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보다 고양이가 많다던 이 땅, 재산 1조 신화의 터전됐다

도쿄/유소연 기자 2023. 12. 21.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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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LY BIZ]
오프라인 서점 혁신 일으킨 日 츠타야의 마스다 회장 인터뷰
“츠타야 서점은 새로운 라이프스타일 체험하는 ‘리얼한 구글’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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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쿄 시부야구에 2011년 문을 연 복합 문화 공간인 다이칸야마 티사이트. 이 공간이 생기고 한때 동네 유동 인구가 30%까지 늘었다. /유소연 기자

지난달 28일 도쿄 다이칸야마의 티사이트(T-site)에 이리타니 게이코(68)씨가 반려견과 함께 산책을 나왔다. 이리타니씨는 “우리 또래가 산책하기에 편리하고 재미있는 물건이 많아서 자주 온다”고 했다. 그가 산책 코스로 택한 티사이트는 츠타야 서점(蔦屋書店)을 운영하는 기획사 컬처 컨비니언스(CCC)가 2011년 1만2000㎡ 부지에 세운 거대한 복합 문화 공간이다. 츠타야 서점 건물 3동뿐 아니라 스타벅스, 식당, 식료품점, 자전거 판매점 모토벨로, 반려견용품점이 입점해 있다.

다이칸야마는 한적한 고급 주택가였다. 초기에는 “사람보다 고양이가 많은 동네에 누가 책을 사러 오겠느냐”는 우려도 있었지만 티사이트가 생기고 나서 이 지역 유동 인구가 한때 30%까지 늘어났다.

도쿄 시부야스크램블스퀘어 11층에 있는 츠타야 서점. 젊은 유동 인구가 많은 점을 감안해 간판을 영어로 쓰고 있다. /유소연 기자

마스다 무네아키(72) CCC 회장은 ‘서점이 창조하는 문화 공간’을 만들겠다는 목표로 다이칸야마 티사이트를 설계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10년간 직장인으로 살았던 마스다 회장은 1983년 100만엔을 가지고 고향 오사카에 츠타야 서점 1호점을 냈다. 처음에도 츠타야 서점은 책, 비디오, 음반을 팔거나 빌려주는 새로운 개념의 매장으로 인기를 끌었고, 점점 진화해 현재는 일본을 대표하는 복합 문화 공간으로 발돋움했다. 이제 츠타야 서점은 일본은 물론이고 중국과 말레이시아 등 해외 지점까지 모두 29곳이 있다.

WEEKLY BIZ는 츠타야 서점 창업 40주년을 맞아 일본 문화 산업의 혁신가로 통하는 마스다 회장을 다이칸야마의 티사이트에서 만났다. 그는 2021년 1340억엔 재산으로 포브스 집계 일본 부호 순위 48위에 올랐다. 맨땅에서 시작해 문화 사업으로 1조원대 재산을 일군 신화적 존재다. 한국에서 그는 ‘지적자본론(2015)’, ‘취향을 설계하는 곳, 츠타야(2017)’ 등을 내놓아 스테디셀러 작가로도 통한다.

그래픽=김의균

◇라이프스타일 제안하는 ‘리얼한 구글’

츠타야는 ‘서점 이상의 서점’을 지향한다. 마스다 회장은 “단순히 서점을 운영하는 게 아니라 영감을 줄 수 있는 장소를 만들고 싶었다”며 “츠타야 서점은 현실 세계에서 라이프 스타일을 제안하는 ‘리얼한 구글’이라고 할 수 있다”고 했다.

티사이트의 츠타야 서점은 카테고리 구분부터 다르다. 다른 서점들이 ‘정치, 경제, 문학’ 등으로 나누는 것과 달리 ‘건축, 디자인, 자동차’ 등으로 시각적 차이를 강조해 구분한다. 각각의 구획에 책을 추천하는 전문 컨시어지들이 있다. 음식 코너에서 식기나 지역 특산물을 소개하거나, 어린이책 옆에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인형을 배치한다.

다이칸야마 티사이트 주차장에서는 현대차 아이오닉5를 차량 공유 서비스로 이용할 수 있다. /유소연 기자

이날 자동차 서적 코너에는 영국 모터사이클 브랜드 트라이엄프의 ‘스피드트윈 900′이 전시돼 있었다. 최근까지는 내부에 현대차의 ‘코나 일렉트릭’을 전시했다. 마스다 회장은 “전기차를 탄다는 라이프 스타일을 제안하고 싶어서 현대차와 협업하게 됐다”며 “지금도 고객들이 현대자동차 전기차를 체험할 수 있도록 차량 공유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했다. 티사이트 주차장에는 아이오닉5 두 대가 마련돼 있어 6시간에 5940엔 정도를 내고 빌려 탈 수 있다.

마스다 회장은 피라미드를 그려 3층으로 나눴다. 그는 “제일 위에는 동경하고 싶은 굉장히 멋진 사람이 있고, 그 밑에는 이를 동경하는 사람, 더 밑에는 라이프 스타일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있다”며 “우리는 위 두 층을 타깃으로 영감의 근본이 될 수 있는 요소들을 끌어모았다”고 했다.

마스다 회장에 따르면 이리타니씨처럼 반려견도 멋있는 사람의 일부다. 전기차를 타는 삶은 따라 하고 싶은 라이프 스타일 중 하나다. 이런 문화적 취향을 느끼기 위해 서점이라는 장소를 찾은 사람들이 온 김에 자연스레 책을 사게 된다는 것이다.

◇1500엔vs100엔 커피 동시 판매

마스다 회장이 의도한 ‘미래형 서점’이 소비자들을 매혹시킨 덕분에 CCC는 팬데믹 때인 2020년에 일본 내 도서 매출만 1447억엔을 기록하며 사상 최대 실적을 냈다. 일본 출판 산업 매출이 1996년 2조6564억엔에서 지난해 1조1292억엔으로 26년 사이 절반 이하로 축소된 불황을 거스르며 책 판매가 성공 가도를 달린 것이다.

그래픽=김의균

마스다 회장은 이번엔 커다란 종이에 대문자 ‘K’를 그렸다. 그는 “왼쪽 축을 기준으로 부자인 사람은 더 부가 커지고 가난한 사람은 점점 돈이 없어진다”며 “우리는 양쪽을 모두 타깃으로 한다. 모두가 행복해지는 공간을 생각하면 가능하다”고 했다.

이를테면 티사이트 츠타야 서점 3층에 있는 셰어 라운지는 1시간에 1500엔을 내고 커피 등 음료를 마실 수 있다. 하지만 티사이트의 식료품점에서는 100엔짜리 커피를 판다. 비싼 커피, 저렴한 커피를 각자 사정에 맞게 선택할 수 있다는 얘기다. 마스다 회장은 “주차장도 티사이트 내에는 한 시간에 1200엔이지만 주변에 노상 주차도 가능하다”며 “양쪽 모두의 소득수준을 고려한 공간을 설계했다”고 했다.

시부야스크램블스퀘어 츠타야 서점 옆에 있는 공유 오피스 '셰어 라운지'에서 손님들이 일하고 있다. /유소연 기자

◇단카이 세대와 청년층 공존

티사이트는 여러 세대가 섞이는 공간으로도 역할을 하고 있다. 일본 고도 성장기를 주도한 단카이 세대(1947~1949년생)를 프리미어 에이지라고 마스다 회장은 개념화했다. 이들이 다이칸야마에 모이면 그들을 동경하는 젊은이들도 같은 공간에 모일 것으로 봤다. 세대를 뛰어넘는 파급력은 온라인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는 장소에서만 나온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마스다 회장은 “현재 70대가 된 프리미어 에이지는 풍요로운 사회를 경험하며 멋진 사람이 되는 경험을 쌓아왔으며, 구매력도 여전히 좋다”며 “이 연령층을 이미지화해 피라미드 맨 꼭대기에 동경할 수 있는 사람으로 놓았는데, 만약 젊은층을 맨 위에 두었다면 나이 든 사람들이 이들을 동경해 서점으로 나오진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비교적 고객 연령대가 높은 다이칸야마 티사이트는 츠타야 서점 간판을 한자로 표기했다. 젊은층이 많은 번화가인 시부야 스크램블스퀘어점은 영문(TSUTAYA)으로 표기하고 있다.

CCC는 내년 4월 시부야에 젊은층을 타깃으로 한 새로운 공간을 선보일 예정이다. 마스다 회장은 “단카이 세대와 젊은 세대, 이 둘을 위한 공간을 모두 설계하는 게 창립 40주년을 맞은 우리의 도전”이라며 “이 공간이 성공하고 때가 무르익으면 한국 진출도 검토해보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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