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무신’이 된 아미들… 위문편지 수십만 통 쏟아진다

김성윤 기자 2023. 12. 23.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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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인터넷편지 앱 ‘더캠프’ BTS 입소 후 이용자 급증
지난해 12월 BTS 진(가운데)이 멤버들의 배웅을 받으며 입소하는 모습. /BTS 공식 X

지구 반대편 브라질에 사는 20대 여성 지젤(가명)이 휴대전화 앱(애플리케이션)을 켜자 ‘훈련병 박지민’이 떴다. ‘D-539′(전역 일수)와 ‘박지민 훈련병은 현재 1주 차 훈련 진행 중입니다’도 표시됐다. “여기가 19일 오후 4시니까 한국은 20일 수요일 새벽 4시겠네. 지민은 아직 자겠지?”

지젤은 사랑스러운 박 훈련병의 입소 전 사진과 함께 “제대할 때까지 변함없이 기다리겠다”는 편지를 썼다. 포르투갈어로 먼저 작성한 다음 한글로 번역해 올렸다. 무지막지하게 춥다는 한국의 겨울에 유격 훈련을 받느라 고생할 지민을 생각하면 번역기를 돌리는 것쯤이야 수고도 아니다. 편지를 보낸 지젤은 박 훈련병의 20일 식단도 확인했다. 아침 메뉴는 버터 장조림 덮밥, 시래기 배추 된장국, 조미김, 갈비 산적, 열무 김치, 우유. 지젤은 군복에 박지민 명찰과 부대 마크를 단 곰 인형을 주문할까 고민하다 앱을 닫았다.

훈련병 박지민은 방탄소년단(BTS) 멤버 지민의 본명이다. 지난 12일 지민이 입소하자 팬들의 기다림이 시작됐다. 제대까지 18개월. BTS 멤버 7명의 팬 모두 남자 친구를 군대에 보낸 ‘고무신(일명 곰신)‘의 심정일 것이다. 지난해 12월 맏형 진(본명 김석진)을 시작으로 올해 4월 제이홉(정호석), 9월 슈가(민윤기), 이달 11일 RM(김남준)·뷔(김태형), 12일 지민·정국(전정국)까지 입대하며 멤버 전원이 ‘아미’가 됐다.

인터넷 편지 등을 보낼 수 있는 군 소통 서비스 ‘더 캠프’.

요즘 팬들의 위문편지가 밀려드는 곳은 ‘더캠프’. 아이돌뿐 아니라 모든 육군 훈련병들에게 ‘인편(인터넷 편지)’을 보낼 수 있는 유일한 통로다. 육군은 올해 광복절에 공식 인편을 폐지했다. 장병들의 휴대전화 사용이 가능해지면서 출력 등이 불필요해졌기 때문이다. 휴대전화 허용 전에는 훈련소에서 인편을 일일이 출력·분류해 훈련병들에게 전달했다.

더캠프에서는 앱과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편지를 보낼 수 있다. 최대 1500자를 쓸 수 있고 사진 등 이미지 1장도 첨부 가능하다. 단, 인편은 훈련소 기간에만 작성할 수 있다. 훈련을 마치고 자대에 배치된 뒤에는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과 같은 ‘캠프’에 글을 남길 수 있다. 아이돌뿐 아니라 일반 장병도 캠프를 개설하거나 가입할 수 있다. 더캠프에서는 내년 초부터 자대 배치 후에도 인편을 보낼 수 있도록 서비스를 확대할 계획이다.

더캠프를 운영하는 인에이블다온소프트 장철민 대표는 “론칭 5년 만에 인편은 누적 5500만 건, 누적 앱 다운로드는 580만회를 넘겼다”며 “BTS 진이 훈련병 시절 위문편지 32만통을 받는 등 2022년 이후 아미(BTS 팬덤)가 몰려온 효과가 있었다”고 했다. 외국인, 10대 등 다양한 유저들이 유입됐다는 분석. 덕분에 올해 창업 후 처음으로 손익분기점을 넘길 전망이다.

병영에서 휴대전화 사용이 가능해지고 메신저, 소셜미디어(SNS) 등 다양한 방법으로 사회와 소통할 길이 열린 지금, 구태여 위문편지를 써 보내는 이유는 뭘까. “휴대전화 허용 후 군 관련 게시판에 ‘추억이 사라져 아쉽다’는 댓글이 많았어요. 위문편지를 써서 보내면 받아서 읽고 간직한다는, 그런 감성 때문에 장병들이나 그들의 가족·여자 친구·지인들이 여전히 인편을 주고받는 것 같습니다.”

손으로 직접 쓴 편지를 우편으로 부칠 수 있는데 온라인을 이용하는 까닭은 뭘까. “우체국 가기 불편하고 돈이 들잖아요. 그래도 아이돌 팬들은 손편지를 직접 써서 부치는 경우도 더러 있다고 합니다.” 인터넷 위문편지는 아날로그 감성과 메신저·SNS 편의성의 절충안인 셈이다.

더캠프 ‘군인 등록하기’에는 아이돌·연예인 등을 따로 모아놓은 ‘추천 스타 군인’ 코너가 있다. 배우 남주혁, 아이돌 그룹 ‘위너’ 래퍼 송민호, 김연아 남편으로 유명한 성악가 고우림 등 유명 장병·훈련병 30여 명이 올라와 있다. 이 명단에는 22일 현재 BTS 멤버 전원이 빠져 있다. 장 대표는 “BTS 소속사 빅히트뮤직에서 멤버들의 퍼블리시티권(초상·성명 등 개인의 정체성을 이용해 경제적 이익을 얻을 권리)을 가지고 있는데, 더캠프가 이를 이용해 영업 행위를 한다고 오해하는 듯해 일단 대형 매니지먼트 소속 연예인들을 모두 내렸다”고 했다. 더캠프에는 밀리터리 곰인형, 홍삼, 선크림 등을 판매하는 ‘더캠프몰’도 있다.

추천 스타 군인 코너에 올라와 있지 않더라도 입대한 스타의 본명·생년월일·입영부대·입대일자를 등록하면 위문편지를 보내거나 게시판에 글을 올릴 수 있다. 거꾸로 매달아도 국방부 시계는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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