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사라, 돌아온 사라, 떠나간 사라 [나쁜 책]

김유태 기자(ink@mk.co.kr) 2023. 12. 16.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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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책-23] 마광수 ‘운명’
[금서기행, 나쁜 책]은 전 세계 현대의 금서를 여행합니다. 국가가 발행을 중단시킨 문학, 좌우 논쟁을 촉발한 논픽션, 외설의 누명을 쓴 예술, 동서고금의 필화 스캔들을 다룹니다.

오래 전 10대 시절, 제가 다닌 고교의 자랑은 교내 대형 도서관이었습니다. 1층은 3학년 수험생 500여명 전원의 야간자율학습이 가능한 칸막이 독서실, 2층은 인근 시립도서관과 견줘도 손색이 없는 수만 권 장서를 보유한, 꽤 그럴듯한 문헌자료실이었습니다.

어느 날, 자료실 책장에서 소설 ‘알라딘의 신기한 램프’ 발견했습니다. 금빛 램프를 문지르면 요정이 나타나 소원을 성취해준다는 얘기는 알고 있었지만, 이 책의 램프는 뜻이 달랐습니다. 그 램프는 남성 성기(性器)의 은유적 표현이었습니다. ‘그것’을 손으로 문지르면 여성 요정이 등장해 성적 쾌락을 허락해준다는 설정이었기 때문입니다.

남고(男高)일지라도 ‘19금 소설’이 아닌 이상, 이 책이 책장에 꽂히지 못할 이유는 없었지만, 경계없는 상상력에 놀랐던 기억은 여전합니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일개 고교생도 금기어로만 들었던 ‘마광수’였습니다. 1995년 출간됐던 마광수 교수 철학에세이 ‘운명’을 여행합니다.

마광수 교수 생전 모습. 1992년 ‘즐거운 사라’ 필화사건을 겪으며 20세기 후반 한국 사회에서 가장 큰 논란의 중심에 섰던 그는 2017년 9월 세상을 떠났습니다. ‘시대를 앞서간 천재’와 ‘변태적 상상력의 외설 작가’란 양극단 시선 속에서, 30년간 마광수 교수는 이름만 거론돼도 논쟁의 중심에 섰습니다. [매경DB]
마광수 철학에세이 ‘운명’의 모습. 소설 ‘즐거운 사라’를 비롯해 그의 성(性)철학을 담아낸 책입니다. 초판 인쇄일은 1995년 9월이었고 제가 소장한 책은 1996년 1월 6쇄 판본인데, 3~4개월 만에 6쇄를 찍었으니 당시 마 교수 외설 논쟁의 여진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짐작하게 합니다.
소설 ‘즐거운 사라’ 필화 사건, 그로부터 4년 뒤
마광수 교수 소설 ‘즐거운 사라’ 사건을 많은 분들께서 아직 기억하실 테지요. H대 미대 재학중인 대학생 사라가 쌍꺼풀 수술과 과감한 헤어스타일로 외모 콤플렉스를 극복한 뒤, 룸살롱 친구 정아의 정부(情夫) 김승태, 대학교수 한지섭 등과 관계를 맺는 도발적인 내용의 소설입니다.

소설이 첫 성경험 상대가 고교 시절 과외교사 기철이란 점뿐만 아니라 정숙함을 요구받던 당대 ‘여대생’의 마스터베이션을 다룬 점, 임신중절과 손톱 페티시즘까지 등장한 걸 보면 수위가 높긴 합니다.

마 교수는 1992년 ‘즐거운 사라’ 출간에 따른 외설 혐의로 강의실에서 검거된 뒤 검찰에 구속됐습니다. 책을 출간했던 출판사 대표까지 구속된 초유의 사태였지요. 금서의 출간이나 금서의 유통을 제한하기 위한 국가 공권력의 재판은 열렸어도, 책을 집필한 이와 책을 제작한 이가 동시에 구속된 건 세계사적으로도 전례가 없는 사건이었습니다.

음란물 집필 혐의로 구속된 마 교수 소식을 다룬 매일경제신문 1992년 10월 30일 사회면 32면 기사. 아래는 연세대에서 강의 중이던 마 교수의 모습.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연합뉴스]
철학에세이 ‘운명’은 마 교수가 ‘나는 왜 즐거운 사라를 썼는가’에 대해 학술적으로 스스로 답하는 책입니다. 마 교수는 한국사회의 엄숙주의를 잉태한 종교의 폐단과 문화의 이중성을 하나씩 격파하면서 ‘우리의 성(性)은 왜 이 지경이 되었는가’를 학자적 문장으로 기술합니다.

논쟁작 ‘즐거운 사라’와 위에서 언급한 소설 ‘알라딘의 신기한 램프’, 그리고 마 교수가 썼던 다른 성적 취향엔 동의하지 않더라도, 책 ‘운명’은 마 교수의 사상을 집약한 책으로서의 가치가 높습니다.

※미리 말씀드리자면, 이 책 ‘운명’은 전혀 야(野)하지 않습니다. 아래에서 다룰 기사에도 ‘야한 내용’은 단 한 줄도 없음을 알립니다.

“쾌락의 쟁취는 정말로 죄인가?” 마광수의 질문
철학에세이 ‘운명’에서 마광수 교수가 말하는 운명(運命)은, 인간의 삶을 둘러싼 모든 강압적 가치관을 아우르는 용어입니다.

흔히 우리가 ‘운명은 있다’고 말할 경우, 운명은 이미 예정된 세계에 인간을 편입시키는 절대적인 중력으로 기능합니다. 또 ‘운명을 극복했다’란 표현은 예정된 세계의 저 중력으로부터의 탈주를 이뤄낸 인간을 말하기도 하지요.

마 교수는 이 책의 머리말 첫 문장에 ‘운명은 있을 수 없다’(5쪽)고 서술하면서 체계적으로 논리를 펼쳐 나갑니다.

운명을 ‘유발’하는 첫 번째 배격 대상은 종교 가운데 기독교입니다. 마광수 교수가 예수의 존재를 부정하거나 기독교 교리를 재구성하려는 과욕은 책에서 감지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존중하는 마음이 느껴질 정도이지요. 그러나 기독교 교리의 뿌리 깊은 예정설만큼은 예리한 시선으로 비판합니다.

튀르키예의 이스탄불 하기아 소피아 대성당에 설치된 예수 모자이크. 마 교수는 예수를 ‘사회 혁명가’로서 긍정하면서도 예수를 앞세운 기독교 교리가 인간을 얼마나 쾌락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었는지를 날선 문장으로 비판합니다. [Wikimedia Commons]
왜 그럴까요. 기독교는 사주팔자나 점성술을 미신으로 여깁니다. 그러면서도 기독교는 신이 결정한 예정설에 대해서는 꽤 관대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죽으면 사후 심판이 ‘예정’되어 있고, 인류 전체는 언젠가 ‘최후의 심판’을 겪으리라는 예정설 말이지요.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은 재림 예수가 이 땅에 다시 내려와 우리를 심판할 것’이란 예정설은 신의 존재와 권능을 강화하는 장치였습니다.

신의 심판을 확정적으로 예언한 기독교 교리가, 인간이 쾌락을 쟁취하려는 것을 죄악시했다고 마광수 교수는 주장합니다. 예정된 운명(심판)에 순응하기 위해선, 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기 위해선 금욕적 생활이 필수적입니다. 신의 섭리에 복종하고자 현세의 행복(쾌락)을 포기하는 처세가 합리적이니까요.

이때 쾌락은 죄와 동일시되며, 심판의 날을 대비하려면 ‘쾌락으로부터의 도피’가 필연적입니다. 이 지점에서 마 교수의 비판의 칼날은 바울을 향합니다. 여기까지 잘 따라오셨다면, 좀 더 깊게 들어가 볼까요?

연세대 중앙도서관 학술정보원의 마광수 교수 기증도서 책장 모습. 마 교수의 서재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모습으로, 오래 전 이곳을 들어가 본 적이 있습니다. 어림잡아도 기증된 책이 수천 권이었는데, 마 교수 사상의 근원을 염탐 가능한 장소였습니다. [김유태 기자]
기독교의 교리, 인간에게 ‘죄의식’을 선물하다
마광수 교수는 책 ‘운명’에서 신약성경 로마서의 한 대목을 인용하면서 질문합니다. 그가 거론한 바울의 로마서 9장 가운데 20~21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께 반문하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냐.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

누구는 귀하게 쓰임 받고 누구는 천하게 쓰임 받는데, 결정 권한은 오직 유일신에게 있다는 뜻입니다. 반복되지도 재연되지도 않을 유일무이한 소중한 삶이 아무렇게나 쓰여도 좋다고 여길 사람은 한 명도 없을 테지요. 인간 운명의 결정권은 ‘운명의 주재자’인 유일신만의 권능이라고 바울은 봤습니다. 이는 현실과 내세의 행복과 불행이 신의 결정이라는 기독교 교리의 뿌리(예정설)가 됩니다.

아시다시피 로마서 집필자는 바울입니다. 하나님의 진노와 긍휼 사이에서 하나님의 자녀인 인간은 ‘쓰임을 받을’ 만반의 준비를 갖춰야 하는데, 쾌락 추구는 죄의식을 발동시킵니다.

마광수 교수가 2017년 세상을 떠난 뒤 그의 동부이촌동 자택에 있던 책은 연세대에 기증됐는데, 책장을 보면 신학 서적이 상당합니다. 종교서적만 수백 권이고 위 사진은 그중 기독교 서적 일부분만 찍은 사진입니다. 그저 모아둔 책이 아니라 펼쳐보면 밑줄도 많이 그어져 있습니다. 그가 생전에 얼마나 치열하게 신앙과 문학을 고민했는지를 알려주는 증거들이지요.
마광수 교수 주장에 따르면, 기독교의 기원을 이룬 예수야말로 ‘죄의식으로부터의 해방’을 부르짖은 인물입니다. 예수가 이 땅에 오신 건 인류의 원죄를 재차 일깨워 ‘신의 아들’로서 대접을 받기 위하여 온 것이 아니며, “모든 인간은 죄인이 아니라 모두 하나님의 아들이자 딸”임을 말하기 위해 왔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로마서 등 서한에서 인간의 삶과 죽음의 운명이 유일신 하나님의 뜻이라는 예정설(운명론)을 개입시켰고, 이 때문에 ‘최후의 심판’을 앞둔 인간이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는 근원적으로 육체적 쾌락을 거부해야 했다는 게 마 교수 주장의 핵심입니다.

마 교수는 기독교적 운명 예정설이 만든 폐단도 거론합니다. 사례가 극단적이긴 합니다만 1978년 남미 가아아나 종교단체 ‘인민사원’ 집단자살, 1991년 한국 오대양 사건, 1995년 일본 옴진리교 등 인간 운명이 예정돼 있다는 교리를 악용한 자들이 얼마나 인간을 속였는지를 질문합니다.

이탈리아 토리노 수의를 재구성해 예수의 얼굴을 추정한 그림. 마 교수는 이 땅에 오신 예수가 우리에게 일깨운 건 우리의 원죄가 아니라 “모두가 하나님의 아들이자 딸”이라는 자명한 사실이었다고 주장합니다. [Monozigote]
마 교수는 특히 “예수 사상의 핵심은 사랑을 통한 복지국가 건설이었으며, 이를 위해선 어떤 형태로든 혁명이 필요했다”고 말합니다. 예수야말로 기성 지배질서를 무너뜨리려한 혁명가인데, 예수를 앞세운 기독교는 오히려 인류에게 기성 지배질서, 즉 운명을 강요한다고 말이지요.
“똥 잘 싸고 기분 좋게 섹스하기, 그게 평상심”
다음으로 책 ‘운명’이 겨냥하는 비판 대상은 불교입니다. 윤회설과 업설(業說)이 비판 대상입니다.

윤회설과 업설이 무엇이었던가요. ‘전생에 지은 악업이 크면 현생에서 많은 고통과 번뇌에 젖기 마련인데, 현생에서 선한 일을 많이 하면 다음 생에서 편안함을 누릴 수 있다’고 불교는 이야기합니다.

마 교수는 이 지점에서 불교의 궤적을 따라갑니다.

책에 따르면, 불교 근원지로 알려진 인도에선 당초 윤회설이나 업설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기원전 7~8세기 문헌을 기점으로 불교에서도 사후세계가 다뤄지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윤회사상이 퍼졌다는 주장입니다. 윤회설과 업설이 인간 운명을 결정지었다는 얘기입니다.

책에 따르면, 부처가 된다는 건 번뇌로부터 해탈한 완전한 자유를 소유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불교는 육체적 고통이 깨달음으로 이어진다는 ‘환상’에 젖어 있다고 마 교수는 씁니다.

마광수 교수가 방패연에 그린 그림 ‘사랑하고 사랑하고 사랑했는데도’의 모습. 방패연에 그린 하트와 새 모양의 그림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사랑하고 사랑하고 사랑했는데도 그녀(女)는 내 가슴 뚫어놓고 새처럼 날아갔다네.’ [연세대 박물관]
석가모니는 육체적 고통을 통한 깨달음보다는 “중생이 다 부처”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런데도 윤회설과 업설 때문에 육체적 고통, 즉 현생에서의 쾌락과의 결별이 필요해졌고 숙명론과 결정론이 만들어졌다는 게 마 교수 비판의 또 다른 핵심입니다. 책 ‘운명’은 이처럼 기독교와 불교의 예정론, 숙명론, 결정론을 혁파한 뒤 유교와 도교까지도 비판합니다.

마 교수의 다음 한 마디는 그의 성철학 사상을 집약합니다.

◎ “도대체 구원이 어디 있는가? 하늘 위에 있는가, 땅 위에 있는가? 구원은 나 자신의 본성 이외에는 아무 데도 없다. ‘밥 먹고 똥 싸고 잠자고 사랑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본성이요, (불교에서 말하는) 평상심인 바, 더 좋은 밥 먹고 더 편하게 똥 싸며, 더 편안히 잠자고 더 기분 좋게 섹스하려는 것을 욕구하는 것도 평상심인 것이다.” (85쪽)

마광수 교수가 구속되는 모습을 찍은 사진. [매경DB]
사라를 감옥에 ‘처넣은’ 전통 이데올로기 허구
이제 마 교수의 성철학 윤곽이 대강 잡히시겠지요. 그러나 이 책이 출간됐던 1990년대엔 마 교수의 문학은 이해받지 못했습니다.

그는 연세대 국문과 학생들 앞에서 강의하던 도중에 끌려 나갔습니다. 1989년초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를 출간하면서 에로티시즘 문학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던 마 교수는 1992년 ‘즐거운 사라’ 출간으로 구속되어 몇 개월간 수감생활을 했습니다.

책 ‘운명’에는 당시 마 교수 본인이 느낀 소회와 울분도 자세합니다. 그는 자신이 당한 옥고가 “전통윤리, 사회적 통념, 정신의 숭고성이란 이름으로 이뤄진 운명적 결정론에 승복시키려는 강압”임을 분명히 하지요.

마광수 교수의 팬클럽 홈페이지 ‘광마클럽’의 모습. 비공개 홈페이지로 지금은 접근이 불가능합니다.
마 교수는 이 책에서 ‘즐거운 사라’가 겪은 고초에 대해서도 항변합니다. 앞서 잠시 줄거리를 설명했지만 ‘즐거운 사라’의 주인공 사라가 만나는 이성은 자신보다 나이가 많거나 사회적 지위가 높은 남성들입니다.

사라의 부친은 주재원이 되면서 사라만 남기고 미국으로 이민을 갔습니다. 사라는 ‘연상의 남성’에게 끌리고 실망을 되풀이하는 삶을 반복합니다. 마 교수는 이 부분에 대한 의도를 직접 기술합니다.

◎ “나는 신세대 여성인 사라가 갖고 있는 부권에 대한 도전의식에 초점을 맞춰, 부권에 대한 저항을 통한 성적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주제로 소설 ‘즐거운 사라’를 써보았다.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미움의 양가감정을 추적해본 셈이다. 그러나 유교적 부권을 지배 이데올로기의 근간으로 삼는 이 시대의 시대착오적 봉건윤리는 사라를 감옥에 처넣고 말았다.”(137쪽)

논쟁작 ‘즐거운 사라’를 출간한 청하출판사의 등록 취소 소식을 전한 매일경제신문 1992년 11월 21일 10면 문화면 단신기사.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마 교수 필화사건 당시 함께 구속됐던 청하출판사 대표 장석주 시인과 2018년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있습니다. 존경하는 장석주 시인은 한국인의 애송시 ‘대추 한 알’을 쓴 바로 그 시인입니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인터뷰에서 ‘즐거운 사라’ 얘기가 나오자 장 시인은 여전히 분노하는 표정이었습니다. 인터뷰 내용을 옮겨 적으면 아래와 같습니다.

◎ “표현의 자유와 외설이 충돌하지 않는 시대는 오지 않았어요. 새로운 형태의 금기와 그걸 뚫으려는 지점은 지금도 있죠. 과거엔 이데올로기 문제였다면 지금 작가들은 전혀 다른 자기 검열을 펼칩니다. 상상력을 억압하는 건 지금이 소수자를 겨냥한 ‘분노의 시대’이기 때문이죠. 무의식적인 검열에서 도망쳐 자유를 지향하는 문학의 시대를 꿈꿉니다.” (2018년 12월 7일 장석주 시인 인터뷰 기사 중)

청하출판사 대표였던 장석주 시인은 마 교수와 함께 구속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그는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 가운데 하나인 ‘대추 한 알’의 시인입니다. ‘대추가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는 시의 첫 번째 문장은 그냥 나온 문장이 아닌 것이지요. [매경DB]
윤동주 詩의 우물은 ‘거울’이 아니라 ‘자궁’이다
연세대 졸업생들에겐 유명한 일화이지만, 강단으로 복귀한 마광수 교수의 수업과제는 아주 독특했습니다. ‘에로티시즘 소설’ 한 편을 제출하는 것이었다고 하네요. (쉽게 말해서 ‘야설 쓰기’였습니다.)

오래전 마 교수의 연세대 수업을 들었던 한 친구에게 전해 듣기를, 당시 A+를 받았던 한 한생의 소설은 ‘단 한 줄’이었다고 합니다. 너무 인상적이어서 아직 기억하는데 “한 여자와 한 남자가 한 방에 있다(끝)”였다고 합니다. 마 교수가 자신의 소설에 자주 썼던 성적 취향에 가까울수록 높은 학점을 받았다는 우스갯소리도 전해집니다.

마 교수의 다소(?) ‘독특한’ 과제에 대해선 호불호가 갈릴 수 있겠지만 “미적 탐닉을 통한 쾌락으로서의 성”(224쪽)을 고민하게 만드는 특별한 과제였던 점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창조의 동력은 결국 에로스이고, 에로스의 창조만큼 흥분되는 일은 없으니까요. (참고로 이 글을 쓰는 저는 마 교수님 제자가 아니며, 이 학교 졸업생도 아닙니다.)

마광수 교수가 1998년 쓴 논문 ‘소설에 있어서의 일탈미에 대한 고찰’의 첫 페이지. “소설을 예술의 한 형식으로 볼 때, 소설의 목적은 역시 ‘가르치는 데’ 있지 않고 ‘즐거움을 주는 데’ 있다. 소설의 목적이 가르치는 데 있다면 소설은 이미 예술이 아니다”란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그의 수업과제, 즉 ‘야설 쓰기’는 일탈미를 느끼게 하려는 그의 의도가 아니었을까요.
사실 마광수 교수의 학문적 업적을 저 수업과제의 주제만으로 짐작해선 곤란합니다. 그의 학문적 업적은 한국인 모두가 사랑하는 윤동주 시인과 뗄레야 뗄 수 없습니다.

윤동주 시인의 작품에서 일관되게 흐르는 ‘부끄러움’의 정서를 발견하고 학문적으로 정립한 학자가 바로 마광수 교수였습니다. 이 때문에 윤동주를 다룬 논문 가운데 마광수란 이름이 발견되는 건 거의 필연적입니다. 그를 거론하지 않고는 윤동주에 다가갈 수가 없기 때문이지요.

책 ‘운명’에서도 윤동주 시에 대한 마 교수의 아주 흥미로운 해석 대목이 발견됩니다.

영화 ‘동주’의 한 장면. 마광수 교수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윤동주 시인 최고 전문가입니다. 윤동주 시에 내재된 ‘부끄러움’의 감정을 발견한 대표 연구자가 바로 마 교수였습니다. [플러스엠]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윤동주 시인의 대표시 ‘자화상’ 첫 문장은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입니다. 마 교수는 이 시의 화자가 우물 안에 비친 사나이가 미워져 떠났다가 다시 돌아와 우물 안을 들여다보는 과정을 반복하고 있음에 주목하는데, 흔히 고교 교과서를 비롯해 대학 국문과 수업에서 우물은 일종의 ‘거울’로서 기능합니다. (우물은 시적 화자가 자신을 바라보면서 ‘부끄러움’을 느끼는 계기를 만들어내지요.)

그런데 마 교수는 시 ‘자화상’에서의 우물을 거울이 아니라 ‘여성의 자궁 또는 여성 성기의 상징’으로 해석합니다. 우물을 들여다보는 건 관음증적 시선이고 그 안의 자신을 바라보는 건 나르시시즘적 자기애인데, 윤동주 시의 화자는 “당당히 사랑하지도 그렇다고 과감히 떠나지도 못하는 폐쇄적 자아”(268쪽)를 의미한다는 놀라운 해석이지요. 화자가 기독교 금욕주의에 함몰돼 있었기에 우물을 “죄의식 섞인 관음행위”로만 바라본다고 마 교수는 봤습니다.

이 해석은 과연 맞는 걸까요, 틀린 걸까요. 하지만 문학에 정답이 없다는 건 모두가 아실 겁니다. 그건 오직 해석하는 독자의 몫이니까요.

‘즐거운 사라’ 중고판 30만원, 재출간은 언제?
마 교수는 2017년 9월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고, 경찰 조사에 따르면 스스로 생을 포기했다고 전해집니다. 극심한 우울증이 결정적 원인이었다고 합니다.

마 교수가 생전에 받았던 평가는 온당할 일이었을까요. 그의 책을 마치 흔한 포르노에 가까운 책으로 이해하는 일은 또 합당할까요. 그의 죽음은 오랜 질문을 우리에게 다시 일깨워 주었습니다.

논쟁작 ‘즐거운 사라’는 1990년 2~7월 한 월간지에 연재된 소설로 1991년 7월 서울문화사에서 단행본으로 출간됩니다. 서울문화사는 서울 중구청으로부터 출판등록 취소 경고를 받은 뒤 배포된 책을 회수합니다. 그러나 청하출판사는 1992년 8월 이 책을 출간합니다. 왼쪽 ‘즐거운 사라’는 1991년 서울문화사판, 오른쪽 ‘즐거운 사라’는 1992년 청하출판사판입니다.
출판계에 따르면 2017년 마광수 교수 별세 이후 ‘즐거운 사라’ 재출간이 논의됐습니다.

하지만 1995년 대법원 판결로 인해 ‘즐거운 사라’는 여.전.히. ‘음란물’로 지정되어 있기에 재출간을 위해선 음란물 판결부터 번복되어야만 합니다. (재출간을 원하는 출판사는 긴 소송과 그 결과까지 결심해야 하는 것이지요.) 자녀가 없던 마광수 교수의 책 판권은 그의 형제 유족에게 있다고 전해지는데, 유족은 마 교수 책의 재출간을 허락할 계획이 없다고 들었습니다. 가족이 겪었던 긴 고초 때문이겠지요.

그 사이 ‘즐거운 사라’ 중고판 호가만 가파르게 오르고 있네요. 검색해보니 책 상태에 따라 보통 5만~10만원 이상이고, 초판본 최고 호가는 30만원에 육박합니다.

2017년 9월 마광수 교수의 발인 당시 영정. 한양대 교수 유성호 문학평론가가 마 교수의 영정을 들었습니다. [연합뉴스]
마광수 교수의 책 ‘운명’이 말하려는 바는 사실 어렵지 않습니다.

인간의 삶이란 누군가의 시험일 수 없고 다음 생을 위한 수련도 아니니, 그저 생을 ‘한 판의 놀이’처럼 쾌락을 숨기지 말고 즐기라는 것이 ‘마광수 성철학’의 핵심입니다.

물론 누구나 알듯이 삶이란 그저 놀이일 수만은 없는, 고해(苦海)와도 같은 무엇이지요. 그러나 육체와 대립되는 정신에만 가치를 두고 고통으로 삶을 점철시키는 미련함을 버리기, 그것이 마 교수가 우리에게 남긴 의미입니다. 그건 우리 자신의 본성, 즉 ‘나’를 잊지 말라는 하나의 외침으로 이해됩니다.

마광수 교수는 ‘시대를 앞서간 천재’였을까요, 그저 ‘포르노 작품을 썼던 외설 작가’일까요. 모두가 마 교수의 작품을 좋아할 순 없겠고 모두가 마 교수의 사상에 동의하는 것도 어려울 테지만, 그의 책 ‘운명’을 몇 페이지만이라도 읽어본다면 적어도 ‘작가 마광수’를 외설 포르노 작가로만 폄훼하진 못할 겁니다.

마광수 교수는 생전에 색을 입힌 수묵화를 많이 남겼습니다. 말년에 그린 그림 ‘밝은 곳을 향하여’는 어둠의 터널을 벗어나 태양 아래 자유를 표현하고자 했던 그의 마음처럼 이해됩니다. [연세대 박물관]
이 기사는 다음 책과 논문, 외신기사를 참고했습니다. ◎ 마광수 , 『운명』, 사회평론, 1995. ◎ 마광수, 「소설에 있어서의 “일탈미(逸脫美)“에 대한 고찰」, 한국문학연구학회, 《현대문학의 연구》 No.12, 1999. ◎ 윤철호, 「돌아온 사라, 마광수의 항변」, 월간사회평론길, 《길을찾는사람들》 Vol.93 No.6, 1993. ◎ 장석주 시인 인터뷰, 「“100권을 썼지만 필생의 역작은 아직…”」(매일경제신문, 2018년 12월 7일자 A31면)

※다음주에는 카밀로 호세 셀라 ‘파스쿠알 두아르테 가족’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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