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부로 산 10달’, 영혼을 갈아 넣은 취재 뒷이야기 [갈색 이방인]④

고순정 2023. 12. 1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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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에서 인간 활동으로 서식지를 옮기게 된 생물종은 3만 7천여 종에 이릅니다. 해마다 200여 종이 새로운 곳으로 퍼져나갑니다. 이 가운데 3,500여 종 이상이 생태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침입 외래종'이 됐습니다. 유해 외래종이 전 세계에 미치는 경제적 피해는 1970년대 이후 10년마다 4배씩 늘어나, 이제 한 해에 4,230억 달러 (한국 돈으로 약 560조원)에 이릅니다.
- 2023 유엔 생물다양성과학기구 (IPBES) 보고서


[기사 연재 순서]

①생태교란종 브라운송어, 왜 소양강에 정착했을까?
②브라운송어 시식지 확대·연중 산란 가능성 확인
③외래종 퇴치 왜 안 될까? 오락가락·주먹구구 환경정책
'어부로 산 10달', 영혼을 갈아 넣은 취재 뒷이야기

지난여름, 미국 하와이에 큰 산불이 났습니다. '지상 낙원'이라고 일컬어지던 아름다운 섬이 화마로 뒤덮였습니다. 여의도의 3배 면적이 잿더미에 뒤덮였고, 90여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습니다. 원인은 전기적 요인으로 추정된다지만, 피해를 키운 것은 하와이 생태계를 장악한 외래종 풀들이었습니다. '기니그래스' 등 외국에서 가축 먹이용으로 들여온 풀들이 불에 더 잘 타는 성질로 인해 불쏘시개 역할을 했고, 결국 산불 피해를 더 키웠다는 것이 유엔 생물다양성과학기구(IPBS)의 분석입니다.

미국인들이 사랑하는 식재료, '푸른 꽃게'는 이탈리아로 유입돼 조개와 홍합 등을 닥치는 대로 잡아먹으면서 어린 조개의 씨를 말리고 있습니다. 급기야 이탈리아 정부는 '푸른 꽃게'의 확산을 막기 위해 290만 유로(41억 원)를 투입하기로 했습니다.

■ 외래종 생태 교란 피해, 문제 인식부터 다시 해야!


외래종으로 인한 세계의 경제적 피해가 연간 560조에 달한다고 합니다. 대한민국 정부 한 해 예산 (630조)에 맞먹는 규모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피해는 심각합니다. 내수면 어민들은 그물을 치고 걷어봤자 잡히는 건 배스·블루길 같은 외래종뿐이라며 어업을 포기하고 있고, 외래종 말벌에 의해 토종 꿀벌은 고사 위기에 처했습니다.

외래종으로 환경 피해가 더 커지고 있지만 이를 다루는 언론의 태도는 제자리걸음을 반복합니다. 잠수부들이 외래종 물고기를 작살로 쏘아대고, 포획틀을 설치해 거대 쥐, '뉴트리아'를 잡아냅니다. 요즘은 통발을 가득 채운 '미국 가재'나, '등검은말벌' 집을 제거하는 장면도 종종 보여집니다. 종류만 더 다양해질 뿐, 잡아서 퇴치하는 장면만을 반복해서 보여주고 있다는 점은 수십 년째 계속 그대로입니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것이 바로 다큐멘터리 '갈색 이방인' 이었습니다. 외래종을 들여 온 것도, 서식할 환경을 만들어 준 것도 인간입니다. 산업, 경제 논리에 휘둘리는 환경 정책도 모두 우리가 만든 겁니다. 인간이 이 모든 문제를 만들어낸, 이를테면 '진범'인데 오히려 '자연'을 교란의 원흉으로 매도하고 퇴치하는 것이 옳은 방향인가? 이 외래종 침입과 관련한 환경 문제의 도돌이표가 개선의 여지조차 없이 악화되기만 하는 '근본 원인'에 대해 깊이 있는 고민을 하고 접근해 보기로 했습니다. 언제, 어떻게 왔는지는 모르지만 유일하게 강원도 춘천의 소양강에서만 만날 수 있다고 알려진 외래종 물고기, '브라운송어'를 출발점으로 말입니다.

소양강의 브라운송어 낚시꾼


■ 취재 난도 끝판왕의 취재원, '자연'

그렇게 꾸려진 '특별취재팀'. 가장 먼저 구입한 장비는 바로 '가슴 장화' 였습니다. '가슴 장화'와 한 몸이 되어, '반 어부'가 되어 생태교란종 물고기들을 쫓아다니는 비린내 나는 10달이 시작됐습니다.


이 베일에 싸인 물고기는 취재도, 촬영도, 모든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국내에서 처음 확인된 어종이다 보니 소양강에서 서식하는 브라운송어의 생태에 대해 참고할 만한 연구 자료도 거의 없었습니다. 그나마 가장 많은 정보를 담고 있던 국립생태원의 외래생물 보고서도 대부분 해외 논문을 인용한 정보만 나열되어 있을 뿐, 실제로 소양강의 브라운송어가 무엇을 먹는지, 어떤 습성을 가졌는지 연구한 내용은 없었습니다. 브라운송어를 가장 많이 접해본 이들인 낚시꾼들을 취재하며 정보를 수집했습니다. 식성을 확인하기 위해 포획해서 배를 갈라보고, 서식지를 확인하기 위해 사상 최초로 소양강 댐 방류구 수중 촬영도 했습니다.

베테랑 수중촬영 감독이 ‘역대급’ 난이도라고 표현했던 소양강의 브라운송어 수중촬영


헤엄쳐 다니는 물고기를 촬영하는 것은 그동안 기자들이 해왔던 촬영과 전혀 달랐습니다. '좋은 그림'과 '안 좋은 그림' 이 아니라 '성공'과 '실패'로 갈리는, 사실상 '실패'의 반복이었습니다. 특히 내수면은 시야가 흐려 수중촬영으로 '쓸 만한 그림을 찍기'가 더 어렵습니다.

소양강은 발전 방류 때문에 물살도 빠른데다, 비가 한 번 오면 상류부터 흙탕물이 떠내려오고 물이 흐려져 수중촬영 시야가 확보될 때까지 또 며칠을 기다려야 합니다. 겨우 촬영 조건이 맞아 입수한다고 해도, 드넓은 소양강에서 자유로이 헤엄치는 브라운송어와 우연히 만나고, 또 물속에서 그걸 따라다니며 촬영해 낼 수 있는 확률은 얼마나 될까요. 막상 만난 녀석은 '물속에서 조명을 비추면 대부분의 물고기는 순간 눈이 멀어 움직임이 둔해져서 찍을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던 베테랑 수중촬영 감독을 머쓱하게 할 만큼 날쌘 '도망의 귀재'였습니다.

하지만 소위 '영혼을 갈아 넣는' 무수한 실패와 재도전 끝에 그 모습을 최초로 담아낼 수 있었습니다.


■ '외래종 문제' 자연 아닌 사람에게서 해답 찾아야!

강으로, 호수로, 외래종 물고기를 쫓아다니고 어민들을 만나다 보니 물고기가 아닌 '사람의 문제'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어족자원 방류로 토종 물고기를 푼다 한들 '10~20% 살면 다행일 뿐, 외래종에 다 잡아먹혀 버린다'고 말하면서도 치어 방류사업은 계속 필요하다고 요구하는 어민들. 물고기를 사다 풀어주는데 매년 수십억의 세금을 쓰면서도 제대로 된 효과 검증 없이 관행적으로 사업을 되풀이하는 자치단체들. 방류되는 어종도 어민들의 요구에 맞춰 메기나 쏘가리, 동자개가 절대 다수입니다. '돈이 되는 물고기'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토종이라고 하더라도, 특정한 어종만 계속 풀어주는데 생태계가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을까요? 여기서도 환경적 가치는 너무나도 쉽게 경제 논리에 밀려납니다.


3편에서 지적했던 '엉터리 생태교란종 수매사업'의 폐단도 마찬가지로 경제적인 이유에서 발생합니다. 강준치와 누치, 끄리는 토종 물고기지만 '무용 어종'이라는 이상한 이름표를 달고 다른 생태교란종들과 함께 수매 저울에 올려집니다. 토종인지, 외래종인지, 어떤 물고기인지는 중요하지도 않고, 파악도 안 합니다. 몇 kg, 얼마인지만 기록됩니다. 이미 목적이 외래종 퇴치가 아닌 '어민 소득사업'으로 변질 됐기 때문입니다.

다큐 '갈색 이방인'에서 이 같은 수매 사업의 문제 사례로 취재했던 강원도 화천군은 결국 강원도 감사에 적발됐습니다. 2021년부터 올해까지 해마다 많게는 9,500만 원, 적게는 6,000만 원에 달하는 수매사업 예산을 4명의 어민에게 제대로 된 확인도 없이 집행해온 것이 드러났습니다. 담당 공무원에게는 징계와 훈계 조치가 내려졌고, 강원도는 다른 시군에도 수매사업 집행 실태에 대한 점검을 확대하기로 했습니다.

■ 아파도 도려내야 하는 '불편한 진실'…내수면 어업 근본적 개선 필요

10달간의 취재를 털어냈다는 후련함, 보도한 내용에 대해 실질적인 개선이 일어나는 것을 지켜보는 뿌듯함과 함께 마음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감정은 내수면 어민들에 대한 '안타까움'입니다.

화천군 공무원들 감사 적발 사실을 후속 취재하면서 만난 한 어민은 온통 구멍이 난 채 물 위에 걷어놓은 그물을 보여주며 눈물을 쏟았습니다. 외래종 때문에 토종 물고기가 씨가 말라 그나마 군청 수매사업에 의존해 근근이 생계를 유지해 왔는데 이젠 그마저도 포기해야 한다는 겁니다. 갑자기 수가 늘어난 수달과 가마우지가 계속 그물을 망가뜨려 이제는 어업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자연과 싸워서 어떻게 이길 수 있겠냐고 말했습니다. 눈물을 멈추지 못하는 예순 넘은 어부의 모습은 여전히 가슴 한 켠에 묵직하게 걸려 있습니다.

가마우지: 어족자원을 고갈시킨다는 이유로 최근 유해 야생동물로 지정돼 포획이 가능해졌다.


현장에서 확인한 내수면 어업은 이미 외래종에 의해 '고사 상태'였습니다. 그물을 걷어 올리면 80~90%가 배스·블루길 같은 외래종이라는 어민들의 말은 거짓이 아닙니다. 물고기를 잡아 팔아서 생계를 유지하는 것은 이미 불가능해진 지 오래, 꽁꽁 언 채 냉동고에 쌓여있는 외래종 물고기로 소득을 보전하며 버티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현재의 어족자원 방류와 외래종 수매 사업은 '언 발에 오줌누기' 입니다. 당장 내수면 어민들의 생계를 얼마간 더 지탱해 줄지는 몰라도 환경과 인간 모두에게 올바른 해결책은 되지 못합니다. 외래종 퇴치 방식과 내수면 어업소득 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근본적인 고민이 시급한 이윱니다.

[연관 기사]
1. 생태교란종 판치는 소양강…낯선 어종 DNA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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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교란종 수매 ‘주먹구구’…줄줄 새는 혈세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837911

[프로그램 다시보기]
유튜브 2023.11.28 소양강댐 50주년 기념 KBS 특별기획 '갈색 이방인'
https://youtu.be/mfPa7k3c2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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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순정 기자 (flyhigh@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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