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차엔 빵빵, 포르쉐엔 벌벌…“레이 따위가” 욕하다 ‘회장님’ 내리니 ‘철렁’ [세상만車]

최기성 매경닷컴 기자(gistar@mk.co.kr) 2023. 12. 17. 13:09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동물처럼 차종에 따라 서열 따져서야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 약해서야
차만 명품? 사람도 차도 명품이어야!
롤스로이스 사고 장면(왼쪽)과 레이를 극찬한 박용만 전 두산그룹 회장 [사진출처=카라큘라탐정사무소, 박용만 전 회장 SNS]
‘거리의 여인’ 비비안은 하룻밤을 같이 보낸 기업 인수합병 전문가인 에드워드의 제안으로 일주일 동안 거액을 받고 고용됩니다. 비비안은 고용 기간 동안 에드워드 신분에 걸맞은 드레스를 입기 위해 명품 매장에 갔다가 직원에게 천대받죠. 천박(?)하게 섹시한 매춘부 옷차림 때문입니다. 비비안이 “나 옷 살 돈이 있다”고 해도 직원은 무시합니다. “너는 우리 옷을 입을 자격이 없다”는 무언의 저격이죠. 망연자실한 비비안은 자신의 처지를 다시 한번 확인한 뒤 쓸쓸하게 나와 에드워드와 함께 묵는 호텔로 갑니다. 비비안은 호텔 지배인 톰슨의 도움으로 숙녀 수업을 받은 뒤 ‘귀티’나는 옷을 입고 다음날 자신을 문전박대했던 매장을 다시 찾아갑니다. 달리진 옷에 자신을 몰라보고 극진히 환대하는 직원들에게 “당신들 큰 실수 한거야”라고 쏘아붙이며 의기양양하게 자리를 박차고 나옵니다.
귀여운 여인 [사진출처=영화 포스터]
줄리아 로버츠와 리처드 기어가 나오는 로맨틱 코미디 영화 ‘귀여운 여인’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대리만족과 통쾌함을 선물하는 명장면으로 평가받습니다.

줄리아 로버츠 소식을 전하는 해외토픽을 읽다 이 장면과 함께 웹툰 작가 주호민의 ‘포르쉐 발언’이 떠올랐습니다.

옷차림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것처럼 자동차 종류로도 사람을 평가하는 사회적 현상 때문입니다.

경차에서 포르쉐로 바꾸니 서열 상승?
주호민이 구입한 포르쉐 911 [사진출처=주호민 유튜브]
주호민은 2년 전인 2021년 8월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포르쉐 911 대작전’이라는 제목으로 영상을 올렸습니다. 영상을 통해 주호민은 노란색 포르쉐 911 카레라S를 직접 운전하며 소감을 전했죠.

그는 “어렸을 때부터 토리야마 아키라 만화에 나오는 포르쉐를 좋아했다”면서 “작년에 마흔 살이 된 기념으로 드림카를 장만하려다가 어영부영 넘어갔는데 염따 선생의 ‘질러라, 그리고 더 열심히 일해라’는 철학에 영향을 받았다”고 구입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그는 포르쉐 911을 사기 전에는 기아 경차인 레이를 탔습니다. 출고가 기준으로 포르쉐 911 카레라S가 레이보다 10배 이상 비쌉니다.

주호민은 레이를 포르쉐 911로 바꾼 뒤 달라진 ‘대접’에 대해서도 소개했습니다.

그는 “레이를 탈 때보다 (상대 운전자들이) 저를 관대하게 대해준다”며 “끼어들기를 할 때, 레이를 몰 때는 잘 안 껴줬는데 포르쉐로 깜빡이를 켜고 들어가려고 하면 양보를 많이 해주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말했습니다.

기아 레이 [사진촬영=최기성 매경닷컴 기자]
주호민이 느낀 것처럼 옷차림이나 차에 따라 달라지는 시선은 심리학과 문화인류학에서도 종종 소개됩니다.

그만큼 흔하다는 뜻이겠죠. 럭셔리 브랜드 행사에 초청받아 낡은 제 차를 끌고 가 주차하고 내렸을 때가 생각나네요.

행사요원이 저와 차를 슬쩍 쳐다보더니 “행사 참석자들만 주차하는 곳이니 여기 말고 다른 곳에 세우세요”라고 말했죠. 저도 ‘고향’에서는 “귀티난다”는 말을 들었는데 말입니다.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차량의 경적 울림은 사람이 아닌 차종에 따라 좌우된다고 합니다. 현장 실험도 이뤄졌습니다.

연구자들은 고급차량과 저가차량을 대상으로 녹색 신호등이 바뀌고 몇 초 지나서 뒤차 운전자가 경적을 울리는 지 측정했습니다.

뒤차 운전자들은 저가차량에 경적을 더 빨리, 더 많이 울리는 것으로 나왔습니다.

사회학자 안드레아스 디크만은 독일 뮌헨에서 차량의 ‘등급’과 공격성에 대해 조사했습니다.

길을 막는 차량은 ‘중급’ 폭스바겐 제타가 담당했습니다. 제타가 길을 막았을 때 경적을 울리고 전조등을 켜는 것을 공격성 지표로 삼았습니다.

실험 결과, 제타보다 고급차량을 모는 운전자일수록 공격적인 행동을 할 가능성이 비례해서 높아졌다고 합니다.

車 할부·리스·렌트로 신분·계급 위장 가능
타면 서열이 높아진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은 슈퍼카와 럭셔리카 [사진출처=각사]
심리학과 문화인류학에서는 인간은 대다수 동물들처럼 위계를 따르는 종이고 상대방을 볼 때 암묵적으로 서열을 정한다고 합니다.

차종은 사회적·경제적 서열을 정하는 기준이 되기도 합니다. 고급차량을 타면 자신도 그만큼 서열이 상승한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더 나아가 저가차량 운전자는 서열이 ‘낮은 사람’, 자신은 ‘높은 사람’이라고 간주해 자신의 서열을 뽐내면서 상대방을 억누르고 싶어하는 욕구를 느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자신보다 서열이 낮은(낮다고 여겨지는) 차종의 운전자에게는 난폭하게 굴어도 된다고 여기기도 합니다.

주변에 있는 기아 모닝, 현대차 캐스퍼, 쉐보레 스파크 등이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신경질 냅니다.

사실 서열이 낮은 차종들을 무시하는 사람들 중 일부는 위장술을 사용했습니다.

“우리 집에 금송아지 있다”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도로에서는 자신이 사는 아파트 값이 얼마인지, 은행 통장에 예금은 얼마나 있는 지 등은 보이지 않기 때문이죠.

차량만으로 자신의 신분·계급과 경제적 상황을 철저히 위장할 수 있습니다. ‘위장 신분’으로 어쩌면 자신보다 서열이 높을 수 있는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는 행동을 하는 셈이죠.

포르쉐 카푸어로 유튜브에 등장한 차주 [사진출처=유튜브 안과장 영상 캡처]
서열을 철저히 위장하려면 문제가 있습니다. 돈입니다. 일반 명품의 경우 값싼 ‘짝퉁’이나 중고품을 구입, 서열이 높은 것처럼 위장하는 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집 다음으로 비싼 차는 다릅니다. 짝퉁을 만들기 어렵습니다. 가격을 크게 아낄 수 있는 중고차는 ‘명품백’과 달리 낡은 티가 팍팍 납니다.

궁하면 통합니다. 비싼 차를 팔아야 이익을 더 많이 낼 수 있는 자동차·금융회사들이 경제적 서열을 위장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서 알려줬습니다.

‘조삼모사’이지만 목돈이 없어도 탈 수 있는 할부·리스·렌트 등입니다.

카푸어(Car-poor)로 전락할 수도 있지만 ‘높은 사람’으로 위장하는 맛에 중독되면 지금 당장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여깁니다.

경차 무시하다 망신, 유쾌·상쾌·통쾌
사고를 낸 롤스로이스 차량과 운전자 [사진출처=카라큘라탐정사무소 갈무리]
차종으로 상대방을 무시하는 일들은 온라인 커뮤니티에 단골소재로 등장합니다. 커뮤니티에 나왔던 사례를 소개하겠습니다.
#국산차 운전자가 자녀와 함께 귀가하던 중 골목길에서 마주 오던 벤츠 차량과 시비가 붙었습니다. 젊어 보이는 벤츠 차량 운전자가 아이들도 있는데 반말을 해서 시비가 붙었다고 하네요. 그 때 벤츠 차량에서 젊은 여자가 내리더니 “어디서 이런 거지 차를 끌고 와서 XX이냐”며 욕을 했다고 합니다. 심지어 아이들을 향해 ‘거지 차’ 운운하며 “너희 엄마 아빠 부끄럽지” 등의 말까지 했다고 하네요.

약자에게 매우 강하고, 강자에게는 매우 약한 ‘양아치 운전자’들이 참 많습니다. 이런 행태를 볼 때마다 세상 참 살 맛 나지 않습니다.

이와 달리 비싼 차라며 도로에서 보복운전이나 갑질을 하다 망신을 당할 때, 차종으로 정해진 위계질서가 무너질 때 ‘귀여운 여인’에 나오는 명장면과 같은 통쾌함을 맛보기도 합니다.

보복운전하면서 겁박하다 거구의 경차 운전자를 보고 딴청을 피우는 고급차 운전자의 모습을 담은 블랙박스 영상은 유쾌·상쾌·통쾌를 선사했죠.

“사람은 차를, 매너는 사람을 만든다”
출근길 막은 벤츠에 ‘빵’하자 손가락으로 욕을 하는 운전자 [사진출처=MBC 자막뉴스 캡처]
“차만 명품이네.”

주위에서 멋진 고급차를 타고 명품으로 치장한 운전자가 상식 이하의 행동을 할 때 떠오르는 말입니다.

명차에 어울리는 멋진 품성을 지닌 운전자에게는 “사람도 차도 명품이네”라는 말을 할 수 있겠죠.

주제파악 못한다고 욕먹을 수 있는 카푸어라도 차종에 어울리는 멋진 행동을 한다면 인성만큼은 ‘푸어’가 아닙니다.

배우 김민종의 미담이 생각납니다. 지난 9월 경차를 몰던 40대 여성이 아파트 주차장에서 롤스로이스 차량과 미세한 접촉 사고를 냈죠.

여성은 차주에게 곧바로 연락했지만 답장이 없었습니다. 12시간 뒤 여성은 차주의 답장을 받았습니다. “연락 주셔서 감사하다, 알아서 수리할 테니 걱정 안하셔도 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차주는 김민종이었습니다. 김민종은 지난 10월 김구라의 유튜브 채널 ‘그리구라’에서 공개된 ‘이 정도 품격은 있어야 롤스로이스를 몰지’에 출연, 사고 후일담을 알려줬습니다.

롤스로이스측이 미담에 화답해 무상 수리해줬다는 내용입니다.

같은 롤스로이스인데 의료용 마약류 등을 다량 복용한 뒤 운전하다 사망사고를 낸 ‘문신남’과는 격이 다른 존재감을 보여줬죠.

지금은 아니지만 아무에게나 차를 팔지 않았던 롤스로이스의 자부심도 떠오릅니다.

박용만 전 두산그룹 회장은 레이를 타고 산동네 봉사 활동을 다니고 있다. [사진출처=SNS]
사람이 차종에 상관없이 멋진 행동을 할 때는 “사람이 진짜 명품”이라고 합니다.

박용만 전 두산그룹 회장이 그랬습니다. 박 전 회장은 레이를 타고 산동네 봉사 활동을 다니고 있습니다.

레이를 3대째 구매했다는 그는 최근에 소셜미디어(SNS)에 레이를 극찬하는 글과 사진을 올렸습니다.

박 전 회장은 “(봉사를 다닐 때) 골목길이 비좁고 주차도 아주 어려운 동네를 다녀도 걱정이 없다”면서 “주방서 만든 반찬을 배달하느라 레이를 탈 때마다 감탄에 감탄을 한다”고 말했죠.

아울러 “대한민국에서 만든 자동차 중 칭찬받고 상 받아야 하는 차가 기아 레이”라면서 “우리나라 환경에 가장 필요한 차를 참 안성맞춤으로 잘 만들었다”고 칭찬했습니다.

레이도 봉사활동을 하는 박 전 회장이 타니 벤츠 S클래스는 물론 롤스로이스에 못지않은 명차로 여겨집니다.

도로 한복판에 주차된 포르쉐 자료사진 [사진출처=온라인 커뮤니티]
행동경제학에 따르면 차를 살 때는 자신을 빛내주거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후광효과’를 기대할 때가 많다고 합니다.

“차만 명품”이라는 소리보다는 “사람도 명품”이라는 평가를 받는 게 진정한 후광효과가 아닐까요.

더 나아가 사람이 명품이면 경차도, 싸고 낡은 차도 포람페(포르쉐, 람보르기니, 페라리) 뺨치는 명차가 될 수 있습니다.

차가 명품이어서 사람도 명품이 되는 게 아니라 사람이 명품이니 차도 (가격·상태에 상관없이) 명품이 됩니다.

영화 킹스맨의 유명한 대사를 살짝 다듬어 이번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사람이 차를 만들고)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

※ 참고자료 - 그래서 마케팅에도 심리학이 필요합니다 (진변석·김종선 지음, 팬덤북스) - 왜 남자는 포르노에 열광하고 여자는 다이어트에 중독되는가 (개드 사드 지음, 더난출판) - 일러스트로 바로 이해하는 가장 쉬운 행동경제학 (마카베 아키오 지음, 더퀘스천) - 넛지 :똑똑한 선택을 이끄는 힘 (리처드 탈러·캐스 선스타인, 리더스북)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