내내 양조에 참여하는 ‘플라잉 와인메인커’의 시조가 바로 롤랑이다.  미국 컬트와인의 대명사 할란, 스크리밍 이글(Screaing Eagle), 스태글린 패밀리 빈야드(Staglin Family Vineyard)와 칠레 카사 라포스톨(Casa Lapostolle), 이탈리아 수퍼투스칸 오르넬라이아(Ornellaia), 오베르토(Oberto), 몬테베로(Monteverro), 테누타 깜포 디 사쏘(Tenuta Campo di Sasso)등이 그의 대표 작품들은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떼루아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미셸 롤랑. 최현태 기자
롤랑은 좋은 와인을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떼루아를 꼽는다. 그는 뛰어난 떼루아를 찾아내 가장 완벽하게 잘 맞는 품종을 고르는 남다른 감각을 지녔다. “떼루아는 좋은 와인 생산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요. 샤토 페트뤼스(Chateau Petrus), 샤토 라피트 로칠드(Chateau Lafite Rothschild), 도 멘 드 라 로마네 꽁띠(Domaine de la Romanee Conti), 마세토(Masseto)가 왜 유명할까요. 그들은 마술사가 아닙니다. 좋은 포도가 있어야 좋은 와인이 만들어지고 좋은 포도가 있으려면 떼루아가 굉장히 좋아야 합니다. 따라서 떼루아는 바로 왕 같은 존재죠. 페트뤼스에서 200m만 떨어져도 떼루아가 완전히 달라져 품질이 크게 차이납니다. 전 세계의 좋은 떼루아를 선별해 좋은 와인을 만드는 것이 바로 저의 일이랍니다.”
끌로 드 씨에떼. 최현태 기자
칠레 끌로 드 로스 시에떼(Clos de Los Siete)는 이런 ‘떼루아 프로젝트’를 통해 탄생한 대표 와인이다. 롤랑은 1999년 칠레 멘도사에서 가장 높은 와인산지인 해발고도 1500∼3000m 우코밸리(Uco Valley)의 황무지 850ha를 사들여 말벡을 심었다. “당시 칠레 생산자들은 세계적으로 수요가 많은 카베르네 소비뇽과 메를로 같은 보르도 품종을 주로 심었는데 와인 품질이 좋지 않았어요. 하지만 저는 말벡이 이 땅에 적합하다는 사실을 간파했죠. 화산암 위에 빙하가 녹으면서 생긴 자갈과 모래가 덮인 충적성 선상지로 배수가 잘 됩니다. 또 동향 포도밭은 차가운 바람이 적어 심한 서리 피해를 막을 수 있고 북향 포도밭은 일조량이 뛰어나 말벡을 빚기에는 최적의 조건을 지녔답니다.” 
우코밸리 끌로 드 씨에떼 포도밭 전경.
땅 크기가 롤랑 고향인 포므롤과 맞먹어 보르도 6개 와이너리와 함께 땅을 매입, 숫자 7을 뜻하는 시에떼로 와인 이름을 정했다.  2002년 첫 빈티지를 선보이자 와인평론가들은 “보르도 최고의 별들이 만나 아르헨티나에서 또 다른 별을 탄생시켰다”고 극찬했고 영국의 유명 와인매거진 디캔터는 ‘미래의 아이콘 와인 톱 10’에 끌로 드 로스 씨에떼를 선정했다. 말벡 50% 이상에  메를로, 시라, 카베르네 소비뇽, 쁘띠 베르도, 카베르네 프랑을 섞는 이 와인은 집중도가 매우 뛰어나다. 끌로 드 로스 씨에떼는 하이트진로가 수입한다. 롤랑은 이런 방식으로 아르헨티나의 마리플로르(Mariflor), 발 데 플로레스(Val de Flores), 남아프리카의 본 누벨(Bonne Nouvelle) 등을 탄생시켰다.
미셸 롤랑. 홈페이지
◆가장 다루기 어려운 품종은 피노누아

’양조의 신’ 롤랑에게도 아주 까다로운 품종이 하나있다. 바로 프랑스 부르고뉴를 대표하는 피노누아다. “피노누아는 완숙이 잘 안되는 품종이에요. 또 수확후에서 최상의 포도알을 선정하는 것도 굉장히 어려운 작업이죠. 좋은 포도를 선정한 뒤에도 양조때 굉장히 실수를 많이 할 수 있어요. 피누누아 자체가 굉장히 까다롭고 예민한 품종이기 때문이죠. 특히 처음 맛과 향을 우려내는 침용때 많은 실수를 합니다. 정확하고 정교하게 추출하는게 어려운 품종이랍니다.” 

미셸 롤랑. 최현태 기자
최근 부르고뉴 피노누아 가격이 급격하게 오르면서 소비자들이 점점 부르고뉴 와인 마시기가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부르고뉴를 제외한 다른 지역중 잠재력이 높은 피노누아 생산지는 어디일까. 

”당연히 부르고뉴가 ‘피노누아의 시초’라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품질을 따라가기 쉽지 않다는 얘기죠. 피노누아는 마시기 아주 좋은 와인입니다. 특히 영했을때도 복합미는 좀 떨어져도 맛이 좋아요. 뉴질랜드와 미국 오레곤과 캘리포니아에서 좋은 피노누아가 생산이 된다고 봅니다. 프랑스의 다른 지역에서도 좋은 피노누아가 나오죠. 이제 많은 나라에서 좋은 피노노아를 생산할 것 같아요. 물론 부르고뉴 유명한 생산자처럼 굉장히 좋은, 엄청나게 유명한 그런 와인들을 생산하기는 좀 어렵겠지만 그래도 충분히 마실만하고 소비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가격의 피노누아들이 좀 더 생산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을 찾은 롤랑과 갈라레타. 최현태 기자
◆롤랑 이름 담은 ‘인생 역작’ R&G 탄생

롤랑이 2010년대 들어 눈을 돌린 곳은 첫 해외 컨설팅을 시작한 스페인이다. 롤랑은 1993년 설립된 스페인 프리미엄 와인 유통 그룹 아랙스 그랜즈(Araex Grands)의 설립자 하비에르 갈라레타(Javier Galarreta)와 손잡고 새로운 스페인 와인을 선보였는데 바로 두 사람의 이름을 넣은 롤랑 갈라레타(Rolland Galarreta·R&G)다. 인터뷰 자리에는 갈라레타가 함께해 프로젝트 와인을 소개했다. 이 와인은 BK트레이딩에서 수입한다. R&G 프로젝트는 2010년 리오하 알라베사(Rioja Alavesa), 리베라 델 두에로(Ribera del Duero), 루에다(Rueda)를 시작으로 2014년 프리오랏(Priorat), 몬테네 데 톨레도(Montene de Toledo), 헤레즈(Jerez)등 다양한 산지로 넓혔다. 현재 92ha 포도밭에서 평균 수령 25년 올드바인으로 와인을 생산한다.

“스페인은 고향인 보르도에서 아주 가까워요. 스페인어를 잘 구사할 정도로 스페인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항상 스페인에서 좋은 와인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죠. 프리미엄 와인을 유통하는 갈라레타와 와인을 잘 만드는 제가 합작하면 큰 시너지를 낼 것으로 기대했는데 다행히 좋은 결과 나왔습니다.”

R&G 루에다 베르데호. 최현태 기자
역시 좋은 떼루아를 찾는 것이 프로젝트의 첫 단추였다. 유명 산지에서도 작지만 뛰어난 구획을 찾아내는데 주력했다. 특히 해발고도가 높고 일조량이 좋으며 일교차가 커서 포도가 신선한 산도를 움켜 쥘 수 있는 곳을 찾아냈다. 서늘한 기후에선 포도가 아주 천천히 완숙돼 맛과 향의 집중력이 뛰어난 와인이 탄생한다. “R&G 와인은 인간의 간섭을 최소화한 자연친화적 와인이랍니다. 탄닌이 둥글둥글해 편하고 즐겁게 마실 수 있어요. 플래그십 아이코닉(Iconic)도 너무 묵직하지 않으면서 복합미와 미네랄이 뛰어나고 장기숙성도 가능합니다. 루에다 지역에서 생산되는 화이트 품종 베르데호는 원래 전통적으로 산도가 굉장히 찌르는 스타일이에요.  하지만 이런 와인은 숙성하기 좀 어려워요. 그래서 저는 루에다 와인 생산 기준에 적합한 최저 산도를 지키면서 10∼15%를 뉴프렌치 오크에서 숙성하고 앙금 숙성을 더해 산도를 부드럽게 바꿨답니다. 루에다를 한정식과 페어링했는데 잡채, 불고기, 김치, 나물밥, 두부조림, 시금치 등과 아주 잘 어울리더군요.” 
R&G 아이코닉. 최현태 기자
◆끝없는 향상을 추구하다

2016년부터 생산된 R&G 아이코닉은 무려 60년 이상 수령 템프라니요 95%에 가르나차, 그라시아노를 소량 블렌딩한 레드 와인으로 레드체리, 블랙베리, 블루베리 등 농축된 과일향으로 시작해 향신료가 더해지고 시간이 지나면서 크리미한 오크향, 토피, 밀크커피 아로마가 피어난다. 부드러운 탄닌과 뛰어난 밸런스가 돋보인다. 리오하 알라베사 라바스티다(Labastida) 마을의 평균 해발고도 550m에 있는 특별한 포도밭 4개의 포도를 섞어서 만든다. 포도밭은 미세기후를 지닌 라 까바나(La Cabana), 엘 보스크(El Bosque), 에스프리벨(Espribel), 마레뜨(Marrate)다. 토양은 석회질 점토로 우아하고 미네랄이 뛰어난 포도를 얻을 수 있다. 프렌치 오크만 사용하며 배럴 발효한 오크통에서 18개월 동안 숙성하고 이후 여과 작업 없이 12개월 동안 병에서 추가 숙성한다. 2022년과 2023년 드링크 비즈니스(Drinks Business)에서 주최한 블라인드 테이스팅에서 리오하 와인 중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아 베스트 와인으로 선정됐다.

롤랑 갈라레타 와인들. 최현태 기자
“우리는 끝없는 향상을 추구합니다. 배럴을 굴리면서 포도즙을 짜내는 방식으로 외부 압력 없이 굉장히 부드럽게 추출합니다. 그러면 아주 부드럽고 쥬이시한 즙을 얻을 수 있어요. 배럴 발효때 신선한 과일향을 뽑아내기 위해 드라이 아이스를 넣어 저온침용합니다. 거친 탄닌은 원하지 않아요. 발효때도 배럴을 보통 하루에 네차례에서 열차례까지 굴립니다. 한 배럴의 와인을 만들기 위해 배럴을 두 개 사용하니 생산 비용이 많이 들지만 아이코닉은 장기숙성을 위한 플래그십 와인인 만큼 품질을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R&G 엘도쎄. 최현태 기자
마드리드 남쪽 톨레도 산맥의 발레 델 로잘레오(Valle del Rosalejo) 포도밭에서 생산하는 R&G 엘도쎄(Eldoze)는 유기농으로 재배한 시라 100% 레드 와인으로 2017년부터 2만병 가량 소량 생산한다. 숙성도 가능하지만 바로 마시기 좋다. 볼륨감 있는 우아한 시라로 유명한 프랑스 북부 론 꼬뜨로띠(Cote Rotti)와 스타일이 흡사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엘도쎄는 ‘12’를 뜻하며 12ha 포도밭에서 생산된다.
미셸 롤랑. 최현태 기자
“엘도쎄는 리베라 델 두에로 보다 훨씬 남쪽에 위치한 곳으로 일교차가 아주 크고 서늘한 기후를 지녀 오가닉으로 재배합니다. 특히 토양이 레드 슬레이트로 굉장히 좋은 품질의 와인을 만들기 좋은 토양입니다. 하지만 포도밭이 좀 마음에 들지 않아서 거의 갈아엎었습니다. 푸르닝부터 다시 시작했고 캐노피 매니지먼트까지 포도재배 방법을 바꿔 2017년 첫 빈티지가 탄생했습니다.  이렇듯 우리는 항상 품질의 향상을 추구합니다.” 최고의 와인을 위해서는 한치의 빈틈도 놓치지 않는 거장의 열정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R&G 끌로 당 페랑. 최현태 기자
R&G 끌로 당 페랑(Clos D'en Ferran)은 2017이 첫 빈티지지로 까리냥 62%, 가르나차 38%를 블렌딩했다. 레드체리, 블랙베리 등 과일 아로마로 시작해 시나몬과 향신료가 더해지고 철분같은 미네랄도 느껴진다. 롤랑의 떼루아 선별 능력을 잘 보여준다. 바르셀로나에서 가까운 포레라(Porrera) 마을에 있는 포도밭은 프리오랏에서 가장 오래된 4억년전 형성된 토양이다. 석영 등 광물 함유량이 많고 산화물로 덮여 적색 또는 황색빛을 띨 정도다. 와인에서 철분 미네랄이 느껴지는 이유다. 
미셸 롤랑. 최현태 기자
“대부분의 좋은 와인들은 10∼15년 장기숙성해야합니다. 탄닌과 파워가 너무 강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우리는 소비자들이 좀 빨리 마실 수 있는 와인을 만들고 싶었고 프리오랏  북향의 포도밭에서 그 답을 얻었습니다. 이곳은 해발고도 600∼650m로 매우 높고 대륙성 기후가 아닌 지중해성 기후를 띱니다. 더구나 북향이라 온도가 좀 내려가 포도 생장이 오래 진행됩니다. 5∼7년 숙성해도 좋은 품질의 와인으로 남아있을 겁니다. 까리냥은 보통 파워풀하고 탄닌이 거친 와인으로 만들어집니다. 따라서 완숙이 굉장히 중요하죠. 여기서 완숙이란 뜻은 당도가 올라간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껍질과 탄닌이 함께 발전하는 걸 말하죠. 남향에서 재배하면 당도가 너무 빨리 올라가 제대로 완숙이 안 됩니다. 천천히 완숙되기 위해 북향 포도밭이 아주 중요해요. 가르나차는 굉장히 부드럽고 둥글둥글하면서도 섬세한 캐릭터를 지녔습니다. 하지만 너무 해를 많이 받으면 당도가 너무 빨리 올라가 알코올 레벨도 너무 빨리 올라가죠. 완숙 전에 당도 너무 빨리 올라가면 밸런스가 떨어지는 포도가 생산됩니다. 역시 북향 포도밭이 중요한 이유죠.”
R&G 리오하. 최현태 기자
R&G 리베라 델 두에로. 최현태 기자
R&G 리오하(Rioja) 2016은 북서쪽 리오하 알타, 북쪽 리오하 알라베사, 남쪽 리오하 바하 중 고도가 가장 높은 알라베사에서 자라는 템프라니요 100%로 만든다. 템프라니요 특유의 신선한 과일향으로 시작해 감초 등 달콤하고 스파이시한 향신료가 어우러지고 탄닌은 벨벳처럼 부드럽다. 새 미국 오크에서 14개월 숙성한다. R&G 리베라 델 두에로(Ribera Del Duero) 2018는 템프라니요 85%, 메를로 15% 와인으로 블랙체리로 시작해 라벤더 꽃향이 피어나고 시나몬향도 더해지며 복합미가 뛰어나다. 포도밭은 해발고도 900m 파라모 핀카 라 레빌리아(Paramo Finca la Revilla)에 있어 일교차가 커 좋은 산도를 얻을 수 있다. 
◆“와인은 사람과 비슷”

롤랑은 와인은 사람과 비슷하단다. “포도를 이해하는 것은 사람을 이해하는 것과 같아요. 첫 번째 만났을 때 그 사람을 절대 이해할 수 없듯, 포도를 이해하는 데 굉장히 시간이 오래 걸리죠. 한 가지 양조 방식을 적용할 수 없는 것도 와인을 만드는 어려움중 하나랍니다. 스페인 리오하, 프랑스 포므롤, 미국 나파밸리 등 각 떼루아에 맞게 양조 방식을 바꿔야 해요. 또 세월이 흐르면서 자동차, 비행기, TV, 전화기가 진화하듯, 와인 양조도 진화해야 하죠. 저는 지금도 이런 변화를 계속하고 있답니다. 요리법처럼 획일적인 방법으로 와인을 만든다면 아마 큰 실수를 낳게 될 겁니다”

와인 양조와 컨설팅을 공부하는 후배들에게 항상 자연에 겸손하라고 조언하는 롤랑은 내년부터 우루과이 프로젝트에 돌입한다. 그가 24번째 도전하는 나라다. 거장의 위대한 발걸음은 과연 어디까지 이어질까.

■미셸 롤랑은
△1947년 프랑스 리부르느 출생 △포도재배·와인양조학교 투르 블랑슈(Tour Blanche) 졸업 △보르도와인양조연구소(Bordeaux Oenology Institute) 연구원 △와인양조연구소 롤랑&아쏘시에 설립(1976년) △샤토 르 본 파스퇴르·샤토 롤랑 마예·샤토 베르티노 생뱅상 오너 △미셸 롤랑 컨설턴트 회장 △23개국 250여개 와이너리 와인 900여종 컨설턴트 △칠레 클로 드 로스 시에테 프로젝트(2002년) 및 스페인 롤랑 갈라레타 프로젝트(2016년) △프랑스 레지옹 도뇌르 훈장(Legion d’Honneur·1999년) △와인앤드스피리츠 선정 ‘올해의 와인 맨’(2004년) 및 캘리포니아와인어워드 선정 ‘올해의 와인 컨설턴트’(2000년) △칠레·아르헨티나·호주·뉴질랜드와인협회 ‘올해의 와인 컨설턴트’(2002∼2005년)
 
최현태 기자는 국제공인와인전문가 과정 WSET(Wine & Spirit Education Trust) 레벨3 Advanced, 프랑스와인전문가 과정 FWS(French Wine Scolar), 뉴질랜드와인전문가 과정 등을 취득한 와인전문가입니다. 매년 유럽에서 열리는 세계최대와인경진대회 CMB(Concours Mondial De Bruselles) 심사위원, 소펙사 코리아 소믈리에 대회 심사위원을 역임했고 2017년부터 국제와인기구(OIV) 공인 아시아 유일 와인경진대회 아시아와인트로피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프랑스 보르도, 부르고뉴, 상파뉴, 루아르, 알자스와 이탈리아, 호주, 독일 체코, 스위스, 조지아, 중국 등 다양한 국가의 와이너리 투어 경험을 토대로 독자에게 알찬 와인 정보를 전합니다.

글·사진 최현태 기자 htcho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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