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스 어폰 어 와인 <48> 알스프의 햇살과 바람을 담은 스위스 와인] 알프스 雪 먹고 자란 포도…‘메이드 인 스위스’ 와인 매력 속으로

김상미 와인 칼럼니스트 2023. 12. 25. 18:09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1 발레 지역 급경사에 위치한 계단식 포도밭. 사진 발레 월리스 프로모션 파스칼 팜매터 2 그라우뷘덴 지역의 포도밭 전경. 사진 도이치바이즈 스위스 와인

‘메이드 인 스위스’ 하면 알프스산맥, 고급 시계, 맛있는 초콜릿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런데 여기에 곧 와인이 추가될 기미가 보인다. 스위스 와인에 대한 찬사가 이어지면서 전 세계적으로 찾는 사람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도 스위스를 방문했다가 와인을 마셔본 사람들이 그 맛을 잊지 못해 스위스 와인을 구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하지만 주변에서 스위스 와인을 보기란 쉽지 않다. 숨은 명품 같은 존재다. 왜 그럴까?

김상미와인 칼럼니스트

총생산량 2%만 수출하는 스위스 와인

스위스의 와인 산지는 총면적이 147㎢에 불과하다. 경기도 성남시와 비슷한 크기다. 스위스가 남한 면적의 40%밖에 안 되는 작은 나라긴 하지만 그래도 산지가 너무 좁다. 게다가 이 산지들은 곳곳에 흩어져 있다. 워낙 산이 많고 평지가 적어 포도밭이 대부분 산비탈에 소규모로 일궈져 있기 때문이다. 밭의 경사가 아주 급한 곳은 돌담을 쌓아 계단식으로 밭을 만들어 포도를 재배하기도 한다. 이런 환경에서 기계 사용은 불가능하고 모든 일을 수작업으로 해야 하니 포도 생산량도 매우 적다.

스위스의 연간 와인 생산량은 1억L 정도다. 이탈리아의 50억L와 비교하면 터무니없이 적은 양이다. 인구가 860만 명인데 인당 와인 소비량은 연 33L나 된다. 음주 가능 연령을 고려해 인구의 절반만 와인을 마신다고 가정해도 1억4000만L가 필요하다. 그래서 스위스 와인은 대부분이 국내에서 소비된다. 수출은 생산량의 2%에 불과하다. 물가와 인건비가 비싼데 포도 재배도 힘들다 보니 와인 가격도 높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위스 와인이 세계시장에서 입지를 넓혀가는 것을 보면 그만큼 맛이 좋다는 뜻일 게다.

비니그마의 오너와인 메이커 발렌틴 시스. 사진 김상미

알프스의 눈부신 햇살과 시원한 바람 담은 와인

곰곰이 생각해 보면 스위스는 좋은 와인을 생산할 조건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 내로라하는 와인 생산국들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고 세계적인 와인 산지들을 적시는 론강과 라인강이 시작하는 곳도 바로 스위스다. 기후변화 때문에 점점 더워지는 여타 산지와 달리 스위스는 워낙 추운 곳이라 온화해지는 날씨 속에서 오히려 더 맛있는 포도가 생산되고 있다. 고지대에서 생산되는 스위스 와인의 신선한 맛이 소비자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는 것이다. 유일한 단점은 수출량이 너무 적다는 점. 다행히 우리나라에는 비니그마(Vinigma)의 와인 3종이 최근 수입되기 시작하면서 애호가들이 스위스 와인을 맛볼 수 있게 됐다.

비니그마의 오너 와인 메이커인 발렌틴 시스(Valentin Schiess)는 필자와 구면이다. 그가 작년에 한국을 방문했을 때 필자의 지인이 운영하는 와인바에 우연히 들른 것이 계기였다. 스위스의 와인 메이커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연락처를 남겼는데 마침 필자가 프랑스로 휴가를 간 김에 바젤(Basel)에 위치한 그의 와이너리를 방문했었다.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눠 보니 그는 상당히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였다. 일찌감치 와인의 매력에 푹 빠진 그는 프랑스 부르고뉴에서 와인을 공부한 뒤 포도 연구가와 와인 메이커로 활동했고 음료 전문 설비 회사의 상품 개발 담당으로 오랜 기간 경력을 쌓았다. 이때 전 세계 유명 와이너리를 다니며 경험한 모든 것이 비니그마를 설립하는 토대가 됐다.

시스는 추구하는 와인 스타일에 따라 각기 다른 곳에서 재배한 포도를 사용한다. 스위스의 테루아가 워낙 다양해서 같은 품종도 지역별로 다른 맛을 낸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비니그마의 와인 중에 현재 우리나라에 수입되는 것은 샤슬라(Chasselas), 나누미(Nanumy), 아스퍼몬트(Aspermont)다. 그중 샤슬라와 나누미는 스위스 남부 알프스산맥 한가운데 위치한 발레(Valais) 지역에서 재배한 포도로 만드는 화이트 와인이다. 2만 년 전 빙하에 깎여 형성된 이곳은 해발 1100m에 포도밭이 위치할 정도로 고도가 높고 지형이 험준하다. 스위스 안에서도 가장 건조한 곳이어서 포도는 알프스의 눈 녹은 물을 먹고 자란다.

소비뇽 블랑으로 만든 나누미는 패션푸르트와 멜론 등 풍부한 과일 향과 경쾌한 신맛의 밸런스가 탁월하다. 알프스의 눈부신 햇살과 시원한 바람을 연상시키는 맛이다. 샤슬라는 동명의 스위스 토착 청포도로 만든 와인으로 레몬과 복숭아 등 과일 향이 신선하고 부싯돌과 은은한 꽃 향이 특징이다. 이 와인은 2023 대한민국 주류대상에서 대상을 받으며 우리나라 와인 전문가들에게 품질을 인정받은 바 있다.

아스퍼몬트는 피노 누아와 스위스 토착 적포도인 가마렛(Gamaret)을 블렌드해 만든 레드 와인이다. 이 품종들은 모두 스위스의 동쪽 끝인 그라우뷘덴(Graubünden)에서 재배된다. 이곳은 주위의 높은 산들이 찬 바람을 막아 주기 때문에 기후가 온화해 우수한 피노 누아가 생산되는 곳이다. 가마렛은 알프스의 맑은 공기 속에서 몇 주간 말린 것을 사용한다. 와인의 맛을 보면 잘 익은 과일 향이 풍성하고 향신료의 매콤함과 부드러운 질감이 매력적이다. 내년 상반기에는 피노 누아로 만든 로제 와인 핑크 플루이드(Pink Fluyd)도 국내에 수입될 예정이어서 기대가 크다.

한국을 네 번이나 방문한 시스는 제일 좋아하는 음식으로 김치찌개와 불고기를 꼽을 정도로 한식 애호가다. 그는 한식의 매운맛에는 아스퍼몬트가, 잡채와 된장찌개에는 나누미가 잘 어울린다고 추천했다. 베리 향이 신선하고 상큼한 맛이 일품인 핑크 플루이드는 비빔국수나 삼겹살과 즐겨볼 것을 권했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그는 “스위스의 맛이 담겨 있고 비니그마의 개성이 살아 있는 와인을 만드는 데 더욱 매진할 것”이라고 말하며 “멀리 떨어진 두 나라의 와인과 음식이 한자리에 놓이고 그것을 사람들이 함께 즐기면서 행복을 나누는 것이야말로 와인 메이커에게는 가장 큰 보람”이라고 답했다.

Copyright © 이코노미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타임톡beta

해당 기사의 타임톡 서비스는
언론사 정책에 따라 제공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