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당 추진' 이낙연·이준석과 마크롱의 차이는…

박해성 티브릿지 대표 2023. 12. 21. 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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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성의 여의대교] 佛 앙마르슈 성공 비결은?

안정적 의석수와 확고한 지지기반을 가진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내년 4월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좌불안석인 모양입니다.

혁신안에 시큰둥한 반응으로 일관하던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가 쫓기듯 사퇴한 후 여당은 비상대책위원회 구성 논의가 한창입니다. 안 그래도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의 신당 추진이 껄끄러웠던 국민의힘 처지에서, 인요한 전 혁신위원장에 이어 당 대표까지 씁쓸하게 퇴장하자 위기감이 최고조에 달한 것 같습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에게 비대위를 맡기는 게 기정사실화되는 분위기입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낙연 전 대표를 둘러싼 논란으로 시끌벅적합니다. 친명 대 비명 갈등으로 원심력이 강화되는 상황에서 이 전 대표까지 신당 창당에 나서려는 듯 보이자 벌집을 건드린 것처럼 야단법석이 벌어졌습니다. 현재까지 무려 117명의 소속 의원이 창당 반대를 위한 연판장에 서명한 사실로도 알 수 있듯이, 이 전 대표를 향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민주당 지지층의 84%가 이 전 대표의 신당 창당에 부정적이라는 결과까지 나왔습니다(12.17~18, 엠브레인퍼블릭). 당 내외의 여론 환경이 녹록지 않자 이 전 대표는 상황을 좀 관망하며 결단의 시간을 미룰 것 같습니다.

양당의 상황이 어찌 흘러가든 이준석 전 대표를 비롯해 류호정 의원(정의당), 양향자 의원(한국의희망), 금태섭 전 의원(새로운선택) 등 제3지대 정치 세력화 행보는 거침없이 진행 중입니다. 이분들은 바위처럼 단단한 거대 양당의 기득권을 깨고 의미 있는 대안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성공할 수 있을까요? 신당이 성공하려면 어떤 준비와 조건이 필요한 걸까요?

'새로운 정치'. 직접적인 이유가 무엇이든, 창당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공통되게 내거는 기치입니다. 기성 정치에 불만을 가진 대중을 결집해 새 질서와 규범을 만들어내는 게 목표죠. 우리나라 선거에서 양대 정당에 실망한 유권자들이 신생 정당에 표를 몰아준 사례는 2016년 4.13 총선 당시 국민의당 정도가 유일했습니다. 다만, 국민의당은 한국의 정치 지형을 바꿔내지 못한 채 사라져 사실상 실패한 도전이 되었습니다.

한국에서 국민의당이 녹색 돌풍을 일으켰던 바로 그해 4월, 프랑스에서도 커다란 정치적 변화가 예고됩니다. 에마뉘엘 마크롱의 신당인 앙마르슈(En Marche, '전진하라')의 탄생이 바로 그것입니다. 당시 프랑스 집권당이었던 중도좌파 성향의 사회당은 내부 분열과 정책 실패로 지지율이 대폭락하는 처지에 놓였습니다. 환멸을 느낀 유권자들은 새로운 정치를 갈망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프랑스판 강남좌파였다고 할 수 있는 마크롱이 등장합니다. 그는 중도 실용주의를 내걸었는데요, 구시대적인 정당 노선의 초월을 바라는 대중의 열망을 정확하게 포착한 영리한 전략이었습니다. '올랑드 키즈'로 불렸던 마크롱은 경제장관직을 사임하고 신당을 창당하며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의 사회당과 결별합니다. 신선한 이미지의 마크롱이 이끈 앙마르슈는 단숨에 대중의 지지를 받으며 프랑스 정치에 활력을 불어넣었습니다.

2017년 5월, 39세의 마크롱이 대선에서 승리합니다. 대통령 선거에서 기성 정당이 모두 참패하고 신생 정당의 후보가 당선이 된 이 일은 프랑스 정치 역사에서도 최대 이변으로 기록되었습니다. 대선 직후 치러진 총선에서도 전체 577석 중 350석을 얻는 기염을 토하며 승승장구했습니다. 오랫동안 공화당-사회당 양당이 주도하던 프랑스의 앙시앙 레짐은 막을 내리고, 마크롱 패러다임이 새로운 프랑스 정치를 규정하게 된 것입니다.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 2022년 대선에서 재선에 성공했고, 2027년까지 임기를 수행하게 됩니다.

선거를 앞두고 새로운 정치의 길을 모색하는 많은 사람이 마크롱의 성공을 언급하곤 합니다. 2016년 프랑스처럼 양극화되고 민생에 무능한 우리 정치에 대한 국민의 실망과 혐오가 임계점에 이르렀다는 판단이 전제돼 있습니다. 유권자의 30~40%가량은 어느 정당도 지지하지 않는 중도·무당층으로 분류된다는 점도 신당 창당 세력의 기대 포인트입니다.

정치 환경만 놓고 보자면 맞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보수성향이지만 윤석열 정부의 국정운영에 비판적인 유권자들은 국민의힘 대신 이준석 신당에 투표할까요? 이재명 대표의 정당 운영 방식에 불만이 있는 민주당 지지층은 이낙연 신당이 만들어지면 새 정당을 선택할까요? 현재 신당을 추진하는 세력들이 힘을 합쳐 소위 제3지대에 빅텐트를 치는 데 성공한다면, 양당이 모두 싫은 유권자들이 투표장에 나와 그 정당에 힘을 실어줄까요? 여러분은 이런 질문들에 망설임 없이 '그럴 것 같다'라고 답할 수 있나요?

기성 정치권력에 대한 대중의 반감은 마크롱 신당 성공의 배경 중 하나에 불과했습니다. 앙마르슈가 신뢰할 수 있는, 국민이 선택할 수 있는 대안으로 떠오른 데는 몇 가지 조건이 더 있었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싶습니다.

먼저 마크롱은 자신을 전통적인 정치 체제에 물들지 않은 아웃사이더로 포지셔닝 했습니다. 동시에 새로운 정당 지지자들에게 자신감을 고취하고, 설득력 있는 비전을 제시하고, 자신이 복잡한 국정을 잘 운영할 수 있는 유능한 지도자임을 부각했습니다. 마크롱의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십과 변화에 대한 명확한 비전이 앙마르슈 성공의 핵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경직된 정당 노선에 지친 광범위한 유권자들의 지지를 끌어낼 수 있었던 중도주의적 접근 방식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마크롱은 이념적 분열을 뛰어넘어 다양한 사람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실용적이고 포용적인 정책을 제시했습니다. 경제적으로는 비교적 친기업·자유주의적 개혁 성향을 보이면서도 종교나 이민, 인권, 평등 등 사회적 의제에서는 진보적인 태도를 견지했는데, 이렇게 해서 마크롱 신당은 사회당을 지지했던 중도 성향 유권자들을 비롯해 다른 정당의 지지층까지 차츰 흡수해 나갔습니다.

마크롱 열풍을 가져온 앙마르슈의 창당은 일종의 정치 캠페인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요, 대중과의 성실한 쌍방향 소통이 그 중심에 있습니다. '그랑드 마르슈(Grande Marche, 가가호호 방문해 유권자를 만난 앙마르슈의 대국민 인터뷰 캠페인)' 방식이 대표적입니다. 2030세대의 열성 지지자들로 조직을 꾸리고 현장에 찾아가 유권자들과 깊이 있는 대화 끝에 공약과 비전을 만들어냈습니다. 소셜 미디어를 효과적으로 활용해 유권자와 직접 교감하기도 했죠.

현재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신당의 추진 과정은 어떻습니까? 저는 아무리 봐도 안티테제로서의 정체성 외에는 잘 모르겠습니다. 윤석열 정부로는 안 된다, 이재명 대표 체제로는 안 된다, 민주당과 국민의힘 양당으로는 안 된다, 이런 주장들이죠. '왜 나인가'를 설득하기보다 상대를 부정함으로써 존립 근거를 만드는 방식입니다. 주도 세력의 신선함이나 리더의 카리스마, 분명한 비전, 시민들과의 공감 능력과 같은 주체적인 동력을 만들어내기에는 힘겨워 보입니다.

그래서 만약 국민의힘이 당 쇄신에 성공한다면, 또는 무풍지대의 민주당이 기득권을 버리고 거친 벌판으로 나아갈 결심을 한다면 신당의 설자리는 하루아침에 없어질 수도 있습니다. 이런 미래의 도래 여부가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에게 달려 있다는 점도 신당이 자생력을 확보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죠. 연동형이냐 병립형이냐 하는 비례대표 선거제도가 신당 성공의 핵심 변수가 되는 현실 역시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세력들의 취약한 입지를 말해준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추석 이후 국민의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이 마크롱의 그랑드 마르슈를 벤치마킹한 '한국판 앙마르슈 프로젝트'를 시작한 모양입니다. 길거리 여론조사를 통해 총선 공약을 개발하겠다는 건데, 여권이 처한 현실에 대한 근원적인 성찰 없이 방법만 흉내 낸다고 해서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는 지켜볼 일입니다.

오랜 기간 좌우로 양분된 프랑스의 정치가 중도실용을 내세운 마크롱 돌풍에 근본적인 패러다임 전환을 맞이하게 된 사례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과 시사점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나 신당 성공의 조건은 대중의 불만을 인식하는 것을 넘어서 다양한 유권자의 열망에 공감하는 변혁적인 비전을 제시하는 데 있다는 점을 기억했으면 합니다. 신당의 여정이 단순히 선거에서 몇 석을 얻기 위한 게 아니라 신뢰, 책임, 발전이라는 새로운 정치의 시대를 여는 힘을 키워나가는 길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자료사진). ⓒAFP=연합뉴스

[박해성 티브릿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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