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 떼 입찰’은 옛말… 알짜 공공택지 잇따라 유찰

신수지 기자 2023. 12. 25.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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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침체에 건설사들 몸 사려

지난 15일 경기 고양창릉 공공주택지구 C-1블록 4만1488㎡(약 1만2550평) 부지에 대한 입찰이 마감됐다. 이 땅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공급하는 공공택지로, 공급가는 2479억원(3.3㎡당 1975만원 수준)으로 책정됐다. 고양창릉 지구는 3기 신도시 중 서울과 비교적 가깝고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A 노선과 연결되는 고양선 신설 계획도 있어 실수요자들의 관심이 높은 ‘알짜 부지’로 꼽혔다. 입찰 후 추첨을 통해 최종 낙찰자를 선정할 계획이었지만, 이날 입찰에 참여한 건설사는 단 한 곳도 없었다. 지난달 매각 공고 때도 입찰자가 없었는데, 또다시 유찰된 것이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입지나 가격을 볼 때 평소 같으면 건설사들이 너도 나도 뛰어들었겠지만, 지금은 낙찰을 받아도 당장 착공하는 게 쉽지 않다”며 “부동산 경기와 PF(프로젝트 파이낸싱) 시장이 불안해 건설사들이 몸을 사리는 탓”이라고 말했다.

고양창릉 지구

LH가 조성한 공공택지 내 공동주택용지가 입찰에서 잇따라 유찰되고 있다. 공동주택용지는 건설사가 낙찰받아 주로 아파트를 짓는 땅이다. 이를 낙찰받으려는 건설사가 없어 ‘미매각’ 상태로 남아 있는 공동주택용지가 축구장 127개 면적에 달하는 91만㎡(약 28만평)를 넘어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공택지는 과거 일부 건설사들이 편법으로 계열사를 동원해 ‘벌떼 입찰’에 나설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하지만 고금리와 공사비 급등으로 사업성이 악화하면서 최근 외면받는 것이다. 앞으로 주택 공급난이 벌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그래픽=김하경

◇여의도·3기 신도시 ‘알짜 땅’도 유찰

예전에도 입지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부지는 유찰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하지만 최근엔 ‘알짜’로 분류되는 곳도 주인을 찾지 못하고 있다. 지난 13일에는 서울 여의도 성모병원 인근에 있는 8264㎡(약 2500평) 규모 부지가 입찰자가 없어 유찰됐다. 여의도에서 공급되는 대규모 주택 용지는 2018년 매각된 옛 MBC 부지 이후 처음이다. 희소성이 있는 만큼 LH는 감정평가액을 기반으로 3.3㎡당 1억6000만원 수준인 4024억5680만원을 공급 예정 가격으로 제시했다. 한 개발업계 관계자는 “토지비를 고려하면 초고가 아파트를 지어야 하는데, 최근 부동산 상황을 보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곳뿐 아니다. 수도권 내에서 상대적으로 실수요자들의 관심이 큰 경기도 화성동탄과 김포한강 지구에서도 공공주택 용지가 유찰됐다. 수도권에서만 인천영종, 파주운정, 남양주진접2 등 16개 택지가 주인을 찾지 못하고 있다.

◇당근책에도 “안 사요”… 공급난 우려

한때 공공택지는 민간택지 대비 가격이 저렴하고, 인허가 지연 등의 위험이 적어 낙찰받은 건설사 입장에선 ‘로또’로 여겨졌다. 가격이 정해지면 입찰을 받은 후 추첨을 통해 낙찰자를 결정한다. 1~2년 전까지만 해도 특정 업체가 당첨 확률을 높이기 위해 자사 계열사를 동원하는 ‘벌떼 입찰’이 문제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PF(프로젝트 파이낸싱) 경색으로 자금 조달이 쉽지 않은 데다, 고금리로 인한 금융비용과 건축비 인상으로 수익성이 악화하면서 공공택지마저 외면을 받는 것이다.

LH는 지역본부별로 ‘토지 리턴제(계약금 몰수 없이 계약 해지 가능)’와 최장 18개월 거치식 할부 판매, 최대 5년 이내 무이자 할부 판매, 공급가 조정 등의 당근책을 제시하고 있다. LH 관계자는 “지역본부별로 다양한 인센티브를 적용하고 있으나, 매각은 여전히 어렵다”고 말했다.

주택 공급을 위한 첫 단계인 택지 매각이 불발되면서, 주택 공급 부족 우려가 커지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주택 270만 가구 공급 목표 중 3분의 1인 88만 가구가 3기 신도시 등 공공택지 물량이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택지 분양가를 낮추고 전매 허용 범위를 확대하는 등 좀 더 적극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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