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서우봉] 에메랄드빛 함덕 해변의 주인공

이승태 여행작가, 오름학교 교장 2023. 12. 26.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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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덕해수욕장 거느린 109m 봉우리… 망오름과 진지동굴 코스 추천
북쪽 바다 상공에서 본 서우봉. 왼쪽이 북촌리다.

함덕해수욕장은 에메랄드 바다색으로 유명하다. 여름이면 피서객과 서핑, 카약을 즐기는 이로 발 디딜 곳 없고, 다른 계절도 유난히 예쁜 바다 풍광을 보러 찾는 이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서우봉은 함덕해수욕장 동쪽에 이 해수욕장의 주인처럼 자리를 잡았다.

함덕해수욕장에서 이어지는 서우봉 들머리. 봄이면 유채꽃이 만발하는 곳이다.

함덕해수욕장은 제주를 대표하는 여름 휴양지다. 결이 고운 백사장과 얕은 바닷속 패사층이 만들어내는 비취색 바다가 아름답다. 수심이 완만해 여행객뿐 아니라 제주 주민들도 즐겨 찾는 피서지다. 해수욕장 중간에는 경치 좋은 카페가 있어 사철 사람들로 북적인다.

이토록 아름다운 함덕바다가 온통 피로 물든 적이 있었다. 고려시대 말, 대몽항전의 선봉에 섰던 삼별초와 진압군의 피비린내 나는 싸움이 펼쳐졌던 곳이 이 바다다. 한 가문의 사병으로 출발해 고려의 최정예 부대였다가 반란군이 되었고, 원나라의 침략에 맞서 끝까지 항거하며 고려 무인의 정신으로 최후를 마감한 삼별초三別抄. 그들의 마지막 항전지가 제주다.

서우봉의 한 일제 진지동굴 내부에서 본 입구. 붕괴위험이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진도를 거점으로 활동하던 삼별초는 얼마 후 여몽 연합군의 공격으로 지도자 배중손 장군이 전사하고, 허울뿐이던 왕 왕온마저 죽자 김통정의 지휘 아래 제주도로 피신했다. 그들은 지금의 애월 항파두리에 성을 쌓고 여몽 연합군의 추격에 대비했다. 그러나 고려 원종 14년(1273)에 감행한 여몽 연합군의 총공격을 막아내지 못했다. 당시 여몽 연합군의 주력부대가 상륙한 곳이 이곳 함덕포였다.

서우봉은 전체적으로 소나무가 무성하다. 동쪽과 서쪽 사면은 밭뙈기가 많고, 남쪽 자락을 타고 함덕해수욕장과 북촌포구를 잇는 신북로가 지난다. 북쪽을 중심으로 오름의 절반은 온통 제주 바다에 닿아 있다.

멍때리기 좋은 벤치와 풍광을 가진 망오름. 느긋하게 쉬고 싶은 장소다.

정상보다 조망이 빼어난 망오름

오름 정상부는 두 개의 봉우리가 남·북에서 마주 보는 형상이다. 북쪽이 봉수대가 있던 망오름이고, 남쪽이 정상인 서우봉이다. '남서모'라고도 부르는 정상이 고작 109.4m이니, 전체적으로 야트막한 동산인 셈. 서우봉의 옛 이름은 서모봉이다. 지금은 '서모'의 정확한 유래나 의미에 대해서 전하는 바가 없다.

탐방로는 함덕해수욕장의 동쪽 끝이나 북촌리의 서쪽에서 이어진다. 교통이 편하고, 볼거리와 편의시설이 모인 함덕해수욕장이 들머리로 인기다. 해수욕장 동쪽 끝, 작은 해안을 지나며 구불구불 예쁜 길이 오름으로 이어진다. 중간쯤에서 만나는 육각지붕 정자에서 보는 함덕 바다가 장관이다. 에메랄드 빛깔로 반짝이는 이 바다는 정말 제주의 보석이다. 볼 적마다 마음을 흔드는 이 풍광 너머로 한라산이 아득하다.

함덕바다와 한라산.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는 풍광이다.

정자를 지나면서 오른쪽으로 길이 갈리며 동굴진지 이정표가 보인다. 60m쯤 들어선 곳에 시커먼 아가리를 벌린 두 개의 일제 진지동굴이 있다. 오르막길은 잠시 후 안부에 닿는다. 여기서 망오름이나 서우봉이 모두 가깝고 길도 평탄하다.

사람들은 대부분 조망이 시원치 못한 서우봉보다는 망오름으로 향한다. 봉수대가 있던 자리답게 망오름은 너른 초지대와 동쪽으로 탁 트인 풍광이 압권이다. 바다를 끼고 알록달록한 지붕이 이어지는 북촌리가 정겹고, 김녕으로 뻗어간 제주바다의 역동적인 해안선도 시원스럽다. 제주올레 19코스가 함덕해수욕장과 서우봉을 지나 북촌으로 향한다.

망오름으로 오르다가 만나는 육각정자. 함덕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벌집처럼 뚫린 일제 진지동굴

사실 서우봉의 진면목은 북쪽 해안을 따라 수없이 뚫린 일제 진지동굴에 있다. 등록 문화재 제309호로 지정된 이 동굴들을 보려면 함덕해수욕장보다는 오름 동쪽의 북촌리를 들머리로 잡는 게 좋다. 콘크리트 포장도를 따르다가 일제 진지동굴 안내판에서 오른쪽 숲으로 내려서면 된다. 바다에 접한 북쪽 기슭을 따라 일제가 파 놓은 진지동굴이 22개나 된다.

독특한 모양의 콘크리트 벽을 가진 한 동굴. 용도가 무엇일까?

이 동굴들을 찾아가는 길은 꽤 험하다. 어떤 동굴은 탐방로 바로 옆으로 입구가 보이지만 몇몇은 해안으로 내려서야 입구를 확인할 수 있고, 절반 이상은 입구가 무너졌거나 접근 자체가 어렵다. 해안 쪽 동굴은 내려서는 길이 가파르다. 바람이 심할 경우는 삼가는 게 좋고, 최소 두 명 이상일 때 찾아가는 걸 추천한다.

가지가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뻗은 진지동굴 탐방로. 어디서도 만나기 어려운 풍광이다.

처음 만나는 1번 동굴은 나란히 뚫린 2번, 3번 동굴과 안쪽에서 이어진다. 이 동굴들은 안으로 들어가서 내부를 살펴볼 수 있는데, 이때 헤드랜턴이나 플래시를 준비하면 좋다.

진지동굴과 이어지는 이 탐방로는 망오름 오르는 길보다 훨씬 매력적이다. 바람 때문에 일정 높이 이상으로 자라지 못한 나뭇가지들이 그물처럼 뒤섞인 사이를 지나는 길은 제주의 여느 오름에서도 만나기 힘든 멋진 풍광이다. 길은 그렇게 해안가 울창한 숲 사이로 좁게 이어지다가 때로 바다 쪽이 탁 트이는 벼랑도 나타나기에 주의가 필요하다.

동굴이 끝날 즈음 탐방로가 넓어지고 함덕해수욕장 쪽으로 조망이 트이며 넓고 평탄한 산책로가 이어진다. 망오름 코스와 진지동굴 코스를 이어가려면 망오름에서 북쪽의 올레코스를 만난 후 북촌으로 내려서면 진지동굴 들머리의 안내판을 만날 수 있다.

교통

서귀포버스터미널을 출발해 일주동로를 거쳐 제주버스터미널을 오가는 201번 간선버스가 함덕해수욕장과 북촌리 입구에 선다. 제주국제공항과 성산항을 오가는 101번 급행버스를 이용해 함덕환승정류장에 내려도 된다.

하늘에서 본 카페 델문도와 함덕해수욕장

주변 볼거리-카페 델문도

함덕해수욕장 한가운데 있어 전망이 손꼽힌다. 밀물 때면 파도가 카페 발치에서 철썩대고, 이곳에서 보는 석양 풍광도 더할 나위 없이 멋지다. 함덕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창가 자리는 경쟁이 치열한데, 주말이면 일반석도 자리 잡기 어려울 정도로 북적인다. 커피와 마농빵(마늘빵)이 특히 유명하다. 064-702-0007

동카름 낙지볶음 상차림.

맛집

동쪽 마을이라는 뜻의 제주어인 '동카름'은 신촌 포구와 맞닿은 작은 제주 구옥을 멋지게 개조한 낙지볶음 전문점이다. 스트레스를 한 방에 날려버릴 정도의 기분 좋은 매콤함이 매력적인 낙지볶음이 유일한 메뉴. 주문할 때 맵기 정도를 정할 수 있다. 넓지 않은 공간이어서 테이블 수가 적은데, 찾는 이는 많으니 대부분 대기표를 받아야 한다. 조천읍 신촌9길 40-3. 064-784-6939

월간산 12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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