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슨 30분에 30만원"... 음대 입시비리 핵심은 현직 교수의 불법과외

오세운 2023. 12. 14.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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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대 입시비리 의혹 계속 터지는 이유]
음대생들 "현직교수 사적 레슨 흔해" 입모아
시간당 30만~50만원... 입시상담은 수천만원
칸막이로 수험생 분리해도 소리 들으면 감별
1991년 1월 이화여대 음대 입시부정사건으로 구속 수감되는 학부모와 심사위원들. 한국일보 자료사진
"사람마다 고유의 음악 스타일이 있거든요. 그래서 음악하는 사람들은 학생이 첫 음 내는 것만 들어도 누군지 다 알아요."

음악대학에서 최근 연이어 터진 입시비리 의혹에 관한 질문을 받자, 50대 첼로 강사 A씨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대학교수가 수험생을 상대로 불법 과외를 하고, 그 교수가 음대 입시 실기시험에 심사위원으로 들어가 높은 점수를 주는 입시비리가 충분히 가능하다는 얘기다.

음대 입시 실기평가에선 평가자(심사위원)와 연주자(수험생) 사이에 가림막을 치는 '블라인드' 장치가 있다. 그러나 심사위원은 자신이 가르친 제자의 연주를 단박에 알아차리게 된다고 A씨는 설명했다. A씨는 "어린시절부터 교수 레슨을 받는 경우가 꽤 있고, 음대 입시 비리가 안 드러난 것일 뿐 실제론 더 많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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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대 입시비리' 의혹 서울대 압수수색... '불법과외' 수사 확대되나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3121218100002980)

경찰이 10월 숙명여대 음대를 시작으로 이달 서울대 음대에 대한 압수수색에 들어가면서, 음대 입시 비리 의혹이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 음대 입시의 주 평가자인 현직 교수들이 불법 고액 과외를 일삼은 뒤, 더 나아가 자신에게 과외를 받은 학생들의 점수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세간의 의심이 서서히 사실로 드러나는 중이다. 경찰 조사를 통해 확인된다면 입시 공정성에도 큰 타격이 갈 것으로 보인다.


"30분에 30만 원, 짧지만 큰 영향력"

13일 한국일보가 음대 준비생과 재학·졸업생 10여 명을 상대로 취재한 내용을 종합하면, 전현직 음대 교수의 과외는 지금도 흔히 이뤄지고 있다. 이는 학원법 제3조(교원은 과외를 할 수 없다)를 명백하게 위반한 행위다.

과거 입시를 앞두고 교수 레슨을 경험했다는 성악과 4학년 B(25)씨는 "레슨은 30분 정도로 짧지만, 입시생에겐 자신의 소리가 어떤지 평가받을 귀중한 기회라 암암리에 많이들 찾는다"고 증언했다. 바이올린으로 음대 입시를 앞둔 C(18)군은 "교수 레슨을 받는다고 주위에 떠벌리진 않지만 친한 친구끼린 다 말해서 안다"며 "한 학생은 대학 입학 전 독주회를 열었는데, 프로필에 'OOO(대학교수)을 사사했다'고 적어 놓는 경우도 봤다"고 기억했다.

과외엔 거액의 비용이 따른다. 현직 대학교수의 경우엔 많게는 30분에 30만 원, 대학 출강을 하는 강사의 경우 1시간에 10만~20만 원 정도를 받는다. 10년 이상 성악과 입시 레슨을 해온 강사 D씨는 "어느 교수는 입시 컨설팅을 해주는 명목으로 1,000만 원씩도 받는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성악과 졸업생 김모(25)씨는 "레슨을 들은 학부모들끼리 돈을 모아 교수에게 명품시계, 외제차 등을 선물했다는 소문도 있다"고 귀띔했다.

과외는 입시 과정에서도 상당한 영향을 준다. 서울의 한 사립대를 다니는 음대생 김모(21)씨는 "음악계는 워낙 좁아서 현직은 물론 퇴직 교수가 영향력을 쉽게 행사할 수 있는 구조"라며 "그래서 '누구한테 레슨을 받느냐' 이런 경쟁이 어렸을 때부터 심하고 특정 교수에 대한 줄타기는 대회부터 입시까지 엄청난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런 구조이기 때문에, 고액을 받고 교수에게 학생들을 연결해주는 브로커가 등장할 수 있다는 게 다수 학생들의 증언이다.


1대 1 현금거래라 적발 어려워

대학교수의 과외가 불법임에도 근절되지 않는 것은 대부분 1대 1로 진행되고 현금이 오가는 과외 특성상 적발하기 어려운 구조기 때문이다. 성악과 재학생 E(27)씨는 "처음엔 합법으로 과외를 할 수 있는 시간강사에게 레슨을 받고, 나중에 강사 인맥을 활용해 교수까지 접근하는 방식이 일반적"이라고 말했다. 피아노 입시를 준비하는 F(18)양은 "(실제 많이 이뤄지지만) 교수의 인맥 등으로 입시생 신분에선 불이익이 있을까봐 전반적으로 쉬쉬하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그렇게 현직 대학교수의 과외가 음성적으로 폭넓게 이뤄지는 구조가 고착화하면서 음대 입시비리는 끊이지 않고 있다. 2021년 연세대 음대에서도 유명 피아니스트 출신 교수가 학원강사 청탁으로 불법과외를 했고 입시곡까지 유출해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음대 입시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실기에선 최고점과 최저점이 제외되는 방식으로 채점하는 대학들도 있는데, 이런 경우엔 심사위원 한 명만 연루되는 것으로는 비리가 어려울 수 있다"고 진단했다. 다른 관계자는 "현직 교수의 입시생 과외 실태를 더 면밀히 점검하고 사적 레슨에 대한 법적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세운 기자 cloud5@hankookilbo.com
전유진 기자 xxjinq@hankookilbo.com
최현빈 기자 gonnaligh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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