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소싯적 못 배운 것에 한 맺힌 어르신 향해 손 내민 부산 청년들

오미래 기자 2023. 12. 16.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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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학교를 다니며 교육을 받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만, 과거에는 배우고 싶어도 그러지 못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자식을 키워야 해서’, ‘농사를 지어야 해서’ 저마다의 이유로 배움의 기회를 놓쳐버렸지만 평생의 갈증을 풀고자 지금에서야 도전에 나선 어르신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에게 지식을 공유하려 손을 내민 청년들. 배움에는 때가 없다는 금정열린배움터 사람들을 만나봅니다.

금정열린배움터 복도 칠판에 적힌 낙서. 오미래PD


▶금정열린배움터

금정구 부곡동에 위치한 금정열린배움터. 이곳은 정기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자 대학생들이 만든 ‘야학’입니다. 1994년에 설립돼 개교 30주년을 앞두고 있습니다.

금정열린배움터는 학생과 교사의 나이가 일반 학교에 비해 특별합니다. 이곳에 온 학생 대부분은 소싯적 배우지 못한 것이 한으로 맺힌 70~80대 어르신입니다. 이렇게 모인 학생 수가 현재 100여 명이나 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작은 지식이라도 나눠주고 싶은 20~30대 청년 교사도 40~50명 가량 참여하고 있습니다. 소수의 직장인, 무직 봉사자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대학생 봉사자입니다.

[ 박종순 / 금정열린배움터 학생 ] “저는 옛날에 국민학교는 졸업했는데 시골에 농사가 많아서 며칠씩 학교 갔다가 농사 갔다가 했거든요. 그래서 내 이름자도 모르고 졸업했습니다. 그래서 배워보고 싶어서 왔습니다.”

정해웅 금정열린배움터 교장. 본업은 중학교 수학 교사다. 오미래PD


▶34세 정해웅 교장선생님

야학 운영은 정해웅 교장 선생님이 총괄합니다. 34살의 젊은 나이인 정해웅 교장선생님은 본업이 중학교 수학 교사입니다. 그가 교장을 맡게 된 건 2019년부터였습니다. 2017년부터 성실하게 봉사해 온 그를 눈여겨 본 당시 교장이 20여 년 간 지켜온 자리를 물려준 겁니다. 그렇게 그가 이곳에서 어르신들과 함께한 지도 어언 7년이 됐습니다.

[ 정해웅 / 중등교사, 금정열린배움터 교장 ] “우선 저만 운영하는 사람이 아니고 실무진 선생님들이 계세요. 교무 선생님, 총무 선생님, 연구부 선생님 이런 식으로 어느 정도 직책에 있는 분들이 8명 정도 있어요. 그분들을 주축으로 해서 운영이 되고 있고요. 저희가 한 달에 한 번씩 회의를 하거든요. 그럴 때도 한 번씩 참석해가지고 같이 의견 조율하고 필요한 건 없는지 살펴보고 선생님들이 또 대학생 분들이 많다 보니까 대학생 분들이 하기 힘드신 거는 제가 도와드리고 그런 식으로 하고 있습니다.”

▶ 수업

수업은 기초 한글, 영어, 산수 수업과 초·중등 검정고시 대비반으로 이뤄집니다. 최근에는 빠르게 변화하는 디지털 시대에 발맞춰 스마트폰반도 개설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열린 수업만 주중·주말 도합 열 반이 넘습니다. 기존에는 수업이 건물 2층에서만 진행됐지만 이제는 지하까지 교실을 늘려야 할 정도라는 것만 봐도 학생들의 열정을 알 수 있습니다.

교사 수가 많은 것도 비슷한 이유입니다. 교사들은 금전적 대가 없이 각자 본업 후에 자투리 시간을 내 봉사하는 것이라 1인당 일주일에 하루 정도만 수업을 맡고 있습니다. 하루 6개 반 수업이 일주일 내내 진행되니, 그만한 인원이 필요한 것이겠죠.

금정열린배움터의 한 학생이 받아쓰기 노트에 문장을 적고 있다. 오미래PD


저녁 7시 30분, 수업 시간이 되면 이곳은 선생님의 목소리를 우렁차게 따라 하는 어르신들의 목소리로 가득합니다. 정성껏 한 자 한 자 적어 내려가는 글씨도 금세 교재를 가득 채웁니다. 이런 어르신들을 보면 청년 교사들은 쉬운 것도 더 쉽게 가르쳐주고 싶을 수밖에 없습니다.

[ 홍지혁 / 대학생, 금정열린배움터 교사 ] “어머님들이 정말 열정적으로 물어와 주시고 또 제가 여기 정도까지만 가르쳐드려도 되겠다 싶어도 어머님들이 먼저 ‘이거는 왜 그러냐’라고 물어봐 주신다거나 하셔서 저도 계속해서 자극을 받으면서 같이 해 나가는 것 같습니다.”

▶ 개나리반 사람들 ① - 83세 한복순 학생

뭐라노 취재진은 기초 한글을 배우는 ‘개나리반’을 찾았습니다. 이 반 한복순 학생은 금정열린배움터에서 수업을 들은 지 3개월 차의 새내기입니다. 사는 곳은 양산 덕계동이지만 배우고 싶다는 의지 하나만으로 이곳 부곡동까지 한 시간이 훌쩍 넘는 거리를 오간다는데요. 비가 오는 궂은 날씨에도 여태 하루도 빠짐없이 출석 중인 우등생입니다.

금정열린배움터의 83세 한복순 학생. 오미래PD


[ 한복순 / 금정열린배움터 학생 ] “나는 낫 놓고 기역 자도 몰랐거든요. 내 이름자도 제대로 못 쓰고 이랬는데 여기 와서 배우면서 이름자도 쓸 줄 알고 좋은 친구들도 많이 만나고 선생님들도 너무 좋아요.

여기 오니까 작문도 지으라 하고 시도 쓰라 하고 이런 저런 거 다 많이 배워가지고 지금은 내가 우리 딸한테 편지도 썼습니다. 편지를 써가지고 보냈더만은 우리 딸들이 너무 놀래서 감격해 막 울고 난리가 났어요. 간판도 못 읽고 내 이름도 잘 못 쓰고 이랬는데 선생님들이 귀에 쏙쏙 들어오게 가르쳐 주시니까 우리가 눈을 뜬 거지. 참 고마운 일이지. 너무 고마워서 하루도 안 빼먹고 나 매일 옵니다. 길은 멀어도.

한복순 학생이 금정열린배움터에서 한글을 배워 딸들에게 쓴 편지. 본인 제공.


▶ 개나리반 사람들 ② - 30세 염지혜 선생님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어르신들을 가르치는 개나리반 염지혜 선생님은 교육 봉사를 시작한지 6개월 즈음 됐습니다. 염 선생님은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 지루함을 느끼던 중 뉴스로 이곳을 접하고 호기심이 생겨 교사로 지원했습니다. 봉사단체 회장으로 활동하는 아버지를 보고 자란 영향도 적지 않다고 합니다.

염지혜 금정열린배움터 교사. 개나리반에서 목요일마다 한글을 가르친다. 오미래PD


[ 염지혜 / 직장인, 금정열린배움터 교사 ] “제가 본업은 이제 물류 유통 회사에 지금 일을 하고 있고요. 마치고 이제 금정열린배움터로 가서 어머니들께 한글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어르신들이) 쓰시는 게 조금 힘든 거지 말할 수는 있으셔서 (원리보다는) 그냥 재미 위주로만 하는 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개나리반 2교시 수업은 받아쓰기 시간입니다. 받아쓰기 시간에는 보고 따라 쓰고, 듣고 받아 쓰고, 받아쓴 문장을 읽어보는 식으로 수업이 진행됩니다. 간단한 단어와 문장의 맞춤법을 알려주는 수업이기 때문에 학창시절 의무적으로 교육을 받았던 현재 청년 세대에게는 큰 어려움이 없습니다.

[ 염지혜 / 직장인 금정열린배움터 교사 ] “난감했던 점은 수업하다 중간에 제가 헷갈릴 때, 제가 갑자기 맞춤법이 헷갈릴 때가 조금 난감했고요. 그때는 이제 몰래 핸드폰으로 검색을 해서 알려드렸던 경험도 있습니다.”

염지혜 금정열린배움터 교사가 개나리반에서 한글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오미래PD


염지혜 선생님은 수업을 진행해 온 6개월 동안 받아쓰기 시간의 마지막 문장을 ‘유쾌, 상쾌, 통쾌’로 고정했습니다. 생소한 ‘쾌’ 음절을 익숙하게 만들기 위해 어르신들이 자주 듣는 광고 문구를 활용한 겁니다. 처음에는 많은 어르신들이 올바르게 적지 못하고 어려워했지만 반복적으로 학습한 결과 최근 수업에서는 모두 알맞게 써서 큰 보람을 느꼈다고 전했습니다.

▶ 열정페이로 전기세는 낼 수 없어요

금정열린배움터는 가르쳐주는 사람도 배우는 사람도 오직 열정을 지불하며 운영됩니다. 오로지 열정만으로 마음을 나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교육열로 뜨거운 이곳에도 찬물을 끼얹는 현실은 있습니다. 야학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월세, 전기세 등 지출해야 할 돈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이곳은 1997년 IMF 경제위기 이전에는 후원금만으로도 운영이 가능했지만, IMF 이후 모든 후원이 끊기면서 재정적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다행히 2000년대부터는 교육부와 금정구로부터 성인문해교육 사업 지원금을 받고 있습니다. 사업 지원금을 받는 것은 희소식이지만 환호하기엔 아직 이릅니다. 사업 운영 계획에 따라 사업 공모, 신청, 검토를 거치면 집행까지 공백이 생겨 일정 기간에만 지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정해웅 / 중등교사, 금정열린배움터 교장 ] “이런 사업이 있다 했을 때 그걸 저희가 신청을 하면 5월부터 집행이 가능한 거예요. 5월부터 연말까지만 쓰고 연말이 딱 끝나면 1월부터 4월까지는 저희가 돈을 못 받는 거예요. 그 기간은 또 돈이 비잖아요. 그런데 저희가 돈이 없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봉사하시는 분들께서 수업도 하시면서 기부도 하시고 그래가지고 기부금을 조금씩 모아가지고 1월부터 4월까지 여러 가지 월세나 등등을 충당을 하고 있어요. 그렇게 해서 그냥 겨우겨우 운영을 하고 있습니다.”

▶ 내려놓았던 꿈

현실에 떠밀려 꿈을 내려놓는 인생을 살아왔지만 다시 용기를 낸 어르신들.

[ 김희순 / 금정열린배움터 학생 ] “제가 너무 공부를 못해서 많이 배웠으면 하는 한이 있어서 왔습니다. 나이가 많이 들어서 늦었습니다. 도전은 많이 하고 싶은데 안 따라주네요. 학교를 다 나왔으면 중학교도 가고 고등학교도 가고…. 나이가 젊었으면 내가 얼마나 좋았을까.”

배견희 금정열린배움터 교사. 오미래PD


[ 배견희 / 대학생, 금정열린배움터 교사 ] “배움에는 사실 끝이 없기 때문에 저희도 가르쳐 드리면서 배워가는 것이 정말 많고 아무리 똑똑한 사람들이라도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배우는 것이 조금이라도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래서 어머님 아버님들도 옛날에 못 배우셨다고 주눅들고 실패라고 생각하지 마시고 항상 새로운 시작이라고 생각을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금정열린배움터 교사들의 경험에 따르면 아직까지는 많은 어르신들이 공부하는 것에 대해 부끄러워 하는 기색이라는데요.

[ 정해웅 / 중등교사, 금정열린배움터 교장 ] “내가 못 배운 거에 대해서 자꾸 움츠러드는 게 아니라 나는 배움에 대한 아픔과 상처가 있지만 지금이라도 이 나이에도 나는 배울 수 있다는 약간 자신감 같은 마음으로 돌려서 생각을 하시면 어떨까. 저희 선생님들이 항상 그런 말씀하시거든요. 너무 멋지시다. 어머님 아버님. 진짜 엄청 성실하게 오셔가지고 공부하시고 이런 걸 보면서 나도 이런 부분을 본받아서 시험 공부도 더 열심히 해야 되겠다, 이런 영향도 받으시고 보람을 얻어가시듯이 자신감을 좀 가지셨으면 좋겠어요. 저희 기관은 이름이 열린배움터잖아요. 항상 열려 있으니까 편안하게 오시고 언제든지 전화도 주시고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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