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용진의 수학 인문학 산책] 맞춤법과 국립국어원

기자 2023. 12. 11. 20:29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내가 쓴 영재교육에 대한 책의 마지막 교정을 보는 과정에서 편집자와 맞춤법에 대해 의견 충돌이 있었다. 그것은 외국인 인명 표기법에 대한 것이었다. 나는 출장 가는 길이고 휴대폰을 잠시 후 꺼야 하는 상황이라 마음이 급했지만 30분 넘게 통화를 했다. 편집자는 “제임스 웨브(James Webb)라고 써야 해요. 국립국어원의 표기법에 그렇게 되어 있어요”라고 했지만 나는 이미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이 너무나 유명하고 다들 그렇게 쓰고 있는데 아니 ‘웨브’라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일본어 느낌이 나는 데다 ‘웹사이트’ 같은 말을 이미 흔히 쓰고 있는데 말이다. 설마 ‘web’과 ‘webb’을 다르게 발음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수학자들과 국립국어원의 악연

내 책에 등장하는 또 다른 이름의 표기법에 대한 이견이 더 심각했다. 미적분학을 완성한 베르누이 형제의 라이벌 관계에 대한 이야기에서 형 야코프(Jacob)와 동생 요한(Johann)의 표기법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국립국어원의 표기법에 따라 요한 베르누이 말고 ‘장(Jean)’ 베르누이로 써야 한다는 것이다. 유럽에서 흔한 이름인 야코프나 요한은 독일식 이름으로, 야코프를 프랑스에서는 자크(Jaques), 영미권에서는 제임스(James)라 하고, 요한을 프랑스에서는 장(Jean), 영미권에서는 존(John)이라고 하는 것 아닌가? 요한 베르누이는 너무나 유명한 수학자인 데다 영미권의 수학사 책에도 다 ‘요한’이라고 나온다. 또한 그 자신이 요한이라고 썼고 그의 고향 스위스 바젤에는 독일어 사용자가 프랑스어 사용자보다 압도적으로 더 많은데 웬 프랑스식 이름인 ‘장’이란 말인가?

수학자들은 국립국어원과 약간의 악연이 있다. 10여년 전에 국어원은 갑자기 수학에서 자주 쓰는 표현인 ‘최대값, 최소값’의 표기를 ‘최댓값, 최솟값’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발표하여 수학 교과서, 참고서 시장에 파란을 일으켰고 수학자들의 큰 반발을 샀다. 나는 그동안 최댓값, 최솟값은 그래도 자주 봐와서 이제는 좀 익숙해졌지만 대푯값, 함숫값 같은 표기는 아직도 보기 불편하다. 특히 대푯값의 ‘푯’이라는 글씨는 칠판에 이 글씨를 써 보면 벌레 같아 보인다.

국어원이 그렇게 바꾼 이유는 한자어+우리말로 이루어진 단어의 경우 우리말 첫 발음이 된소리가 나면 사이시옷을 붙인다는 법칙 때문이다. 한자어+한자어에는 사이시옷을 붙이지 않는다. 하지만 여기에도 예외가 있다. 예를 들어, 개수는 ‘개수’이지만 숫자는 ‘숫자’이다. 국립국어원은 한자어+한자어의 경우 곳간, 셋방, 숫자, 찻간, 툇간, 횟수, 이 6개의 단어만 예외적으로 사이시옷을 넣는 것으로 정했다. 찻잔 등의 경우에는 ‘차’가 한자어가 아니라고 하는데 그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사이시옷을 자꾸 붙이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 내가 사는 동네의 ‘곰달래길’ 같은 지명도 ‘곰달랫길’로 바꾸게 되는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

‘만족하다’냐 ‘만족시키다’냐

수학에서는 “다음 조건을 만족하는(시키는) 함수를 구하시오”와 같은 문장에서 ‘만족하다’가 맞느냐, ‘만족시키다’가 맞느냐 하는 논란이 있다. 존경하는 이오덕 선생님께서 쓰신 <우리글 바로 쓰기>라는 책을 보면 ‘혹사시키다’ ‘실현시키다’는 사동을 뜻하는 접미사가 잘못 쓰인 예이고 ‘혹사하다’ ‘실현하다’와 같이 써야 한다고 나와 있다. 나는 이와 같은 맥락에서 ‘만족하다’를 지지한다.

하지만 이미 대세는 많이 기울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최근 ‘만족시키다’로 쓰고 있다(교과서는 아직 반반이다). 그 주된 이유는 국어원이 온라인가나다에서 ‘만족하다’는 ‘흡족하게 여기다’를 뜻하는 자동사이므로 타동사로 쓸 수 없다고 답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어원이 다음 세 가지를 고려해 다시 연구해 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첫째, 중국어에서는 만족(滿足)을 타동사(satisfy)의 의미로 쓰고 있다. 둘째, ‘조건을 만족시키다’에서 ‘조건’은 스스로 흡족하게 여기는 주체가 아니다. ‘사람을 만족시키다’와는 다른 상황인 것이다. 셋째, 우리말 ‘시키다’의 남용이 과한 데다 ‘만족하다’를 이미 오랫동안 사용해 왔다.

국립국어원을 비판만 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다. 실은 최근에는 국어원이 발전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우리말과 관련된 다양한 사업을 하고 있고 국민신문고, 온라인가나다 등을 통해 국민과 소통하려 노력하고 있다. 국어원의 권위가 전보다 더 높아진 것은 우리말 표준화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좋아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권위에 어울리는 좋은 연구를 부탁드린다.

송용진 인하대 수학과 교수

송용진 인하대 수학과 교수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