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설인터뷰]홍콩에서 명장 되기 위한 기초 다지는 김동진 키치 감독, 그가 그리는 '큰 그림'

이성필 기자 2023. 12. 1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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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대표 출신으로 홍콩에서 지도자 수업을 착실하게 받고 있는 김동진 키치 감독
▲ 국가대표 출신으로 홍콩에서 지도자 수업을 착실하게 받고 있는 김동진 키치 감독
▲ 김동진 키치 감독.

[스포티비뉴스=홍콩, 이성필 기자] 한국 축구 측면 수비수 계보에 2002 한일월드컵 4강 신화 주역인 이영표, 송종국 다음이 누구였는가에 대한 고민은 항상 나온다.

그들 이상의 월드컵 성적을 내지는 못해도 충실히 자기 역할을 해낸 자원들은 있다. 왼쪽만 하더라도 올해 은퇴한 박주호, 김진수(전북 현대), 홍철(대구FC) 등이 오래 자기 이름을 알렸다.

특히 좌우 측면 수비수를 모두 소화한 자원은 많지 않다. 안양LG와 FC서울, 울산 현대, 서울 이랜드를 거쳤고 2006 독일, 2010 남아공월드컵을 누볐던 김동진(41) 현 키치(홍콩) 감독은 과도기에 자기 자리를 잘 지켰던 선수로 꼽힌다.

전북 현대 통해 정식 감독 데뷔전 치른 김동진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러시아)에서는 유럽축구연맹(UEFA)컵(현 유로파리그) 우승을 경험했고 키치에서는 맨체스터 시티의 아시아 투어 중 친선경기에서 펩 과르디올라 감독의 환송을 받으며 은퇴하는 영광의 자리도 만들어졌다.

지난 13일 키치는 싱가포르 원정에서 라이온시티를 2-0으로 꺾고 2023-24 아시아 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ACL) 조별리그 최종전을 승리로 장식했다. 앞서 지난달 29일 전북 현대와 홈 5차전에서 1-2로 졌지만, 대행이 아닌 정식 감독 데뷔전에서 상당히 인상적인 리더십을 보여줬다.

물론 키치가 전북의 조직력을 넘기는 어려웠다. 정태욱이 전반 종료 직전 퇴장으로 수적 우세 상황에서 공격적인 경기 운영으로 전북을 압박해 1골을 넣었지만, 그것이 최선이었다. 막판 슈팅이 빗나가 무승부도 얻지 못했다. 그런 상황을 두고 김 감독은 "키치가 아직은 배워야 할 것이 많다"라는 소감을 남겼다. 자신이 지도하는 선수들에 대한 감상이지만, 결국은 초보 지도자인 자신에게 하는 말과 같다.

전북전은 김 감독의 정식 감독 데뷔전이었다. 다음날 키치 클럽하우스에서 만난 김 감독에게 "대행 신분이 아니었냐"라고 되묻자 "홍콩 프리미어리그에서는 A라이선스가 있어도 지휘 가능하다. ACL은 회장이 잘 풀어 벤치에 운이 좋게 설 수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지도자 자격 최상위인 P라이선스 취득을 위해서는 아직 시간이 필요한 김 감독이다.

그래도 홍콩에서 오래 머물며 지도력을 쌓고 있는 것은 한국 시각으로 본다면 귀한 일이다. 영어도 꽤 늘어 선수들은 물론 코칭스태프, 지원스태프와도 능숙하게 소통 중이다. 부상으로 전북전에 나서지 못했던 전 국가대표 공격수 김신욱은 "선수들은 감독님을 굳게 믿고 있다. 그만큼 지도력이 있으시다는 뜻이다"라며 김 감독에 대한 신뢰가 상당함을 전했다.

홍콩은 중국의 특별행정구라 과거와 달리 많이 위축된 면도 있다. 정치 상황이 주민들을 움츠러들게 만든 면이 있다. 축구도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은 아니다. 홍콩의 A매치에서 중국 국가가 울리면 외면하는 관중도 여럿 보인다. 중국 본토에 대한 반감이 상당함을 알려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다만, 축구는 과거 영국의 영향이 컸던 시절의 모습이 아직은 남아 있다. 이중국적자들이 많아 생각이나 표현이 자유롭다. 김판곤 현 말레이시아 축구대표팀 감독이 '홍콩 히딩크'로 불리며 잡아 놓은 틀이 현재 유지되고 있다. 중국과 싸워도 쉽게 지지 않은 팀으로 성장한 것이 그 결과다. 또, 세계와 열려 있어 자유로운 사고를 서로 융화하는 모습도 보인다.

▲ 키치 정식 감독으로 아시아 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ACL) 전북 현대전에서 데뷔전을 가졌던 김동진 감독, 이후 싱가포르 라이온시티에 승리를 거뒀다. ⓒ한국프로축구연맹
▲ 키치 정식 감독으로 아시아 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ACL) 전북 현대전에서 데뷔전을 가졌던 김동진 감독, 이후 싱가포르 라이온시티에 승리를 거뒀다. ⓒ한국프로축구연맹
▲ 키치 정식 감독으로 아시아 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ACL) 전북 현대전에서 데뷔전을 가졌던 김동진 감독, 이후 싱가포르 라이온시티에 승리를 거뒀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운명 바꾼 이영표의 현실적인 조언

"홍콩 리그는 이중국적자인 선수들이 많아요. 중국 선수들도 있지만, 브라질 출신 선수들이 많아요. 다들 생각이 열려 있어요. 한국이야 하나의 방향으로 가면 그것을 쭉 따라가지만, 여기는 각자의 생각이 있어요. 축구도 자기가 배워왔던 뿌리가 있으니 그 방식을 처음에는 보여주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이런 방식으로 해보자', '이 방식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등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해요. 그러면서 하나의 전술, 전략이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2019년 현역 은퇴 후 바로 키치 회장으로부터 지도자 입문, 키치의 코치 제안을 받고 수락했다는 김 감독이다. 물론 선수 생활을 더 하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지만,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독일)가 홍콩에서 리버풀과 OB친선경기를 하러 오면서 팀 전설 자격으로 온 이영표가 방향을 바꿔줬다.

"현역 연장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어요. 구단에서는 코치 자리를 말하더라고요. 그런 상황에서 (이)영표 형이 홍콩에 왔어요. 이런 말을 건네더라고요. '1년 더 선수 생활을 한다고 해서 너에게 이득이 뭐냐'는 거죠. 돈을 벌어봐야 얼마를 더 벌겠냐고. 네 또래 선수들은 지도자를 시작하지 않았느냐고. 그래서 사흘 동안 매일 만나서 식사하고 대화를 나누면서 이제 그만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구단에 말했어요. 참 운이 좋게 은퇴를 한 것이 맨시티가 왔어요. 은퇴 경기를 해준 것이죠. 전세계 최고의 팀이 홍콩에 와서 제가 은퇴하는 그림을 어떻게 상상이나 했겠어요. 정말 감사하죠."

김 감독은 독실한 개신교 신자다. 현역 시절 골을 넣으면 무릎 기도 세리머니를 종종 했다. 그만큼 이국땅에서 종교에 대한 의지는 더 깊을 수밖에 없다. 모든 것에 감사하며 살다 보니 삶에 대한 계획도 조금 더 명확해졌다. 급하지 않고 차분하게 다음 단계를 준비하는 것이다.

"정말 힘든 시간이죠. 밤늦게까지 일하면서 성인팀과 유스팀 훈련과 경기를 번갈아 챙겨 보고 있어요. 오히려 이것을 복이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단순하게 은퇴하고 바로 프로팀 코치로 가서 감독에 오르고 이런 것이 아니라 유스팀부터 차근차근 밟아 올라가는 것을 경험하니 많은 것이 보이더라고요. 정말 좋은 시간이었어요."

홍콩 프리미어리그는 아직도 틀을 갖춰가는 중이다. 팀들은 많아도 홈구장이라는 개념 자체를 확보하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물가가 워낙 비싸 선수들이 지하철로 출, 퇴근한다. 원정 역시 지하철로 간다. 키치의 경우 ACL은 홍콩섬의 홍콩 스타디움에서 치렀지만, 리그는 중국과 맞닿은 육지의 몽콕 스타디움에서 갖는다. 클럽하우스가 인조 잔디고 경기장은 천연 잔디라 선수들의 부상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 장신의 김신욱이 다친 것도 이런 환경과 무관하지 않다.

열악하지만, 경력이 쌓이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K리그도 2002세대들이 지도자도 주름 잡았지만, 조금씩 변화가 보인다. 아래 세대들의 지도자 입문이 그렇다. 이정효 광주FC 감독이 대표적이다. 2002 세대라는 후광이 아닌 지도자가 중심을 잡아가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으로 포항 스틸러스를 오래 이끌었던 김기동 FC서울 신임 감독이다.

"이제 2002년 세대에서 저희 세대로 조금 바뀌는 것 같아요. (김)은중이 형부터 해서 (박)동혁이 형, (최)원권이와 (감독 대행이지만) (김)진규, (정)조국까지 조금씩 다음 세대로 바뀌잖아요. 물론 그들이 지휘봉을 잡는 것도 좋지만, 조금 빠른 느낌도 있어요. 내년 파리 올림픽이 있어서 황선홍 감독님이 23세 이하(U-23) 대표팀을 이끌고 있지만, 끝나면 그 뒷 세대가 이어가야 하고 (U-20 월드컵 4강을 이끌었던) 은중이 형이 자연스럽게 이어가는 것이 맞지 않나 싶은 생각도 들어요."

김 감독은 홍콩에서 지도력을 보여주면 자연스럽게 자신의 이름이 한국에도 알려지리라 믿고 있다. 사실 홍콩에서는 키치가 다음 시즌부터 개편되는 ACL에 최상위 리그인 ACLE(엘리트)이 아니라 하위 대회인 ACL2로 향하는 것을 상당히 아쉬워하고 있다. 홍콩에는 ACL2 진출권이 1.5장 배정됐다. 본선 직행권을 확보한다면 K리그 대표로 나서는 전북과 다시 만날 가능성이 있다.

▲ 러시아 명문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뛰면서 유럽축구연맹(UEFA)컵(현 유로파리그) 우승을 차지했던 김동진, 국가대표로도 2006 독일, 2010 남아공월드컵을 누볐다.
▲ 러시아 명문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뛰면서 유럽축구연맹(UEFA)컵(현 유로파리그) 우승을 차지했던 김동진, 국가대표로도 2006 독일, 2010 남아공월드컵을 누볐다.
▲ 러시아 명문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뛰면서 유럽축구연맹(UEFA)컵(현 유로파리그) 우승을 차지했던 김동진, 국가대표로도 2006 독일, 2010 남아공월드컵을 누볐다.

45살에 빅리그 지도자 도전 꿈 영근다

홍콩 유력 신문 '사우스 차이나 모닝포스트'의 폴 맥나마라 기자는 "키치가 ACLE가 아닌 ACL2로 향하는 것은 홍콩 축구 입장에서 상당히 아쉬운 일이다. 물론 시즌을 소화하면서 성적을 내면 대회 진출권이 조정될 것이고 김 감독이 키치의 수준을 더 높일 것으로 본다. 한국 출신 지도자라 믿음도 있다"라고 평가했다.

여전히 홍콩인들이 그리워하는 김판곤 감독도 "김동진 감독은 정말 열심히 공부하는 지도자다. 홍콩인들도 정말 좋아한다. 앞으로 얼마나 성장하는가를 지켜보는 재미가 있을 것이다"라며 후배의 성공을 기대했다.

"저를 코치라고 알고 있는 분들도 있겠지만, 예전에 감독 대행을 했었으니 감독 이미지는 있지 싶어요. 전북전의 경우 처음으로 국내 팬들에게 저를 감독이라고 알린 것이잖아요. 김동진이라는 감독이 있구나를 알린 것 같아요. ACLE, ACL2 상관없이 아시아 클럽대항전을 경험하고 있는 것은 제 입장에서도 정말 좋은 일이에요. 이런 경험을 쉽게 하겠습니까."

홍콩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알며 호흡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구단주가 아시아 최고 구단으로 가겠다는 의지가 명확해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유럽물을 먹은 코치나 기술 이사 등을 영입해 구단 발전의 지렛대로 삼고 있다. 유스 총괄 이사인 에드가 카르도소의 경우 포르투갈 명문 벤피카 유스 아카데미 출신이다. 20세 이하(U-20) 팀 수석 코치도 경험했다.

카르도소는 현대 축구 투자 흐름에 맞는 귀한 경험을 했다. 2022 카타르 월드컵을 앞두고 아스파이어 아카데미를 만들어 선수 육성이 집중하던 카타르에서 '오일 머니'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자기 철학을 그대로 이식했다. 샤흐타르 도네츠크(우크라이나) 유소년 팀장도 경험했다.

"키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현대 축구의 흐름을 익히고 온 지도자예요. 그런 면에서 카르도소는 유럽축구연맹(UEFA) 지도자 자격증도 있고 정말 많은 축구 지식이 있어요. 이 구단에는 큰 도움이죠. 제게도요. 많은 것을 배우고 있고 감사한 일이죠. 귀인인 것 같아요."

혹시 K리그에서는 감독 지도자 제안이 없었을까. 코치로 입성해 감독이 되기에 나쁘지 않은 경력자라는 점에서 더 그렇다. 김 감독 또래는 코치인 경우가 많다. 당연히 어느 구단에서는 P라이선스 유무를 물었다고 한다. 없다고 하니 빨리 P라이선스를 따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급하지 않단다. 자신만의 계획을 그대로 밀고 갈 생각이다.

"저는 계획이 명확해요. 지금 41살이니까 더 경험하고 다양한 대회도 참가하면서 이기고 지고 이런 것도 좋지만, 그런 과정과 방법들을 확실하게 넣으려고요. 그러면서 4년 뒤인 45살 정도 되면 빅리그에 도전해야겠죠. 여기서 말하는 빅리그란 K리그가 되겠지만, 다른 좋은 리그 기회도 잡아야죠. 물론 K리그 지도자 기회가 있다면 해봐야죠. 기회를 준다면 감사한 일이고요. P라이선스 취득도 조만간 시도해야죠. 하나씩 하다가 보면 제가 구현할 수 있는 환경에 있지 않을까요. 저도 한국 축구도 더 나아지기를 기대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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