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밍고도 반한 ‘월클’ 테너들 “우리 역사 시작됐죠”

유주현 2023. 12. 23.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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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욘드 스테이지] 첫 미니앨범 낸 포르테나
나폴리에 가 보고 싶어진 건 이 노래를 듣고부터다. 지난 5월 ‘팬텀싱어’ 시즌4 결승 1차전에서 포르테나 팀이 부른 ‘네아폴리스’. 나폴리가 대체 어떤 곳이기에 이토록 빛나는 찬가가 존재할까. 파바로티 원곡이라는데, 너무도 아름다운 4중창으로 재해석한 포르테나의 무대에 눈물을 흘리는 청중도 많았다.

포르테나는 월드클래스 카운터테너 이동규를 중심으로 베를린에서 활동한 국내 유일무이 콘트랄토(알토 음역대를 가진 남성 성부) 오스틴김, 프랑스에서 유턴한 낭만테너 서영택, 서울대 출신 테너의 정석 김성현이 모인, 오직 테너만 있는 세계 최초의 4중창 팀이다. 경연 기간 서사를 쌓지 못하고 결승을 위해 급조된 팀이었지만, ‘네아폴리스’ 한 방이 우승 문턱까지 데려갈 만큼 강력했다.

그 감동을 넘어서는 곡을 부르는 게 이들의 과제일 터. 18일 포르테나의 첫 미니앨범 ‘킹덤’이 나왔다. 타이틀부터 묵직한 포부가 전해지는데, 게임 OST풍의 웅장한 타이틀곡 ‘킹덤-문라이트 티어즈’를 비롯해 5곡의 장르가 다 다르다. “K팝부터 포크송까지, 포르테나가 과연 어디까지 할 수 있는가 파헤치는 과정이었다”는데, 메모까지 해 와서 정성껏 한 곡 한 곡을 설명하는 이들의 모습에 이번 앨범에 대한 진심이 물씬했다.

멤버 각자 한 곡씩 메인 보컬 맡아

첫 앨범이 나온 18일 만난 포르테나. 전날 대구 투어를 마치고 왔지만 피곤한 기색은 없었다. 왼쪽부터 오스틴김, 김성현, 서영택, 이동규. 최기웅 기자
“한 곡만 좋으면 안 되잖아요. 센 곡만 있으면 귀가 아플 수도 있으니 자연스럽게 앨범을 무한반복 청취할 수 있는 곡들로 구성했어요. 크로스오버 마니아와 대중이 원하는 건 좀 다른데, 둘 다 만족시키는 균형점을 찾기 위해 고민했습니다.”(동규)

“‘네아폴리스’같은 웅장하고 그란데한 곡을 많이 불렀는데, 타이틀곡은 그런 고유의 색깔도 유지하려고 웅장하고 장엄하게 풀어냈어요. 몇백 곡 후보 중에 각자 선호하는 곡들을 추리면서 ‘킹덤’이 만장일치로 타이틀곡이 됐죠.”(오스틴)

“‘네아폴리스’를 뛰어넘고 싶었어요. 팬분들이 우리에게서 처음 느꼈던 그 짜릿함을 줄 수 있길 바라는 마음 담아 정말 최선을 다했습니다.”(영택) “‘킹덤’의 웅장함이 ‘네아폴리스’를 이미 이긴 것 같은데요.(웃음)”(성현)

포르테나의 첫 미니앨범 ‘킹덤’. [사진 쇼플레이엔터테인먼트]
이들의 말처럼 가슴이 웅장해지는 ‘킹덤’을 비롯해 서정적인 멜로디의 ‘폴링 스타’, 아버지를 위한 ‘마이 대드’, K팝 아이돌 풍의 ‘빌리브’ 까지. 전 연령대를 겨냥한 듯 다양한 스타일 중에서도 특히 선배가수 윤형주가 선물한 포크송 ‘참 아름다운 곳’은 카운터테너의 성대를 내려놓은 이동규의 낯선 발성에 놀라게 된다.

“KBS ‘불후의 명곡’에서 저희가 ‘웨딩케잌을 불러 우승했거든요. 제가 독일에 오페라 공연을 하러 가야 했는데, ‘윤형주·김세환 편’이라고 해서 독일 일정을 연기하면서까지 ‘불후’에 나갔죠. 그때 윤형주 선생님이 저희를 너무 잘 봐주셨어요. 한국해비타트라는 자선단체에서 봉사하시면서 영감 받아 써 두신 곡을 저희 스타일로 멋지게 불러달라며 선물해 주셔서 너무 영광이었습니다.”(동규) “가족 전체가 음악가 집안이라며 저희들을 특히 예뻐해 주셨어요. 요즘 힘들고 지친 사람들이 많지만 그럼에도 이 세상은 살 만한 곳이라는 의미를 담은 따뜻한 곡이죠.”(성현)

18일 오후 서울 마포구 중앙일보빌딩 스튜디오에서 팬텀싱어4 준우승팀 포르테나가 중앙SUNDAY와 인터뷰 했다. 최기웅 기자
모두가 주인공인 ‘킹덤’을 제외한 4곡은 각자 한 곡씩 공평하게 메인보컬을 맡았다. 의도한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다는데, 대화를 나누다 보니 수긍이 갔다. 포르테나는 신기한 팀이었다. 벨벳 같은 목소리로 사뭇 진지한 리더 오스틴김과 모차르트 스타일의 황금 막내 김성현, 열정 덩어리 서영택이 제각각이지만, 15살 이상 대선배 이동규의 어딘지 초월적인 아우라가 이 개성적인 구슬들을 보배로 꿰는 느낌이었다. 노래를 만들어 갈 때도 딱 이렇게 스무스했을 것 같았다.

“미리 짠 건 아닌데, 하다 보니 이건 얘가 가져가야겠다는 식으로 각이 나왔어요. 저흰 파트 배분 할 때도 싸움이 없죠. 누가 가장 탁월하게 소화하는지 답이 저절로 나오니까요. 초기엔 제가 센터병이 있어서 욕심도 부렸지만 이제 진화가 됐죠.(웃음)”(오스틴) “생판 몰랐던 사람들이 만나서 합을 내야 되는 과정에서 새로운 발견도 많았고, 앙상블 만들면서 시너지도 많이 생겼어요. 음역대가 다 달라서 키 맞추기가 제일 어려운데, 이번 앨범 작업하면서 많이 파악이 됐죠. 역할과 영역이 분명하게 정리돼서, 아마 다음 프로젝트는 좀 더 수월할 겁니다.”(동규)

18일 오후 서울 마포구 중앙일보빌딩 스튜디오에서 팬텀싱어4 준우승팀 포르테나가 중앙SUNDAY와 인터뷰 했다. 최기웅 기자
포르테나 팀의 가장 큰 매력은 하나도 드문 카운터테너가 둘이라는 점이다. 메조소프라노 음역대 이동규와 알토 음역대 오스틴의 평소 목소리는 희한하게 둘 다 저음이다. 대체 어떤 사람이 카운터테너가 되는 걸까. “테너와 베이스 성대 길이는 마치 바이올린과 콘트라베이스처럼 달라요. 테너는 성대가 짧은데 성대가 긴 베이스가 가성대를 잘 쓰니 카운테터너가 가능한 것 아닐까요.”(성현) “변성기 전 목소리가 굉장히 하이톤이었어요. 록밴드에서 김경호·박완규 식 샤우팅을 하다가 음악선생님 권유로 이 길로 왔는데, 하다 보니 너무 잘 맞고 재밌네요.”(오스틴) “저는 어려서 보이소프라노를 해서 변성기 후에도 머슬 메모리가 창법을 기억하지만, 오스틴은 후천적이라 특이하죠. 변성기를 거치며 베이스냐 테너냐 결정되는데, 우리는 둘다 베이스거든요. 제 생각엔 테너톤이었다면 더 유리했을 텐데 베이스가 왜 이렇게 힘들게 카운터테너를 해야 되는지 모르겠네요. 다음 생엔 테너로 태어날래요.(웃음)”(동규)

“뒤에 합창단 있냐” 피드백 항상 들어

11월부터 내년 1월까지 진행 중인 전국 투어 콘서트 모습. [사진 쇼플레이엔터테인먼트]
‘세계 3대 카운터테너’라 불리는 이동규는 여전히 오페라가수다. 최근에도 독일 뉘른베르크에서 오페라 공연을 하고 왔다. 사실 멤버 전원이 성악가인 만큼 오페라에 대한 로망은 모두에게 있다. “27년 넘게 생활한 제 루틴으로 돌아가니 편하긴 하더군요. 방송활동은 힘든 면이 있거든요. 거울도 잘 안 봤었는데 헤어메이크업 받으며 매일 주름을 보게 되니 연예인들이 왜 시술을 받는지 깨달음도 있었죠.(웃음) 신인 대접 받는 것도 익숙하지 않았지만, 팀이 신인이니까 다 내려놓게 됐고요.”(동규) “제가 대표로 형의 오페라를 보러 갔는데, 너무 자유로워 보였어요. 팀에서 온전히 들려주기 힘든 자신의 아리아와 연기를 마음껏 발산하는 모습이 천상 오페라가수더군요.”(오스틴) “저도 꿈이 오페라가수였어요. 학교 오페라만 해봤지만, 언젠가 꼭 하고 싶습니다.”(성현) “안 시켜주면 우리가 제작을 하렵니다. 우리만이 할 수 있는 좋은 작품을 만들 수도 있겠죠. 저는 성악가가 다양한 장르를 다 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하려고 팬텀싱어에 나갔거든요. 그래서 이 친구들한테도 항상 꿈을 버리지 말라고 얘기하죠.”(동규) “요즘 저는 너무 행복해요. 내년 1월까지 전국 투어 콘서트 중인데, 오페라틱한 곡부터 시작해서 춤도 추고 모든 장르가 다 포함돼 있거든요. 다양한 음악세계에 대한 도전이 너무 재밌습니다.”(영택)

성대를 악기 삼아 온몸을 울림통으로 쓰며 최대 성량을 폭발시켜온 성악가들의 팬텀싱어 변신이 마냥 수월한 건 아니다. 생소한 가요식 밴딩을 한땀한땀 완성해야 하고, 옥구슬 같은 벨칸토 발성을 아예 ‘삭제’시켜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동규는 “동생들이 자기 한계를 넘어선 노력을 많이 해줘서 고맙다”고 했고, 동생들은 “포르테나를 객관적으로 보며 완성도를 높이는 역할을 해주는 게 동규형”이라 치켜세웠다.

18일 오후 서울 마포구 중앙일보빌딩 스튜디오에서 팬텀싱어4 준우승팀 포르테나가 중앙SUNDAY와 인터뷰 했다. 최기웅 기자
극장 밖의 활동은 도전이지만, 전에 느끼지 못한 감동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평생에 걸쳐 완성한 자신들의 음악을 들어주는 사람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8월에 예술의전당 앞에서 서리풀축제 야외공연을 하다가 갑자기 비가 쏟아진 적이 있어요. 오케스트라가 비를 맞으면 안 되니 공연이 중단됐는데, 팬들이 비를 맞으며 기다려 주시는 거예요. 그냥 보내드리기 너무 죄송해서 저희도 비를 함께 맞으며 ‘네아폴리스’를 무반주로 불렀죠. 팬텀싱어가 되고 가장 감동적인 순간이었어요.”(영택) “그때 하늘 보며 욕할 뻔 했죠.(웃음) 저는 ‘불후’ 무대가 뜻깊었어요. 팬텀싱어가 첫 출연해서 우승한 적이 없었다는데, 그걸 우리가 해냈거든요. 사실 팬텀싱어 결승 때 저희가 너무 아깝게 준우승을 해서 서운했는데, 한을 푼 거죠. 잠도 못잘 정도로 힘든 일정 속에서 동생들이 너무 잘해줘서 자랑스럽고, ‘이제부터 우리 역사의 시작’이라 생각했어요.”(동규)

테너만 있는 팀이라 한계가 있을 거라는 통념도 이들은 인정하지 않았다. 혼성 파트의 웅장함은 차원이 다르다는 것이다. “뒤에 합창단이 있냐”는 피드백을 항상 듣는다고. 얼마 전 게스트로 초청됐던 플라시도 도밍고 내한 공연 후 이들의 퀄리티에 반한 도밍고로부터 칸초네 공연을 같이 하자는 러브콜을 받을 만큼 ‘월드클래스’의 면모를 갖춘 게 포르테나다. “각자 해외 활동을 했기에 세계를 무대로 뛰는 게 꿈이에요. 우리 음악을 세계에 들려주자고 거의 세뇌 수준으로 반복해서 얘기하고 있죠.(웃음)”(영택) “‘월드컵 같은 국가행사는 포르테나’라고 입력됐으면 좋겠어요.”(동규) “일볼로가 크로스오버 중에 1등이잖아요. 일볼로만 넘어서면 되겠죠.”(성현) “세계 최초 포테너로서 세계 최고가 되는 그날을 향해 뛰겠습니다.”(오스틴)

유주현 기자 yj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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