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 경성]음악회 청중의 ‘해괴막측한 狂態’

김기철 학술전문기자 2023. 12. 2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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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라이브러리 속의 모던 경성]노래 끝나기 전에 ‘안다 박수’…잡담은 물론 큰 소리로 ‘야지’까지
지휘하는 홍난파를 그린 만화. 대중월간지 동광 1932년1월호에 실렸다. 난파는 "음익화에 불가해한 괴풍이 유행하고 있다"면서 일부 청중의 무례한 '야지'를 비판했다.

‘그런데 오늘 저녁에는 너무 떠들어서 하는 사람도 재미가 적었을 터이야.’ ‘애참 왜그리들 떠드는지, 좀 조용히 있었으면 좋겠더구먼’ ‘아직 정도들이 유치하고 음악의 취미를 모르니까 그렇지.’

1921년 1월 잡지 ‘폐허’(2호)에 발표한 민태원 단편 ‘음악회’에 나오는 얘기다. 이 소설은 1920년 5월4일 종로기독교청년회관에서 열린 야나기 가네코(柳兼 子)의 리사이틀을 소재로 했다. 야나기 가네코는 민속학자 야나기 무네요시 아내로 도쿄음악학교를 졸업한 내로라하는 성악가였다. 조선 최초의 독창회로 알려졌다. 하지만 분위기는 청중들이 내는 소음으로 어수선했던 것같다.

◇'브라보 아저씨’에 ‘안다 박수’까지

요즘 예술의전당이나 롯데콘서트홀 같은 공연장에서도 지휘자나 연주자가 연주를 마치기도 전에 브라보를 외쳐 분위기를 흐트러뜨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연주의 여운을 느낄 여유도 없이 찬물을 뒤집어쓴듯 황망하다. 휴대폰 소음은 물론 악장 간(間) 박수도 금물이지만, 소리가 사라지기도 전 박수를 쳐대는 것도 연주자나 다른 청중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침묵도 연주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근대 서구에서도 음악회 소음은 논란거리였다. 공연장이 사교장 비슷한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19세기 말이 되면 침묵을 유지하는 게 관례로 자리잡았다. 서양 음악이 도입된 20세기 전반, 이 땅에서 열린 음악회에서도 소음이 골칫거리였다. 낯선 형식에 적응하지 못한 청중들이 소음을 냈기 때문이다.

‘박경희(朴景嬉)양의 노래, 즉 재청했을 때에 부른 노래 ‘쏠벳지에 노래’의 반주가 채 끝나기 전에 박수를 하는 이가 있었다. 언제나 우리는 연주자나 가수가 인사를 끝낸 후에 박수를 해야겠다.’(음악연주회의 소감: 연주자와 청중의 태도를 논함, 조선일보 1938년5월30일) 한 음악회 평자는 신문에 이런 글을 썼다. 소프라노 박경희가 앙코르 요청에 ‘솔베이지의 노래’를 불렀는데, 피아노 반주가 끝나기도 전에 누군가 박수를 쳐댔던 모양이다.

◇타인에게 비평 강요

이 평자는 음악회에 와서 이러쿵저러쿵 큰 소리로 연주를 비평하는 청중도 못마땅했다. ‘우리가 대개 음악회는 다 가보는데 청중은 늘 보던 사람 그 사람이 그 사람인 것같다. 이만큼 음악회를 들으러오는 그룹의 사람들은 빼놓지 않고 음악회 구경은 다 간다. 그래서 이 사람들중에서 한 어떠한 공통어가 생긴다. 그것은 ‘아무개가 제일이다’ ‘나는 아무개가 조화’ 이런 말들이다.물론 우리가 비평을 하지 않으면 안되겠지만 아무개가 제일이니까 아무개가 좋으니까 아무개는 볼 것없다고 아주 납작하게 자기 싫어하는 사람을 깎고 심지어 타인에게까지 자기와 같은 노릇을 하자고 하는 사람이 많다.’

음악회장에서 큰 소리로 연주가 엉망이라는 등 떠들면서 자기 생각을 남에게까지 강요하는 청중을 꼬집었다.

◇피아니스트 박경호 ‘일부 청중, 해괴막측한 광태’

좀 더 심각한 경우도 있다. 피아니스트 박경호(1898~1979)가 ‘해괴막측한 광태’라고 지적한 일부 청중들의 행태다.

‘요사이 빈번히 개최되는 음악적 집회에는 의식이 있는 사람으로는 참아볼 수 없는 해괴막측한 광태를 자아내는 일부 청중을 흔히 볼 수 있다. 아무 이유 없이 고함을 벽력치듯 하고 마루를 구르며 심한 자는 사회자나 연주자에게 욕설을 방송하는 것을 음악회에서는 예사로 아는 듯싶다. 이게 무슨 만행이며 부끄러운 일이냐! 자기의 인권을 유린하고 생존까지도 위협하는 자를 만날 때는 찍-소리 한 마디를 변변히 못하는 그들이 극도의 정숙을 요구하는 이런 집회석에서는 어떻게 그렇게 용맹스럽고 다변인지 알 수가 없다.’(‘음악회에서 광태를 짓는 형제들에게’1, 동아일보 1928년3월7일)

박경호는 일부 청중의 돌출행위에 대해 ‘왜 그리 무례하고 경박한가’라고 질타했다. ‘절대의 침묵을 요구하는 음악연주시에 조금만 무엇이 이상하면 격장폭소(손뼉을 치며 웃음을 터뜨림)하며 조금만 무엇이 비위에 틀리면 질성노호를 연발한다. 우리는 감각이 있고 입이 있는 동물인 동시에 상식과 예의가 있는 ‘사람’이니….’ 이런 어수선하고 일촉즉발 분위기에서 연주가 제대로 이뤄질 리없다.

◇홍난파의 탄식, ‘음악회에 불가해한 怪風이 유행’

홍난파는 음악회에서 청중들이 ‘야지’(야유)를 보내는 악습을 지적했다. ‘근일에는 참으로 일종의 악풍(惡風)이 유행되는 것같습니다. 강연회나 음악회나 기타 어느 공중의 좌석을 불문하고 소위 ‘야지’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도 잘-선용만 하면 결코 불필요한 것은 아니겠지요만은 음악을 듣고서 거기에 무슨 ‘야지’가 소용될까요? 연주자의 연주가 끝나면 박수하는 한편에서는 ‘쉬-쉬-하는 소리가 들립니다.잘 못했으니 박수를 정지하라는 의미일까요?잘했다고 박수 재청함은 물론 가(可)한 일이오, 정히 잘못했으면 박수를 하지 않더라도 역가-그러나 ‘쉬-쉬-’는 무엇인지요? 이러한 불가해한 괴풍(怪風)이 유행이 되더니, 어린 학생들은 잘해도 ‘쉬-’ 못해도 ‘쉬-’ 의례히 악곡의 종곡(終曲)과 같이 붙어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려.’(‘악단의 뒤에서’續, 동아일보 1924년7월21일)

서구 오페라극장에서 마니아들이 맘에 들지 않는 출연자나 제작진에게 야유를 보내는 관습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음악회가 막 꽃피우기 시작한 조선에서 ‘야유’부터 따라하는 게 말이 되느냐는 지적이었다. 난파가 ‘야지’를 거론할 만큼, 당시 음악회 청중의 반응이 거칠었던 모양이다.

◇여학생 구경하러 음악회 찾아

이런 어수선한 분위기는 음악회 관람 목적이 애초부터 딴 데 있는 이유도 있다. 현진건 소설 ‘까막잡기’에는 친구가 음악회 구경가자고 조르자 이렇게 거절한다. ‘내 귀에는 한다는 성악가의 독창이나 돼지 멱따는 소리나 다른 것이 없네. 바이올린으로 타는 좋다는 곡조나 어린애의 앙알거리는 울음이나 마찬가지인데.’ 그러자 친구는 이렇게 말한다. ‘여보게, 음악은 모른다고 하더라도 여학생 구경이라도 가세 그려. 주최가 여학교측이고 보니 그 학교 학생은 물론이겠고, 서울 안의 하이칼라 여학생은 다 끌어올 것일세.’ 음악 감상은 처음부터 관심없고, 이성을 만나러가는 잿밥에만 관심 있으니 분위기가 잡힐 리 없다.

‘음악회에 가는 것은 음악 들으려 가는 것이 아니다…어여쁜 계집을, 잘난 사내를 또 약속한 님을 보러가는 것이다.’(田堂, ‘隨感-음악회’) 어느 음악회에 참가한 필자가 관람기를 쓴 것이다. ‘이 박수하는 사이에 많은 사내의 눈들이 부인석을 향해서 습격하는 것을 여러 번 보았다. 삶에 주린 도시 사람들이여.그러나 그것은 도시인의 향락할 수 있는 자유이다. 허락된 향락이다. 여기에 모인 모두가 그것 때문에 돈을 허비하고 시간을 허비하고 잠을 허비하고 여기에 온 것이다.’

대놓고 연애하러, 구경하러 음악회에 왔다고 고백한다.

서양 음악이 들어온 지 100년이 지났다. 휴대폰 벨 소리나 ‘카톡’같은 생뚱맞은 소음, 여운을 망치는 박수나 ‘브라보’ 함성이 콘서트홀에서 사라지려면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까.

◇참고자료

민태원, 음악회, 폐허 2호, 1921.1

田堂, ‘隨感-음악회’, 신민 제17호, 19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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