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개딸’ 이름 바꿔 달라는 개딸

김태훈 논설위원 2023. 12. 11.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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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성규

몽골은 한자 문화권에서 오랫동안 몽고(蒙古)로 불렸다. 몽골인들은 이 명칭을 싫어했다. ‘몽(蒙)’은 ‘어리석다’는 뜻이니 국호로는 부적절한 게 사실이다. 우리는 “몽골로 불러달라”는 요구를 존중해 1990년대 초부터 그렇게 쓰고 있다. ‘튀르키예’도 비슷한 사례다. 튀르크는 ‘용맹한 자’에서 유래됐는데 ‘터키’라는 국명은 영어의 칠면조와 발음이 같고 속어엔 ‘멍청한 자’라는 뜻도 있다. 유엔이 요구를 받아들여 국명 변경을 승인했다.

▶버마도 1988년 자신들을 미얀마로 불러 달라고 했다. 하지만 여러 나라가 여전히 버마로 부른다. 국제사회의 공감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영미권에서 미얀마 군부 통치 세력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에서 버마라고 부른다. 직업의 명칭을 바꿀 때도 사회적 동의가 필요하다. 파출부가 가사 도우미로, 운전사가 기사로, 청소부가 환경미화원으로 바뀐 것은 해당 직업 종사자의 요구도 있었지만 우리 사회가 어느 정도 공감했기 때문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강성 지지자들이 스스로 만든 ‘개딸’이란 이름을 파기하고 ‘민주당원’ 또는 ‘민주당 지지자’로 바꿔달라고 한다. ‘개혁의 딸’을 줄인 말이라며 ‘세계사적 의미가 있는 새로운 정치 행태’라고 자랑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앞으로는 지구상에 있지도 않을 개딸’이라고 단언한다. 이재명 대표도 얼마 전까지 “참 많은 우리 개딸, 개이모, 개삼촌, 심지어 개할머니까지 함께해주셔서 정말 큰 힘이 난다”며 “개딸님들 사랑한다” 했었다. 의외의 돌변이다.

▶개딸은 개명의 이유를 “상대 진영이 우리를 프레임해 선동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개딸에 나쁜 이미지가 덧칠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이미지를 만든 사람들은 다른 누구가 아니라 개딸 자신들이었다. 몇 해 전 서울 서초동 촛불 집회를 주도한 사람들도 처음엔 ‘수단 방법 안 가리고 조국을 돕겠다’는 뜻으로 자신들 이름을 ‘개싸움국민운동본부’라고 했다. 그러더니 나중에 ‘개혁국민운동본부’라고 이름을 바꿨다.

▶철학자 야스퍼스는 “말이 들어맞아야 참다운 의미에서 존재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름을 걸고 지향하는 취지와 실제로 하는 행동이 명실상부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입으로는 ‘개혁의 딸’을 외치면서 실제로는 퇴행적 행태를 거듭한 개딸은 ‘참다운 의미에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반대파 좌표를 찍고 떼로 몰려가 공격하는 행태는 민주당 내부에서도 ‘나치’ ‘파쇼’라는 우려를 낳았다. 이에 대한 반성은 하나도 없이 개딸 이름만 바꿔달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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