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메일을 그렇게 보내니? [김상균의 메타버스]

한겨레 2023. 12. 13.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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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신인 초코칩쿠키, 제목 없음, 본문에는 "교수님 우리 학교에 와서 강의해 줄 수 있나요?"라는 내용뿐인 이메일을 받은 적이 있다.

한 초등학생이 보낸 이메일이었다.

이메일 발신자가 예의가 없거나, 자신을 무시한다고 느끼는 듯했다.

모든 10대 청소년이 그렇지는 않겠으나, 여기서 언급한 10대 청소년들은 왜 이메일을 그렇게 보냈을까? 필자의 경우 살면서 처음으로 멀리 있는 타인과 글로 소통할 때 썼던 매개체는 편지와 우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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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균의 메타버스]

게티이미지뱅크

[메타버스] 김상균│인지과학자·경희대 경영대학원 교수

 발신인 초코칩쿠키, 제목 없음, 본문에는 “교수님 우리 학교에 와서 강의해 줄 수 있나요?”라는 내용뿐인 이메일을 받은 적이 있다. 한 초등학생이 보낸 이메일이었다. 이런 식으로 연락해 오는 10대 청소년들이 간혹 있다. 장소와 시간 등 강의에 관한 상세 사항을 보내달라고 하면, 정말 장소와 시간에 관해서만 한줄로 회신한다. 강의 대상, 강의 주제 등을 다시 세세히 물어보면, 그제야 그에 관해 답을 해온다. 이렇게 반복해서 여러번 주고받아야, 그 친구가 내게 요청하는 게 무엇인지를 파악할 수 있다.

처음 이런 연락을 받았을 때는 몹시 당혹스러웠다. 필자 주변에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고 얘기하는 이들이 있다. 아무리 10대 청소년이라고 해도, 어른과의 의사소통을 어쩌면 이렇게 할 수 있냐고 분노하는 이들도 적잖았다. 이메일 발신자가 예의가 없거나, 자신을 무시한다고 느끼는 듯했다.

모든 10대 청소년이 그렇지는 않겠으나, 여기서 언급한 10대 청소년들은 왜 이메일을 그렇게 보냈을까? 필자의 경우 살면서 처음으로 멀리 있는 타인과 글로 소통할 때 썼던 매개체는 편지와 우표였다. 직장에 들어간 뒤에는 팩시밀리를 통해 국내외 거래처와 소통했다. 편지, 팩시밀리 모두 한번 내용을 보내고 나면, 회신을 받는데 최소 몇시간에서 며칠이 걸렸다. 보내기 전에 몇번을 다시 읽어보면서, 혹시 더 전할 얘기, 빼먹은 질문이 없는가 고심한 뒤에 보내곤 했다.

10대 아이들은 타인과 글로 소통한 첫 경험이 대부분 스마트폰 메신저 서비스이다. 그것도 동시에 몇개의 창을 오가면서 여럿과 소통한다. 한 공간에 둘러앉은 듯 짧은 내용을 빠르게 주고받으면서 대화한다. 10대들은 이런 소통의 경험을 바탕으로 인터넷 게시판에 글을 남기고, 어른에게 이메일을 보낸다. 짧고 빠르게 반복해서 주고받는 메신저처럼 이메일이란 매체를 쓰고 있는 셈이다.

요컨대, 그들은 이메일까지 도달한 경로, 글을 통해 소통하는 방식에 관한 경험의 보편성이 기성세대와 다르다. 타인을 무시하거나, 가벼이 여겨서 그렇게 소통하는 상황은 아니다. 청소년들이 보내오는 그런 이메일이 필자로서도 답답하고 불편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그들이 타인을 배려하지 않거나 낮춰보기에 그렇게 소통한다고 오해해서는 안 된다.

해법은 둘 중 하나이다. 그들에게 다른 소통방식을 제안하거나, 내가 그들의 소통방식에 맞추면 된다. 전자로 접근할 때는 이렇게 한다. 내가 궁금한 내용을 목록으로 정리해서 한꺼번에 물어보고, 어떻게 답변해 주면 좋을지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그렇게 요청하는 사유도 몇줄 적는다. 그러나 필자는 후자로 접근하는 경우가 더 흔하다. 전자는 그들에게 필자를 배려해달라고 청하는 접근인데, 내가 보기에 그들은 아직 아이다. 아이가 어른을 배려하기보다는 어른이 아이를 배려하는 편이 더 좋으리라 생각한다. 또한, 전자와 후자, 어느 한쪽이 정답이라고 단정하기도 어렵다고 본다.

조선시대 조상들이 오늘날 어른들의 이메일 소통을 본다면 어떻게 생각할까? 필묵으로 정성스레 적어 내린 글이 아닌, 컴퓨터 자판으로 쉽게 주고받는 글을 경박하다고 볼지도 모르겠다. 급변하는 기술과 사회에서 소통방식에 정답은 없다. 그러나 영원히 변하지 않을 진리는 있다.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노력에서부터 진정한 소통이 시작된다는 점이다.

인지과학자·경희대 경영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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