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환·이중섭 즐겨 찾은… ‘국내 1호’ 클래식 감상실[우리 동네 ‘히든 챔피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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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중구 향촌동 향촌문화관 지하 1층 '녹향(綠香·사진)'은 국내 1호 클래식 음악감상실이다.
녹향은 성악가를 꿈꾸던 고 이창수(1921∼2011) 선생이 광복 이듬해인 1946년 10월 문을 열었다.
이 선생 별세 후 셋째 아들 이정춘(75) 씨가 화정동에서 녹향을 운영해오다가 2014년 중구청과 협의해 향촌문화관에 옛 모습 그대로 복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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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후 1946년 10월 문열어
축음기·LP판 등 레트로 감성
77년간 지역 예술인의 성지로
대구=박천학 기자 kobbla@munhwa.com
대구 중구 향촌동 향촌문화관 지하 1층 ‘녹향(綠香·사진)’은 국내 1호 클래식 음악감상실이다.
녹향은 성악가를 꿈꾸던 고 이창수(1921∼2011) 선생이 광복 이듬해인 1946년 10월 문을 열었다. 고인은 ‘음악의 향기가 녹음처럼 우거져라’라는 의미를 담아 녹향이라는 이름을 지었다. 처음에는 향촌문화관에서 조금 떨어진 이 선생 자택 지하 1층에서 축음기 한 대와 500여 장의 LP판으로 시작했다. 클래식 음악에 빠진 이 선생이 음악감상회 그룹을 만들어 모임 장소로 이용하던 공간이 77년째 클래식 선율이 흐르는 대구의 명소가 됐다.
녹향은 6·25전쟁 때 대구로 피란 온 예술인들의 사랑방 역할을 했다. 시인 유치환·조지훈·박목월·양명문, 화가 이중섭, 국문학자 양주동 등이 녹향 단골손님이었다. 양명문(1913∼1985)은 녹향에서 클래식을 감상하며 가곡 ‘명태’ 가사를 썼다. 이중섭(1916∼1956)은 이곳에서 담뱃갑 은박지에 그림을 그려 이 선생에게 주기도 했다.
이 선생은 1958년 남일동으로 음악감상실을 옮겼다. 하지만 1960년대부터 고급 음향기기와 CD가 널리 보급되고, 팝송 음악감상실이 생겨나면서 클래식 음악을 찾는 발길이 줄어들었고, 이 선생도 극심한 경영난을 겪게 됐다. 이로 인해 녹향은 사일동·포정동·중앙로·동성로·화전동 등으로 떠돌았고, 그때마다 지역예술계와 지역민들이 나서 이 선생을 도왔다. 녹향 설립 때부터 함께한 문화예술모임 예육회와 이후 만들어진 예향회·녹향 with 뮤즈·예지회·에스텔라 등 다양한 음악모임이 녹향에서 정기 음악감상회를 열며 사람들에게 이곳을 알렸다.
이 선생 별세 후 셋째 아들 이정춘(75) 씨가 화정동에서 녹향을 운영해오다가 2014년 중구청과 협의해 향촌문화관에 옛 모습 그대로 복원했다. 이곳에는 낡은 탁자와 70여 개의 소파, 축음기, 2000여 장의 LP판 등 이 선생의 손때가 묻은 물건이 고스란히 놓여있다.
지난 10월 이곳에서 중구청 주최로 녹향 설립 77주년 기념 음악회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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