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동물원] “먹지도 않을 거면서...” 코끼리는 왜 얼룩말을 짓뭉개죽였나

정지섭 기자 2023. 12. 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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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컷 중심 무리, 새끼 근처에 얼룩말 접근하자 가차없이 짓뭉개
인간미 넘치고 점잖은 이미지지만 잔혹한 괴수의 모습도 갖춘 코끼리
발정-번식기 때는 암컷 수컷 모두 공격성 극대화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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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에도 아프리카 사바나에서는 수많은 초식동물들이 포식자에게 잡혀 숨통이 끊기고 있을 겁니다. 육중한 몸집의 기린은 벌떼 같이 달려든 암사자들의 공격을 이겨내지 못하고 쿵하고 쓰러졌을 겁니다. 구덩이에서 최후까지 저항하던 혹멧돼지는 무시무시한 턱힘을 가진 하이에나에게 결국 이끌려나와 산채로 도륙당할 겁니다. 꿰에에엑 멱 따는 소리가 쩌렁쩌렁 울려펴지는 숲 한켠에서는 표범이 방금 사냥당해 두눈을 치켜뜬 임팔라의 목덜미를 물고 나무 위로 힘겹게 올라가고 있을 거예요. 물가를 건너다가 매복공격에 당한 누우의 몸뚱이는 몰려든 악어떼들에 의해 삽시간에 여러 갈래로 해체되고 있을 겁니다. 고통없이 죽는다는 면에서 차라리 자비롭겠죠.

코끼리가 얼룩말을 쓰러뜨리고 무릎을 꿇은 상태에서 코로 가격하고 있다. /indianwildlife_century instagram

이런 행위들을 단순한 살상(kill)이라고 보긴 곤란합니다. 근본적으로 육식동물이 먹고 살기 위한 먹이 활동(forage)이라고 봐야죠. 하지만, 먹이 활동과 무관하게 초식동물이 목숨을 잃는 경우도 종종 발생합니다. 바로 초식동물에 의한 살상이죠. 사자·하이에나·표범·리카온 등 사바나 맹수들의 세력다툼이 워낙 살벌하게 벌어지는만큼 초식동물들끼리는 별다른 갈등없이 오손도손 잘 살아갈 듯도 하지만 인간의 이상적 관점일 뿐,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풀을 뜯어먹는 사바나의 살육자는 명확한 양강구도입니다. 늪지의 괴수 하마는 앞서 상세히 소개해드렸으니 오늘은 육상의 몬스터 코끼리에 대해 얘기하려고 합니다. 먼저 동영상(Video Hiburan Oke Boss Facebook)부터 보실까요?

‘이런게 바로 야생’이라고 전제를 하려고 해도 무척 보기 불편하고 짠한 장면입니다. 한편으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장면이기도 하죠. 얼룩말은 포식자를 본능적으로 알아챕니다. 낌새가 나는 즉시 질주를 시작합니다. 쉬운 사냥감이 절대 아닙니다. 한마리의 얼룩말을 쓰러뜨리기 위해 사자들이 얼마나 거대한 에너지를 쏟아내는지를 봐도 알 수 있어요. 이 어린 얼룩말은 본능은 물려받았을지언정 경험은 부족했습니다. 자신처럼 풀뜯는 초식동물 코끼리가 자칫 목숨을 빼앗을 수도 있다는 걸 모르고 방심했던 것이죠. 코끼리의 공격은 무시무시했습니다. 인간에게 무릎을 꿇는다는건 항복과 굴복의 몸동작으로 인식되지만, 코끼리가 무릎을 꿇는다는 건 치명적 공격의 전조입니다. 무릎을 꿇어 타격범위를 좁힌 뒤 코를 휘두르고 짓누르며 상대편 몸뚱아리를 아작아작 부수는 것은 코끼리의 필살기입니다. 앞발을 꿇고 길쭉한 코를 휘두르는 것만으로 얼룩말의 몸뚱아리는 망치로 얻어맞은 유리처럼 조각납니다. 힘한번 못써보고 쓰러진 얼룩말을 향해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무리의 다른 놈이 돌진해와 역시 코로 짓이깁니다. 동영상에 나오지 않았지만, 이 가련한 얼룩말은 황토색 사바나 땅바닥에 깐 흑백의 주단처럼 쭉 뻗어버립니다. 점잖고 인간미 넘치는 사바나의 거인으로 인식되어온 코끼리의 과격성과 잔혹성에 할말을 잃게 하는 동영상입니다.

코끼리가 쓰러진 얼룩말을 코로 짓뭉개고 있다. /indianwildlife_century instagram 캡처

최후의 숨을 가쁘게 쉬는 얼룩말은 절망적인 눈빛으로 코끼리를 향해 이렇게 절규하고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끄억…끅…도대체…먹지도 않을 거면서…나를…왜…죽이는…거요?” 그 몸부림에 거슬렸는지 무리의 다른 놈이 달려와서 이미 널브러진 얼룩말의 몸뚱이를 재차 짓이깁니다. “뿌우우우~(뜻:닥치거라. 말이 많구나)”하고 신경질적으로 외치면서요. 그저 손의 대용 정도로만 알았던 코끼리의 코가 무시무시한 살상병기임을 확인시켜주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코끼리의 코는 4만여개의 근육으로 구성돼있습니다. 사람 몸 전체의 근육이 650여개이니 얼마나 거대한 근육덩어리인지 짐작이 갑니다. 그 코로 350㎏나가는 물체도 휙 들어올릴 수 있어요. 이 어마어마한 파워를 가진 코에 스치는 것만으로도 치명상을 입을 수 있습니다. 하물며 작정하고 코로 짓이기고 짓뭉개는데 어떤 목숨이 남아나겠습니까?

코끼리가 얼룩말을 쓰러뜨린뒤 연신 코로 짓뭉개고 있다. /indianwildlife_century instagram 캡처

한편으로는 정말 궁금합니다. 먹지도 않을 거면서 왜 죽였을까요? 동영상에 살짝 등장하는 어린 코끼리의 존재가 힌트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무리는 암컷과 어린 새끼들로 이뤄진 전형적인 ‘그룹A’입니다. 철저한 무리 생활 중심으로 움직이는 코끼리는 크게 ‘그룹A’와 ‘그룹B’로 나뉩니다. 암컷과 아직 독립하지 않아 돌봄이 필요한 어린 새끼들로 구성된 게 ‘그룹A’입니다. 반면 그룹B는 수컷들의 집단입니다. 이제 무리를 벗어나서 수컷으로 살아가기 시작한 젊은 놈들과, 장·노년 수컷들이 무리를 이루고 있죠. 그룹A나 그룹B 모두 노련한 경험자들이 확립한 기율에 의해 운영됩니다. 코끼리가 다른 짐승에 비해 뛰어난 사회성으로 ‘사람 같은 동물’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것도 기율이 만든 사회성 덕분이죠.

코끼리가 물소를 코로 밀어 넘어뜨리고 있다. /Latest Sightings Youtube 캡처

어지간하면 마주칠 일이 없는 ‘그룹A’와 ‘그룹B’가 만나는 접점은 육체적 본능이 발동하는 짝짓기철입니다. 공교롭게도 내재된 폭력성이 가감없이 발휘되는 시기이기도 하죠. ‘머스트’라고 불리는 수컷호르몬이 분비되는 시기 수컷코끼리가 통제불능 몬스터로 돌변한다는 이야기는 앞서 전해드렸고요. 그 강렬한 흘레의 결과물로 태어난 새끼를 돌보는 어미와 동료 암컷들도 예민하고 신경이 곤두서있기 마련입니다. 그런 상황을 짐작하지 않고서 얼룩말은 섣부르게 접근했다가 횡액을 당한 것이죠. 코끼리는 생애주기가 사람과 엇비슷하고, 강력한 모계사회를 형성하고 있고, 동료들과 애틋하고 풍부한 감정표현으로 잘 알려져있죠.

코끼리의 공격을 받은 암컷 코뿔소가 새끼를 데리고 황급히 달아나고 있다. /Latest Sightings Youtube 캡처

하지만, 같은 처지의 풀뜯어먹는 초식동물들을 무자비하게 살상하는 장면이 종종 포착됩니다. 그룹A에서 벌어지는 일이 이 정도니 그룹B는 얼마나 살벌할까요? 코끼리의 공격으로 희생된 것으로 확인된 것만 얼룩말·물소·코뿔소 등입니다. 그들 자체를 괴수라고 불러도 손색없을 사바나의 초식짐승들이 코끼리의 몸짓에 나가떨어지기 마련입니다. 드세고 공격적이어서 맹수들도 좀처럼 건드리지 않는 물소가 코끼리의 공격을 받는 동영상 한 편(Kuiseb Delta Adventures Facebook) 더 보실까요? 심장이 약하신 분들에게는 건너뛰시길 권합니다.

이렇게 뭉개지고 밟혀죽고 찔려죽인 가련한 초식동물들의 죽음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먹지도 않을 거면서 쯧쯧하고 있는 사이 공중에서는 대머리수리들이 선회비행을 하고 있을 겁니다. 배고픈 하이에나와 재빠른 코요테들이 굳어가는 살점을 뜯어먹고 나면 최후의 스케빈저 산미치광이들이 어슬렁거리겠죠. 초식동물 무리 중 코끼리가 속한 장비류의 구성원은 단촐합니다. 홀수 발굽인 기제류에 코뿔소와 말이 속해있고, 짝수 발굽의 우제류에 소·사슴·기린이 소속돼있는 것과 다르죠. 아프리카에 두 종류(아프리카코끼리·둥근귀코끼리)가 살고 있고, 아시아에 한 종류가 살아요. 상대적으로 덩치도 작고 펄럭이는 귀도 작고, 더러는 일꾼으로도 부려지는 아시아코끼리가 상대적으로 온순하다고 알려졌지만, 정도의 차이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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