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거주 결심 증명하라”…나쁜 집주인 막겠다며 ‘일단 죄인 취급’

이선희 기자(story567@mk.co.kr) 2023. 12. 26. 19:0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임대인에 실거주 입증 책임 …대법 판결 파장
대법원 판결은 임대인이 주택에 실거주한다는 이유로 임차인의 계약갱신을 거절할 때, ‘실거주 의사’에 대한 증명을 임대인에게 부여했다는 점에 부동산업계에 파장이 예상된다. 그동안 임대인이 “실거주를 하겠다”는 이유로 계약갱신을 거절할 때 ‘임대인의 실거주 의무’에 대한 입증을 놓고 갈등이 많았다.

주택세입자법률지원센터 운영위원장인 김태근 변호사는 “집주인이 실거주한다고 해놓고 실거주 안하는 경우가 많고, 그렇다 하더라도 세입자가 이를 입증하기도 어려웠다”며 “그래서 손해배상 소송도 못하고 세입자가 피해를 보기 일쑤였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계약갱신건은 세입자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것인데 법의 허점으로 세입자 권리는 보장받지 못했다. 이제라도 중요한 기준이 명확해졌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평했다.

[사진 = 연합뉴스]
이번 판결을 계기로 앞으로 임대인들은 임차인에게 계약갱신을 거절할때 구체적인 사유를 밝히는 등 계약갱신 거절 절차가 좀더 명확해 질것으로 예상된다.

세입자들이 겪는 분쟁에 대한 법률 지원을 하는 단체 세입자 114에 따르면 독일은 임대인이 실거주 사유가 실제 발생한 사실에 대한 입증책임을 부담한다고 명시하고 있고, 프랑스도 계약해지를 위한 정당한 사유로 임대인의 실거주를 규정하면서 실거주를 위한 해지가 현실적이고 중대하다는 점을 임대인이 입증하도록 하고 있다.

세입자114측은 앞으로 갱신 거절과 관련된 분쟁이 줄어들고 향후 임대인의 실거주 의무 위반에 대한 손해배상이 문제가 될 경우 책임 유무 판단에도 용이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세입자114 관계자는 “세입자를 보호하기 위한 임대차법이 가장 중요한 부분을 명확히 하지 않아 그동안 혼란이 많았다. 세입자들의 불안이 줄어들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앞으로 임대인이 세입자의 계약갱신권을 거절할 때 ‘실제 거주하려는 의사’가 분명히 있다는 것을 통상적으로 수긍할 수 있을 정도로 입증해야 한다고 했다.

구체적으로는 임대인의 주거 상황, 임대인·가족의 직장·학교를 비롯한 사회적 환경, 실거주 의사를 가지게 된 경위, 갱신요구 거절 전후 임대인의 사정, 실거주 의사와 배치·모순되는 언동, 이를 통해 임차인의 정당한 신뢰가 훼손될 여지 유무, 실거주를 위한 이사 준비 여부까지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의 해석에 따르면, 임대인이 본인이 실거주하려 한다고 했다가 뒤늦게 가족이 실거주하려 한다고 말을 바꾸거나 하면 ‘실제 실거주하려는 의사’가 진실되지 않다고 볼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고준석 제이에듀투자자문 대표는 “역전세나 전세사기로 인해 세입자의 피해가 컸다”며 “임대차법으로 인해 명확하지 않은 부분이 명확해졌다. 임대인의 의무가 명확해졌으니 갈등의 소지가 적어질 것”이라고 했다.

문제는 ‘실거주하려는 의사’를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이다. 대법원은 ‘실거주하려는 의사’에 대해 집주인에 세입자에게 증명해야 한다고 명시했지만, 시장에서는 ‘도대체 어떻게 증명하라는 것이냐’는 반발도 나온다.

서울 서초구에 아파트를 세놓고 있는 김모씨는 “사람 일이라는 게 내일 일도 모르는데, 실제 실거주하려다가도 일이 생겨서 가족이 살게 되거나 친척이 살게되는 경우도 있지 않냐”면서 “임차인이 못 믿겠다고 하면 임차인이 믿을 때까지 증명해야 할텐데 집주인이 이를 어디까지 감당해야하느냐. 소송만 늘어나는 악법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집주인이 ‘허위’로 계약갱신을 거절할 경우 손해배상 소송을 포함해 다른 제도적 장치가 충분한데도 ‘또 다른 소송’을 부를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따르면 집주인은 본인 또는 직계 존비속이 실거주하는 경우 세입자의 갱신권 사용을 거절할 수 있다. 하지만 이후 전세 보증금을 올려 다른 사람에게 세를 주거나 매도하는 경우 사실상 허위로 거절한 것이기 때문에 손해배상 책임이 발생할 수 있다.

세입자가 집주인의 ‘허위 실거주’를 파악할 수 있도록, 계약갱신청구권의 근거가 되는 주택임대차보호법 시행령 제6조에 따르면 계약갱신을 거절당한 임차인은 임대인·임차인의 성명, 확정일자 부여일, 차임·보증금, 임대차 기간을 비롯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그런데 이제는 이와 별도로 집주인에 계약갱신을 거절할 때 ‘실거주 의사’에 대해서 임차인에게 입증해야하는 것이다.

권대중 서강대 일반대학원 부동산학과 교수는 “집주인이 ‘실거주하겠다고 밝힌 의사’를 입증하라는 것 자체가 또 다른 분쟁을 남길 요소가 크다”고 했다.

임대인에 대한 각종 규제는 임대차시장을 위축할 것이라고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임대차시장은 집주인과 세입자로 구성되는데, 집을 임대해줄 사람이 줄어들면 그만큼 공급 부족이 우려된다.

‘2022년 주택소유통계’에 따르면, 다주택자 비중은 2019년 15.9%에서 2022년 14.9%로 줄어들고 있다. 집값 하락에 대한 판단으로 집을 처분한 사람도 있지만 임대차법과 각종 보유세로 인해 ‘임대인’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면서 다주택을 청산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는 얘기다.

임대 수요를 위축시키는 정책은 궁극적으로 전세 가격을 자극할 수 있다. 서울 아파트 전세 시장은 하반기부터 반등세로 돌아선 뒤 상승세를 타고 있다. 특히 내년 서울 아파트 입주물량은 20년 만에 역대 최저수준으로 예상되면서 ‘전세대란’에 대한 경고가 나온다.

시장에서는 내년 ‘전세대란’을 대비하는 모습이 포착된다. 전셋값이 뛰고 있는 서울에서는 계약을 갱신하면서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한 비중이 줄어들고 있다. 계약갱신청구권은 임차계약 2년 만기 뒤 세입자가 집주인에게 5% 이내 임대료 인상을 조건으로 계약갱신을 청구할 수 있는 권한인데, 세입자들이 전세를 갱신하면서도 계약갱신권은 쓰지 않고 다음번 전세 상승때 사용하기 위해 갱신권을 아껴두는 것이다.

권 교수는 “임대차법 이후 임대인들은 법이 너무 한쪽으로 치우쳐있다는 불만이 팽배하다. 그런데 이제는 내집이어도 실거주 의사까지 입증하라고 하니 차라리 집을 팔겠다며 집을 임대하겠다는 사람이 줄어들 것”이라면서 “다주택자가 줄어들면 그만큼 전세 물량이 줄어들게돼 시장이 경직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