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 천국행 비유한 '바늘귀 통과' 낙타 아닌 갈대가 맞다

정영재 2023. 12. 23. 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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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간 ‘성경 번역 교감’ 마친 신복룡 교수
정치사상사 분야의 원로이며 탁월한 번역가이기도 한 신복룡(81) 전 건국대 석좌교수가 최근 7년에 걸친 대작업을 마무리했다. 성경 번역을 교감(校勘·같은 종류의 여러 책을 비교하여 틀리고 차이 나는 것을 바로잡음)하는 일이다. 그는 우리말 성경의 잘못된 번역이나 어색한 표현을 바로잡기 위해 25개 번역본을 꼼꼼하게 들여다보며 ‘최선’을 찾으려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다.

성경의 사역(私譯)은 매우 조심스럽고 위험한 작업이다. 엄청난 비판과 위협에 시달릴 수도 있다. 노교수는 그래도 “인생에서 꼭 남기고 싶은 일을 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성탄절을 앞둔 12월 20일, 서울 서소문 중앙일보 회의실에서 신 교수를 만났다. 천주교회용 성경(구약·신약·외경)은 약 2100쪽에 두께 14㎝, 무게는 6㎏이었다.

정치사상사 전공, 종교 연구한 천주교도

신복룡 교수가 7년에 걸쳐 완성한 『신복룡 교감 성경』의 구약편을 들고 감회 어린 표정을 짓고 있다. 구약편만 1500쪽에 달한다. 최영재 기자

Q : 『신복룡 교감 성경』을 완성한 열정에 경의를 표합니다. 성경은 어떻게 볼 수 있는지요.
A : “독자 확보를 장담할 수 없어 책으로 출판하는 건 단념했습니다. 다만 뜻있는 분을 만나 e북으로 만들거나 웹사이트에 올리는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가까운 성직자분들께 선물하려고 개별적으로 복사해 양장 제본으로 25질을 만들었습니다. 용어에 합의하지 못하는 교계의 정서를 고려해 천주교용과 개신교용의 두 가지 판본을 만들다 보니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Q : 형식 면에서 기존 성경과 다른 점은?
A : “현재 나온 성경은 기본적으로 빡빡하고 가독성이 떨어집니다. 단락이 나눠지지 않고 쭉 이어져 있어요. 또 인용부호가 없어서 어디까지가 A의 말인지, A가 인용한 말인지, 인용한 것 안에 있는 B의 말인지 알기 어렵습니다. 단락을 구분하고 인용 표기를 정확하게 한 것만으로도 훨씬 읽기 쉽고 이해하기도 좋을 겁니다. 그리고 대화는 존댓말을 썼습니다.”

Q : 교수님은 정치학자와 번역가로서 높은 성취를 이루신 분입니다. 전공과 관련 없는 방대한 작업을 하셨는데요.
A : “저는 정치학 중에서도 정치사상사를 전공했고, 더 세분화하면 정치와 종교의 관계를 공부했습니다. 성경 해석이 제겐 생소한 일은 아니죠. 신심이 깊진 않지만 60여년간 천주교 신자로서 성경을 읽으면서 ‘이건 우리말이 아닌데…’ ‘이건 이렇게 번역하는 게 좋았을 텐데…’ 하는 부분을 틈틈이 메모했어요. 40년 정도 지나니까 분량이 꽤 됐고, 이걸 정리하는 것도 이 세상 살다 가는 흔적이 되겠구나 싶었죠. 2017년부터 집중적으로 타자에 착수해 올해 11월 작업을 마쳤습니다. 마치고 나니 두렵고 조심스럽습니다.”

Q : 자신의 작업이 교감이지 번역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둘의 차이점은?
A : “만약 히브리어나 헬라어 원전을 옮겼다면 번역이라고 말할 수 있겠죠. 제가 주요 텍스트로 참고한 것은 옥스퍼드/케임브리지 신학대학의 합동 번역본(New English Bible, NEB, 1979)입니다. 우리말 신/구교 공동 번역본을 보면서 체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부분에 대해 영어·중국어·일본어 등 25개 번역본을 놓고 비교하고 서로의 다름과 틀림을 대조하여 최선의 번역본을 찾으려 했습니다. 그래서 ‘번역’이라 말하지 못하고 ‘교감’이라고 한 겁니다.”

Q : 교수님은 ‘문장만 다듬는다’는 생각으로 작업을 시작하셨다고 쓰셨습니다. 그렇다면 기존에 나온 여러 버전의 성경은 문장에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할까요.
A : “예를 들자면, 우리말에는 수동태가 없는데 영어의 수동태 문장을 그대로 번역해 버리면 부자연스러운 문장이 됩니다. ‘예수님이 기름 부음을 받았다’는 ‘하느님/하나님께서 예수께 기름을 부으셨다’로 바꾸는 게 맞죠. 또 우리말은 목적어와 동사가 붙어 있는 게 자연스럽거든요. ‘나는 밥을 먹었다’와 ‘밥을 나는 먹었다’는 어순에 따른 뉘앙스 차이가 큽니다. 서양과 우리나라 언어 구조의 차이에 따른 문제라서 자연스러운 쪽으로 바로잡고자 했습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Q : 중국 광동어 성경이 우리말로 번역되는 과정에서도 문제가 있었다면서요.
A : “스페인 예수회 선교사가 중국에 성경을 보급했는데, 광동어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표기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 광동어 성경이 길림성-평안도-황해도를 거쳐 들어왔죠. 이스라엘을 끊임없이 괴롭히는, 골리앗의 나라 ‘블레셋’도 필리스티나의 중국어 번역인 ‘非利士’(Fēilìshì)라는 용어를 쓰는 과정에서 생긴 것입니다. 지구촌 화약고가 된 팔레스타인 지역이죠. 학교 세계사 시간에는 이집트 왕을 ‘파라오’라고 배우는데 우리말 성경에 광동어 발음인 ‘바로’(法老·パロ)로 나오는 건 고쳐야죠. ‘ㅋ, ㅌ, ㅍ’에 익숙지 않던 시대에 ‘카=가, 타=다, 파=바’로 발음하던 어려움을 이해할 수 있지만, 초등학생도 영어를 배우는 시대에 우리의 발음도 바뀌어야 합니다. ‘본디오 빌라도’가 익숙하지 ‘폰티우스 필라토스’는 매우 낯설게 여길 분들이 많겠지만 말입니다.”

Q :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빠져나가기보다 어렵다’는 구절도 잘못된 번역이라고 하셨네요.
A : “
「마태오복음」

19장 24절의 이 대목은 오랜 논쟁이 있어 왔습니다. 본디 히브리 『성경』에는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kalamŏs(κάλαμος)로 바늘귀를 꿰기가 더 쉽다’고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히브리 판본을 헬라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kalamŏs를 kamēlŏs(κάμηλος)로 잘못 읽었습니다. 당시 조악한 파피루스에 필경하는 과정에서 나온 실수였겠죠. 그런데 kalamŏs는 ‘낙타’(kamēlŏs)가 아니라 ‘갈대’ 또는 ‘막대기’라는 뜻입니다. 정리하자면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갈대[막대기]로 바늘귀를 꿰기가 더 쉽다’고 번역하는 것이 옳았습니다. 비유나 상징으로 보더라도 갈대가 맞습니다.”
신약에서 비종교인에게도 널리 알려진 이야기가 있다. 예수님이 간음하다 잡혀 죽게 된 여인 앞에서 “너희 중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말해 사람들을 돌려보냈다는
「요한복음」

8장 기록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성경 원전에 없다고 한다. 신 교수의 설명이다.

“히브리어와 헬라어 성경에 이 내용은 없습니다. 성서학자들은 후대에 어느 학자가 이 부분을 써넣은 것으로 보고 있죠. 오늘날 대부분 성경에 이 부분이 들어 있지만 NEB만은 본문에 싣지 않고 마지막에 부록처럼 실은 뒤 ‘이 부분은 후대에 누군가 써넣은 것’이라고 주석을 달았습니다. NIV(New International Version)와 NRSV(New Revised Standard Version)는 이 부분을 싣되 각주로 위 내용을 설명했습니다. 그럼에도 성서학자들은 이 대목이 갖는 『성경』으로서의 가치를 부인하지 않습니다.”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 원전엔 없어

Q : 오늘날 ‘정치적 올바름’ 관점에서 보면 성경에는 장애인·여성·성소수자를 차별하고 심지어 멸시하는 듯한 표현들이 나옵니다. 어느 정도까지 순화해서 바로잡으셨는지요.
A : “나름대로 바꾸려고 노력했는데 원전(原典)의 개요를 부인할 수는 없었습니다. 다만 지금은 구약시대처럼 ‘오로지 성서대로(Sola Scriptura)’ 살 수 없습니다. 돼지고기 먹지 말아야 하고, 안식일에는 졸업식에도 가지 말아야 하고, 의치(義齒)도 빼놔야 합니다. 현대 자본주의 경제에서 십일조를 제대로 지키는 것도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암시장에 잠겨 있는 돈이 엄청나고, 도박이나 뇌물로 얻은 돈은 또 어떻게 할 겁니까. 저는 ‘성경도 발전한다’고 생각합니다. 원전이 바뀌는 게 아니라 성경을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우리들의 의식 수준과 관용의 범위가 발전한다는 뜻입니다.”

Q : 교수님의 성경을 읽은 사람들 중에는 마르틴 루터를 떠올리는 분들도 있는데요.
A : “저를 루터에 비견한 것은 너무 과분해 감당할 수 없습니다. 내가 신/구교로부터 모두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할 것이고, 박해까지야 아니겠지만 비난을 받을 수도 있으리라고 봅니다. 실제로 천주교 주교회의에 연락해서 제가 이런 작업을 했다고 하니 ‘무모하군요’ 라는 대답을 들었고, ‘이걸 주위에 나눠주면 어떻게 됩니까’ 했더니 ‘교회법을 어기는 것이니 혼자 보라’고 했어요. 이단으로 몰릴 수도 있다는 뜻이죠. 반면 이대용 성공회 주교님(전 부산교구장)은 제가 작업한 성경을 텍스트로 해 설교를 하시고, 가톨릭 신부님 중에서도 저를 격려해 주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노교수는 자신의 작업을 “쌀을 씻다가 뉘를 건져내는 일”이라고 했다. 옛날에는 벼껍질이 그대로 있는 뉘가 드문드문 있었다. 방대한 성경에서 뉘라고 생각될 수 있는 것 몇 개만 건져냈다면, 그걸로 만족하고 감사한다고 했다. 곧 성탄절이다. 이 시대 예수 탄생이 전하는 메시지를 물었다. 그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뜬 뒤 말했다.

“용서가 아닐까요. 처참한 종교전쟁 현장에서 이스라엘이 이쯤에서 하마스를 용서해주면 안 되겠냐고 말하고 싶어요. 종교가 인류를 걱정하는 게 아니라 인류가 종교를 걱정하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저도 살아오면서 억울한 일 많이 겪었는데 용서하려고 노력합니다. 생각해보니 가장 큰 용서는 잊는 것이더라고요.”

정영재 문화스포츠에디터 jerr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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