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대범 컬럼] 농구월드컵 속의 외국인 지도자들 그들의 명과 암

손대범 2023. 12. 20. 10:1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점프볼=손대범 편집인] 국제대회가 열릴 때마다 많은 사람들은 외국인 지도자의 필요성을 언급한다. 세계 농구 트렌드를 잘 아는 지도자를 영입해 새로운 것을 시도해보자는 생각에서다. 실제로 외국인 지도자를 기용하는 국가들은 늘고 있다. 지난 2019년 FIBA 농구월드컵에서는 32개국 중 12명, 2023년 월드컵에서는 15명의 타국 지도자가 고용됐다. 그사이에 열린 도쿄올림픽에서는 12개국 중 5개국이 자국이 아닌 타국에서 감독을 데려와 지휘봉을 맡겼다. 그러나 성과는 천차만별이었다. 만병통치약까지는 안 됐다는 의미다.

※본 기사는 농구전문매거진 점프볼 12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외국 감독이 만병통치약은 될 수 없다. 흔히들 외국 지도자가 가져올 선진 농구가 변화에 영향을 줄 것이라 기대하지만 정작 성공한 케이스는 그리 많지 않다. 2019년과 2023년 월드컵 출전국 중 자국이 아닌 타국에서 지도자를 영입한 경우를 정리해보았다. 2019년에는 12명, 2023년에는 15명으로 늘어났다. 32개국 중 15명이면 상당히 큰 비중이다. 24개국이 나선 2014년 월드컵 당시 타국에서 대표팀 감독을 영입한 사례가 겨우 3개국에 불과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9년 사이에 더 커진 셈이다.

2014년 스페인 월드컵 당시에는 우크라이나(마이크 프라텔로/미국), 멕시코(세르히오 발데올밀로스/스페인), 크로아티아(자스민 레페사/보스니아) 등이 타국 지도자를 고용했다. 9년 사이에 우리 생활은 굉장한 혁신을 겪었다. 세계는 더 가까워졌고, 서로의 지식을 공유하는데 들이는 시간과 노력도 단축됐다. 농구 트렌드의 확산 또한 빨라졌다. 2014년은 바야흐로 ‘3점슛 시대’가 막 태동하던 시기였다. 스테픈 커리가 첫 우승을 거머쥔 시즌이 2014-2015시즌이었고, 리그 전체 3점슛 시도, 성공 기록도 매 시즌 새로 작성됐다. 극단적인 5-OUT 스타일이 퍼지기 시작했고 템포는 대단히 빨라졌다. 그렇다면 이 유행을 모두가 따랐을까. 그렇지는 않다. 그리고 외국인 지도자를 영입한 국가들이 모두 그러한 유행을 기대하고 영입한 것은 아니었다.

2023년의 주인공들
우선 성공한 케이스를 살펴보자. 성공의 기준을 ‘우승’으로 둔다면 2023년의 주인공은 단연 독일 대표팀의 고든 허버트 감독이다. 1959년생 허버트 감독은 지난 월드컵에 나선 지도자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축에 속하는 베테랑 지도자였다. 카리스마를 앞세워 선수단을 장악하고, 타임아웃마다 목청 높여 지시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허버트 감독이 진짜 조명을 받은 때는 대회 직후였다. 바로 독일을 사상 첫 월드컵 우승으로 이끈 뒤, 마치 모든 힘을 다 쏟아낸 듯 백스테이지에 털썩 주저 앉아 숨을 고르는 장면이 포착된 것이다. 그 어떤 장면보다도 인간미 넘쳐 보였기에 세계 농구팬들로부터 더 큰 박수를 받을 수 있었다. 데니스 슈로더, 다니엘 타이즈, 프랜츠 바그너 등을 앞세운 그는 타이트한 수비와 정교한 공격 시스템을 앞세워 4강에서 강호 미국을 꺾는(113-111) 파란을 일으켰다.

허버트 감독은 독일인이 아닌 캐나다인이다. 미국에서는 활동한 경력이 거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대표팀 지도자가 된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캐나다에서 태어났지만, 독일에서 지낸 시간이 길었다. 1982년 핀란드, 벨기에에서 선수 생활을 보낸 그는 은퇴 후 독일에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그가 거친 팀 중 하나는 프랑크프루트 스카이라이너스였다. 작고한 크리스 윌리엄스가 뛰었던 팀이다). 독일에서 10년 넘게 코치 생활을 하며 리그 우승, 올해의 감독상 등을 거머쥐었다. 1983년에는 독일 대학생들을 이끌고 유니버시아드 대회에 출전해 우승을 차지했다. 덕분에 그는 독일에서의 의사소통이 어렵지 않았다. 선수단 파악도 비교적 수월했다. 선수 장악도 더 빠를 수 있었다.

시선을 아시아로 돌려보자. 아시아 남자농구에서 2023년을 장악한 팀은 일본이었다. 일본 남자농구대표팀은 올해 월드컵에서 올림픽 자력 진출이라는 쾌거를 이뤄냈다. 개최국 자격으로 나섰던 걸 제외하면, 자력 진출은 정말 드문 성과다. 이런 성과를 주도한 인물은 바로 미국인 지도자 톰 호바스였다. 호바스는 이미 여자농구에서는 잔뼈가 굵은 인물이었다. FIBA 아시아컵 우승(2017, 2019)은 물론이고 도쿄올림픽에서는 은메달이라는 성과를 이루었다. 호바스의 철학은 명료했다. 신장의 한계를 핑계로 대지 않고, 작은 신장으로 상대를 흔들 방법을 찾았다. 그게 바로 ‘마이크로 볼’이었다. 일본 선수들의 신장은 ‘스몰볼’이라 하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작다. 그래서 붙여진 명칭이 ‘마이크로 볼’이다. 극단적으로 빠른 페이스에 3점슛을 지향하나, 마냥 3점슛에만 의존하지 않고 커트인하고 과감하게 돌파하며 상대를 공략하는 것이다. 2021년 남자대표팀을 맡은 그는 같은 스타일의 농구를 주입했다.

2년이 지난 지금, 이제 일본 남자농구를 한국의 라이벌로 보는 이는 한국인들 외에 거의 없다. ‘주입 대성공’이란 의미다. 그러나 호바스도 갑자기 영입된 인물은 아니다. 선수 시절을 일본에서 보냈다. 득점왕도 다섯 번이나 차지했다. 은퇴 후에는 일본 JX 에네오스 선플라워스의 코치를 거쳐 감독을 역임했다. 그는 일본 사회의 문화와 언어에 익숙했고 농구도 빠삭했다. 여기에 ‘성과’까지 더해지니 남자농구대표팀에서도 수월하게 적응할 수 있었다.

두 지도자의 공통점은 이렇다. 해당 국가에서 오랫동안 활동하며 존경을 받아온 농구인들이라는 점이다. 또 오래 지낸 덕분에 문화, 언어에 대해서도 익숙하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이는 그만큼의 시행착오를 아낄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다.

아직 국가대표팀의 외국인 지도자 고용이 활성화되지 않았던 2014년으로 돌아가 보자. 당시 고용되었던 감독들 중 크로아티아의 레페사 감독의 경우도 보스니아 국적이지만, 크로아티아 리그에서만 6번의 우승을 이끈 경력자였다. 멕시코 대표팀의 세르히오 발데올밀로스도 스페인 사람이지만, 브라질 리그에서 오래 몸담아온 인물이다. 2022년에는 멕시코 리그 ‘올해의 감독’상도 수상했다.

스페인은 어떤가. 스카리올로 감독은 유럽을 대표하는 명장이다. 스페인 대표팀을 2019년 월드컵 우승으로 이끌었고, 유로바스켓에서는 이미 4번이나 정상을 밟았다. 미국에 밀려 은메달에 그쳤지만,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는 마지막까지 미국을 긴장시켰다. 사실, 당시 그가 꺼내든 박스앤드원 카드는 케빈 듀란트, 크리스 폴, 르브론 제임스, 코비 브라이언트를 보유한 팀을 상대로 쓰기에는 무모했다는 평가도 받았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는 이 카드를 2019년 NBA 파이널에서 다시 꺼냈다. 토론토 랩터스 시절, 닉 널스 감독을 보좌하는 어시스턴트 코치로 활동했던 스카리올로는 스테픈 커리를 상대로 박스앤드원을 시도해 커리와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를 당황시키기도 했다. 스카리올로 감독 역시 국적은 이탈리아지만 감독 생활은 스페인에서 더 오래 했다. 사스키 바스코니아, 레알 마드리드, 유니카하 등에서 여러 번 우승했다. 여기에 ‘NBA 우승’ 경력까지 더해졌으니 스페인에서는 ‘감히’ 그를 무시할 농구인은 없을 것이다.

중국이 실패한 이유
중국은 최근 외국인 지도자 영입에 적극적이었다. 최초로 고용한 외국인 지도자는 2004년 델 해리스였다. ‘수비 명장’으로 유명했던 해리스는 2004년 아테네올림픽을 앞두고 고용되어 예선에서 세르비아&몬테네그로를 꺾는 이변을 연출했다. 그의 자리는 해리스의 A코치였던 요나스 카즐라우스카스(리투아니아)가 물려받았다. 자국에서 열리는 2008년 올림픽을 대비해 계약기간도 3년으로 후하게(?) 보장했다. 다만 그 뒤로는 이렇다 할 성과가 없었다. 밥 돈왈드(미국), 파나지오티스 야나키스(그리스) 등이 이끌었지만, 나가는 대회마다 하위권을 맴돌았다. 중국이 해외 전지훈련, 평가전 등에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아쉬운 성과임이 분명하다. 게다가 이 무렵은 야오밍과 이젠렌의 NBA 진출 영향으로 중국내 농구 유망주가 가장 풍족했던 시기였다.

야나키스가 2014년 지휘봉을 내려놓은 뒤, 중국은 한동안 1990년대, 2000년대 대표팀을 주름잡았던 두펑, 리난 등에게 기회를 주었다. 그러나 국제대회만 나가면 무기력해지는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자 2022년에는 알렉산다르 조르제비치를 영입했다. 1967년생 조르제비치는 세르비아 국적으로 월드컵 우승 1회, 유로바스켓 우승 3회, 올림픽 은메달 1회 등 엄청난 성과를 달성한 명장이다. 그리스, 튀르키예, 독일, 이탈리아에서도 우승했다. 한마디로 ‘발 담그면’ 항상 우승했던 감독인 셈이다. 그런 인물이니 중국에서의 기대는 오죽 높았을까. 그러나, 앞서 쓸쓸히 지휘봉을 내려놓은 인물들처럼 조르제비치 감독도 체면을 구겼다. FIBA 월드컵에서는 카일 앤더슨까지 귀화시켰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아시안게임에서는 동메달을 목에 걸긴 했지만 4강에서 필리핀에 1점차로 패배(76-77)하는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중국이 이처럼 실패한 이유는 일본과 달리 여유를 주지 못했다는 분석이 있다.

지원은 풍족했지만 아시아 농구에 대해 파악할 시간도 부족했고 언어와 문화 한계도 극복하지 못했다. 당연히 선수단 장악도 안 됐다. 선수 기용을 두고도 말이 많았다. 외국인 지도자의 전형적인 부작용 사례다. 결국 선수, 미디어, 협회, 농구인과 커뮤니케이션이 되지 않으면, 어떤 성과도 거둘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2019년과 2023년, 극과 극의 성과를 낸 캐나다 대표팀의 사례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캐나다는 계속해서 외국인 지도자에게 팀을 맡겨왔다. 2019년은 토론토 랩터스를 우승으로 이끈 닉 널스가 잡았다. 그러나 NBA에서와 달리 캐나다 대표팀의 농구는 전혀 정교하지 않았다. 필자가 2008년 올림픽 최종예선 당시 김남기 전 감독에 캐나다 대표팀 경기를 전달하며 함께 나눈 대화가 기억난다. “캐나다는 미국에서 농구한 선수가 많아 1대1이 좋고 또 이를 뒷받침할 탄력이나 개인기가 좋지만, 결코 팀으로 뭉치지 못하는 나라이다.” 준비 과정부터 모든 게 어설프게 미국을 따라 했던 결과였다. 닉 널스 감독은 선수단 파악이 안 됐을 뿐 아니라 FIBA 경험이 없다 보니 좋은 성과를 내지 못했다. 호주, 리투아니아 등을 연이어 만나는 조편성도 안 좋긴 했지만 뚜렷한 특색도 안 보였다. 캐나다의 최종 성적은 21위였다.

2023년은 달랐다. 캐나다 대표팀은 월드컵의 목표를 ‘올림픽 출전권 획득’으로 잡고 선수단을 개편했다. 이 과정에서 셰이 길저스-알렉산더, 루겐츠 도트(이상 OKC썬더), RJ 배럿(뉴욕 닉스), 켈리 올리닉(유타 재즈), 딜론 브룩스(휴스턴 로케츠), 드와이트 포웰(댈러스 매버릭스) 등 NBA 리거들을 대거 합류시켰다. ‘역대급’ 호화 라인업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변의 우려는 여전했다. 하나로 뭉칠 수 있겠냐는 우려다. 설상가상으로 닉 널스 마저 대회를 앞두고 사임했다. 그런데 그 우려를 완전히 깬 인물이 나타났다. 조르디 페르난데스 감독이었다.

스페인 국적의 페르난데스 감독은 수장을 맡은 경험이 길지 않았지만, 놀랍게도 캐나다를 4강까지 진출시키는 쾌거를 이루었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미국 다음으로 좋은 성적을 내면서 올림픽 티켓도 따냈다. 페르난데스 감독의 성공 요인은 2가지였다. 첫째는 올림픽과 같은 국제대회 경험이 있다는 것. 두 번째는 선수단 장악이다. 페르난데스는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덴버 너게츠, 새크라멘토 킹스 등에서 어시스턴트 코치를 하며 수많은 유망주들을 성장시켜왔다. 카이리 어빙과 트리스탄 탐슨, 저말 머레이가 바로 그의 작품이다. 차세대 유망주 키건 머레이 역시 페르난데스가 도맡았다. 물론 날고 기는 NBA 스타들이 겨우(?) 이런 경력을 보고 감독 말을 들을 리 없다. 다만, 그는 NBA에서 선수들에게 열심히 해야 할 이유를 부여하고, 기술적으로 발전시키는 성과를 냈던 인물이었다. 그 바탕이 된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캐나다를 하나로 뭉치게 만들었다. 안 될 때면 방송용 중계카메라가 잡고 있을 때조차 호통을 아끼지 않았다. 반대로 잘 될 때면 세상 좋은 삼촌처럼 기뻐했다.

캐나다에서 찾을 수 있는 핵심포인트는 닉 널스와 페르난데스의 역량 차이가 아니다. 한 감독을 영입했을 때, 목표에 접근하기 위해 그를 얼마나 지원해줄 수 있는가도 중요하다. 2019년에는 추상적인 목표였다면 2023년에는 확고한 목표를 세우고 이에 접근하기 위해 애썼다. 갑작스런 감독 교체에도 불구하고 성과를 냈던 이유다. 캐나다는 2023년 월드컵 출전국 중에서도 비교적 해외 평가전이 많은 편이었다. 캐나다에서 농구는 넘버원 스포츠가 아니다. 아이스하키가 늘 중심에 있다. 대학 역시 수준이 떨어지는 편이다. 그럼에도 이런 지원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스폰서 유치 등 적극적 영입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후문이다.

성과를 위해 필요한 것
2019년 월드컵에서 외국인 지도자를 고용한 국가 중 8강에 오른 나라는 스페인, 폴란드, 체코 뿐이었다. 대부분의 나라들이 20~32위에 머물렀다. 2023년에도 스페인, 캐나다, 이탈리아 만이 8강에 올랐다. 물론 모두가 월드컵 성적에만 목표를 두고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자국 농구 수준을 한 단계 올리는 것도 목표 중 하나다. 아프리카 국가들이 대표적이다. 나이지리아는 한동안 가장 적극적인 활동을 해왔다. 2014년 FIBA 월드컵을 앞둔 시점이었다. 당시 나는 KBL 외국선수 드래프트 취재를 위해 라스베이거스에 있었고, 드래프트가 끝난 뒤에도 각국 대표팀 평가전과 중고등학교 대회를 보기 위해 며칠 더 머물고 있었다. 내가 묵던 호텔은 라스베이거스에서 비교적 중간 정도에 해당하는 호텔이었다. 그런데 하루는 작은 승합차에서 거구들이 하나둘 내리기 시작했다. (동네 태권도장 / 농구교실 버스보다 조금 더 큰 수준을 상상하면 된다.) 나이지리아 대표 선수들이었다. 없는 살림에 간신히 보험 문제를 처리하고 후원을 받아 전지훈련을 온 것이었다. 그들의 목표는 월드컵 우승이 아니었다. 더 많은 경험을 쌓아 ‘팀’으로 발전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영입한 지도자가 미국인 윌 보이트였다. 당시 40대의 젊은 지도자였던 윌 보이트는 아프리카 대륙에서는 조금씩 이름을 알리던 인물이었다. 그는 나이지리아를 아프리카 대륙 정상에 올려놓았다. 2015년 아프로 바스켓에서 나이지리아의 사상 첫 우승을 이끈 것이다. 이 대회에서 우승한 최초의 미국인이기도 했다. 그 뒤 그는 앙골라로 옮겨갔다. 2019년 리투아니아, 체코 등이 방한해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치른 친선대회를 기억할 것이다. 당시 앙골라 감독이 바로 윌 보이트였다. 보이트는 본인만 온 것이 아니었다. 사단을 함께 데리고 왔다. NBA 구단에서 활동 중인 스카우트까지 대동했다. 체육관에서 인사를 나눌 당시, 내게 빳빳한 고급 용지에 프린트 된 필라델피아 76ERS 명함을 줘서 놀랐던 기억이 있다.

다시 말하지만 이들의 성과는 월드컵이나 올림픽에서 성과를 내는 것이 아니었다. 대륙내 경쟁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는 것, 그리고 경쟁력을 키우는 것이었다. 그들 협회도 ‘부자’가 아니었다. 너무나 열악한 나머지, 연습 상대 부킹, 호텔 예약, 승합차 렌트, 영수증 처리 등을 감독과 코치들이 직접했다는 기사도 본 적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NBA 선수들조차 그 환경에서 코칭스태프의 결정을 따르고 헌신한 것은 그 투자를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그리고 스태프들이 얼마나 진심이었지를 잘 알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외국인 지도자를 영입하려면
현재 한국농구 현실에 맞는 사례를 찾기란 쉽지 않다. 우리는 오랫동안 한국에서 활동해온 외국인 지도자가 없다. 한국 문화, 한국 농구, 우리말을 잘 아는 외국인 지도자도 없다. 물론 큰 문제가 되진 않는다. 축구의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 경험하고 연구할 시간을 주면 된다.

2010년 아시안게임 당시에는 한때 역대 최다승 고지를 밟았던 레니 윌킨스가 유재학 감독의 고문으로 합류했는데, 한국 농구 실정이나 아시아인의 신체 특성을 파악할 시간도 꽤 필요했다. 당시 유재학 감독은 “같은 지역방어라고 해도 한국인이 서는 것과 외국인이 서는 것은 차이가 엄청나게 난다. 팔 길이, 보폭, 민첩성 등 고려해야 할 것들이 많다”라고 설명했다. 시간이 필요한 이유는 이런 적응을 위해서다. 그러니 외국인 지도자가 와서 지낼 공간부터 시작해 의사소통을 도울 통역, 이동 수단 등 많은 것들이 뒤따라야 한다. 결국에는 ‘돈’이다.

외국인 지도자를 영입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구축해온 농구 철학과 팀 문화, 시스템을 이식한다는 의미다. 따라서 그를 보조할 어시스턴트도 필요하다. 그러면 또 ‘돈’이다. 게다가 어지간한 지도자는 눈높이에 맞지도 않을 테니, 명망있는 지도자를 영입해야 한다. 그렇다면 그 기준은 무엇인가? 과연 우리에게는 옥석을 가릴 안목과 기준, 시스템이 있는가? 이 부분도 생각해야 한다. 대표팀에서 나라를 대표해 뛰게 될 선수들의 젊음과 건강을 낭비하지 않으려면 우선은 이런 제반 조건을 잘 갖춰야 한다.

늦었지만 이 글의 전제 조건은 외국인 지도자와 그 시스템이 ‘못해도 한 번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에 있다. ‘만병통치약’은 아닐지라도 ‘도약’을 원한다면 한 번은 꼭 경험해야 할 수순이라는 것이다. 농구원로들은 1960~1970년대 한국 농구가 도약할 수 있었던 비결로 과거 존 번, 냇 홀맨, 제프 고스풀 등 외국인 지도자의 수준 높은 코칭이 있었다고 입을 모은다. 존 번과 냇 홀맨은 미국에서도 추앙받는 농구 명장들이었다. 발전과 배움에 대한 열의가 가득했던 시기였다. 물론 이들이 올 수 있었던 것은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제 이런 지원을 기대하기란 어렵기에 희망사항일 수도 있다. 현실도 생각해야 한다. 언젠가 FIBA 강습회에서 한 아마추어 지도자가 던진 농담이 아직도 기억난다. “나 참, ‘스트레치 4(stretch 4)’는 무슨! 당장 스트레칭할 사람도 부족한데…” 그때는 ‘라임 아주 기가 막히시다’며 웃으며 넘긴 이야기지만, 그 현실적인 문제도 아직도 해결하지 못하면서 세계 무대만 생각하는 것도 욕심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아버지를 비롯한 롤모델의 등을 바라보며 성장해나가듯, 유망주들이 바라보고 꿈과 희망을 키울 롤모델이 있어야 한다. 한국농구가 존중받을 수 있는 무대는 결국 아시아 무대에서부터 시작된다. 뒤에서 유망주들을 육성할 수 있는 훌륭한 전략이 뒷받침되고 위에서는 그들이 바라볼 수 있는 롤모델을 양산할 수 있어야 한다. 그 방법 중 하나로 외국인 지도자를 언급한 것이다. 단지, ‘필요하니까’라는 막연한 이유가 아니라 그간 세계농구에서 일어났던 여러 고용 사례들을 세세하게 검토하고 기준을 세워야 할 것이며, 단순히 맡겨놓고 성적이 안 나면 교체하는 것이 아니라, 국내외 다양한 종목의 사례를 토대로 지원해야 할 것이다.

# 사진. FIBA, AP연합뉴스, 점프볼 DB

Copyright © 점프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