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동지팥죽 나눔의 의미

2023. 12. 22.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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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동지에는 팥죽 나눔을 했으면 합니다."

불광사에서는 매년 동지에 팥죽을 대량으로 쑤어서 신도들과 함께 대중공양을 하고, 이웃과 함께 나누는 행사를 해왔다.

동지를 지나야 한 살 더 먹는다고 생각했고, 아예 동지팥죽을 먹어야 나이를 먹는다고도 생각했다.

올해 우리 절에서는 동지 전날 많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 팥을 삶아 팥물을 만들고, 찹쌀을 곱게 빻아 반죽한 후 새알을 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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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중 밤이 가장 긴 날
팥으로 음기를 다스리기
코로나로 멈췄던 팥죽 나눔
새알 빚으며 나를 다스리고
공동체 유지하는 아름다운 일

"이번 동지에는 팥죽 나눔을 했으면 합니다."

불광사에서는 매년 동지에 팥죽을 대량으로 쑤어서 신도들과 함께 대중공양을 하고, 이웃과 함께 나누는 행사를 해왔다. 그러나 코로나19가 유행하면서 이 행사를 중단하게 되었는데, 신도들이 이번에는 꼭 했으면 하는 바람을 토로한 것이다. 동지는 1년 중 밤이 가장 긴 날, 다시 말하면 음기(陰氣)가 지극히 센 날이다. 밤이 길고 음기가 세다는 것은 완고하고 부정적이며 차가운 기운이 강하다는 것을 말하는데, 동지에 어둡고 음한 기운을 잘 다스리기만 하면, 동지보다 덜한 다른 날들의 어둡고 음한 기운이 밝고 가벼운 기운으로 바뀔 수 있다.

하지부터 밤이 점점 길어져서 동지에 절정을 이룬다는 것은, 동지가 지나면 차츰 낮이 길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점에 착안하여 사람들은 동지를 '작은 설'이라 여겼다. 동지를 지나야 한 살 더 먹는다고 생각했고, 아예 동지팥죽을 먹어야 나이를 먹는다고도 생각했다.

음기를 다스리기 위해서는 양기가 충만한 음식이 필요하다. 이에 생각해낸 것이 팥으로 만든 음식이다. 팥은 양기가 센 붉은색 콩과류 열매로, 작고 단단하여 금방이라도 통통 튀어 오를 것 같은 경쾌한 외모이다. 어두운 기운을 밝은 에너지로 만들기 위한 음식으로는 팥만 한 것이 없는 것이다.

완고한 것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부드러운 것이 필요한데, 이에 생각해낸 것은 죽이다. 팥으로 죽을 끓인다면, 음기와 완고함을 함께 다스릴 수 있다. 완고함이란 자기가 보고 듣고 판단한 것만이 옳다는 고집스러운 태도로, 완고한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공동체는 필연적으로 분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부정적인 것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원만한 것이 필요한데, 이에 생각해낸 것이 찹쌀가루를 새알처럼 만들어 둥글게 빚어서 팥죽에 넣는 것이었다. 부드러운 팥죽에 쫄깃쫄깃한 새알이 씹히면 으뜸 식감인데, 게다가 둥근 모양의 새알이 우리들의 마음을 둥글둥글 원만하게 만들어준다. 나이 들수록 원만해져야 한다는 의미에서 새알을 나이만큼 먹어야 한다는 것도 기가 막힌 생각이다. 팥의 붉은 기운은 뜨거운 기운을 상징한다. 팥은 삿된 기운을 막아주는 벽사(피邪)의 기능과 악귀를 물리치는 축귀(逐鬼)의 기능도 하는 것으로 여겨져왔다. 중국의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 따르면, 공공씨(共工氏)에게 바보 아들이 있었는데, 그 아들이 동짓날에 죽어서 역질을 일으키는 귀신이 되었다고 한다. 그 아들이 생전에 붉은 팥을 무서워했기 때문에 동짓날 붉은 팥죽을 쑤어서 역귀를 물리쳤다는 기록이 있다.

팥죽을 나누어 먹는 것은 단순한 잔치가 아니라 공동체를 아름답게 유지하기 위한 고도의 철학을 담고 있다. 올해 우리 절에서는 동지 전날 많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 팥을 삶아 팥물을 만들고, 찹쌀을 곱게 빻아 반죽한 후 새알을 빚었다.

코로나가 앗아간 아름다운 문화를 몇 년 만에 되살리는 순간이었다. 내가 만든 새알은 처음에는 작았는데, 시간이 갈수록 커지는 것이었다. 벌써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이 있구나 알아차리면서 다시 작게 빚으니, 새알 빚기는 훌륭한 명상 공부가 되었다. 큰 솥에다 팥물을 넣어 팔팔 끓이다가 새알을 풍덩풍덩 빠뜨려 충분히 익히면 팥죽이 완성된다. 많은 사람이 정성을 모으는 것만으로도 이미 아름다운 역사는 쓰였지만, 동짓날 이웃 사람들과 함께함으로써 팥죽 나눔은 자신의 철학을 완성한다.

이웃들과 정을 나누고 정성을 나누는 팥죽 나눔 행사는 사찰을 중심으로 한 공동체가 할 수 있는 지극히 아름다운 일 중 하나이다.

[동명 스님 잠실 불광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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