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완의 사이언스카페] 빈대, 머릿니가 고인류학의 寶庫? “DNA 통해 인류 이동 알려줘”

이영완 조선비즈 과학에디터 2023. 12. 11.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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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가삼간 태운다'는 속담으로나 알던 빈대가 최근 전국에 출몰하면서 인류와 기생충의 질긴 악연(惡緣)이 다시 주목을 받았다.

머릿니로 유럽인의 아메리카 이주를 추적하고, 빈대 DNA를 분석해 인류와 만난 과정을 알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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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머릿니는 날개가 없는 흡혈 기생충이다. 과학자들은 전 세계 머릿니의 DNA를 분석해 인간의 이주 경로를 확인했다. 사진 미 질병통제예방센터 2 사람 머리카락을 붙잡고 있는 머릿니의 전자현미경 사진. 사진 웰컴 트러스트

‘초가삼간 태운다’는 속담으로나 알던 빈대가 최근 전국에 출몰하면서 인류와 기생충의 질긴 악연(惡緣)이 다시 주목을 받았다. 빈대나 머릿니 같은 흡혈 기생충은 태고부터 줄곧 인간을 괴롭혔다. 최초의 알파벳 문장이 머릿니를 없애길 바란다는 내용일 정도다.

과학자들은 악착같이 인간에게 들러붙는 기생충을 연구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고인류의 화석이나 유물이 없어도 인간에게 들러붙었던 기생충 흔적만 있으면 인류사를 재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머릿니로 유럽인의 아메리카 이주를 추적하고, 빈대 DNA를 분석해 인류와 만난 과정을 알아냈다. 바이킹의 몸속에 있는 편충은 인류가 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이동한 경로를 재확인시켰다.

3 기원전 1700년 무렵 상아로 만든 머리빗. 당시 가나안 문자로 ‘이 상아가 머리카락과 수염의 머릿니를 박멸하길 바란다’란 뜻의 글이 새겨져 있다. 사진 이스라엘 히브리대 4 편충의 알. 바이킹 유적지에서 나온 분변 화석 속의 5000년 된 편충 알을 통해 인류의 이주 경로를 분석했다. 사진 미 질병통제예방센터

머릿니 통해 아메리카 이주사 재구성

미국 플로리다대의 데이비드 리드(David Reed) 교수 연구진은 11월 8일(현지시각) 국제 학술지 ‘플로스 원(PLoS ONE)’에 “전 세계에서 채집한 머릿니(학명 Pediculus humanus)의 DNA를 분석해 아메리카 대륙으로 인류가 이주한 두 가지 경로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머릿니는 날개가 없고 숙주의 두피를 뚫고 피를 빨아먹는 기생충이다. 머릿니는 숙주마다 다르다. 사람에게 기생하는 머릿니는 오직 사람 두피에만 산다. 사람이 만나면 머릿니도 옮겨갈 수 있다. 머릿니를 통해 사람들이 만나고 이동한 경로를 추적할 수 있다는 것이다.

리드 교수와 미국 농무부 농업연구소의 마리나 에스컨스 박사는 온두라스와 프랑스, 르완다, 몽골 등 전 세계 25개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서 머릿니 274마리를 채집했다. 앞서 연구진은 머릿니의 세포핵에 있는 DNA를 분석했다. 그 결과 유전적 연관성이 있는 두 집단이 확인됐다. 한쪽은 아시아와 중앙아메리카의 머릿니였고, 유럽과 아메리카의 머릿니가 다른 집단을 이뤘다.

DNA는 시간이 가면서 일정한 속도로 돌연변이가 발생한다. 연구진은 머릿니 DNA의 돌연변이를 역추적해 언제 서로 다른 지역의 머릿니 사이에 교잡이 이뤄졌는지 추적했다. 연구진은 온두라스와 몽골의 머릿니가 유전적으로 밀접한 연관성이 있는 것은 2만3000년 전에 아시아계 사람들이 아메리카 대륙으로 퍼지면서 머릿니도 함께 퍼졌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연구진은 유럽과 미국, 멕시코, 아르헨티나 머릿니들의 유전적 연관성도 확인했다. 돌연변이를 역추적했더니 약 500년 전 아메리카 원주민의 머릿니와 유럽인의 머릿니가 교잡했을 것으로 추정됐다. 유럽인이 아메리카 대륙에 식민지를 개척하면서 머릿니도 함께 퍼진 것이다.

인류 최초의 알파벳 문장도 머릿니 관련

영국 레딩대의 알레한드라 페로티 교수는 이번 연구가 흥미롭지만, 머릿니의 채집 지역이 다양하지 않다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아프리카에서 잡은 머릿니는 한 마리밖에 없었고 남미의 머릿니도 적어 전 세계에서 머릿니가 어떻게 연관됐는지 추론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또 머릿니의 DNA 중 극히 일부만 해독한 점도 아쉬운 부분으로 지적됐다. 연구진은 곧 머릿니의 전체 유전자를 해독하겠다고 밝혔다.

머릿니는 인류의 이동 경로뿐 아니라 교역까지 알려줄 수 있다. 덴마크 코펜하겐대의 미켈 빈터 페데르센 교수는 ̒사이언스' 인터뷰에서 “인간의 DNA나 고고학 유물이 없는 상태에서 머릿니가 인간의 이동과 상호작용에 대한 단서를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만약 피가 섞이지 않은 두 집단이 머릿니를 공유했다면, 서로 만나 상품만 거래하고 혼인 관계는 맺지 않은 사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머릿니는 이미 문자의 역사까지 알려줬다. 이스라엘 히브리대 연구진은 2022년 “청동기시대이던 3700년 전에 만든 머리빗에서 최초의 알파벳(alphabet) 문장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상아(象牙)로 만든 이 머리빗은 지난 2017년 발굴됐는데, 글자는 지난해 처음 해독됐다. 연구진에 따르면 머리빗에 새겨진 글자는 고대 가나안 지역에서 쓰이던 문자로 ‘이 상아가 머리카락과 수염의 머릿니를 박멸하길 바란다’란 뜻이었다.

히브리대 연구진은 머리빗은 문자 하나하나가 자음이나 모음을 나타내는 음소문자(音素文字), 즉 알파벳 문장이 기록된, 가장 오래된 유물이라고 밝혔다. 음소문자는 기원전 1800년 무렵 지금 시리아와 이스라엘을 포함하는 가나안 지역에서 쓰이다가 이후 전 세계로 퍼졌다고 추정된다. 지금까지 고대 가나안 문자 한두 개가 기록된 유물이 발굴됐지만, 머리빗처럼 완전한 문장은 처음 나왔다.

빈대가 인간에게 옮겨온 과정도 밝혀

빈대도 역사 연구에 등장했다. 2019년 독일 드레스덴 공대 연구진은 전 세계에서 채집한 빈대의 DNA를 해독해 빈대가 인간으로 옮겨온 두 가지 경로를 확인했다. 50만 년마다 새로운 빈대 종이 출현한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그동안 빈대가 6400만 년 전 포유류로는 박쥐에게 처음으로 기생했다고 알려졌는데, 당시 연구로 공룡시대인 1억1500만 년까지 역사가 확장됐다. 연구진은 독수리에게 기생하던 한 빈대가 인간을 숙주로 바꿨고, 박쥐에게 기생하던 다른 빈대는 박쥐 배설물이 비료로 쓰이면서 역시 인간에게 옮겨왔음을 확인했다.

몸속에 있는 기생충도 좋은 연구 소재이다. 덴마크 코펜하겐대 연구진은 2022년 바이킹 정착지에서 나온 분변 화석에서 5000년 된 편충(학명 Trichuris trichiura)의 알을 찾아내 유전자를 분석했다. 이를 아프리카와 중앙아메리카, 아시아, 유럽 9개 지역에서 얻은 오늘날 편충의 DNA와 비교해 1만 년간 편충의 미토콘드리아 유전자 변화를 살폈다. 세포핵 밖에 있는 미토콘드리아 DNA는 모계로만 유전돼 진화 과정을 추적하는 단서로 쓰인다.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에 발표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아프리카에 있던 편충이 아시아, 아메리카로 차례차례 이동했다. 이는 현생 인류가 퍼져나간 방향과 일치한다. 연구진은 5만5000년 전 현생 인류의 조상이 아프리카에서 나와 다른 곳으로 이주할 때 편충도 함께 전파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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