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카페] “루돌프 눈은 자외선카메라” 과학이 밝힌 순록의 비밀

이영완 과학에디터 2023. 12. 19.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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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청색으로 변해 자외선 감지력 상승
청색광 많은 겨울에 순록이끼 잘 찾아
빨간 코엔 혈관 많아 과열·동상 방지
극지 적응력 뛰어나지만 온난화엔 속수무책
산타 모자를 쓴 순록. 산타가 순록 루돌프에게 썰매를 맡긴 것은 최상의 선택이었다. 순록은 빛이 약한 겨울에 자외선을 감지하는 눈을 가져 스스로 먹이를 찾고, 혈관이 많은 빨간 코로 몸이 과열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Pixabay

과학은 동심(童心) 파괴자이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산타클로스가 하룻밤에 전 세계로 선물을 전달하기는 불가능하다고 계산하는 과학자가 등장한다. 올해는 동심을 지키는 과학자가 먼저 나섰다. 산타가 북극 순록(학명 Rangifer tarandus)인 루돌프에게 썰매를 맡긴 게 얼마나 잘한 일인지 분석한 연구 결과가 나왔다. 순록의 눈과 코가 눈밭을 달리기에 안성맞춤이라는 것이다.

노르웨이 스발바르 제도의 순록이 눈을 헤치고 지의류를 뜯고 있다. 순록은 빛이 약한 겨울에 눈으로 자외선을 감지할 수 있어 먹이를 쉽게 찾을 수 있다./Espen Bergers, 미 다트머스대

◇겨울엔 눈이 파랗게 변해 자외선 감지

미국 다트머스대 인류학과의 나다니엘 도미니(Nathaniel Dominy) 교수와 스코틀랜드 세인트앤드루스대 심리뇌신경과학과의 줄리 해리스(Julie Harris) 교수 연구진은 지난 15일 국제 학술지 ‘아이퍼셉션(i-Perception)’에 “순록의 시각은 한겨울 어두운 눈밭에서 먹이를 찾는 데 최적화됐다”고 밝혔다. 산타가 썰매에 따로 먹이를 준비하지 않아도 루돌프가 알아서 찾아 먹을 수 있다는 말이다.

연구진은 크리스마스 시즌에 맞춰 순록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나다니엘 교수는 “순록은 정말 멋진 동물이지만 사람들은 크리스마스 때만 생각한다”며 “지금이야말로 순록의 특별한 시각에 대해 알릴 좋은 시기”라고 말했다. 그는 1939년 그림동화로 산타 썰매를 끄는 루돌프를 창시한 인물도 다트머스대 졸업생인 로버트 메이(Robert May)였다고 말했다.

순록은 겨울에 눈밭을 뒤져 ‘클라도니아 랑기페리나(Cladonia rangiferina)’를 찾아 먹는다. 랑기페리나는 ‘순록 이끼’로 불리지만 엄밀히 말하면 이끼(선태류)와 다른 지의류(地衣類)이다. 이끼는 잎을 가진 식물이지만, 지의류는 녹조류나 남조류가 균류와 공생하는 복합 유기체이다. 연구진은 “순록의 눈은 겨울에 자외선을 잘 감지하는 형태로 버뀌어 눈 속에서 자외선을 흡수하는 지의류를 쉽게 찾을 수 있다”고 밝혔다.

로버트 메이의 1939년 작 그림 동화 '빨간코 순록 루돌프' 표지./미 다트머스대

순록의 눈은 계절에 따라 색이 바뀐다. 여름에는 황금색을 띠다가 겨울에는 파란색이 된다. 동물은 어두운 곳에서도 잘 보기 위해 망막에 추가 반사판인 휘판(輝板, tapetum)을 갖고 있다. 이 반사판이 계절마다 다른 색으로 바뀐다.

북극권은 겨울에 해가 지평선 아래에 있어 햇빛 대부분이 청색광이다. 오존층이 지평선 근처에서 수평으로 온 빛 중 청색광만 통과시키기 때문이다. 순록은 반사판을 파란색으로 바꿔 청색광을 잘 받아들인다. 약한 빛이라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다.

청색 반사판은 자외선도 잘 감지한다. 덕분에 순록은 눈에 자외선 카메라를 단 것처럼 자외선을 흡수하는 물질과 반사하는 물질을 잘 구분할 수 있다. 눈은 자외선을 반사하고 순록 이끼는 자외선을 흡수한다. 순록 눈에는 하얀 눈이 더 밝게 보이고 원래 옅은 색인 순록 이끼는 진하게 보여 쉽게 찾을 수 있다.

특히 순록은 여러 지의류 중에서 자신이 선호하는 종만 찾을 수 있도록 시각을 발달시켰다. 스코틀랜드 케언곰 국립공원에서는 멸종했던 순록을 복원하고 있다. 고지대인 이곳에는 지의류 1500여종이 살고 있다. 연구진은 자외선 카메라로 이들을 촬영했다. 그중 순록이 찾는 종이 자외선을 가장 강하게 흡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순록은 눈밭에서 가장 진하게 보이는 랑기페리나를 골라 먹을 수 있다는 말이다.

순록은 눈으로 자외선을 볼 수 있다.사람 눈에는 눈밭에 있는 순록 이끼가 잘 보이지 않지만(위 사진), 순록 눈에는 순록 이끼가 자외선을 흡수해 검게 보인다(아래 사진). 반면 눈은 자외선을 반사해 하얗게 보여 눈 속에서도 금방 먹이를 찾을 수 있다./Nathaniel Dominy, 미 다트머스대

◇나비 날개처럼 망막 미세구조가 색 결정

그렇다면 루돌프는 어떻게 계절 따라 시각을 조절할 수 있을까.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 안과학연구소의 로버트 포스버리(Robert Fosbury) 교수는 지난해 영국왕립학회보B에 그 비밀을 밝혔다. 순록의 눈 색깔이 달라지는 것은 색소(色素)가 아니라 반사판 미세 구조의 변화 때문이었다.

모포(Morpho) 나비는 밝게 빛나는 파란 날개로 유명하다. 나비의 날개에는 색소가 없다. 대신 날개에 덮여 있는 비늘 표면에 크리스마스 트리의 가지처럼 생긴 광결정(光結晶) 구조가 있다. 모포 나비의 광결정은 파란색 파장의 빛만 반사하고 다른 빛은 그대로 통과시킨다. 이 때문에 나비 날개가 파랗게 보이는 것이다.

순록 눈의 반사판도 나비 날개처럼 콜라겐 섬유 다발로 구성된 미세 구조물이 있다. 투명한 상자에 육각형 연필을 다발로 세웠다고 보면 된다. 겨울에 연필을 촘촘히 세우고 물을 채우면 청색광을 반사한다. 여름에는 연필 간격이 늘어나 물이 더 들어간다. 이제는 반사판이 노란색 계열 빛을 반사해 눈이 황금색을 띤다. UCL 연구진은 “겨울에는 타이어에서 공기를 빼 얼음판에서 마찰력을 높이듯, 순록도 겨울에 눈에서 액체를 빼고 주변을 더 잘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순록이 겨울에 자외선을 보면 먹이를 잘 찾을 뿐 아니라 천적인 늑대를 피하기도 좋다. 순록은 한겨울 해 질 녘에 먹이를 먹는다. 이때는 늑대가 사냥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순록은 해 질 녘에 많은 청색광에 시각을 맞춰 늑대 움직임도 쉽게 간파할 수 있다.

순록의 코는 붉은색을 띤다(오른쪽). 코에 모세혈관이 사람보다 25%나 많다. 순록이 러닝머신에서 달린 뒤 적외선 카메라로 촬영하면 코(가운데 화살표)가 유독 온도가 높은 것을 알 수 있다. 가운데 사진에서 파란색은 15°C, 흰색은 19°C, 빨간색은 24°C를 나타낸다. /노르웨이 트롬쇠대

◇빨간 코는 과열 막는 천연 냉각장치

과학자들은 순록의 코에 담긴 비밀도 밝혀냈다. 순록은 루돌프 노래 가사처럼 코가 불붙듯 붉다. 노르웨이 트롬쇠대 연구진은 2012년 국제 학술지 ‘브리티시 메디컬 저널(BMJ)’에 순록 코의 모세혈관은 1㎟당 20개로 사람보다 혈관이 25%나 많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썰매를 끌고 달리면 코가 빨개질 수 있다. 사람도 추우면 코가 빨개진다. 체온을 올리기 위해 콧등으로 혈액이 모이면서 혈관이 확장되기 때문이다. 사람보다 모세혈관이 더 많은 순록은 빨개질 가능성이 더 크다.

실제로 연구진이 실험실에서 순록을 달리게 하고 적외선 카메라로 촬영했더니 힘을 낸 다리와 함께 코 주위에 혈액이 모여 온도가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순록은 코에 혈액을 모을 수 있어 달리는 동안 코 끝이 얼어붙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또 천적을 피해 달릴 때 뇌로 과도한 열이 가지 않도록 식히는 역할도 할 수 있다고 밝혔다. 난방과 냉방을 겸하는 셈이다. 순록은 사람처럼 땀을 흘려 열을 식히지 못한다.

다트머스대의 나다니엘 도미니 교수는 2015년 다른 방식으로 로버트 메이의 동화에 나온 이야기가 신빙성이 있는지 분석한 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당시 그림동화처럼 루돌프의 빨간 코가 동료들에게 길을 안내하는 안개등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했다.

연구진은 그림동화 속 루돌프 코의 붉은색이 크리스마스 장식에 쓰이는 호랑가시나무의 열매와 비슷하다는 점에 착안했다. 실제로 호랑가시나무 열매의 색을 측정해보니 포유류가 최대로 낼 수 있는 붉은색이었다. 만약 루돌프가 호랑가시나무 열매처럼 붉은 코를 가졌다면 안개 속에서도 동료들이 볼 수 있어 효과적인 안개등이 될 수 있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도미니 교수는 루돌프의 붉은색 코가 가진 단점도 지적했다. 노르웨이 연구진이 밝혔듯 코에 혈관이 많으면 열을 식히는 데 좋지만, 지나치면 체온을 잃어 저체온증에 빠질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도미니 교수는 “크리스마스 전날 이브에는 루돌프가 에너지를 충분히 보충할 수 있도록 반드시 고칼로리 음식을 제공해야 한다”고 산타에게 당부했다. 동심을 지키기 위한 과학자의 충고니 산타도 수용할 만하다.

'눈에 내린 비(rain on snow, ROS)'가 얼면서 생긴 두 개의 얼음층(점선). 온난화로 비가 자주 내리는 상황에서 갑자기 기온이 떨어지면 빗물이 얼어 눈 위에 얼음층을 만든다. 순록은 눈을 헤치고 지의류를 찾아 먹는데 얼음층이 두꺼우면 그러지 못해 굶어 죽는다./Florian Stammler

◇온난화가 부른 겨울비로 위기 내몰려

산타가 불안한 것은 루돌프보다 지구온난화이다. 북극의 추운 겨울에 최적화된 루돌프도 지구온난화에는 속수무책이기 때문이다. 노르웨이 극지연구소는 지난 2019년 북극해 스발바르 제도(諸島)에 사는 순록 200여 마리가 굶어 죽었다고 보고했다. 온난화로 겨울이 따뜻해지면서 순록이 먹잇감인 식물을 더 쉽게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정반대였다.

노르웨이 연구진은 순록이 ‘눈에 내린 비(rain on snow, ROS)’ 현상 때문에 굶어 죽었다고 설명했다. 온난화로 북극 지역에도 겨울에 비가 자주 내린다. 기온이 다시 떨어지면 빗물이 얼어붙어 얼음층을 형성한다. 순록은 눈을 헤쳐 이끼를 찾는데, 비가 많이 내려 눈 속에 얼음이 2㎝ 이상 두께로 얼면 먹잇감을 찾지 못한다.

눈에 내린 비 현상으로 인해 겨울에 순록 개체 수가 계속 줄고 있다. 유난히 비가 많이 내렸던 1993년 겨울에는 스발바르의 순록 개체 수가 70%나 줄었다. 연구진은 “겨울철에 순록 개체 수가 갈수록 감소하면서 온난화로 여름이 길어지면서 증가한 개체 수를 곧 상쇄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겨울비는 순록의 몸무게도 떨어뜨렸다. 2016년 스코틀랜드 제임스 허튼 연구소 연구진은 영국 생태학회 학술대회에서 “겨울에 내린 비가 어는 일이 잦아지면서 순록 암컷의 몸무게가 1994년 평균 55㎏에서 2010년 48㎏으로 줄어들었다”고 발표했다. 연구진은 암컷 몸무게가 새끼를 낳을 수 있는 한계선인 50㎏ 미만이 되면서 출산 도중 새끼가 죽거나 저체중으로 태어나는 일이 늘었다고 밝혔다.

참고 자료

i-Perception(2023), DOI: https://doi.org/10.1177/20416695231218520

Proceedings of the Royal Society B(2022), DOI: https://doi.org/10.1098/rspb.2022.1002

Frontiers for Young Minds(2015), DOI: https://doi.org/10.3389/frym.2015.00018

BMJ(2012), DOI: https://doi.org/10.1136/bmj.e8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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