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 크리처', 강작가님 정감독님 이것이 최선인가요?

아이즈 ize 정유미(칼럼니스트) 2023. 12. 26.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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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즈 ize 정유미(칼럼니스트)

사진=넷플릭스

2023년 압도적인 넷플릭스 한국 드라마는 없었다. 올해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한국 드라마는 '경성 크리처'까지 모두 13편으로 가장 많은 편수를 공개했다. '마스크걸', 'D.P.'와 '스위트홈' 시즌 2,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등 웹툰 원작 드라마가 7편을 차지했다. 다른 6편은 '퀸메이커', '셀러브리티' 등은 베테랑 연출자와 스타 작가의 협업작이다. 올해도 다양한 장르와 소재를 선보였으나 '킹덤'(2019) '오징어 게임'(2022), '더 글로리'(2023)처럼 엄청난 화제와 인기를 몰고 온 대표 작품을 손에 꼽기는 어렵다. 

올해 넷플릭스 한국 드라마의 마지막 주자로 나선 '경성 크리처'는 여러 면에서 기대가 남달랐다. 먼저 넷플릭스의 주력 장르이자 인기 콘텐츠로 자리 잡은 크리처, 호러물을 일제 강점기 배경의 오리저널 작품으로 내놓는다는 점이 신선했다. 인기 배우 박서준과 한소희의 캐스팅 조합은 물론 스포츠 드라마 '스토브리그'(2019)로 연출력을 인정받은 정동윤 감독과 '제빵왕 김탁구'(2010), '구가의 서'(2013), '낭만닥터 김사부'(2016~2023) 등으로 유명한 강은경 작가의 공력이 굉장한 시너지를 일으키길 바랐다. 게다가 '더 글로리'가 지난해 연말에 등판해 화제를 모은 것처럼 '경성 크리처'를 '끝판왕'으로 정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굳게 믿었다.

'경성 크리처'의 무시무시한 오프닝 타이틀 시퀀스는 드라마에 대한 기대에 부응한다. 매 화마다 다시 보기가 꺼려질 정도로 공포스럽게 연출했다. 서늘한 음악과 지옥도처럼 펼쳐지는 그림 클로즈업은 극에 대한 긴장감을 높이는 데 상당한 역할을 한다. 오프닝 장면 다음에 화면에 뜨는 '00과 00의 경계'라는 부제들과 한자어 제목들도 의미심장하다. 극에 무게감을 얹으며 인물들이 겪게 될 상황이 어둡고 심각할 것임을 예고한다. 여기까진 시청자가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도록 만드는 데 성공한다. 반면에 드라마는 극이 진행될수록 다른 결을 보이면서 앞의 장치들을 무색하게 만든다.  

사진=넷플릭스

1부에서 일본군의 생체실험이 낳은 파국을 보여주며 시작한 드라마는 주인공 장태상(박서준)을 소개하면서 삐걱댄다. 자수성가한 경성의 최고의 자산가이자 경성 최대 전당포를 운영하는 장태상은 언뜻 조선판 '위대한 개츠비' 같다. 자기를 소개하는 유쾌한 내레이션은 앞에 조성한 공포 분위기와 다른 분위기여서 급작스럽다. 이처럼 초반부의 매끄럽지 못한 전개는 극의 무거운 분위기를 환기하고,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보여주려는 시도에서 양쪽 다 실패한다. 

드라마는 '경성 제1의 정보통'으로 불리는 장태성이 전당포 사람들과 함께 경성을 쥐락펴락하는 이시카와(김도현) 경무관의 애첩 명자(지우)를 찾아 나서면서 추리 구조를 발동한다. 그렇지만 흥미진진하게 엮여야 할 인물 관계와 이야기는 들쑥날쑥한 톤 앤 매너와 지지부진한 전개 탓에 흡인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10년 전 헤어진 어머니를 찾으러 경성에 온 윤채옥(한소희)이 장태성과 처음 만나는 장면, 두 주인공이 반목하다가 의기투합해 팀워크를 펼치는 과정도 진부하게 그려진다. 시대를 모른 척하며 자신의 안위만 챙기던 남자가 사랑에 빠져 목숨까지 내놓으며 대의에 휩쓸리는 이야기를 이렇게 밋밋하게 그려내다니.  
 
일제강점기는 창작자들이 상상력과 영감을 불어넣어 기억하고자 하는 시대이자 도전 욕구를 자극하는 시험대다. 많은 영화와 드라마가 첩보 액션, 로맨스, 미스터리, 웨스턴 등 다양한 장르로 접근했고, 주로 독립운동가를 주인공으로 다뤘다. '경성 크리처'는 일제강점기 배경으로 시대극과 크리처 장르의 결합, 독립운동가가 아닌 사적인 목적을 이루려는 두 인물을 내세워 차별화를 꾀한다. 아직 파트 2와 시즌 2가 남아 있지만, 파트 1에선 일제강점기 경성을 한정적으로 사용한다. 초반에는 장태상의 전당포가 볼거리를 제공하다가 주요 공간이 일본군의 생체실험이 벌어지는 옹성병원으로 좁혀지면서 배경 설정의 한계를 시대 전체로 넓히지 못한다. 

사진=넷플릭스

'경성 크리처'에서 일본군들은 포로들에게 생체 실험을 자행해 괴물을 만들어낸다. 731부대의 마루타 실험을 연상시킨다. 이 드라마를 통해 일제시대 일본 생체실험의 만행이 한국의 젊은 세대를 포함해 전 세계에 알려지는 효과는 긍정적이라고 본다. 크리처의 탄생, 크리처 디자인과 크리처가 주는 공포 효과도 설득력을 가진다. 문제는 크리처에 사연을 더하면서 신파로 빠진다는 점이다. 신파보다 사연이 참신하지 않기 때문에 기존 크리처물의 설정을 답습하는 것처럼 비친다. '진짜 괴물은 인간이다'라는 크리처물의 공식도 주요 일본군 캐릭터가 전형적이어서 싱겁게 와 닿는다. 파트 1 마지막에 예고한 또 다른 크리처의 등장을 어떤 모습으로 보여주느냐, 아직까지 베일에 싸인 이시카와의 아내 마에다 유키코(수현)의 정체를 파트 2와 시즌 2에서 어떻게 풀어가느냐에 따라 지금의 평가와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경성 크리처'는 넷플릭스 시리즈 '스위트홈' 시즌 2 바로 다음 작품으로 공개되었다. 전작과 같은 크리처 장르이기에 비교 영향 직격탄을 맞아 혹독한 평가를 받는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시청자를 단박에 사로잡지 못한 파트 1의 7부는 완성도 면에서 많은 아쉬움을 남긴다. 무엇보다 기대에 못 미치는 각본, 연출, 연기가 파트 2와 시즌 2로 향하는 여정에 예상치 못한 걸림돌이 되고 만다. 이야기는 빽빽한데 막상 내용은 새롭지 않고, 7부까지 주요 사건이라 할 수 있는 병원 탈주극은 긴박감을 주지 못하고 지루하게 이어진다. 여기에 일본어 대사까지 소화하는 배우들의 연기가 안정적이지 못해 캐릭터 매력도 반감된다. 

사진=넷플릭스

'경성 크리처' 파트 1은 총 10부 구성으로 남은 3부는 2주 간격을 두고 내년 1월 5일 공개한다. 넷플릭스가 파트를 나눠 공개하는 방식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2부작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과 16부작 '더 글로리'가 지난해 각각 6개월, 3개월의 차이를 두고 파트 1,2를 절반씩 나눠 공개하며 기대감을 고조시키는 전략을 썼다. 반면에 '경성 크리처'의 순차 공개 방식은 의문스럽다. 드라마 중후반을 넘어선 지점에서 흐름을 끊는 방식이어서 파트 구분이 달갑지 않다. 다수의 10부작 넷플릭스 드라마가 전편 공개를 택한 바 있고, 이미 촬영을 마친 시즌 2가 내년 공개를 내다보는 상황에서 '경성 크리처'의 파트 1,2 구분은 애매하다. 지금부터 내년까지 화제성을 이어간다는 전략이라 하기에도 영리해 보이지 않는다. 

내년에 공개하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한국 드라마는 시즌 2의 격전장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 전 세계적 인기를 끌었던 '오징어게임', '지금 우리학교는', '지옥' 시즌 2가 공개 예정이고, '경성 크리처'까지 시즌 2 공개를 확정한다면 여느 해보다 넷플릭스 한국 드라마의 기세가 뜨거워질 질 전망이다. 이들 시즌 2 드라마들이 소포모어 징크스와 전편의 단점들을 보완해 놀라운 성과를 거둘 수 있을까. 올해 디즈니, 티빙, 쿠팡플레이 등 다른 OTT 채널에서 굵직한 드라마가 쏟아져 나오면서 넷플릭스도 콘텐츠 점검과 정비가 필요한 시점이다. 문화 콘텐츠 시장의 흐름을 주도하되 시청자들 눈치 보지 않고, 화제성에 걸맞게 내실을 다져야 한다. '경성 크리처'가 파트 1의 부족함을 파트 2와 시즌 2에서 만회한다면 좀비 사극 '킹덤'의 뒤를 이어 괴물 같은 작품이 탄생할 것이다. 새로운 괴물의 예상치 못한 파괴력을 두 눈으로 목격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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