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거주 의무 폐지’ 국회 못 넘으면 청약 당첨된 4만7000여가구 혼란

정순우 기자 2023. 12. 20. 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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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올 1월 “폐지” 밝힌 후
자녀 학교나 직장 문제 때문에
기존 전세 연장한 사람들 많아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전망대 서울스카이에서 바라본 올림픽파크포레온(둔촌주공 재건축) 모습./뉴스1

윤석열 대통령이 19일 국무회의에서 폐지를 촉구한 ‘실거주 의무’ 제도란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받은 저렴한 아파트에 청약 당첨되면, 입주 시점에 무조건 2~5년간 직접 거주해야 하는 규정이다. 본인이 입주하지 않으면서 전세를 끼고 집을 사는 ‘투기’를 막겠다는 취지로 2021년 도입됐다. 하지만 ‘투기’가 아닌 실수요자가 대다수인 청약 시장에까지 실거주 의무를 도입하면서 무리한 규제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작년 하반기부터 분양 시장이 얼어붙자, 정부가 올해 1월 실거주 의무를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당시엔 야당도 별다른 반대 입장을 내놓지 않아, 대다수 실수요자들은 실거주 의무 폐지를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였다.

하지만 실거주 의무 폐지를 담은 주택법 개정안은 지금껏 국회 첫 관문도 못 넘고 있다. 법 개정안이 발의된 4월부터 야당 내 기류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올 상반기 인천 미추홀구를 중심으로 전세 사기 피해가 확산하자 더불어민주당은 “실거주 의무가 사라지면 ‘갭 투자(전세를 끼고 매수)’가 성행할 수 있다”며 법 개정에 반대하기 시작했다. 일부 야당 의원은 실거주 의무 폐지가 전세 사기를 부추길 수 있다는 논리도 폈다. 정기국회 회기 종료일인 이달 9일까지 여야 입장 차는 좁혀지지 않았다.

그래픽=백형선

법 개정이 무산되면 청약 시장의 큰 혼란이 불가피하다. 청약에 당첨됐지만 자금이 부족한 사람 중에선 분양받은 아파트를 전세로 놓고, 그 보증금으로 잔금을 치르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기존에 거주하고 있는 전세 계약을 이미 연장했다. 법 개정이 안 되면 기존 전세 계약을 중도 파기하고 분양받은 아파트에 들어가야 한다. 또 자녀 학교나 직장 때문에 분양 아파트에 들어가는 것이 어려운 이들도 있다. 당장 입주할 계획은 없지만 미리 집을 장만해두려고 청약을 신청했던 사람들은 큰 피해를 보게 되는 것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현재 실거주 의무를 적용받는 아파트는 전국적으로 72개 단지, 4만7595가구에 달한다. 이 중 3분의 1 가까운 1만5000여 가구가 내년에 입주할 예정이다. 오는 2월 입주 예정인 서울 강동구 상일동 e편한세상강일어반브릿지 소유자 중에는 실거주 의무 폐지가 무산될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기존에 살고 있는 전셋집을 부동산에 내놓는 사람도 많다. 이런 경우 다음 세입자를 구하고 보증금을 제때 돌려받는다 하더라도, 수백만 원에 달하는 중개 수수료는 집주인이 아닌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 2025년 1월 입주 예정인 단군 이래 최대 재건축 단지 ‘올림픽파크 포레온’(1만2000가구)도 실거주 의무 2년이 적용된다. 실거주 의무를 어기면 1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해지고 당첨된 아파트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 분양가 수준으로 넘겨야 한다.

법 개정이 늦어지자 여당은 실거주 의무는 유지하되 아파트 매각 전까지 의무 기간을 채우는 절충안을 제안했지만 야당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여야는 임시국회 기간인 이달 21일 마지막 법안소위를 열고 합의를 시도한다. 내년 4월 총선이 임박한 만큼, 이날도 합의에 실패하면 실거주 의무 폐지는 백지화될 가능성이 높다. 이창무 한양대 교수는 “집값 급등기에 급조된 대책인 만큼, 지금 시장 상황과는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박상우 신임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도 인사청문회 답변 자료를 통해 “실거주 의무는 국민 주거 이전을 제약하고 신축 임대주택 공급을 위축시키는 등 부작용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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