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갑수의 여행이라는 꽃다발 <32> 전남 고흥] 삼치와 장어, 열무김치와 피굴, 문어 코까지…고흥 미식 여행

최갑수 2023. 12. 18.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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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 전통 시장 풍경. 사진 최갑수

남도 끝자락에 자리한 고장 고흥. KTX가 순천까지 개통되기 전까지는 정말 멀고 먼 곳이었다. 전남 고흥을 두고 ‘가도 가도 천리’라는 말도 있을 정도였으니까. 이제는 한결 수월해졌다. 철도가 뚫렸고, 완주~순천 간 고속도로가 열렸다. 남원, 구례 등을 줄줄이 거쳐야 했던 길도 고흥까지 곧장 내달릴 수 있게 됐다. KTX를 이용하면 서울 용산역에서 순천까지 2시간 30분, 순천에서 고흥까지는 자동차로 1시간이면 닿는다.

최갑수시인, 여행작가, ‘우리는 사랑 아니면 여행이겠지’ ‘밤의 공항에서’ 저자

남도의 숨겨진 맛 고장

남도에서 맛의 고장 하면 목포나 여수를 떠올리지만, 고흥도 여기에 뒤지지 않는다. 맛 마케팅에서 뒤진다면 모를까 맛에서는 오히려 앞설지도 모른다. 고흥을 대표하는 음식 가운데 가장 앞자리에 놓을 것은 삼치회다. 지금 딱 맛이 오를 때다. 나로도 여객터미널 근처에 갓 잡아낸 삼치를 회로 내는 식당이 여러 집 있다. 나로도항은 예부터 삼치로 이름을 날린 포구. 일제강점기에는 삼치 파시가 열릴 정도였다. 일본인은 나로도항을 삼치잡이 전진기지로 삼았는데, 그들이 최고로 친 삼치가 바로 나로도 삼치였다.

1960~70년대는 나로도 삼치잡이의 최전성기였다. 나로도항을 드나드는 삼치잡이 배들만 200여 척이 됐다. 그때만 해도 삼치는 귀한 어종이었다. 잡는 족족 ‘대일 무역선’이라 부르던 배에 실려 일본으로 전량 수출하는 바람에 제철에도 국내 생선 가게에서는 구경하기가 힘들었다. 당시 삼치는 1㎏당 5000원을 받았는데 TV 1대가 3만5000원 할 때였으니 얼마나 비싼 대접을 받았는지 알 수 있다. ‘삼치 배 한 척이면 평양 감사 안 부럽다’라는 말도 있었다. 지금도 삼치 하면 나로도를 최고로 쳐준다. 우리가 구이로 즐겨 먹는 30~50㎝ 정도의 삼치는 나로도에서는 삼치 축에도 끼지 못한다. 적어도 1㎏이 넘어야 그나마 삼치라 불리고, 3㎏이 넘어야 ‘아, 삼치구나’ 하는 대접을 받는다.

삼치를 즐기는 사람들은 삼치 맛을 ‘입에서 살살 녹는다’고 표현하는데 삼치회 한 점을 맛보면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씹지 않고 혀만으로도 즐길 만큼 부드러운 것이 바로 삼치회다. 은백색을 띠고 있는 배 쪽 살이 지방 함량이 많아 제일 맛있다. 황가오리회를 맛보지 않았다면 고흥을 맛보지 않은 것이다. 노랑가오리라고도 부르는데 이름처럼 배 쪽이 누런색을 띠고 있다. 녹동항에서 주로 잡힌다. 읍내에 자리한 ‘도라지식당’의 명성이 자자하다. 흔히 볼 수 있는 허름한 식당 분위기인데, 이 식당에선 15㎏이 넘는 큰 것들만 취급한다. 100㎏이 넘는 것도 있는데, 날개를 펼치고 덮치면 어부가 죽는다고 한다.

황가오리회를 시키면 날개살과 뱃살을 섞은 회와 애(간)가 함께 나온다. 회가 나오면 ‘와~’ 하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언뜻 보기에는 마블링이 깊게 박힌 쇠고기 등심 같다. 참기름장에 찍어 한 입 맛보면 일단 쫀득한 맛이 먼저 느껴진다. 맛은 한우 생고기와 비슷한데 조금 더 담백하다. “자, 이젠 깻잎 위에 회 한 점 올리고 밥이랑 함께 싸서 드셔보쇼.” 주인장이 추천하는 황가오리회 맛있게 먹는 법이다. 주인장이 가르쳐 준 방법으로 먹으니 풍미가 한껏 올라간다.

다음엔 애를 맛본다. 신선하지 않으면 먹을 수 없는 것으로, 좋아하는 이들은 애를 먹어야 황가오리 한 마리 다 먹는 것 같다고 칭찬할 정도다. 애 맛은 풍성하고 농밀하다. 푸아그라에 뒤지지 않는 맛이다. 애 한 점을 기름소금에 찍어 입에 넣으면 흐물흐물 녹듯이 넘어간다. 홍어 애가 맛있다지만, 황가오리 애가 더 부드럽고 맛이 진하다. 아귀 애도 황가오리 애에 비하면 싱겁다.

고흥은 장어탕으로도 유명하다. 여수나 통영의 그것과는 스타일이 조금 다르다. 훨씬 더 터프하다. 야구 배트 크기만 한 장어 한 마리를 뭉텅뭉텅 썰어 넣는다. 국물도 진하고 구수하다. 국물을 낼 때 된장을 풀고 고춧가루를 넉넉하게 뿌리기 때문이다. 구수한 된장과 붕장어의 고소함이 어울려 진득하면서도 개운한 맛을 빚어낸다.

녹동항 전경. 사진 최갑수

먹어도 먹어도 끝나지 않는 별미

백반집에서 반찬으로 나오는 음식도 하나같이 맛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음식은 열무김치다. 고흥을 왔다 갔다 하며 고흥 사람이 열무김치에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열무김치가 열무김치지 뭐’ 하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먹었는데 웬걸, 정말 눈이 번쩍 뜨이는 맛이었다. ‘세상에. 아니, 지금까지 내가 먹은 열무김치는 도대체 뭐야!’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말이다. 어느 백반집에서 열무김치를 처음 맛본 후 고흥을 찾을 때마다 삼치 횟집에서도 장어탕 집에서 나는 열심히 열무김치를 먹어댔다.

고흥식 열무김치는 풋고추와 밥을 갈아 넣어 만든다. 상큼하면서 시원한 맛이 난다. 그러면서도 입 안에 질척하게 감기는 맛이 있다. 어떤 집은 달짝지근하고 어떤 집은 매콤하다. 집집이 그 맛이 다르다. 열무의 아삭함은 기본이다. 아마 이전에도 취재 때문에 고흥을 드나들며 분명 열무김치를 먹었을 것이다. 그때는 뭐, 아무 맛도 모르고 먹었겠지. 맛도 아는 만큼 보인다. 누군가 맛있다고 가르쳐 주면 그 맛이 보이는 것이다.

피굴이란 음식도 소개해야겠다. 난생처음 보는 굴 요리였다. 고흥에서만 먹을 수 있단다. 굴로 끓인 국처럼 보이는데 그렇다고 국은 아니다. 따뜻하게 먹지 않고 차갑게 해서 먹는다. 어떻게 만드냐고 물어보니, 껍질이 있는 굴을 찌면 굴에서 물이 나오는데 그 물을 모아 만든다고 한다. 굴은 꺼내 껍질은 버리고 알만 국물 속에 넣는다. 피굴의 ‘피’는 껍데기를 말한다. 양념은 쪽파를 썰어 넣고 참깨를 뿌리고 참기름 한 방울 넣는다. 그게 전부다. 소박한 맛, 진솔한 맛이다. 고흥 술꾼들이 최고의 해장 음식으로 쳐준다.

고흥에서는 매생이를 국으로 먹는 것이 아니라 덖어 먹는다. ‘매생이덖음’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짐작이 가겠지만, 국보다 훨씬 진하다.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다. 먼저 매생이를 깨끗하게 씻어서 준비해 놓고, 냄비에 참기름을 두르고 마늘과 생굴을 넣은 후 센불에 달달 덖어준다. 굴이랑 마늘을 덖을 때 물이 나오기 시작하면 그때 매생이를 넣고 중약불로 불을 낮추고 잘 저어주며 보글보글 끓여 주면 완성이다. 젓가락을 꽂았을 때 젓가락이 서 있어야 제대로 된 매생이덖음이다. 매생이덖음을 먹을 때 주의해야 할 건 매생이덖음은 뜨거워도 김이 안 난다는 것. 잘못했다가는 입천장이 홀라당 까질 수 있으니 조심조심 후후 불어서 먹어야 한다.

문어 코, 맛없으면 환불해 드립니다

문어 코 구이도 있다. 녹동항에 있는 신성식당이 국내에서 유일하게 문어 코를 파는 식당이다. 주문하고 기다리니 초벌구이를 해서 나왔다. 음, 언뜻 보기엔 굳이 안 먹어 봐도 짐작이 되는 맛이었다. 그래도 왔으니 맛은 봐야지. 살짝 덜 익은 게 맛있다는 주인아주머니의 말씀을 듣고 기름장에 찍어 입에 넣어 본다. 그 순간 감탄이 터져 나온다. 아니, 이런 맛이 있었다니!

여행수첩

고흥에서 맛보는 국산 커피 고흥에는 커피도 난다. 고흥에는 커피 원두를 재배하고 있는 농가가 많다. 고흥읍과 녹동항 등에 고흥 커피를 맛볼 수 있는 카페가 있다. 나로커피220 녹동점은 녹동항 풍경을 바라보며 고흥산 커피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한국 우주과학의 산실 나로우주과학관은 우리나라 우주 발사체 나로호의 산증인이다. 1, 2층으로 구성된 우주과학관에는 우주로 이동하기 위한 기본 원리와 우주 탐사, 로켓과 인공위성 등을 주제로 전시되어 있으며, 우주과학에 대해 다양한 체험을 해볼 수 있다. 고흥우주발사전망대는 역사적인 나로호 발사 모습을 보기 위해 수많은 관광객이 모여드는 곳이다. 지상 7층 높이 규모로 고흥과 여수 사이의 바다에 떠 있는 여러 섬과 멀리 나로도의 장관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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