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 “현충일에만 찾던 서울현충원… 문화·보훈 성지 만들어 365일 기억”[현안 인터뷰]

정충신 기자 2023. 12. 20.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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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안 인터뷰
음악회·영화제·패션쇼 통해
외국인도 즐겨 찾을 수 있도록
문화·관광공간으로 변신 노력
보훈가족 자녀·후손 지원하는
‘히어로즈 프로그램’ 최고 성과
6·25전쟁이 북침? 국제전?
정체성 망각하는 현실 아쉬워
자유민주주의 정신에 反하는
정율성 사업엔 세금사용 안돼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이 지난 5일 ‘영웅을 기억하는 나라’ 슬로건이 벽에 적힌 서울 용산구 서울지방보훈청 집무실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제복 근무자를 존중하는 보훈문화 확산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백동현 기자

인터뷰 = 정충신 정치부 선임기자 csjung@munhwa.com

마지막 국가보훈처장 겸 초대 국가보훈부 장관인 박민식(58) 장관은 “사람에게 인격이 있듯이 나라에도 국격이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5월 윤석열 정부 초대 보훈처장이 된 박 장관은 윤석열 대통령 공약사항인 보훈부 승격을 보훈가족들의 전폭적 지지와 국민적 기대 속에 이뤄냈다. 보훈부도 정부 부처 서열 9위로 뛰어올랐다. 그는 임기 동안 ‘제복의 영웅들’ ‘히어로즈 패밀리’ ‘서울현충원 재창조 프로젝트’ 등 굵직굵직한 사업 등을 통해 추진력을 인정받았다. 윤 정부의 슬로건인 ‘영웅을 기억하는 나라’ 토대를 구축하는 데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 박 장관은 “보훈부 승격은 단순히 조직 확대를 넘어 대한민국 국격을 한 단계 격상시켰다는 측면에서 유공자분들이 국가에 대한 자긍심을 갖게 된 획기적인 사건이었다”고 자평했다. 하지만 임기 초반 고 김원웅 전 광복회장의 각종 범법행위 및 전횡을 통한 광복회 위상 추락 등 난관도 적지 않았다. 인터뷰는 지난 5일 서울 용산구 서울지방보훈청에서 진행됐으며 이후 전화 통화로 내용을 보충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업무나 성과를 든다면.

“6·25 참전 유공자분들에게 존경과 감사의 의미를 담은 제복을 만들어 드린 ‘제복의 영웅들’ 사업이 기억에 남는다. 제복에 대해서 ‘수의로 입고 싶다’ ‘영정 사진으로 올리고 싶다’는 등 좋은 반응을 주셔서 큰 보람을 느꼈다.”

―취임 후 1년 7개월 동안 무척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

“1961년 군사원호청으로 출발, 창설 62년 만에 윤 정부의 보훈에 대한 강한 의지와 보훈가족과 국민의 성원에 힘입어, 보훈가족들의 오랜 염원인 보훈부가 출범한 것을 가장 먼저 말씀드리고 싶다. 국가를 위해 헌신한 영웅(전몰·순직 군경)의 자녀들에게 정부와 사회 공동체가 경제적·정신적으로 도움을 주는 종합 지원 정책인 ‘히어로즈 패밀리’ 프로그램도 빼놓을 수 없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프로골퍼의 꿈을 키워 나가는 천안함 최정환 상사의 자녀를 보며 뿌듯했다. 올해는 영주귀국한 독립유공자의 어린 후손을 돕는 ‘히어로즈 주니어’ 프로그램도 출범해 활발하게 운영하고 있다.”

―반대로 아쉬운 점을 꼽는다면.

“전임 (김원웅 전) 광복회장에 의해 벌어진 광복회 각종 비리는 독립정신을 받드는 공법단체인 광복회가 벌여서는 안 될 범법행위였다. 이에 특정감사와 고발 등 필요한 조치를 취했고, 이후 각고의 노력을 통해 광복회 운영이 정상화된 것은 다행이다.”

―임기 동안 가장 안타까운 기억은.

“수해복구 현장에서 실종자 수색 중 순직한 채모 상병 소식이었다. 당시 채 상병을 즉시 국가유공자로 등록하고, 국립묘지 안장 등 보훈 예우를 제공했다. 지난해 제도 개선을 통해, 전사·순직Ⅰ형으로 결정된 군인 및 위험직무순직으로 인정된 경찰·소방관은 별도의 보훈심사 없이, 바로 국가유공자로 결정하고 있다. 국가를 위해 희생한 분들이 국가유공자로 인정되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하는 것이, 나라를 위해 헌신한 분들에 대해 국가가 해야 할 당연한 예우다.”

―국방부 관할인 서울현충원을 보훈부로 이관하고, 공간을 재구성하는 작업도 추진 중인데.

“서울현충원이 말로만 호국의 성지가 아니라, 누구나 마음 편하게 방문하는 곳이어야 한다. 우리나라를 위해서 희생한 분들을 기리고, 내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기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금의 서울현충원은 냉정하게 말하면, 365일 중에 364일은 죽어 있다가, 6월 6일 현충일에만 ‘반짝’ 하는 공간이다. 우리 국민이 미국 여행을 갈 때는 알링턴 국립묘지를 방문하면서 정작 우리 수도에 있는 서울현충원은 잘 찾지 않는다는 사실은 대단히 안타까운 일이다.”

―앞으로 어떻게 변화되는가.

“지난 6월 서울현충원에서 개최한 음악회, 영화제, 패션쇼 등은 이곳을 1년 365일 내내 국민과 호흡하는 장소로 만들기 위한 변화의 노력이다. 현재 진행 중인 ‘서울현충원 재창조 프로젝트’를 통해, 이곳의 문턱을 낮춰 국민은 물론 외국인들도 즐겨 찾는 대한민국 호국보훈의 성지이자 문화·관광 공간으로 바꿔 나갈 것이다.”

―무호적 독립운동가 가족관계등록부 등재·발급을 비롯해 황기환 지사 유해 봉환, 최재형 선생 부부 합장 등 성과가 많다.

“우리나라 현대사를 감안하면, 독립운동의 역사를 기억하고 그 과정에서 발휘된 애국정신을 계승하는 차원에서 독립유공자 예우는 너무도 중대한 보훈부의 역할이다. 156명의 무호적 독립운동가 가족관계등록부 등재·발급, 황기환 지사 유해 봉환, 최재형 선생 묘소 복원 외에도, 하와이 독립운동 사적지 14개소 안내판 설치, 재일(在日) 마지막 광복군인 오성규 지사님의 환국, 항일운동을 하느라 학업을 마치지 못한 학생 독립운동가에게 명예 졸업장을 전달하는 ‘세상에서 가장 늦은 졸업식’ 행사, 하와이 독립운동을 이끈 정두옥 지사님 유해 봉환 등 많은 일을 추진했다.”

―최근 제복 근무자를 존중하는 보훈문화가 확산되고 있다.

“6·25전쟁 등에서 우리나라를 지켜낼 수 있었던 것은 군복을 입고 싸운 군인들 덕분이다. 항상 위험에 노출된 군인, 경찰관과 소방관이 입고 있는 제복은 언제든지 수의가 될 수 있다. 그들의 제복에는 단순한 직업을 넘어 국가의 안전과 국민의 평안한 일상을 위해 헌신하고, 때로는 자신을 희생하겠다는 의지와 각오가 담겨 있다. 제복의 의미를 감안하면 제복 근무자에 대한 존경과 감사는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단순한 캠페인이나 정책 정도가 아니라, 대한민국이 앞으로 만들어 나가야 할 하나의 문화라고 생각한다.”

―중국 공산당 활동을 했던 정율성에 대한 광주광역시의 기념공원 조성사업에 대해서도 제동을 걸었는데.

“이념은 단순한 탁상공론이라든지 정신적 차원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방향성이나 철학 측면은 물론 실제 국민의 삶에도 큰 영향을 준다. 광주광역시장은 정율성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48억 원의 세금을 쓰려는 것인데, 이것만 보아도 이념은 학자들의 단순한 논쟁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나라의 근본과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정하는 실질적인 것이고, 국가의 입장에서는 사활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보훈에서 역사와 이념, 국가 정체성이 왜 중요한가.

“6·25전쟁일 하루 전에 ‘6·25전쟁은 국제전’이라고 한다거나, ‘더러운 평화라도 이기는 전쟁보다 낫다’는 언급 또한 정율성 기념사업과 비슷한 맥락이다. 이러한 인식들은 6·25전쟁에서 대한민국을 지켜낸 참전유공자와 지금도 국방을 위해 헌신하는 국군장병들을 실망시키는 것은 물론, 6·25전쟁의 원인을 묻는 설문조사에 북침 답변이 존재하는 안타까운 현실을 낳았다. 올바른 역사인식과 이념, 그리고 이에 기반한 국가 정체성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이러한 사례들을 통해 알 수 있으며,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것은 보훈부의 책무다.”

―보훈부가 추진 중인 안중근 의사 유해 발굴은 어떻게 되고 있나.

“유해의 정확한 매장 위치 파악을 위해 순국 당시 작성된 각종 자료 확보가 필요하다. 일본과 중국 측에 자료 및 발굴 협조 등을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안중근 의사의 신변을 인도받아 재판과 형을 집행한 일본 당국이 안 의사의 유해 매장 위치에 대한 단서를 보유하고 있을 것으로 추측한다. 안 의사는 대한민국 독립운동사에 있어 절대적 위상을 가진 영웅으로 유해 발굴을 위한 자료 확보 노력을 지속 추진해 유의미한 결과를 만들 수 있도록 하겠다.”

―이승만 기념관 건립에 현재까지 60억 원의 성금이 모금됐다는데.

“이승만 전 대통령은 독재라는 과오가 있지만, 독립운동을 하고 국가를 지켰으며 한·미동맹을 이끌어 냈다. 잘못을 덮고도 남는 업적이 있다. 반공과 자유민주주의를 이끈 이 전 대통령 기념관 건립은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이유에서 제가 이 전 대통령의 재평가가 필요하다고 처음 나섰을 때만 해도 외롭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는데 지금은 사회 각계각층이 기념관 건립에 동참하고 있다.”

―이승만 기념관 건립 실현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 같다.

“최근 미국에 거주하는 6·25 참전유공자가 워싱턴 이 전 대통령 동상 건립에 20만 달러를 기부했다. 이 전 대통령의 재평가에 대한 전 국민적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 이러한 국민 공감대 위에서 앞으로도 국민 대다수가 바라는 모습으로 이승만 기념관 건립이 추진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어머니와 군 복무 중인 아들이 함께 이승만 기념관 건립에 1000만 원을 기부했는데.

“이 전 대통령은 그동안 역사의 음지에서 패륜아로 수십 년간 낙인 찍혀 있었다. 특히 공적이 지나치게 침소봉대됐다는 지적과 관련해 수십 년 동안 아무도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았다. 제가 보훈처장이 되면서 6개월은 광야에서 혼자 목소리를 냈다. 민간에서는 그런 활동을 한 분이 많았지만, 장관으로서 목소리를 공식적으로 낸 사람이 없었다. 올해 들어서면서 공감대가 상당히 넓혀지면서 많은 분이 호응해줬다. 기념관이 신속히 완공되기를 바란다.”

국가 헌신 군인·경찰·소방관 최고예우… 야당 단독강행 ‘민주화유공자법’엔 결사반대

박민식 장관의 보훈 소신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은 더불어민주당이 단독의결을 강행 중인 민주화유공자법(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에 대해서 강한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박 장관은 “민주화운동 중 입은 피해에 대한 보상 여부를 결정하는 것과 국가보훈 차원에서 국민이 존경해야 할 영웅으로서의 민주유공자를 결정하는 것은 성격이 다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민주화유공자법안 대상은 동의대·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남민전)·서울대 프락치 사건에서부터 교육·언론·노동운동 관련 사건 등 무려 145개”라면서 “이 중 어떤 사건을 보훈 영역에서 기념할 것인지 국민적 공감대가 없는 상태”라고 설명했다. 1989년 발생한 부산 동의대 사건의 경우, 입시부정 문제로 학생들이 농성에 나섰고 이를 진압하던 경찰 7명이 화재로 사망한 사건이다.

민주화유공자법은 지난 14일 국민의힘 의원들의 불참 속에 민주당 단독의결로 국회 정무위원회를 통과한 상태다. 종전 민주화보상법에 따른 민주화운동 관련자 9844명 중 다치거나 숨지거나 행방불명된 829명을 추려 민주유공자로 지정·예우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4·19혁명, 5·18민주화운동을 제외한 민주화운동의 사망·부상자, 가족 또는 유족을 예우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어 ‘운동권 셀프 특혜법’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박 장관은 “민주화유공자 요건이 ‘사회적 공감대 형성’ 등으로 모호한 상황”이라며 “민주당 단독 처리는 반민주적 입법권 남용으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박 장관은 내년도 예산안 심사에서 ‘히어로즈 패밀리’와 ‘제복근무자 감사 캠페인’ 등 보훈부 추진사업 예산이 깎인 것에 대해서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그는 “히어로즈 패밀리 프로그램은 전몰·순직 군경의 미성년 자녀들이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업”이라며 “민주당이 사업 예산 6억1700만 원 전액을 삭감한 것을 납득할 수 없다”고 했다. 박 장관은 일곱 살 나이인 1972년 아버지가 베트남에서 전사한 보훈가족이다. 그는 “이 사업은 제가 어릴 적 아버지 없이 크면서 느꼈던 사회적 결핍을 다른 보훈가족 자녀들에게는 조금이라도 덜어주자는 취지로 정성을 담아 만들었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1965년 11월 부산 출생 △서울대 외교학과 △외무부 국제경제국 사무관 △서울지검 검사 △제18·19대 국회의원 △최동원기념사업회 이사장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특별보좌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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