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40. 포천 허브아일랜드

경기일보 2023. 12. 14.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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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브, 신이 선물한 향기에 취하다
허브 식물 박물관 전경. 윤원규기자·허브아일랜드 제공

100년 전만 해도 겨울에 푸른빛의 싱싱한 식물들이 내뿜는 상쾌하고 달콤한 향기로 가득한 정원을 느긋하게 산책하는 일은 황제나 억만장자도 누릴 수 없었다. 포천시 신북면에 자리 잡은 허브아일랜드박물관(관장 심재인)은 겨울에 찾으면 더욱 좋은 곳이다. 허브아일랜드박물관에는 340종의 허브가 자라고 있다. 경기도박물관협회장이기도 한 심재인 관장은 허브를 이렇게 정의한다. “약효가 있고, 먹을 수 있고, 향기 주머니가 있으면 모두 허브라 할 수 있습니다.”

■ 사계절이 봄날처럼 향긋한 곳

동화의 나라처럼 아름답게 꾸며진 허브아일랜드박물관은 사계절이 봄날이다. 박물관에 들어서자 싱그러운 향기가 가슴 가득 스며든다. 길게 펼쳐진 로즈마리 터널을 통과하면 새로운 향기가 코를 찌른다. 제라늄과 재스민, 유리옵스, 학자스민, 한련화 같은 여러 종류의 허브가 어우러진 공간을 지나 식물원 2관에 들어서면 독특한 생김새의 여우꼬리야자와 켄챠야자, 야레카야자, 테이블야자처럼 열대식물들로 가득하다. 튼실하게 자란 산세베리아와 짙푸른 잎사귀를 자랑하는 필로덴드론셀렘, 푸른 잎을 무성히 단 벤자민고무나무, 용설란과 행운목도 보인다. 집 안에서 기르기 좋은 낯익은 식물들이라 더욱 반갑다. 허브와 아름다운 꽃들이 가득한 ‘하늘정원’에 들어선다. 분홍빛의 부겐빌레아, 황금빛 천사의 나팔이 식물원을 밝게 장식하고 있다. 폐와 기관지에 좋다는 계화나무 군락지는 달콤한 복숭아향으로 가득하다. 비염에 좋다는 유칼립투스, 호주 원주민들이 약재로 이용한 티트리, 말레이시아어로 ‘꽃 중의 꽃’이란 뜻을 가진 일랑일랑의 달콤한 향기를 맡으며 허브의 세계에 빠져든다.

화려한 설경을 뽐내는 허브 아일랜드 전경. 윤원규기자·허브아일랜드 제공

허브를 대표하는 식물은 역시 보랏빛 꽃을 피우는 라벤더가 아닐까. 라벤더실에 허브아일랜드 역사관이 마련돼 있다. 설립자 임옥 대표가 설립 초기 허허벌판에서 쪼그리고 앉아 허브를 가꾸는 모습이 담긴 사진과 허브아일랜드를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100대 관광지’로 인정한다는 패도 보인다. 태극 문양의 정부 마크와 31개 시·도를 잇는 경기도 마크가 붙은 수십 장의 인증서는 허브아일랜드가 여태껏 얼마나 부단히 변신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물이다. 잠시 의자에 앉아 동영상으로 허브아일랜드의 역사를 살펴보며 황무지를 낙토로 가꾼 한 인간의 선한 의지에 감동한다. 이름부터 향긋한 ‘향기유물관’에는 어떤 것이 전시됐을까. 옛날부터 전해오는 손때 묻은 도구와 향기로운 씨앗이 담긴 통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오일을 추출하고 향을 만드는 약저울, 약사발, 약절구, 약주전자, 약작두, 약장, 약병 같은 도구에도 향긋한 냄새가 배어 있는 듯하다. 눈이 내리면 더욱 어울릴 산타마을에 마련된 ‘상통인형관’은 낭만의 공간이다. 점토로 만든 작은 인형들이 향수로 유명한 프랑스 프로방스 아비뇽 마을 사람들의 삶과 직업을 실감 나게 보여준다. 놀랍게도 상통인형 300여점이 모두 저마다의 독특한 개성을 뽐내고 있다.

국내외 다양한 허브 및 식물이 자라고 있는 허브 식물 박물관 내부 모습. 윤원규기자·허브아일랜드 제공

■ 천년을 이어온 허브의 향기

포도주도 허브와 연결할 수 있을까. ‘와인관’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제국을 거쳐 프랑스와 스페인, 독일로 퍼져 나가다 15~17세기 무렵 세계로 전파된 와인의 역사를 한눈에 보여준다. 와인과 관련된 근현대의 특이한 유물을 한자리에 모아 놓은 것도 볼만하다. 와인을 숙성시킬 때 사용했던 온도계, 원액을 만드는 착즙기, 오크통과 코르크 마개를 제작하는 기계를 살펴본다. 시대별, 국가별로 사용된 물건을 비교하며 살펴볼 수 있는 것이 재미있다. 프랑스어 ‘발효시킨 항아리’라는 뜻을 가진 ‘포푸리’는 꽃과 향이 좋은 허브 잎, 과일 껍질, 향료들을 함께 첨가해 향기가 오래 나도록 백단유, 수지, 꽃기름 등과 함께 용기 속에 넣어 숙성시켜 만든다. 허브아일랜드의 포푸리 역사가 곧 우리나라의 포푸리 역사라고 자부하는 공간이란다. 세계에서 출판된 허브와 관련된 서적 1천여권이 진열된 작은 도서관도 있다. 조선의 선비들이 읽던 한의학 서적을 비롯해 표지가 바랜 서양의 책과 동양의 한의학에 이르기까지 허브와 관련된 서적을 시기별, 나라별로 만날 수 있다. 프랑스어와 독일어 등 외국 서적이 많지만 한글로 된 책도 제법 보여 반갑다. 십자군전쟁 당시 허브로 상처를 치료한 수기가 기록된 희귀한 책도 있으니 찾아보면 좋겠다.

허브로 만든 차는 어떤 종류가 있을까. ‘허브차관’은 라벤더, 로즈마리, 레몬밤, 히비스커스, 루이보스, 캐모마일 등 여러 가지 허브차를 전시하는 공간이다. 향기가게에 있는 ‘향신료유물관’은 허브를 이용해 만든 여러 향신료와 그것을 담는 각종 용기, 오일추출기, 착즙기, 그라인더 등을 전시하고 있다. 향신료를 담은 용기는 디자인도 예쁘고 고급스럽다. 향신료유물관은 허브를 이용해 만든 오일, 와인, 술, 식초 등을 함께 전시하며 와인과 식초 만드는 방법도 소개하고 있다. 빵가게에 있는 ‘빵유물전시관’은 전통 장비부터 최근의 기계에 이르기까지 시대별로 발달해 온 빵틀과 바게트를 담는 통, 버터제조기, 빵 자르는 도구 등을 전시하고 있다. 고대 이집트부터 오늘날까지 서구인들의 주식으로 이용해 온 밀과 빵의 역사를 살펴보는 시간도 흥미진진하다.

옛사람들은 어떤 커피 도구를 사용했을까. ‘커피관’은 유럽과 중동, 아시아에서 사용되는 커피 도구를 보여준다. 콩을 볶는 로스터기, 콩을 가는 그라인더, 커피머신 등 커피에 관한 모든 것을 볼 수 있다. 허브 카페에 있는 ‘피에로인형관’에서 인형도 실컷 볼 수 있다. 흰색의 주름 잡힌 폭넓은 옷깃이 달린 의상을 입고 붉은 코에 하얗게 얼굴을 분칠한 피에로가 입을 크게 벌린 채 웃고 있다. 프랑스, 이탈리아, 벨기에, 일본, 미국 등에서 섬유, 플라스틱, 석고, 도자기, 유리 등 다양한 재료로 만들어진 무려 500여점의 피에로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이탈리아에서 유리로 만든 수제 인형 피에로는 세계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작품이다. 피에로의 인기가 이 정도인 줄이야!

국내외 다양한 허브 및 식물이 자라고 있는 허브 식물 박물관 내부 모습. 윤원규기자·허브아일랜드 제공

■ 허브로 행복하고 건강한 세상을 꿈꾸는 곳

추억의 거리에 마련된 민속관은 이국적인 허브아일랜드에서 만나는 가장 토속적인 공간이다. 야외에 있는 민속관은 허브아일랜드 인근에 사는 포천 주민들이 실제로 사용했던 전통 농기구를 기증받아 전시하고 있다. 논을 고르는 써레, 쟁기를 끌 때 소 등에 올리는 멍에, 양쪽에 양철통을 달아 둔 물지게도 볼 수 있다. 전통 혼례를 재현한 혼례청에서 혼례복을 입고 꽃가마를 타 볼 수도 있다. ‘체험관’을 찾으면 허브의 원산지라 할 수 있는 지중해 연안 국가에서 제작된 허브 표본을 감상할 수 있다. 식물 전체를 볼 수 있는 로즈마리와 라벤더, 애플민트 같은 여러 가지 표본이다. 표본을 보면서 허브의 이름과 원산지, 이용 부위를 확인하는 것도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한다.

차나 음식, 향수 등 생활에 다양하게 활용하는 허브는 오랜 역사를 가졌다. 허브아일랜드는 허브의 원산지인 지중해, 일본을 돌며 허브에 관한 기초를 다진 뒤 허브 씨앗을 한국 땅에 심고 가꿨다. 허브박물관은 2020년 국가가 인정하는 1종 허브 식물박물관으로 정식 등록됐다. 340여종의 허브가 자라고 있다. 박물관은 허브를 주제로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한편 허브 체험장에서는 이곳 농장에서 재배한 다양한 허브를 활용해 화장품과 비누, 생활소품을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다. 방마다 아이들에게 익숙한 동화를 그림과 조각으로 옮겨 놓아 아이들이 상상력을 펼치고, 아이를 바라보는 어른들도 어느새 동심의 세계로 빠져든다.

허브는 사람의 기운을 돋우고 생명력을 불어넣는 치유의 식물이다. 상쾌한 향기는 굳은 마음과 얼굴을 펴게 하는 신비로운 힘이 있다. 허브아일랜드박물관은 허브로 행복해지는 세상을 만들어 가는 즐거운 놀이터다. 김영호(한국병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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