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의 숨은 명산] 지리산 덕두능선이 저 앞이네~

김희순 광주샛별산악회 산행 고문 2023. 12. 13.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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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 만행산
명당의 전설을 지키는 명품 소나무, 원점회귀 가능
만행산 정상 조망, 고남산 너머로 지리산 덕두능선이 지난다.

조선을 건국했던 태조 이성계는 전주 이씨 시조 이한의 21세손이다. 그 덕분인지 조선건국과 관련한 문화자원은 67곳 중 51곳이 전라북도에 모여 있다. 이성계는 전북 임실 성수산 상이암에서 하늘의 소리를 들었다 하고, 진안 마이산에서는 개국의 상징인 금척金尺을 받았다고 한다.

전라북도 남원시에 위치한 만행산萬行山(909.6m)에도 이성계의 흔적이 남아 있다. 과거 그는 만행사에서 고승의 설법을 듣고 감동했는데, 훗날 왕이 된 후 이곳에 들러 3일간 머무르면서 정사를 살피고 돌아갔다고 전해진다. 현재 만행사는 정사를 살피고 돌아갔다는 의미의 귀정사歸政寺로 이름이 바뀌었다.

만행산은 남원시 산동면과 보절면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장수 팔공산에서 시작해서 문덕봉, 고리봉(709m)으로 이어지는 59.5km의 천황지맥(개동지맥)에서 가장 높다. 학이 날개를 편 것 같은 남북으로 긴 능선이 인상적이다.

최근 포장도로와 임도가 개설된 탓에 자연미가 반감되어 유명세에 비해 이름값이 떨어졌지만, 정상의 파노라마 조망은 아직 최상급이다. 백두대간의 웅장한 산맥과 지리산 덕두능선을 비롯한 호남정맥의 주요 능선들을 마주하고 있으며 대자연의 경이로움을 간직하고 있다. 아찔하게 솟은 상사바위가 멋진 조망을 뒷받침한다.

상사바위에서 바라보는 용호계곡과 보절면 일대 전경.

만행산은 보현산, 천황산으로도 불린다.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에는 천황산으로 표기되어 있고, 각종 자료도 천황지맥이라고 기록한다. 누군가는 지명에 관한 혼선을 줄이기 위해, 산줄기 전체를 부를 때는 만행산으로, 만행산의 주봉인 산봉우리는 천황봉으로 표기하는 것이 옳다고도 말한다.

만행산은 불교적 색채가 짙다. 만행萬行은 스님이 산문 밖으로 나와 이곳저곳 떠도는 길 위의 수행 과정을 말하는데, 만행산 기슭에는 소박한 크기의 절이 3곳이나 있다. 모두 한때는 대단한 내력을 지녔던 절이다.

전라북도에서 발간한 <사찰지>에 따르면 귀정사는 515년에 세워진 전라북도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이고, 조선 세조 때는 승려수가 200명을 넘었다고 한다. 만행산의 옛 이름 보현산에서 연유한 보현사는 고려 충선왕 5년 1313년에 혜감국사가 창건했다. 고려 16국사 중 한 사람인 정혜국사는 말년에 남동쪽에 위치한 승련사에서 기거했다고 전해진다.

작은천황봉 방향엔 독특한 모양의 명품 소나무가 많다.

남원 원님이 기우제를 지내던 영험한 산

만행산은 원점회귀가 가능한 산이다. 용평제 주차장에서 출발해 천황봉을 지나 북쪽으로 올랐다 다시 내려온다. 주차장 모퉁이에 산행안내도와 기우제단이 있다. 큰 가뭄이 있을 때는 남원부사南原府使가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냈다고 한다.

천황봉에 장군대좌 명당이 있다. 만행산이 명당이라는 걸 뒷받침하듯, 조망 좋은 곳에는 어김없이 묘들이 자리하고 있다. 혹자는 지리산의 기운이 천황봉의 12갈래 산줄기에 뻗어 있어 9명의 정승이 나는 자리라고도 한다.

청류폭포 주변 암반계류.

산행 초입, 용평제를 끼고 도로를 따라 300m쯤 가면 너적골과 보현사 갈림길이다. 오른쪽에 있는 너적골에서 정상까지는 2.2km 거리이고 1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너적골은 마른계곡이다. 그 옆으로 완만한 경사가 있는 시멘트 포장도로가 1.2km 이어진다. 포장도로가 끝나는 지점부터 다래넝쿨이 무성하고 메주 크기만 한 잡석이 깔린 원시림 같은 오르막이 나온다.

천황봉과 작은천황봉 갈림길에서 작은천황봉 방향을 택한다면, 능선 따라 줄줄이 도열한 특이한 모양의 명품 소나무들을 많이 만난다. 일반적인 소나무 형태와 달리 반송처럼 여러 갈래로 뻗어 있는 노송들은 사진 찍기에 좋다.

숲에는 철쭉과 굴참나무, 소나무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 작은천황봉은 8부 능선에 있는 평범한 봉우리이고, 이곳에서 정상까지는 0.4km 거리다. 정상에 올라서면 천하를 호령하는 제왕의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조망대에서 올려다본 상사바위.

상사바위 너머 백제 부흥군의 함성소리

북쪽으로 금강의 발원지인 뜬봉샘이 있는 신무산을 비롯해 백두대간 장안산, 봉화산, 고남산, 지리산 덕두능선에 있는 바래봉, 부운치, 세걸산, 만복대, 노고단까지 보인다. 서쪽으로는 무등산, 곡성 동악산, 화순 모후산까지 한눈에 들어오는 환상적인 조망이다.

정상에서 1.9km 거리에는 '상으로 내려준 바위'라는 상사바위가 있다. 만행산에서 가장 도드라진 암봉으로 보절면 평야를 지키는 수호신 같은 모습이다. 호랑이가 살았다는 용호계곡의 깊은 골짜기와 용평제, 보절면 일대가 한눈에 보인다. 그 모습을 보면 과거 국경지대였던 보절면 황벌리 거물성에서 죽음으로 맞서던 백제 부흥군의 함성이 들리는 듯하다.

큰골(삼배재) 갈림길에서 곧장 직진하면 935봉으로 이어진다. 지금까지와 비슷한 풍경의 연속이다. 왼쪽 보현사 길을 택하면 용호계곡을 볼 수 있다. 하지만 2.4km에 이르는 용호계곡 아흔아홉 골짜기는 옛말이 되었다. 큰골 갈림길에서 1km 지난 지점에 임도가 새로 생기면서 계곡으로 내려가는 길이 막혔기 때문이다.

하산길 임도는 뒷맛이 싱거운 느낌이다. 옛길로 변해버린 계곡에는 지금도 표지석이 남아 있다. 하류 쪽으로 갈수록 암반계류가 흐르고 보현사 거의 직전에 청류폭포가 있다. 보절 12경 중 제5경으로, 40m 정도 높이로 평소에는 물줄기가 가늘지만, 비가 오면 우람한 경관을 연출한다.

보현사 대웅전.

산행길잡이

▶용평제주차장-작은천황봉-천황봉-상사바위-큰재-852봉-935봉-용평제주차장(9.4km, 4시간 40분)

▶용평제주차장-작은천황봉-천황봉-상사바위-큰재-용호계곡-보현사-용평제주차장(7.8km, 4시간)

교통

서울 강남 센트럴시티터미널에서 남원행 고속버스가 하루 7회 운행한다(07:30, 09:35, 11:30, 14:05, 16:05, 18:35, 20:40), 소요 시간은 3시간 10분. 일반버스는 1만8,700원, 우등버스는 2만7,500원.

여객버스는 공설시장 정류장에서 탈 수 있다. 170번, 171번 여객버스로 약 40분 거리다. 탑승 전 반드시 용동마을 하차 여부를 물어봐야 한다, 요금은 1,000원이며, 하루 6회(08:20, 11:00, 13:15, 15:15, 17:30, 19:35) 운행한다.

월간산 12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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