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노조원은 안돼!”…경찰의 황당한 ‘무사고운전자’ 선발기준
2년 전 수정에도 다시 부활…“실무 착오”
“오해 소지 인정…수정 공문 다시 보낼 것”
경찰이 매년 ‘무사고 운전자’를 선발하면서 노조 조합원을 선발에서 제외하는 지침을 장기간 유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2년 전 문제 제기를 수용해 해당 문구를 수정하기로 해 놓고도 그 이듬해부터 또다시 수정되지 않은 지침을 운영했다. 경찰은 경향신문 취재에 “실제 운전 업무에 종사하지 않는 경우를 가려내기 위한 예시였지만 오해 소지가 있다”고 인정하며 관련 문구를 수정하겠다고 밝혔다.
21일 경향신문이 입수한 경찰청의 ‘2024년 무사고 운전자 선발계획’을 보면, 경찰은 세부계획에서 “운수회사에 취업하고 있으나 노조 조합원, 교통안전관리자 등 직접 운전에 종사하지 않는 사람”을 무사고 운전자 선발 제외 대상자로 규정했다. 해당 세부계획은 경찰이 온라인 등에 홍보하는 홍보물에는 첨부되지 않은 내부 지침이다.
노조 조합원 선발 제외 규정은 최소 십수 년 전 혹은 그 이전부터 존속해 온 것으로 보인다. 경향신문은 자료 보존의 한계로 모든 선발계획을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2009년도 무사고 운전자 선발계획에서부터 해당 문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선발계획 내용이 매년 대동소이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2009년 이전에도 해당 문구가 사용돼 왔을 것으로 보인다.
무사고 운전자란 사업용자동차(택시·버스·화물차 등) 운전종사자 중 최근 10년 이상 교통사고를 일으키지 않은 운전자 중 신청을 받아 경찰이 선정해 부여하는 표시장(증서)이다. 1981년부터 2023년까지 43회 동안 약 29만명이 무사고 운전자 인증을 받았다. 무사고 운전자 자체로는 특별한 혜택이 주어지지 않는 명예 표창에 가깝지만, 이를 받으면 실제로 여러 혜택이 있는 ‘모범운전자’에 지원할 자격이 생긴다.
노조 조합원을 일방적으로 배제하는 조항이 ‘노조 혐오’를 부추긴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경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국가공무원노조 경찰청지부장은 “이 문구를 보고 위축됐다고 이야기하는 경찰 내 노조 조합원들도 많았다”며 “노조 할 권리는 헌법이 노동3권으로 보장하고 있는 만큼, 노조 혐오는 헌법과 노동3권을 혐오하는 것”이라고 했다. 개인정보보호법상 경찰은 무사고 운전자 신청자의 노조 가입 경력을 조회할 수 없는데도 해당 조항을 둔 것은 무리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경찰은 내부 문제제기로 해당 문구를 수정하기로 결정하고도 정작 수정하지 않았다. 국가공무직노조 경찰청지부는 2021년 1월 경찰청에 공문을 보내 “노조 조합원 선발 제외 규정을 즉각 삭제해 노조를 파괴하는 어용화와 무력화, 와해·탄압과 혐오를 시정하자”고 제안했다. 이에 김창룡 당시 경찰청장은 그해 2월 해당 조항을 “운수회사에 취업하고 있으나 해당 업무와 관련해 직접 운전에 종사하지 아니한 사람”으로 수정했다는 공문을 각 시·도경찰청에 내려보냈다. 하지만 그 이듬해인 2022년 선정계획부터는 해당 문구가 다시 등장했다.
경찰 관계자는 “취지는 노조 전임자 등 실제 운전 업무를 하고 있지 않은 이들을 가려내기 위한 일종의 예시조항이었는데, 조항을 만들 당시 다소 거친 표현이 들어간 것이 아닐까 싶다”며 “2021년 수정요청을 받아 수정했는데 그다음 해부터 실무상의 착오로 수정되지 않았다. 오해의 소지가 있으니 관련 문구를 시정하겠다”고 했다. 경찰은 이날 각 시·도경찰청에 해당 문구를 수정한다는 공문을 다시 보내겠다고 했다.
조해람 기자 lenn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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