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미칼럼] 대통령의 신년 회견

황정미 2023. 12. 18.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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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전 국민 설득할 마지막 기회
與 비대위-2기 내각 구상이 뭔지
현안에 답변하고 설명할 책임 있어
‘소통하는 지도자’ 초심 되새겨야

최근 흥행하는 영화 ‘서울의 봄’ 상영관에는 팝콘과 콜라를 든 젊은이들이 꽤 많았다. 1979년 12월12일 신군부 세력의 ‘9시간 반란’을 흥미진진하게 지켜본 이들은 부모 세대에 묻는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어?” 상상력이 뒤섞인 영화를 놓고 어디까지 사실이냐를 따지고 싶진 않다. 그런 일이 있었고, 앞으로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영화에서 반란을 도모하면서 “우리는 하나다”를 외친 막강한 군 사조직 하나회는 사라졌다. 정부 출범 첫해인 1993년 육군참모총장, 기무사령관부터 영관·위관급 장교들까지 ‘하나회’ 군복을 벗긴 김영삼 대통령(YS)은 회고록에서 “질풍노도, 전광석화와 같은 군부 숙정(肅正)이었다”고 썼다.

YS는 집권 초반 높은 지지율을 누렸다. 그런 그도 5년 임기가 지날수록 측근들에 “외롭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외부 인사들에 “바쁜 행사를 마치고 관저로 들어가면 아무도 없는 절간과 같았다”고도 했다. YS 집권 변곡점으로 1996년 1월 신년 기자회견 취소를 꼽는 이들도 있다. 회견일을 불과 나흘 앞두고 예정된 신년 회견을 전격 취소했다. 12·12 주동자였던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구속과 대선자금 수사 파장이 확산되던 시기였다. 대선자금 의혹 등 민감한 현안을 피하려던 것 아니냐는 비난을 샀다.
황정미 편집인
YS를 비롯해 역대 대통령 자서전을 보면 엄청난 압박을 이겨내고 내린 고독한 결단을 평가받지 못한 데 대한 회한이 곳곳에서 느껴진다. 그렇다고 국민에 서운해할 일은 아니다. 회한을 느끼는 깊이만큼 국민과 소통하지 않은 국가 최고 지도자의 책임이 크다. 한 언론이 연재 중인 회고록에서 “후회된다”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잦은 발언에 공감하기 어려운 이유다. ‘불통 리더십’이 자초한 결과 아닌가. 취임사에서 “국민과 수시로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다”던 문재인 전 대통령도 쇼처럼 진행된 연례 회견에만 등장하고 조국 사태 같은 현안에는 침묵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새롭게 시도했던 출근길 약식 회견(도어스테핑)은 중단된 지 1년이 넘었다. 다른 소통 방식을 찾아보겠다고 했지만 그사이 국내 한 언론사와의 독점 인터뷰, 다수의 외신 인터뷰가 있었을 뿐이다. 대통령은 신년 회견을 생략한 채 신년사를 발표했고 국정 현안에 대한 입장을 국무회의 생중계를 통해 전달한다. 급박한 외교 강행군과 국정 관리에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코피를 쏟을 정도로 과로에 시달린다 해도 제대로 된 소통이 없다면 국민 호응을 얻기 힘들다. 30%대에 갇힌 지지율 수치가 보여 준다. 대통령실은 국정 현안에 충분히 설명했다고 느낄지 몰라도 국민들이 풀지 못한 질문은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부산 엑스포 유치 실패는 정부의 올인 전략 탓에 기대가 부풀려져 국민 실망이 컸다. 대통령은 이례적으로 긴급 담화를 통해 “저의 부덕의 소치”라고 사과했다. 그렇게 넘어가기에는 국익과 국민 자존심에 큰 상처를 남겼다. 막판까지도 경합 가능성을 오판했던 경위, 그에 따른 문책 여부가 궁금하다. 이제 용산 관심은 온통 내년 4월 총선에 쏠려 있다. ‘윤핵관’(윤 대통령 핵심 관계자)으로 불린 장제원 의원의 불출마 선언, 김기현 대표의 대표직 사퇴, 한동훈 비대위원장 체제 전환까지 ‘윤심’ 논란이 이어진다. 정부 중간 평가로 불리한 여건인데 용산 주도로 총선을 치르겠다는 뜻인지 의아하다.

새해 신년 회견은 총선을 앞두고 윤 대통령이 국민 앞에서 국정 구상과 각오를 설명할 마지막 기회다. 마침 내각, 대통령실이 바뀌었고 여당은 비대위 체제가 출범한다. 새 진용으로 어떻게 구상을 펼쳐갈지 밝힐 좋은 자리다. 김건희 여사의 명품 백 수수 논란처럼 대통령으로선 껄끄러운 질문도 나올 것이다. 야당이 정치쟁점화하는 상황에서 침묵은 국민 의구심만 키운다. 대통령은 지난 10월 강서구청장 보선 참패 후 참모진과 회의에서 “국민은 늘 무조건 옳다”고 했다. 국민이 궁금해하는 질문에 답변하고 설득할 책임이 대통령에 있다. 기자들은 국민들의 질문을 대신할 따름이다.

황정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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