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뜨고 코베이는 세입자 속출 …'방패막' 임차권등기 3.5배 쑥

김유신 기자(trust@mk.co.kr), 서진우 기자(jwsuh@mk.co.kr) 2023. 12. 20.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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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법에도 전세사기 기승
과도한 갭투자 차단 초점
임대차 개선안 내달 윤곽
전셋값도 주담대 LTV처럼
매매가 대비 상한선 두고
전세권 설정 의무화 담길듯
"전세사기·보증금 상승 초래
대출보증 낮춰야" 지적도

◆ 전세사기 피해 확산 ◆

급하게 전세를 구하던 유 모씨(50)는 서울 은평구 한 중개업소에서 물건을 추천받았다. 이 중개소 관계자가 계약 체결 전에 전셋값이 더 오를 수 있고 다른 임차인이 선점할 수 있다며 가계약금 300만원을 내라고 종용했고 유씨는 곧장 송금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후 계약서라고 쓰인 문자를 보내온 중개인은 다른 사람이었다. 공인중개사법 개정으로 지난 10월 19일부터 전세사기 예방을 위해 중개보조원은 신분을 밝히는 것이 의무화됐지만 현장은 달라진 게 없었다. 유씨는 전세 물건을 설명하고 송금을 요구한 사람이 중개보조원이었음을 뒤늦게 알게돼 중개소가 속한 관할 구청과 국토교통부에 이를 신고하고 부당이득 반환 청구 소송을 준비 중이다.

전세사기 구조에서 속칭 '바지사장'인 가짜 임대인과 함께 핵심 공범으로 꼽히는 이들이 악질 중개사와 중개보조원이다.

특히 중개보조원은 법률상 부동산 중개를 직접 할 수 있는 자격이 없는데도 신분을 숨기고 의뢰인을 속이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이들 중개보조원 중 일부는 전세사기 일당과 짜고 전세금을 받은 뒤 일부분을 사례비 형태로 챙기며 더 많은 피해 임차인을 모집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서울에서 무자본 갭투자로 집을 사들여 임차인 263명의 전세보증금 760억원을 편취한 사기 사건도 발생했다. 20일 서울북부지방검찰청에 따르면 서울에서 주택 310여 채를 사들여 매입가보다 전세보증금이 더 큰 '깡통전세'를 양산한 갭투자자 A씨와 공범들이 최근 구속기소됐다.

전세사기 특별법이 마련된 지 6개월이 흘렀지만 사기로 인한 보증금 분쟁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정부는 곧 임대차 제도 개선 방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사진은 20일 서울 양천구 신월동 한 부동산 중개업소 모습. 이승환 기자

이날 대법원 등기정보광장에 따르면 올해 1~11월 임차권 설정 등기 신청 건수는 총 4만8823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1만3803건의 3.5배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임차권 설정은 임대차 계약 만기가 지나도 집주인이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을 경우 임차인이 대항력을 갖추기 위해 취하는 조치다. 임차권 설정 등기 건수가 급증한 것은 그만큼 올해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임차인이 크게 늘었다는 의미다.

임대인이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아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보증 사고로 신고된 건수도 올해 11월까지 1만7700건, 규모는 3조9656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세는 집주인 입장에서는 주택 구매를 위한 자금 조달 용이성 측면에서, 세입자 입장에선 월세 대비 주거비를 낮출 수 있다는 측면에서 선호된다. 하지만 문제가 생길 경우 피해는 모두 세입자가 떠안게 된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제도 개선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처럼 취약한 전세 계약에서 비롯된 문제가 잇따르자 정부는 무분별한 갭투자를 방지하기 위한 제도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세입자의 보증금을 지키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은 매매가격 대비 전셋값의 상한선을 두는 것이라고 조언한다.

임재만 세종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전세는 세입자가 집주인에게 무이자 대출을 해주는 구조"라며 "금융사도 집값을 담보로 대출해줄 때 담보인정비율(LTV) 제한을 두는 것처럼 전세도 세입자의 위험을 줄이는 방안을 적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진유 경기대 도시교통공학과 교수도 "전셋값이 매매가의 70%를 넘지 못하도록 제한을 두면 자금 조달 능력이 없는 사람들의 무분별한 갭투자를 방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과도한 갭투자 방지 방안은 국토교통부가 국토연구원에 의뢰해 다음달 윤곽을 드러낼 '주택임대차 제도 개선 방안' 연구용역에도 담길 전망이다. 앞서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갭투자의 '갭'을 가급적 벌려 놓아야 보증금을 반환받을 권리를 좀 더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앞서 국토부는 HUG 전세보증금반환보증 가입이 가능한 전세가율을 100%에서 90%로 낮췄는데 이 기준을 더 강화하는 것도 방안 중 하나로 거론된다.

전세권 설정을 의무화해야 한다는 제안도 나온다. 전세권을 설정하면 계약을 체결한 부동산을 사용·점유할 권리와 대항력을 갖게 된다. 또 등기부등본에서 전세 계약과 관련한 내용을 볼 수 있어 권리 관계가 투명하게 된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현재는 집주인의 동의가 있어야만 해 전세권 설정이 쉽지 않다. 김 교수는 "등기부등본에서 선순위 전세권자에 대한 정보 확인이 가능하면 세입자 몰래 대출을 받아 금융사가 세입자보다 선순위권자가 되는 등의 사기를 예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세대출 보증을 낮춰야만 전세사기 피해를 줄일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는 한국주택금융공사(HF) 90%, HUG와 서울보증보험(SGI)은 각각 100% 전세대출 보증을 내준다. 이들 보증을 믿고 금융회사들은 대출금 회수에 대한 우려 없이 전세대출을 실행할 수 있어 전셋값 상승을 초래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부동산개발정책학과 교수는 "정부의 지나친 전세대출 보증은 전세의 리스크를 시장 참여자들이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게 한다"며 "저렴한 금리로 전세대출을 받다 보니 전셋값이 높아지고 이는 갭투자가 성행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꼬집었다.

[김유신 기자 / 서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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