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라희 작가의 스며들어 부유하는 아름다움

리빙센스 2023. 12. 21.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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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테토의 아트스페이스 51

아크릴 속 은은한 색이 빛을 머금자, 둥둥 날아 마음을 건드린다. 윤라희 작가의 작품은 가만히 있지만 묘하게 움직인다. 찬란한 햇살이 비치던 가을의 막바지, 그녀의 작업실에서 나눈 이야기들.

인공적인 소재가 품은 서정

투명한 아크릴 속을 부유하는 색색의 형태들. 단단하고 무거운 아크릴이라는 소재를 깃털처럼 가볍고 공기처럼 자유롭게 만드는 창조주는 윤라희 작가다. 가장 인공적인 소재로 만들어내는 따스하고도 서정적인 느낌이 묘하게 마음을 사로잡는다. 대학에서 공예를 전공한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좀 더 확장된 공간에서 세상과 공유하고 싶어 아크릴이라는 소재를 이용해 디자인과 설치작업을 해왔다. 2017년 자신만의 스튜디오를 열고 작품과 디자인 활동에 집중해 온 윤라희 작가의 아크릴 작품은 '염색'이 가장 큰 특징이다. 직접 염색을 하진 않지만, 그녀가 전체 작품을 구상한 후 여러 공장을 돌면서 아크릴을 깎고, 염색하고, 마감하는 여러 과정을 거쳐 완성한 작품들은 햇살을 머금을 때 특히나 아름답다. 마침 마지막 가을 햇살이 찬란하게 비추던 11월의 마지막 주, 그녀의 작업실을 찾았다.

늦가을의 햇살이 비치는 작업실 앞에서 포즈를 취한 윤라희 작가.
빛을 받아 투명하고 은은한 컬러가 더욱 아름답게 보이는 작가의 작품.
아름다운 가구와 작품들이 배치되어 있는 윤라희 작가의 작업실.

작업을해가면서 최대치에서

조금씩 덜어내는방식을취하게 되더라고요.

작업에 조금의여유, 여백이 생기는거죠.

작업실 외관이 너무 아름다워서 놀랐습니다. 이 공간을 어떻게 찾게 되었어요?

원래 고등학교던, 100년도 넘은 건물이에요. 빨간 벽돌과 뾰족 지붕, 나무 디테일이 아름다워서 저도 한눈에 반했습니다. 철근과 콘트리트를 사용하지 않고 지은 건물이에요. 정식대로 짓고 뭔가를 거스르지 않은 오랜 시간 지어 올린 건물이라 그런지 더 특별하게 느껴져요. 서울 도심인데도 한적하고 고즈넉한 분위기 덕분에 다른 세상에서 작업하는 기분이에요.

창가에 비치는 햇살과 작가님의 작품이 너무나 잘 어울려요. 작가님의 작품은 얼마 전 '프리즈 서울'이 열리던 기간에 휘겸재에서 최랄라 작가와 함께 전시를 열었을 때 처음 접했는데 정말 아름답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한옥에 살고 있으니까, 우리 집에도 잘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프리즈 서울 전시에 많은 분들께서 와주시고 좋아해 주셔서 기뻤습니다.

아크릴이라는 소재로 작가님만의 작품 세계를 만들어나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에요. 작가님의 시작이 궁금해요.

저는 공예과에서 섬유를 전공했는데, 저희 학교는 세부 전공만 배우지는 않고 2년 동안 4가지 재료를 두루 다뤄요. 금속, 도자, 옻칠, 섬유 이 네 과목을 모두 접해 보는 경험이 제가 다양한 재료를 사용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어요. 제 전공대로라면 저는 섬유로 작품을 만들었어야 했는데, 청개구리 심보 같은 게 있어서 아크릴로 전시를 하겠다고 했어요. 물론 지금 작업하고는 전혀 달랐지만요.

일부러 새로운 소재인 아크릴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이었어요?

졸업할 무렵에는 뭔가 전통적인 공예에서 살짝 비켜나가고 싶었던 마음이 컸던 것 같아요. 보통 섬유로 작업을 하면 갤러리에 정지된 채로 전시되는 게 다인데, 저는 상공간이라든지 좀 더 확장된 공간에서 보여지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다행히 교수님께서 제 의견을 존중해 주셨고 야심차게 아크릴을 사용해 볼 수 있었습니다.

마크 테토와 작품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 윤라희 작가.
작업실 한쪽 벽면의 선반은 작가가 직접 디자인한 선반으로 작품을 올려두었다.
작업 중인 아크릴 피스들과 완성품들을 모아둔 선반 위. 이 자체만으로 하나의 전시처럼 느껴진다.

졸업 후에도 아크릴 작업을 계속하셨나요?

졸업 전시할 때의 생각은 변함이 없었고, 상공간에서 인스톨레이션이 되고 제작한 무언가가 잘 표현되고 보이는 작업을 해보고 싶었어요. 당시에는 백화점이 가장 적합한 공간이었죠. 백화점 쇼윈도나 내부에 설치물을 작업하는 게 흥미로워서 한 2년 반 정도 그런 일을 하는 회사에서 근무했었죠. 그러다가 나중에는 혼자서 프리랜서로 편집숍 같은 공간 연출을 한 7년 정도 했어요. 그때 좀 더 자유롭게 아크릴을 사용해 볼 수 있었죠.

공간 속에서 아름다운 작업물을 설치하는 것에 관심이 많으셨군요. 지금의 아크릴 작품으로 이어질 수 있었던 계기도 궁금합니다.

아크릴을 다루다 보면 다양한 표현 방식을 찾게 되거든요. 한 번은 염색 공장을 방문하게 됐는데, 그 작업 방식과 표현되는 느낌이 좋았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염색 공장을 알게 된 게 지금의 작업을 유지할 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같아요.

흔히 아크릴이라고 하면 이미 색을 표현한 완성품을 사용해서 가공하거나, 직접 안료를 섞어서 색을 만들어 작품을 제작하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작가님의 방식은 또 새롭게 느껴집니다.

맞아요, 많은 작가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작업을 하고 있죠. 저 같은 경우는 구상을 제가 하고 나머지는 거의 공장에 맡겨요. 방식마다 장단점이 있지만, 저는 구상을 좀 더 치하게 하고, 공장과 소통하는 것이 가장 큰 일이죠. 제 머릿속에 있는 색이나 형태를 작업자에게 완벽히 이해시키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더라고요.

염색한 아크릴의 색이 참 매력적이에요. 제가 한국 문화와 예술에 관심이 많아서인지, 작가님 작품에서 보이는 색들이 굉장히 한국적이에요.

예전에 아름지기에서 전시할 때 비슷한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일부러 한복의 색을 재현하려고 한 것은 아니었는데, 제가 좋아하는 색들을 섞다 보니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 같아요. 최근 휘겸재에서 전시했던 작품들은 형광색에 집중하려고 했던 것인데 한옥하고도 잘 어울리더라고요. 한 1년 전부터는 옻칠 장인 선생님과 옻으로 염색하는 작업을 하고 있기도 하고요.

투명한 아크릴 속에 색을 지닌 형태가 부유하는 작품에서 여백의 미가 느껴집니다. 저는 이 '여백'이라는 단어를 한국에서 처음 알게 됐고, 그 뜻에 대해 깊이 생각해 봤는데 비어진 공간도 충분히 무언가로 채워졌다는 느낌이에요. 영어로는 "Nothing is Something"이라고 표현하게 되더라고요. 작가님의 여백의 미가 느껴지는 작품들을 실컷 만날 수 있어서 정말 좋았습니다.

여백을 정말 멋지게 해석해 주셨네요. 저 역시 작업을 해가면서 최대치에서 조금씩 덜어내는 방식을 취하게 되더라고요. 작업에 조금의 여유가 생기는 거죠. 구상할 때 여백을 미리 생각하는데, 제 작업에서 여백은 일단 한 작품을 완성하고 마지막 단계에서 그 밸런스를 맞춰서 조정하게 돼요. 여백도 역시나 의도된 아름다움인데 이런 것까지 잘 알아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윤라희숙명여대 공예과를 졸업하고 아크릴이라는 소재에 주목해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펼치고 있다. 동일한 소재를 다양한 방법으로 가공하고 채색하고 형태를 만들면서 작가는 작품에 소재의 한계를 뛰어넘는 생명을 불어넣는다. 그렇게 탄생한 은은하고도 묘한 매력을 가진 작품들은 사람들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았고, 작가는 현재 전시뿐 아니라 롯데 시그니엘, 신세계, 더현대서울, 반클리프 아펠, 프리츠한센 등 다양한 브랜드와 다채로운 협업을 이어나가고 있다.

MARK TETTOJTBC <비정상회담>의 훈남 패널로 이름을 알렸다. 한국 생활 13년 차, 북촌의 한옥 마을에 거주하며 한국 전통의 아름다움을 매일 누리고 있다. 경복궁 명예 수문장을 역임하고, 한국 공예품과 문화재에 관심이 많은 그는 한국을 사랑하는 외국인 중 한 명. 매달 ‹리빙센스›와 함께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들을 만나 그들의 작품 세계를 소개하고 있다. CREDIT INFO

editor심효진

photographer김연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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