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날을 엿볼수 있다면 … 책 속에 숨어있는 '미래 망원경'

김유태 기자(ink@mk.co.kr) 2023. 12. 25.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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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은 "미래가 틀림없이 오기 때문에 미래를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했지만 미래는 누구든 한 걸음 먼저 다가서고픈 미지(未知)의 대상이다. 이때 책은 가장 먼저 그리고 무엇보다도 빨리 미래를 현재 앞에 전시하는 렌즈가 된다. 책은 종이와 잉크의 합(合)만이 아니라 미래를 보게 하는 흑백 문자의 망원경이다. 우리의 미래를 예견하고 현재를 진단하는 책들이 올 한 해 서점가에서 독자와 만났다.

일론 머스크

월터 아이작슨이 쓴 일론 머스크 공식 전기다. 올해 가장 뜨거웠던 책이다. 출간과 동시에 국내 모든 언론이 톱기사로 다뤘고, 이에 앞서 전 세계 매체가 '올해의 책'으로 다룰 만큼 화제작이었다. 머스크야말로 "지구에서 가장 문제적인 인간"이라는 확신 때문이다. 리스크에 '중독'된 머스크는 자신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확신하는, 그러면서도 온갖 논란과 비판에도 누구보다 빠르게 상상을 모두 현실로 만들어내는 80억명 중 단 한 명인 인간이다.

"리스크에 끌리는 일론 머스크의 성향은 집안 내력이었다"는 첫 줄로 책은 열린다. 그의 할아버지 조슈아 홀드먼은 모험가였다. 그가 태어난 1980년대 남아프리카공화국은 기관총 난사 등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았는데, 머스크는 정서적 학대를 일삼는 아버지 에롤 머스크 아래서 자랐다. 그러면서도 11세 때 돈을 모아 직접 컴퓨터를 샀고 13세 때 독학으로 익힌 코딩으로 비디오 게임을 만들어 잡지사에 500달러를 받고 팔았다.

"악마 모드와 열정을 빼놓고는 일론 머스크를 논할 수 없지만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처럼 정서적으로 큰 상처를 받아 감정을 차단하게 된 어린 시절의 영향이 있었다"는 진단은 한 인간을 보게 한다. 미래가 준 과제를 가장 서둘러 풀어내고 있는 한 인간의 심연으로 향하는 책이다. 월터 아이작슨, 안진환 옮김, 21세기북스 펴냄.

에이징 솔로

"아직 결혼은 안 하셨죠? 본인 출세도 좋지만 국가 발전에도 기여해주세요." 2019년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실제로 나온 발언이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한 의원이 서울대 교수인 후보자에게 했던 말로, 이 한마디엔 수많은 편견이 담겨 있다. "출산율이 결국 우리나라를 말아먹는다"는 말까지 겹친 이날 발언에는 '비혼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 즉 여성의 비혼과 비출산이 사회 병폐의 원인이라는 전제가 깔렸다. 하지만 '혼삶(혼자 사는 삶)'은 시대의 다수이자 주류다. 과거엔 '정상 가족'이라 불리는 부부와 자녀 구성 가족이 많았지만, 2021년 조사에서 1인 가구는 전체의 33.4%로 이미 '정상 가족'의 수치를 넘어섰다. 40~64세 비혼 여성 19인을 만나 혼삶을 이야기한 논픽션인 이 책은, 한국 사회를 정확히 진단해 많은 갈채를 받았다.

결혼하지 않는 삶은 미생이고, 결혼한 삶만이 완생일까. 책에서 정의하는 '에이징 솔로(Aging Solo)'란 결혼 경험이 있건 없건 스스로 배우자와 자녀가 없는 상태로 살기를 선택한 중년을 뜻한다. 저자는 '외로움'이라는 고정관념을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이는 비혼 여성은 없었음을 실증한다. "결혼이 비혼보다 이상적이라고 생각하고 비혼자에게 편견을 갖는 것", 즉 싱글리즘(Singlism)을 박살 내는 책. 정상이란 무엇인가. 또 비정상과 정상을 가르는 건 무엇인가. 이 책을 읽는다면, 질문 자체가 틀렸다. 김희경 지음, 동아시아 펴냄.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

'나쁜 사마리아인들' 저자 장하준 런던대 경제학과 교수의 신작이다. 저자 설명처럼 '음식 이야기와 경제학 이야기를 한 상에 차려낸 책'이다. 가디언, 퍼블리셔스위클리, 커커스리뷰 등에서 찬사를 받은 책이 한국에 번역 출간돼 한동안 베스트셀러를 차지했다.

음식 '도토리묵'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등산길 노점에서 흔히 판매되는 도토리묵은 친근하다. 그러나 도토리묵이 '최고급 요리'는 아니다. 그러나 저자는 "도토리를 이베리코 돼지에게 먹이면 얘기가 다르다"고 쓴다. 이베리코 돼지를 떡갈나무 숲에 방목해 도토리만 먹게 하면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고소한 햄 '하몬 이베리코'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멸치는 19세기 중반 페루가 누린 경제적 번영의 원인이었다. 멸치를 수출해서가 아니라, '구아노'라 불리는 '마른 새똥'을 수출했기 때문이다. 구아노엔 화약 핵심 재료인 '질산칼륨'이 들어 있다. 이때 구아노는 가마우지와 얼가니새의 배설물로, 이들의 주식은 칠레 남쪽에서 페루 북쪽을 잇는 훔볼트 해류의 멸치다. "경제학은 개념을 만들어낸다. 경제학 이론은 서로 다른 특징을 인간성의 본질로 추정하고, 따라서 그 시대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치는 경제학 이론은 동시대인들이 무엇을 가장 중요한 인간의 본질로 생각하는지에 영향을 준다"는 석학의 문장에 밑줄을 긋는다. 장하준 지음, 김희정 옮김, 부키 펴냄.

맘카페라는 세계

맘카페는 2023년 대한민국에서 가장 뜨거운 공간이다. 학군에 대한 질문부터 소아과·이비인후과에 대한 개별적 평판, 심지어 동네 아파트값의 향방까지도 맘카페의 주요 논제로 다뤄진다. 실생활적인 정보를 주고받는 집단지성의 순기능 이면에서, 맘카페는 논쟁적 공간으로도 이해된다. 저자 정지섭은 워킹맘과 전업주부를 거친 뒤 5년 넘게 맘카페를 운영한 경험을 바탕으로 맘카페에 대한 성찰을 이어간다. 국내 최초로 출간된 '맘카페론(論)'이다. "한국 사회를 이해하려면 맘카페를 보라"는 최성수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의 말은, 이 책을 관통하는 절대 명제다.

맘카페엔 대한민국의 모든 것이 압축돼 있다. 맘카페는 우리 사회가 당면한 현실의 '블랙박스'다. 저자는 자신이 어떻게 맘카페 운영진이 됐는지를 털어놓으면서 많은 사람이 맘카페에 빠져드는 이유도 함께 설명한다. 맘카페는 혼자 육아의 책임을 떠안은 '고립된 맘'들이 시대적 특성에 맞춰 모이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맘카페는 긍정적인 역할로 기능하면서도, 동시에 여론을 등에 업고 공격성을 띠기도 했다. '내 새끼 지상주의'의 범람은 '맘충'을 향한 혐오의 감정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지탄받는 모성은 임신과 육아가 불행하다는 인식과 연결된다. 그것은 온당한가. 엄마의 자존감에 대한 성찰이 책에 켜켜이 싸여 있다. 희망은 있을까. 책은 바로 그 지점에 답하기 위한 한 권의 질문이다. 정지섭 지음, 사이드웨이 펴냄.

전세지옥

1991년생 저자 최지수 씨가 천안 두정동 빌라에 거주하면서 겪은 '전세사기' 실화를 담은 책. 빌라 복도 현관문에 붙은 안내문에는 '경매 신청' 사실이 적혀 있었다. 조종사를 꿈꾸며 해외 취업이 확정됐던 저자는 이 사건으로 820일간 전세 보증금을 받아내고자 분투하며, 자신의 꿈으로 향하는 항로를 수정해야만 했다. 공제증서는 공인중개사의 과실이 인정된 경우에만 효력이 있었고, 피해 입증을 위해선 매각물건명세서, 배당표, 임차인확약서, 소득사실증명원 등 10종에 달하는 서류를 내야 했다.

서류를 제출하던 날, 주민센터가 긴급생계지원금을 신청한 최씨에게 준 건 '신라면 20개'였다. 우편물에 적힌 '무료 상담' 문구를 보고 전화를 걸면 변호사 사무실은 상담료 10만원을 요구했다. "세상 누구도 처음부터 전세사기 피해자가 될 운명을 안고 태어나지 않았듯, 나에게도 보통의 삶이 있었다"는 문장은 우리 주변의 청년들이 전세사기의 지옥에서 어떻게 벗어나려 발버둥 쳤는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기록이다.

전세사기는 개인의 불행을 넘어선 사회적 재난이다. 저자는 "조카들이 내 책을 읽을 수 있을 만큼 자랐을 때는 전세법이 제대로 개정되어 어떤 전세든 안심하고 계약해도 된다고 말해줄 수 있기를 고대한다"고 쓴다. 가해자는 어디에 있는가. 벌을 받아야 할 이는 누구인가. 최지수 지음, 세종서적 펴냄.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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