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대중문화 키워드…SM·무빙·슬램덩크·서울의 봄

김한솔·최민지 기자 2023. 12. 13.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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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대중문화계는 분야별 희비가 뚜렷하게 갈렸다. 최근 몇년 새 급성장한 ‘K팝’은 올해도 탄탄한 팬덤을 기반으로 글로벌한 인기를 이어갔다. 많은 아이돌 그룹이 해외를 중심으로 활동했고, 대형 소속사들이 ‘다국적 아이돌 그룹’을 만들겠다고 나섰다.

넷플릭스를 중심으로 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의 오리지널 콘텐츠들이 올해도 막대한 자본과 구독자 수를 앞세워 드라마, 예능 등 콘텐츠 시장을 주도했다.

가장 침체된 분야는 역시 한국영화였다. ‘기대작’으로 꼽히던 영화들 중 13일 현재까지 1000만 관객을 동원한 건 <범죄도시3> 하나뿐이다. 나머진 간신히 손익분기점을 넘겼거나 상대적인 흥행에도 불구하고 손해를 봤다. 코로나19 팬데믹 때 바뀐 관객들의 문화 소비 방식, 콘텐츠의 질적 하락, 영화 티켓값 상승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2023년 한 해 대중문화계에 있었던 굵직한 일들을 분야별로 정리했다.

K팝

K팝 지각변동 일으킨 SM 사태

올해 대중문화계에 가장 큰 사건은 SM엔터테인먼트의 경영권 분쟁이었다.

분쟁은 지난 2월 이수만 전 SM 총괄 프로듀서가 자신의 SM 주식 대부분을 하이브에 매각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시작됐다. 하이브는 곧 약 4228억원에 이 전 프로듀서의 SM 지분을 인수해 SM의 단독 최대주주가 됐다. 이 전 프로듀서 중심의 회사 운영에 비판적이었던 SM 경영진은 하이브의 SM 인수 시도에 반발했다. 이 전 프로듀서가 개인회사인 ‘라이크기획’을 세워 SM 아티스트들의 프로듀싱에 참여하면서 가져간 수수료에 대한 문제제기도 이어졌다. 분쟁은 카카오가 카카오엔터테인먼트와 함께 SM 인수전에 뛰어들며 격화됐다.

이수만·하이브 대 SM 경영진·카카오의 경영권 싸움은 하이브가 SM 인수 중단을 선언하며 일단락됐다. 방시혁 하이브 의장은 “인수에 들어가는 유무형 비용이 훨씬 크게 느껴졌다”며 “시장 질서를 흔들면서까지 인수전엔 들어갈 수 없다고 결론내렸다”고 말했다.

카카오는 지난 3월 주당 15만원에 SM 주식을 공개매수하면서 하이브를 제치고 SM의 최대주주가 됐다. SM의 ‘슈퍼 IP(지식재산권)’를 카카오가 확보한 것이다. 1995년 설립 후 국내 K팝 문화를 주도하다시피 한 SM이 ‘후발 주자’인 하이브에 인수될 뻔한 것, 카카오와의 합병으로 일어난 업계의 지각변동은 K팝 문화의 한 시대가 끝났음을 실감케 했다.

SM 사태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볼 것으로 우려됐던 그룹은 이 전 프로듀서의 색채가 강하게 들어간 걸그룹 ‘에스파’였다. 하지만 오히려 기존의 복잡한 세계관에 힘을 뺀 미니 3집의 타이틀곡 ‘스파이시(Spicy)’가 성공하면서 우려를 씻어냈다. 인수전이 끝난 뒤 SM에서 내놓은 첫 아이돌 그룹은 ‘라이즈(RIIZE)’다.

OTT

더 강화된 OTT 시장

올해 화제가 된 콘텐츠들은 대부분 OTT 오리지널이었다. 디즈니플러스의 오리지널 콘텐츠 <무빙>은 작품성과 흥행성 면에서 올해 가장 화제가 된 드라마로 꼽힌다. 좀처럼 늘지 않는 구독자 수, 공개하는 콘텐츠마다 기대만큼 성과가 나지 않아 한국에서 철수하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나왔던 디즈니플러스를 구원한 콘텐츠이기도 하다. 만화가 강풀의 동명 인기 웹툰을 시리즈화한 <무빙>은 인물별로 스토리를 공개한 독특한 연출 방식, 신인 배우들의 인기 등으로 화제가 됐다. 원작 웹툰이 <브릿지>라는 다음 이야기로 이어지는 만큼 시즌2에 대한 기대도 높지만 아직 확정된 것은 없다.

<무빙>이 하반기 흥행작이라면 상반기 최대 화제 드라마는 넷플릭스 오리지널인 <더 글로리>다. 주로 멜로물을 선보였던 김은숙 작가가 전혀 다른 색깔로 집필한 드라마이기도 하다. 학교폭력 피해자의 복수 이야기인 <더 글로리>는 “연진아, 나 지금 되게 신나” 같은 유행어를 만들어냈다. 주연 송혜교를 비롯해 임지연, 김히어라, 차주영, 박성훈 등이 주목받았다. <더 글로리>의 영향으로 국내외에서 학교폭력에 대한 경각심이 불거지기도 했다.

예능에서도 OTT의 강세가 돋보였다. 넷플릭스 오리지널인 <피지컬:100>은 시즌2 제작이 확정됐고, <나는 신이다>는 JMS 사건에 대한 여론을 환기시켰다. 최근 국내 OTT인 티빙과 웨이브가 합병하기로 하면서 ‘공룡 OTT’의 등장을 예고하고 있는 만큼 내년엔 국내 OTT 오리지널 콘텐츠들이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일본

J콘텐츠, 영광의 시대!

과거의 영광을 되찾은 분야도 있다. 오랜 시간 일부 마니아층을 중심으로 소비됐던 J팝과 저패니메이션 등 ‘J콘텐츠’는 올 한 해 대중의 사랑을 두루 받았다.

새해 벽두 <더 퍼스트 슬램덩크>(1월4일 개봉)가 스타트를 끊었다. 1990년대 연재된 인기 농구 만화 <슬램덩크>의 극장판 애니메이션이다. 학창 시절 원작을 보고 자란 3040세대는 개봉과 동시에 극장으로 달려갔다. 입소문을 타고 전 세대를 아우르며 크게 흥행한 영화는 누적 관객 수 470만명을 동원, <너의 이름은.>(2016년·367만명)을 넘어 국내 개봉 일본 애니메이션 역대 흥행 1위에 올랐다. 열풍은 만화책 판매로 이어졌다. 1996년 완결된 <슬램덩크> 관련 단행본은 영화 개봉 이후 5개월 동안 250만부 이상 팔렸다.

불붙은 저패니메이션의 인기는 이 기록마저 금세 갈아치웠다. 3월 개봉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신작 <스즈메의 문단속>은 총 550만명의 관객을 끌어모으며 1위 자리를 탈환했다. 열풍은 현재진행형이다. 지난 10월 개봉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와 재즈 소재의 <블루 자이언트>는 각각 198만명과 11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현재까지 상영되고 있다.

J팝의 기세도 만만치 않다. 이마세, 요네즈 겐시, 아이묭, 요아소비, 후지이 가제 등 일본 뮤지션의 음악은 1년 내내 국내 주요 음원 차트 상위권에 머물며 큰 사랑을 받았다. 이마세가 지난해 8월 발표한 싱글 ‘나이트 댄서’는 멜론의 대표 차트 ‘톱 100’의 17위까지 올랐다. J팝이 이 차트에 오른 것은 처음이다. 이마세는 지난 2일 열린 멜론뮤직어워드 2023에서 신설 부문인 ‘J팝 페이보릿 아티스트상’까지 수상했다. 일본 아티스트들의 내한도 잇따랐다. 주목받는 실력파 싱어송라이터 후지이 가제는 지난 6월 첫 내한 공연을 통해 한국 관객 2000명을 만났다. 이마세는 지난 4월 관객 500명 앞에서 첫 내한 쇼케이스를 열었다. 오는 16~17일엔 밴드 요아소비의 첫 내한 콘서트가 예정돼 있는데, 1만석의 티켓이 예매 시작 1분 만에 매진됐다.

J팝의 인기 배경에는 빠르게 성장 중인 틱톡, 유튜브 숏츠와 같은 쇼트폼 콘텐츠가 있다. 댄스 챌린지 등 1분 미만의 짧은 동영상 콘텐츠에서 활용된 이들 노래를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찾아 듣는 것이 주요 소비 패턴으로 자리 잡았고, 이는 곧 차트 진입으로 이어졌다. 일본 애니메이션 흥행도 J팝 인기를 견인했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와 <스즈메의 문단속>의 주제곡을 부른 밴드 래드윔프스, 텐피트는 지난 7월 각각 내한해 성황리에 공연을 마쳤다.

영화

봄을 기다리는 한국영화계

올 한 해 모두가 한국영화의 위기를 말했다. 1년 내내 수많은 한국영화가 관객의 외면 앞에 고꾸라졌다.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려운 정도다. 분석은 분분하다. 누군가는 OTT를 탓했다. 누군가는 비싸진 티켓값이 문제라 했고, 누군가는 한국영화의 질적 하락을 짚었다. 한 가지만큼은 분명하다. 이제 내놓기만 하면 관객 수백만이 들던 시대가 저물었다는 점이다.

위기감은 연초부터 고조됐다. 설 명절 극장가 성수기를 노린 ‘대작’들이 줄줄이 흥행에 실패하면서다. 100억원대 제작비를 들이고 톱스타들이 주연한 <교섭>(172만명), <유령>(75만명)이 손익분기점에 한참 못 미치는 성적표를 받고 떠났다. 봄이 왔지만 불운은 계속됐다. <대외비>(75만명), <리바운드>(70만명) 모두 관객의 외면을 받았다. 5월 개봉한 <범죄도시3>가 엔데믹 이후 첫 ‘천만 관객’을 동원하며 한국영화의 자존심이 회복되는가 싶었지만 잠시였다. 여름 성수기를 노린 텐트폴 영화 <더 문>(51만명), <비공식작전>(105만명)이 초라한 성적을 거뒀다. 살아남은 것은 <밀수>(514만명), <콘크리트 유토피아>(384만명)뿐. 그나마도 <밀수>만 손익분기점을 넘겼다. 추석 극장가도 마찬가지였다. 100억~200억원대 제작비를 들인 <거미집>(31만명), <1947 보스톤>(102만명),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191만명) 모두 큰 손해를 봤다. 이쯤 되니 국내 최대 영화배급사 CJ ENM이 ‘영화 사업에서 손을 뗀다’는 소문마저 돌아 대표가 공개적으로 부인하기에 이르렀다.

전례 없는 위기 속에서도 탁월한 데뷔작으로 존재감을 드러낸 신인 감독들이 있었다. 이정홍 감독의 <괴인>, 배우로 더 유명한 조현철 감독의 <너와 나>는 평단과 관객의 호평 속에 상영되고 있다. <잠>의 유재선, <화란>의 김창훈 감독은 데뷔작으로 칸국제영화제에 초청되는 쾌거를 이뤘다. <비밀의 언덕>의 이지은 감독은 차세대 여성 연출가로 눈도장을 찍었다.

혹독한 1년을 견뎌온 한국영화계에 모처럼 훈풍이 불고 있다. 12·12 군사반란을 다룬 <서울의 봄>이 지난 11일 7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천만 고지’에 성큼 다가섰다. 누적 관객 수 2500만명에 달하는 이순신 3부작 시리즈의 마지막 <노량: 죽음의 바다>도 오는 20일 연말 극장가로 출격한다. 두 작품이 극심한 침체의 고리를 끊어낼지에 모두의 눈이 쏠려 있다.

김한솔·최민지 기자 so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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