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밖에 없다면 라면을 맛있게 끓일밖에

한겨레21 2023. 12. 11. 20:18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무적의 글쓰기]뼈대가 아니라 흐름… 설득력 있고 다음 이야기가 궁금한 배치는 무엇인가
라면을 끓일 때 ‘물 → 양파 → 라면과 분말수프 → 대파 → 달걀’ 순서로 끓일 수도 있고, ‘물·양파·대파·분말수프 → 라면 → 달걀’ 순서로도 끓일 수 있습니다. 순서를 정하는 것도, 있는 것을 빼는 것도 ‘배치’입니다. ‘구성’이란 글감을 배치하는 일입니다. 한겨레 자료

저희 집 마당 한편에는 텃밭에서 나오는 잡초와 낙엽, 음식물을 모아 거름을 만드는 퇴비간이 있습니다. 몇 해 전에 만들었습니다. 돈 쓰는 걸 아까워하는 좀팽이인지라, 주변에서 재료를 주워다가 만들었습니다. 공사장에서 얻어온 팰릿(팔레트)과 각목, 산에서 주워온 굵은 나뭇가지, 무료 나눔으로 얻어온 방부목 쪼가리, 열매를 맺지 못해 잘라버린 감나무와 자두나무 줄기 따위입니다.

목표는 담벼락에 기댄 직사각형 퇴비간. 담벼락이 있으니 세 면을 허리춤 높이로 오게 하는 것. 가운데를 두 쪽으로 나누되 한쪽은 오래 묵은 것을 모아두도록 넓게, 다른 쪽은 바로바로 버릴 수 있도록 좁게. 굵고 긴 나무는 귀퉁이에, 가늘고 짧은 나무는 가운데에. 너무 길면 톱질이요, 너무 짧으면 못질로 이어붙입니다. 아래는 좀 못난 것들로, 위는 반질반질한 것들로. 이렇게 퇴비간 하나 만드는 데도 하루 종일 걸립니다. 머릿속에는 네모반듯한 모양이지만, 실제로는 울뚝불뚝해집니다. 하지만 지금도 튼튼하게 잘 버티며 거름을 만들고 있습니다. 지나가는 사람이 보면, 별것 아닌 일로 세월을 허송하는군, 할 겁니다.(흥, ‘동이 트기 전에 나무를 패고 물을 길어라. 동이 튼 다음에도 나무를 패고 물을 길어라’라는 말이 있다고요!)

작가들이 ‘난리 블루스’ 추는 이유

‘작가는 어떻게 글을 쓸까?’ 글을 잘 쓰고 싶어 하는 사람이 가장 궁금해하는 질문입니다. 많은 작가가 글을 쓰기 전에 온갖 난리 블루스를 춥니다. (글은 안 쓰고) 책만 읽고, (안 쓰고) 잠만 자고, (안 쓰고) 청소만 하고, (안 쓰고) 누워만 있습니다. 괜히 ‘앓는 소리’를 하는 게 아닙니다. 이 난리 블루스를 추는 이유는 대부분 ‘구성’ 때문입니다. ‘어떤 모양의 퇴비간을 만들까?’를 구상하듯이, 어떤 흐름의 글을 쓸지가 그려지지 않아 빈둥거립니다. 글쓰기는 택배상자 안에 깔끔하게 자른 목재와 나사 뭉치를 꺼내 제자리에 갖다 끼우기만 하면 되는 조립식 책장 같은 게 아닙니다. 전혀 다른 모양과 재질의 글감을 이리저리 손재주를 부려 하나의 물건으로 탈바꿈하는 일입니다.

여기서 구성이란 글감을 배치하는 일입니다. 이 말을 잘 새겨두길 바랍니다. 구성은 ‘서론-본론-결론’이라거나, ‘기-승-전-결’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과 같은 정해진 틀을 따라가는 게 아닙니다. 설령 결과가 이와 비슷하게 나오더라도, 구성은 손에 잡힌 ‘글감’에서 출발합니다. 글감은 ‘지금 당장’ 내 손안에 잡힌 것들입니다. 구성은 내 손안에 잡힌 글감을 배치하는 기술입니다.

구성은 주제만큼 중요합니다. 아니, 주제보다 더 중요합니다. 우리가 글을 읽는 것도 한 문장으로 요약되는 주제 때문이 아니라, 문장과 문장이 이어지고 작은 에피소드끼리 맞물려서 좀더 큰 이야기에 합류하는 흐름, 그 흐름을 따라가며 시간을 보내는 그 자체를 즐기기 위해서입니다.

‘어떤 모양의 퇴비간을 만들까?’ 구상하듯이, 어떤 흐름의 글을 쓸지 구상해야 합니다. 글쓰기는 전혀 다른 모양과 재질의 글감을 이리저리 손재주를 부려 하나의 물건으로 탈바꿈하는 일입니다. 한겨레 자료

구성은 지금 당장 부엌에 있는 식재료만으로 요리해야 하는 상황과 비슷합니다. 어디 가서 뭘 더 사올 수 없습니다.(글을 쓰다보면 불쑥 떠오르는 글감이 있긴 하지만, 그걸 믿고 마냥 기다릴 수는 없습니다.) 라면밖에 없는데, 그걸로 콩나물국을 끓일 수는 없습니다. 저처럼 생각도 얕고 경험도 시시껄렁한 사람에게는 식재료가 많지 않습니다. 제가 쓴 글은 라면 한 그릇 수준입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그걸로 요리해야 합니다. 대신 부엌 여기저기를 뒤져봅니다. 다행이네요, 대파 한 줄기와 양파 한 개가 있습니다. 와우, 달걀도 한 알 있군요.

정말 라면 한 봉지밖에 없다면 간단합니다. (1)물을 끓인다. (2)라면과 분말수프를 넣고 끓인다. 끝. 하지만 대파, 양파, 달걀이 있다면 달라집니다. 순서를 달리할 수 있습니다. 식성에 따라 ‘물 → 양파 → 라면과 분말수프 → 대파 → 달걀’ 순서가 될 수도, ‘물·양파·대파·분말수프 → 라면 → 달걀’ 순서가 될 수도 있습니다. 있는 것을 빼는 것도 배치입니다. 양파나 달걀을 넣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요.

글 구성을 쓰기 전 혹은 후에 점검해야

글을 쓰기 전이든, 글을 다 쓴 다음이든, 자기 글이 어떤 구조적 윤곽을 갖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책이나 논문을 쓰는 게 아니라면 둘 중 무엇을 택해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다만 어느 단계에서든 반드시 내 글의 구성이 어떤지 생각해야 합니다. 흐름이 자연스러운지,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지도록 배치했는지.

두 개의 예로 얘기해보겠습니다.

제 경험부터 말씀드리죠. 제가 매주 쓰는 칼럼은 글자 수가 800자 이내이며, 주제는 말과 글로 제한됐습니다. 길게 쓸 수도, 다른 주제를 쓸 수도 없습니다. 신문에 첫 칼럼([말글살이]형용모순)이 실린 날짜가 2019년 5월27일이었습니다. 공교롭게도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공수부대에 의해 진압된 날과 겹쳤죠. ‘광주’를 주제로 쓰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때 떠오른 단어가 ‘시민군’이었습니다. 이 단어를 곱씹다보니 서글퍼지더군요. ‘시민+군’. 시민을 지키는 군인이 아니라, 시민이면서 군인인 시민군. 어울리지 않는 결합이었습니다.

그러곤 이것저것 글감을 찾았습니다. ‘형용모순’이라는 수사법이 떠올랐습니다. 형용모순이라는 시각에서 시민군을 써봐야겠다고 정했습니다. 글감을 더 찾았습니다. 하나는 형용모순의 정의와 그런 표현이 왜 필요한지에 대한 설명이었습니다. ‘눈뜬장님, 다시마 육수’처럼 주변에서 익숙한 예를 찾아 모으기도 했습니다. 무게감을 주기 위해 종교 영역에서 쓰이는 예도 찾아봤습니다.

자, 이제 도마 위에 재료‘들’(글감)이 올라와 있습니다. ‘시민군, 형용모순의 정의, 형용모순의 쓸모, 일상어에 쓰인 예, 종교에서 쓰인 예’. 이걸로 요리해야 합니다. 제가 잡은 순서는 이렇습니다. 네 개로 이뤄진 문단을 ‘형용모순의 정의와 쓸모 → 일상어의 예 → 종교에 쓰인 예 → 시민군 언급’ 순으로 짰습니다. ‘형용모순’을 모르는 독자를 위해 먼저 이 말의 정의와 쓸모를 쉽게 설명했습니다. 그 뒤에 예를 두 문단에 나눠 썼습니다. 마지막 문단에 정말 하고 싶었던 ‘시민군’ 얘기를 꺼냈습니다. 마지막 문장으로 ‘진압 후 계엄군은 능청스레 광장 분수대 물을 하늘 높이 솟구치도록 틀었다고 한다.’라고 썼습니다. 진압 후 평온한 척하는 상황 자체도 역설적이라 형용모순이란 주제와 연결될 듯싶어서였습니다.

다르게 구성할 수도 있습니다. ‘시민군이란 단어가 형용모순이다 → 형용모순의 정의와 쓸모 → 일상어의 예 → 종교에 쓰인 예 → 시민군 언급으로 마무리’. 어떤 게 나은 구성이었을까요?

강원도 평창 산골의 밤. 한겨레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어떤 시간으로 배치할 것인가

제 칼럼은 짧아 구성하기가 비교적 쉽습니다. A4용지 한 장이 넘어가면 좀더 치밀하게 구성해야 글맛이 살아납니다. 좋은 글은 다음 문장이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지는 글이니까요.

좀 긴 산문의 예를 하나 더 들어보겠습니다. 누구에게나 ‘다시 가고 싶은 장소’가 있습니다. 익숙한 주제입니다. 민경숙 작가의 책 <꽃잎이 뜸 들이는 시간>에 실린 ‘배롱나무’라는 감동적인 글이 있습니다.

지면 관계상 원문을 보여드릴 수 없어 아쉽군요. 주요 글감을 중심으로 글의 흐름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고향집에 가보자는 동생의 전화(현재1) → 옛날 모습은 사라지고 세련된 전원주택으로 바뀐 옛집(현재2) → 젊을 때부터 ‘노름’에 빠진 아버지가 양조장, 논밭, 건물 등 가산을 모두 팔아 탕진하고 빚더미에 앉음(과거1) → 가족이 모두 서울로 피신했지만, 할머니는 고집스럽게 그대로 남음(과거2) → 할머니는 가난하게 살면서도 용돈을 보내면 모두 빚쟁이에게 갖다줌(과거3) → 볼품없던 배롱나무가 이제는 기품 있는 모습으로 자람(현재3) → 회한에 싸인 동생의 울음(현재4)’

괄호 안 숫자는 시간의 순서입니다. 이 글의 장점은 과거를 과거에 머무르게 하지 않고 현재로 소환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글감을 ‘현재 → 과거 → 현재’라는 순서로 배치했습니다. 시간의 흐름을 뒤섞어 과거의 글감 3개를 가운데에 집어넣고, 현재의 글감 4개를 둘씩 나눠 처음과 마무리에 배치해 과거의 이야기를 감싸는 구조를 만들었습니다.

좋은 구성이 설득력과 맛깔스러움 더해

삶의 경험을 바탕으로 글을 쓸 때는 항상 고민하는 지점이 있습니다. 시간입니다. 가장 편한 방식은 사건이 일어난 순서대로 쓰는 것입니다. 하지만 핵심적 사건, 주제가 담긴 사건이 전체 사건의 후반부에 나올 때 고민됩니다. 그 핵심 주제를 담은 이야기가 나올 때까지 그 앞에 벌어진 사건을 차례대로 쓸지, 순서를 바꿔 중요한 이야기를 먼저 쓸지, 현재 상황을 얘기할지, 어디에서 할지 등등.

여러분이 읽는 이 글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글의 구성이 중요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솔직히 이 한 문장이면 됩니다. 하지만 이렇게 한 문장으로만 말하면 독자가 귓등으로 흘려들을까봐 여러 장치를 구상하는 겁니다.

제 손에 잡힌 재료는 ‘구성의 정의와 중요성, 퇴비간 만든 경험, 라면 끓이기, 첫 칼럼의 구성 방식, ‘배롱나무’라는 산문에 대한 분석’ 정도입니다. 글 쓰는 사람들이 구성에 대해 별생각을 안 한다고 여겨서 그 중요성을 쉬운 말로 설득하기 위해 퇴비간 만든 경험을 맨 앞에 뒀습니다. 그러곤 퇴비간 만드는 과정과 비슷하게 글쓰기에서도 구성이 중요하다고 연결고리를 건 다음, 구성의 정의와 중요성을 배치했습니다. 라면 끓이기를 예로 들어 한 번 더 강조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제 첫 칼럼의 구성 방식과 산문 ‘배롱나무’를 분석하고 마무리하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다르게 구성할 수도 있었을 겁니다. 구성이란 게 뭔지 먼저 정의하고 그게 글쓰기에서 중요함을 설명한 다음에, 비슷한 예로 라면 끓이기와 퇴비간 만들기를 배치할 수도 있겠지요. 좋은 구성의 예로 ‘배롱나무’를 분석하고, 제 칼럼 얘기를 슬쩍 끼워넣는 식의 흐름도 가능합니다. 이럴 수도 있습니다. 맨 앞에 산문 ‘배롱나무’를 소개하면서 잘 구성된 글이 얼마나 맛깔스러운지를 먼저 보여준 다음, 구성의 정의와 중요성을 써내려가다가 제 칼럼도 그렇다는 걸 보여주고, 이것이 글쓰기에만 해당하지 않고 라면 끓이기나 퇴비간 만들기와 같은 생활 영역에도 적용된다며 마무리할 수도 있을 겁니다

과감히 포기하세요

어떤 게 나은 구성일까요? 저는 제가 선택한 구성이 제일 좋더군요. ‘이게 제일 좋은데!’라는 느낌이 들면 그게 좋은 겁니다. ‘아직 덜된 것 같은데!’라는 느낌이 들면 아직 덜된 겁니다. 다른 기준은 없습니다.

*이 글을 쓰기 위한 글감으로 학생들을 데리고 미대생의 작업실을 방문한 얘기가 있었습니다. 무려 세 단락이나 됩니다. 그런데 그걸 뺐습니다.(아깝더군요.) 너무 길기도 하고, 써놓고 보니 이 주제와 긴밀하게 연결되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라면 끓일 때 달걀을 뺄 수 있듯, 손에 잡힌 글감을 과감히 포기하는 것도 구성의 중요한 전략입니다.(‘미대생의 작업실 방문’ 얘기를 뺐다는 내용을 ‘여기’에 두는 것도 구성의 일환입니다! 하하)

김진해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말끝이 당신이다> 저자

[독자글]
‘나를 위로해주는 것’이라는 글감으로 여덟 분이 글을 보내주셨습니다. 이 주제로 글을 써보시라 해놓고 보니, 정작 저 자신을 위로해주는 방법을 갖고 있지 않더군요. 그저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생각만 하며 사는 듯합니다. 속이 많이 상하면 기껏 방앗간에 날아든 참새처럼 단골집에 앉아 술잔을 기울이는 정도. 이 무미하고 건조한 생을 어찌해야 하나요.
글을 보내주신 분들은 각자 자기만의 위로 방식을 갖고 계시더군요. 10년 단위로 각기 다른 위로 방식을 슬기롭게 찾아가는 혜욱님, 빠른 리듬에 몸을 맡기는 라인댄스로 복잡한 머릿속 소음을 날려버린다는 리아님, 엄마를 모신 산소에 가서 살아 있는 사람들한텐 비치지 못했던 속내를 다 털어놓는다는 숙연님, 친구의 얘기를 들어주기만 하다보니 어느 순간 불편해졌는데 글쓰기로 마음을 다잡게 됐다는 선옥님, 심란한 일이 생길 때마다 참선하듯이 바느질거리를 들고 자리잡고 앉는다는 정선님, 마음 아픈 일을 당했을 때 텅 빈 운동장 언덕이나 고요한 성당에서 펑펑 울었다는 체스카님, 외톨이가 됐을 때 ‘빛을 그리는 방법은 그림자를 만드는 것’과 같은 명언을 차곡차곡 쌓아 거듭 읽으면서 힘을 낸다는 담이님, 사회적 약자와 참사 희생자를 위한 합창단에 참여하면서 시민의 힘과 사회적 위로를 경험한다는 승렬님.
글 쓰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글을 ‘완성’해야 합니다. 자기 글이 ‘완성됐다’는 느낌이 왔을 때 글쓰기가 끝납니다. 마지막 문장을 쓴 다음, 되물어봐야 합니다. ‘내 글이 완성됐는가?’ 밖에 나갔다가 집에 돌아오는 것이 목표라면, 그사이에 버스를 놓치든 소낙비를 쫄딱 맞든 기어서 오든 어떻게든 현관문을 열고 집 안으로 내 몸뚱이를 디밀어놓고 문을 닫아야 ‘귀가’가 완성됩니다. 자기 글도 어떤 식으로든 완성됐다는 느낌이 들 때, 글이 완성된 겁니다. 그런 감각이 여러분의 글을 좀더 매력적으로 만들 겁니다.

[여러분의 글을 보내주세요]

기왕에 말이 나왔으니 ‘다시 가고 싶은 장소’로 써보시죠. 공간과 달리, 장소는 구체적이고 감각적인 이야기가 묻어 있습니다. 이번에는 구성을 생각하면서 써보기 바랍니다. 글 한 편에는 하나의 주제가 담기지만, 그걸 표현하기 위해 작은 글감들을 적절히 배치해야 합니다. 장소에 얽힌 사건, 상황, 생각, 말, 기억, 사람을 어떤 자리에 놓아야 독자에게 감동을 일으킬지 생각하면서 써보세요.

하나 더. 여러분이 구성을 어떻게 하는지 궁금하네요. 그러니 어떤 의도로 글감을 배치했는지, 애초의 구성과 달라졌다면 왜 그렇게 바꿨는지도 함께 적어 글을 보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주제: 다시 가고 싶은 장소
분량: 1천 자 정도
마감: 2023년 12월31일
보낼 곳: han21@hani.co.kr

Copyright © 한겨레2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